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23, 2013

유치원에 보내며

아들 이안이 이제 다음 달이면 만 세살이 된다.
집 근처에 있는 유치원 중 형편에 맞는 곳을 골라 3일간 매일 한 시간 정도 유치원에 머물며 적응기간을 가졌었고,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서 여섯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켜주고 나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오후에 전화해보니 우리가 나가고 난 후 아이가 한 10분 정도 울었다고 한다.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긴 하나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예의 그 밝은 표정과 흥이 사라진 얼굴로 밖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깐동안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는데, 서서히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것이었다.
왜 이제 왔느냐는, 자기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말이라도 통했더라면 덜 외로웠을 터인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으니 얼마나 더 힘들었겠는가..
그래도 부모없이 여섯 시간을,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견뎌준 아이가 대견했다.
이제 첫 발을 떼었으니 앞으로도 두발, 세발..
거친 세상 속으로 잘 걸어나가길 기도한다.

Thursday, July 18, 2013

서핑을 보며

집 앞 길 건너에 이 지역에서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이 있다. 아들 녀석이 그 곳 해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동안 난생 처음으로 서퍼들이 서핑하는 모습을 맨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남반구인 이곳은 지금이 겨울이기에, 물론 한국의 겨울처럼 영하의 추위는 아니지만, 체감기온이 제법 쌀쌀했고 호기심에 직접 손을 담가본 바닷물도 꽤 차가왔다.

서퍼들은 10대,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에서부터 5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다들 위아래 통으로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들어진 검정색 서핑복을 입고 있었고, 파도를 타기 위해 해변에서 100미터 쯤 파도를 거슬러 먼바다쪽으로 헤엄쳐 가고 있었다. 보드에 엎드려 두팔의 힘만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헤치고 먼 곳으로 나가는 모습이 사뭇 힘들어 보였다.

서퍼들은 파도의 너울이 시작되는 근방에 도착한 후에는 보드에 앉아 서핑을 할 만한 파도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드는데, 그들이 바라는 파도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였다. 기다리는 파도가 올 때까지 5분이고 10분이고 보드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들은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나는 그저 아무 파도나 올라타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도도 각양각색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파도는 서퍼를 들어올려 앞으로 밀고 갈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런 파도를 골라 올라타려는 서퍼들은 헛 힘만 쓸뿐 맥없이 자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좋은 서퍼란 좋은 파도를 골라낼 줄 아는, 또는 그런 파도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잘 잡는 기술이 있다해도 파도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역으로 말 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좋은 파도가 있다해도 보드를 탈 줄 모르면 어찌 서핑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서핑도 인생처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 맞물려져 있는 것이었다. 파도가 없을 때는 파도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파도가 왔을 때는 그 파도를 잘 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파도가 밀려오면 도망치는 세 살 짜리 아들 녀석도 이 해변에서 자라다보면 겨울 추위에도 보드하나만 들고 하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좋은 파도를 기다릴 줄 알고, 파도가 왔을 때 휩쓸리지 않고 유유히 물벽을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되면 혹 인생의 파도도 잘 타고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Monday, July 1, 2013

이사를 마친 후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는 중에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살던 집 주인 린다와 베리 부부는 우리에게 싱글 베드와 서랍장, 식기 세트를 주었고, 패트리샤와 티모시 부부는 4개의 식탁의자와 현금 200불을,
그리고 로레인과 피터 부부는 식탁과 각종 부엌 용품을 주었다.
특히 로레인, 피터 부부는 우리를 위해 트레일러를 차에 달고 편도 2시간 거리를 운전하며 거의 모든 이삿짐을 옮겨 주었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내가 인터넷을 통해 중고로 구매한 냉장고, 세탁기, 소파를 픽업해 주기까지 하였다.
전에 살던 집이 퍼니쉬드여서 언퍼니쉬드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며 거의 모든 것들을 장만해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세간살이를 마련한 것 같다.
새로 이사온 집의 집주인 조 역시 너무도 좋은 사람이어서, 우리에게 디파짓도 받지 않고 집 열쇠를 내주었다. 처음에 뉴질랜드에 왔을 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중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았으니 이런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말을 듣기가 민망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시 많은 사랑의 빚을 졌으니 이제 또 갚을 일만 남았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