초기 예수 공동체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제국의 힘에 의해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가 당대 크리스천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믿음의 내용이었다는 말이다. 부활 이야기가 그들에게 힘이 되는 내용이 아니었다면 초기 공동체가 그렇게 일반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를 끝까지 고집했을 이유가 없다.
나에게 부활 신앙이 없다면 그것은 내가 아직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은 너희가 나를 죽여도 하나님이 나를 다시 살리신다는 그 부활의 믿음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은 잘못된 종교나 제도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리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애쓰시던 삶의 길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권력자들에게 세뇌되어 있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 다다른 길이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나 먹고 살기 위해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을 살리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그런 일에 투신해본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잘 안다.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내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때 비로소 부활 신앙의 차원이 열리게 된다.
부활에 대한 의문은 탁상공론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늘 부활이 진짜 있었냐 없었냐 이런 이야기만 하면서 싸우게 될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부활 신앙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 엄청난 고난을 당하셨던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만 부활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 길을 따르지 않으려 하는 자는 부활은 커녕 십자가의 도에도 다다르지 못하게 된다.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 자가 어찌 부활 신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