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29, 2022

2022년 말

12월 29일, 올해가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2022년 내 삶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다른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분명 365일동안 많은 일들을 했었을텐데 한 해가 그냥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데는 내가 지금 내 일상에 깊이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의 삶에 스트레스가 없으니 일하고 아이 돌보고 운동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일상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도 종교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으니 이렇게 심신이 편하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예수님이 열어주신 종교 혁명의 길을 제대로 걸어왔더라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살았겠는가. 유대교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독교라는 또다른 짐을 만들어 사람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으니 제도 종교의 굴레를 만들고 강화하고 유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평신도들은 그 굴레를 좋아하는건가.. 내가 벗겨줬던 굴레를 다시 쓰고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그 분들에게는 아마도 그런 삶이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분에게 히잡이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그걸 쓰는 게 편하다고 하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편한 것. 종교적 굴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나는 이제 기존 교회 또는 그 삶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냥 내 길을 갈 뿐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웃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세속적 성공과 그것이 주는 편안함을 더 사랑한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종교적 규례를 잘 지키게 하는 것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서글픈 일이다. 이런 일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어쨌거나 나는 내년에도 예수님을 모시고 그 분의 뜻에 따라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내년 이맘때, 올해가 언제 갔냐는 듯, 또 다시 순식간에 일 년이 흘러가 있을 것이다.  

Wednesday, December 21, 2022

동료들

네 시간 일을 하고 왔다. 가끔씩 내 근무일이 아닌 날에 일을 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올 때가 있다. 밤 9시부터 1시까지 일주일에 한번, 네 시간정도는 더 일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해 놨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나가서 일을 해주는 편이다. 네 시간 일을 하면 편하기는 한데 집에 와서 좀 애매하다. 원래 내 근무시간 3일 동안은 새벽 5시까지 일을 하는데 1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지금처럼 바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 K가 또 입원을 했다. 일 년에 한 두차례 입원을 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약간의 뇌졸증 증세가 있어서 의사가 아예 6개월을 쉬라고 했단다. 나이는 40대 중반인데 암도 한번 걸렸었다고 하고, 다리도 좀 아파 보이고, 전체적으로 몸이 건강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매주 야간조로 5일씩 일을 한다. 이번에 좀 푹 쉬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C라는 여성 동료는 아이 여섯의 엄마다. 제일 큰 아이가 13살 밖에 안되었으니 집안 살림이 얼마나 바쁘겠는가.. 밤에 일하고 낮에 아이들 보살피고..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내년부터는 간호학 공부를 할거라는데 잘 시작하고 마무리도 잘 해서 좋은 간호사가 되길 바라본다.

I라는 청년은 호주에서 와서 일하는 젊은 친구다. 원래 여기에서 태어났는데 10살쯤 엄마 아빠가 이혼한 후에 아빠를 따라서 호주로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도시에 계속 살고 있던 친모가 1년 전쯤 남자친구에게 살해를 당한거다. 그래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었고 온 김에 엄마 묘지에 headstone(묘비)까지 세워주고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다시 호주로 돌아가는데, 호주에서 좋은 짝을 만나서 좋은 가정 만들고 행복하게 살길 기도한다. 

이들 외에도 더 많은 동료들이 있다. 다들 큰 욕심없이 산다. 반면 내 주변의 한국 사람들은 다들 욕심이 많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애를 공부 많이 시킬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같은 땅에 사는 데도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 예수를 믿는다는 데도 왜 이리 욕심들이 많은걸까..

Thursday, December 15, 2022

내가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숨결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먼저 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살피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기위해 하나님을 부르고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기도, 
세상의 온갖 물신들과 권력들이 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도, 
외부와의 단절과 하나님을 향한 집중으로 얻는 자유를 누리는 기도, 
다시 세상의 악과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기도,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는 편안함을 누리는 기도.
나의 세속적 욕망이 붕괴되는 기도,
이웃의 필요를 살피는 기도,
긍휼히 여기는 기도,
감사하는 기도.
아멘.

탁구 일기 22년 12월 14일

올 해 마지막으로 탁구를 치는 날이었다. 년말에 문을 닫고 내년 1월부터 다시 모인다. 앞으로 3주 동안은 탁구를 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상대한 사람 중에 T라는 분은 내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워하는 사람이다. 60 대 중후반의 남성 분인데 한쪽 면에 안티 스핀 러버를 쓰는 분이다. 안티 스핀 러버도 안좋아하는데 거기에 탁구대에 딱 붙어서 치는 스타일이다. 둘다 내 탁구 스타일과는 상극이다. 나는 대개 탁구대에서 약간 떨어져서 드라이브 위주로 치는 스타일인데, 그분은 탁구대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지도 않고 공도 거의 스핀이 없이 빠르게 좌우 코너로만 때려대는 분이다. 정말 단순하게 게임을 운영하는 분인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가 이길 수가 없다. 

안티 스핀 러버는 스핀을 풀어버리는 러버기 때문에 그 러버로 공을 치면 내 공이 스핀이 풀려서 돌아온다. 그런데 반대편 러버는 또 일반 텐서 러버라서 그 쪽 러버로 공을 치면 엄청나게 빠르게 공이 돌아온다. 구력도 한 20년은 되신 분이라 공을 좌우 깊은 곳으로 빠르게 찔러 넣기 때문에 내가 도무지 공을 받을 수가 없다. 그 분하고 치면 공격도 제대로 안되고 수비도 제대로 안된다. 어찌보면 내 입장에서는 사파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잘하는 분들이야 저런 스타일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아직 어떻게 저런 스타일을 공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연구를 따로 해야되나..

오늘 선출하고도 탁구를 쳤는데 당연히 게임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예전보다는 내 실력이 훨씬 좋아졌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선수의 서브를 안정적으로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고, 커트볼 드라이브에도 실수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반 회원들의 커트는 곧잘 드라이브를 올릴 수 있었는데, 확실히 회전량이 많아지니 제대로 공격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올 해 7월 경에 탁구에 입문을 해서 한 5개월 정도 즐겁게 운동을 했던 것 같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쳐볼 생각이다.  지금은 B 등급인데, 내년에는 그레이드 A로 승급할 수 있으려나?

Wednesday, November 23, 2022

탁구 일기 22년 11월 23일

얼마 전에 한국에서 다니러 온 처형이 비싼 탁구 목판을 내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티모볼 ALC라는 블레이드(목판)인데 이 나라에서는 290불이나 하는 비싼 물건이라 나는 아예 살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제품이었다. 한국에서는 15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샀을려나? 아무튼 좋은 블레이드가 생겼으니 나름 러버도 업그레이드를 해서 포핸드 쪽에는 허리케인 3 네오 Provincial 버전을 붙였고 백핸드 쪽에는 Fastarc G-1러버를 부착했다. 물론 러버도 더 비싼 제품들이 많이 있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 셋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블레이드는 바꿀 생각이 없고 러버도 고무가 딱딱해질 때까지 계속 쓰려고 한다.  

바뀐 라켓으로 탁구를 친지 이번이 세번째인데 오늘에서야 좀 감을 찾은 것 같다. 아직 백핸드는 자신이 없지만 포핸드는 확실히 감을 잡아서 클럽에서 함께 치는 중국인 코치에게서 포핸드가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내가 연구한 탁구 스타일이 중국식 탁구여서 공을 많이 회전시키는 편이다. 점착식 러버를 쓰는 이유도 회전을 거는 맛이 좋아서다. 탑스핀 없이 그냥 때리는 탁구는 왠지 재미가 없다. 포핸드든 백핸드든 회전이 걸려야 재미가 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플랫 힛을 하기도 하지만 타구할 때 '틱틱' 소리가 '탕탕' 소리보다 훨씬 듣기가 좋다. 

오늘은 탁구공을 살살 달래듯이 공을 쳐봤다. 이제는 어느 정도 공을 달래는 기술이 생긴 것 같다. 공을 달래면서 치면 스윙을 세게 해도 공이 부드럽게 나간다. 스피드는 빠르지만 부드러운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이 좋다. 낮고 빠르면서 부드럽게.. 상대방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으면서 점수를 딸 수 있는 방식. 이 스타일이 내 성격에도 잘 맞는 것 같다. 간혹 탁구공이 깨질듯이 공을 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게 때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공을 죽이려는 것 같다. 나는 공을 살리면서 치는 게 좋다. 어떤 방향이든 공의 회전을 살리면서 치는 탁구가 나에게 맞는듯 하다. 

Wednesday, October 26, 2022

외할머니

2002년에 결혼을 하고 200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외할머니에게 좋은 옷을 사드렸던 적이 있었나보다. 나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할머니가 그 옷을 외손주가 사준 옷이라고 지금까지 아껴 입으시면서 잘 보관하고 계셨다고 알려 주셨다. 20년이 지난 옷이 아직도 상태가 좋아서 외할머니와 사이즈가 비슷한 작은 이모가 입기로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지난 주에 향년 102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친할머니가 살아계셨던 유년 시절에는 외할머니와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아마도 내 나이 여덟 살 때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부터는 외가쪽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듯 하다. 

외할머니는 말수가 적으셨다. 백년을 넘게 사시면서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시대를 모두 겪으셨으니 아마도 말수가 많으신 분이었다면 그 시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테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몇 년간 사셨다는 게 전부다. 얼마전 파친코라는 책을 읽고 드라마도 봤었는데 외할머니도 그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셨던거다. 

내가 외할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때는 대학 시절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했었을 때다. 그 때 서울에 살고 계셨던 큰 외삼촌 댁에 얹혀 살면서 외할머니와 한방을 썼었다. 집에 외숙모가 안계실 때는 내 밥도 자주 차려주셨다. 작게 부쳐내던 김치전이 단골 메뉴 중에 하나였는데 지금도 그 전의 모양과 맛이 기억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용돈을 몇번 드리려고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용돈을 받지 않으시고 나에게 용돈을 주시기만 했다. 아마도 가난하게 목회하시는 우리 부모님 생각에 그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할머니는 평생 마른 체형에 큰 병치레를 하지 않으셨다. 청력만 좀 안좋아지셨지 시력도 좋으셨고 백 살이 넘어서도 텃밭을 일구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으셨다. 오래 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시골 할머니로 사셨는데도 이렇게 장수를 하셨다. 그래도 나이를 이길 수는 없으셨는지 얼마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시고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 

외국에 있어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외할머니와 나는 이별을 했다. 외가쪽으로 세 분의 외삼촌과 네 분의 이모들이 계시고 다들 결혼하셔서 20 명의 외손주와 또 20명 쯤 될 증손주들이 있으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방에서 같이 지냈던 외손주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셨더라면 좋으셨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Wednesday, October 12, 2022

마트 노동자

마트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일주일에 3일씩 일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이 나라 슈퍼마켓 업계에 두 개의 대기업이 있는데 나는 그 중의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호주회사인데 상대 회사와는 달리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사 조직도에 CEO부터 말단직원인 내 이름까지 올라가 있다. 같이 일하는 20대 직원들 중 그 사다리를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텐데 다들 그러고 싶지는 않아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젊은 나이에 그냥 말단 직원으로만 있는게 안타까워보이는데 문화적 차이인지, 세대 차이인지 그 아이들은 그냥 그 정도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사는 생활에 만족해 보인다. 나야 이제 나이도 있고 이 쪽 일이 내 커리어도 아닌지라 매니저 자리를 계속 고사하고 있지만 젊은 애들은 왜 위쪽으로 올라가려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우리 회사 채용 공고가 뜬 걸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약 400개 정도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다들 원서를 냈는데 연락도 없고, 왜 일하고 싶은데 뽑아주지 않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미 여기서 일하고 있는 지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 마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하긴 2, 30 년 이상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나쁜 일자리는 아닌 것 같긴하다. 쇼핑할 때 직원 할인도 해주고 이런 저런 복지 혜택도 있고 실내에서 정해진 시간만 딱 일하면 되니 그냥 돈 욕심 없는 사람들이 일하기는 괜찮은 일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입장에서는 좋은 직장이 맞다. 우선 정규직이지만 주 3일만 일하고 있고, 밤에 일하니 낮에 아이 픽업도 할 수 있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니 운동도 되고,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없고, 주로 영업 종료 후에 일하니 고객들 상대할 일도 없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이나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일할 수 있고, 실내에서 일하니 춥지도 덥지도 않게 일할 수 있고, 휴가나 병가 쓰는 것도 어렵지 않고, 노조가 있어서 임금 협상도 알아서 해주고.. 가끔 이제 다른 일이나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내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 시골에서 이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의 마트 노동자들은 요즘 노동 환경이 어떤지 모르겠다. 예전보다는 좋아졌겠지만 좀 더 좋아져서 이 나라처럼 1 년에 최소 4 주씩은 무조건 휴가를 쓰고, 아무리 바빠도 철저하게 휴식 시간을 지키고, 병가도 전화 한통으로 편하게 낼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본다.

Wednesday, September 28, 2022

탁구일기 22년 9월 28일

사람들이 두 가지 일로 놀라워했다. 

하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탁구를 치는데 어떻게 이렇게 실력이 빨리 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격적으로 탁구를 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전에 클럽내 단식 시합에서 비선수 출신 중 2위를 했으니 말이다. 
나야 뭐 원래 성격대로 본질을 이해하려고 애쓴 것 밖에 없다. 공이 어떻게 회전하는지 이해하고 넘어오는 공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스윙을 해야하는지 공부를 많이 했다. 유튜브가 있어서 원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이해한 것을 실전에서  구현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일뿐.. 그래도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은 아니어서 짧은 시간 안에 폼을 바꾸는데 성공한 것 같다. 특히 포핸드 탑스핀이 멋있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두번째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내 러버가 너무 싼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러버로 공을 쳤냐고 당장 다른 러버로 바꾸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냥 인터넷에서 제일 싼 중국 러버를 골라서 샀을 뿐인데.. 탁구 러버 중에 가장 비싼 버터플라이 디그닉스 제품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 그 라켓으로 공을 쳐봤는데 확실히 별 힘을 안들이고 쳤는데도 공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나갔다. 그 제품이 여기서 약 145불 정도 하는데 내 러버는 46불짜리다. 비교를 해보니 확실히 내 러버가 바운스가 덜 되어서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제품이었다. 싼 걸로도 잘 할 수 있는데 뭐 어떤가? 운동도 되고 좋지..

아무튼 오랜만에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철학, 신학 공부할 때 이후로 이렇게 재미를 느끼며 뭔가를 하는 게 처음인 것 같다. 한참 동안 그냥 재미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는데 늦게나마 재밌는 일을 하나 찾아서 다행이다. 

Friday, September 23, 2022

요즘 일상

1. 이제는 내 인생에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이 지역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 가정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이 적어지는 반면 알던 사람 중에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도 노화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에 천천히 적응해 가려한다. 

2. 이번 달에 설교를 한번 했고 다음 달에도 한번의 설교가 잡혀있다. 다음 달까지로 제도권 교회의 강단에서 하는 설교 사역은 마무리를 지을까 생각 중이다. 성도들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고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바를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설교라는 형식으로 일방적인 말씀 전달을 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예배의 일부로 말씀 선포를 해야 한다면 본문을 읽고 그 핵심 내용에 관해서만 5 분 정도의 짧은 코멘트를 하면 충분할 것 같다. 예배가 너무 목사의 설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예배 시간은 조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만 가지면 충분하다. 조용한 음악, 조용한 낭송이 주를 이루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몇 가정이라도 이렇게 조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3. 영국 여왕이 죽어서 다음 주 월요일은 죽은 여왕을 추모하는 의미의 특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온 나라가 쉬어야 한다면 매일매일 그렇게 쉬어야 할 것이다. 여왕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 다를까? 그의 가족이나 지지자들에게는 큰 슬픔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여왕의 죽음도 다른 일반 사람들의 죽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징적인 여왕의 죽음에는 상징적인 애도만 있어도 충분할텐데 실제로 나라를 올 스톱 시키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징의 힘이라는 것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까..

4. 별채에 화장실과 부엌을 넣는 작은 공사를 시작한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마무리가 안되고 있다. 한 90 퍼센트는 완성이 되어서 하루 이틀만 더 하면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그 적은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서 공사 대금의 50 퍼센트를 받아가지 않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여겨진다. 2년전 공사를 시작할 때 공사 대금의 50 퍼센트를 미리 지급하고 나머지는 공사가 완공되면 주기로 했었다. 땅을 파고 배관을 묻고 벽을 세우고 상하수도관을 연결하는 어려운 작업은 공사 시작한지 몇개월 안에 끝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변기, 샤워부스, 싱크대 등을 설치하는 어찌보면 쉬운 일들을 마무리 하는 데 1년 반 정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코비드로 인해 락다운 기간이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끄는 게 참 신기하다. 나와 계약을 한 업체는 이 동네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업체라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은 곳이다. 주인하고 친해져서 이야기를 좀 나누다 보면 코비드로 인해 일을 해주고도 공사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져서 직원들 월급을 줄 돈도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도 우리 일을 빨리 끝내지 않는다. 나에게 받을 수 있는 돈이 만칠천불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나야 별채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급하지 않지만 그 친구는 돈이 급할텐데도 왜 마무리를 안하고 있는지 참 이해가 안된다. 그나마 이만큼 진척이 된 것도 내가 재촉을 해서 된 것이니 이 사람들의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Wednesday, September 7, 2022

탁구 일기 22년 9월 7일

전반적으로 몸이 무거웠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보다. 몸에 뭔가 기운이 없으니 볼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나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좀 많이 왔다. 그 사람들과 처음 공을 쳐봤는데 현재의 내 수준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을 분석하고 스핀에 맞게 라켓을 갖다대는 기술이 많이 서툴었다. 사람마다 스핀과 회전의 각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미세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어설프다. 지금은 공이 어느쪽으로 회전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인지하는 데에만 만족하고 있다. 그것만 확실히 되어도 리턴 미스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함께 탁구를 친 사람 중에 이토 미마 스타일의 공격을 하는 중국 여자분이 있었다. 그 분도 키가 작았는데, 확실히 키가 작으니 플랫 공격을 자연스럽게 잘 했다. 내 탑스핀이 낮고 빠르게 가지 않으면 가차없이 펀치를 얻어 맞았다. 엄청난 속공이어서 내가 따라가지를 못했다. 나도 플랫 힛을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지만 애써 만들어가고 있는 폼이 무너질까봐 그냥 참고 탑스핀을 계속 넣었다.   

시합 중에도 백스핀으로 넘어오는 공을 탑스핀으로 걸어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성공률이 꽤 낮다. 역시 사람들마다 스핀의 양도 다르고 높이와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그 다양한 구질에 맞춰 스윙을 하기가 싶지 않다. 어설프게 넘어가면 역습을 당하지만 당분간은 그냥 넘기는데만 초점을 맞추려한다. 

오늘 이제 만 12살이 된 아들을 데려가서 선수 출신 회원에게 코치를 받게 해줬다. 지난 주에 아들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그 친구가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오늘 처음으로 레슨을 받게 한 것이다. 나중에 아들하고 막상막하로 탁구를 칠 수 있게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에 대학교에 다닐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이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저렇게 같이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나도 농구를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농구를 하면 무릎이 아파서 농구는 포기했다. 탁구는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으니 탁구는 꼭 같이 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Friday, August 19, 2022

탁구에서 배우는 신앙의 요체

(탁구를 동사형으로 표현할 때 '치다'라고 해야할 지 '하다'라고 할지 헷갈리는데, 검색해보니 국립국어원에서는 둘 다 쓸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냥 친구들과 재미로만 탁구를 쳤다면 요즘은 제대로 배워서 쳐보자는 마음으로 탁구를 치고 있다. 유튜브 덕에 동서양의 다양한 코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탁구의 여러가지 기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실전에서 사용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내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탁구는 스핀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의 이동 속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모든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빠르게 회전하는 공이 탁구공이라 한다. 상당한 회전이 걸리는 테니스 공의 최고 회전이 3700 rpm 인데, 탁구공은 9000 rpm이라고 하니 스핀을 마스터하지 못하면 탁구를 잘 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핀에는 기본적으로 상하좌우의 회전이 있지만 상하회전과 좌우회전을 섞을 수도 있고 때로 무회전을 주기도 한다. 서브를 할 때도 그렇고 랠리를 할 때도 그렇다. 순간적으로 회전의 종류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라켓의 각도와 타격의 세기를 맞춰줘야 한다. 들어오는 공의 속도와 회전에 알맞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공은 엉뚱한 곳으로 튀거나 넷트에 걸리거나 상대편으로 넘어가도 상대가 공격하기 좋은 상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계산을 반사적으로 해야 한다. 생각을 하면 늦는다. 순간적으로 몸이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을 훈련시켜둬야 한다. 그래서 선수들이 매일 그렇게 엄청난 양의 반복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딱 하루 세 시간 동안만 탁구를 치기 때문에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는 않는 것 같다. 머리는 준비가 되었지만 몸이 준비가 안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자세를 몸에 새겨 넣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몸은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몸이 말을 안듣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참 맞는 말이다. 말은 쉽지만 몸이 말을 따라가게 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탁구 기술에 대한 설명들을 듣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고 그에 맞게 몸을 길들이고 바로 잡는 것이 진정한 탁구 공부의 요체일 것이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성육신의 일반적 의미가 그렇다. 내가 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으면 구원은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탁구를 하면서도 이러한 성육신의 일반적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물론 예수의 성육신은 기독교 내에서 고유하고 특수한 측면이 있지만 그 사건의 의미를 일반화시키면 말씀/진리/원리를 몸에 체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진리는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말로 풀어쓸 수 있다. 예수 이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있었지만 구원의 능력은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에게서만 나타나지 않았는가. 

탁구에 비유해서 다시 말하면 탁구의 원리, 포핸드 백핸드 서브 스핀의 정석 이론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한들 그 원리가 몸에 체화되지 않는다면 실제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신앙 생활의 요체도 내 몸을 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일텐데, 말씀을 듣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고 실제로 자신의 몸/삶을 예수님의 뜻에 맞추어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아져서 맘몬이나 불의나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Wednesday, August 3, 2022

아내

아내도 가끔 내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다.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20년을 매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나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리고 나도 똑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맞는 것 같다. 

우리 연배에 우리처럼 잘 지내는 부부가 주변에 한 커플 정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 부부끼리 서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을텐데.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물론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긴 하지만, 만나면 어느 순간 상담 모드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의 기본은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거라 그렇게 해주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 없이 그냥 편하게 만날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내와 나는 대학 시절에 만났다.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어보면 벌써 알고 지낸지 26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은 후배들 중에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나중에는 이것 저것 따지지 않는 순수한 모습과 gossip을 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졸업 전에 사귀기 시작해서 졸업 후에는 2 년 정도 장거리 연애를 했다. 결혼 후에는 유학을 떠나서 함께 일하고 공부하면서 함께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를 낳고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 이 나라에 올 때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고비를 함께 넘겨왔다. 

부족한 나를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니 감사하다. 아내를 평생의 동반자로 만나게 해주신 것이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가장 큰 복이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 평생에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전 9:9), 정말 이 말씀처럼 아내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고 그 복을 이미 받아 누리고 있으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Wednesday, June 29, 2022

부모의 마음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어머니께서 물어 보신다. 좋다고 말씀드렸다. 신경 쓸 일도 없고, 아이도 잘 크고 있고, 일도 하고 있고 너무 편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아이가 게임하는 걸 바라보다 문득 저 아이가 나중에 나이 오십이 되어서 마트에서 밤을 새워 일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안쓰럽게 여겨지지 않을까..

내 어머니도 나를 생각할 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아온 여정을 잘 아시니까 뭐라 말씀을 안하시지만 집에서 아버지랑 두 분이서 계실 때는 가끔 내 걱정을 좀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밖에 나가서 아들이 뭘 하고 사는지 얘기하기도 좀 꺼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세상이 참, 나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데 관계 속에서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참 좋은 분들이다. 내 걱정이 되시겠지만 말이나 태도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신다. 늘 편안하게 대해 주시고 웃어 주신다. 내가 하는 말도 있는 그대로 잘 받아 주신다. 내가 본심과 다르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랑 통화를 할 때 맘이 편하다. 마음이 통하는데 어찌 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Wednesday, June 15, 2022

탁구

우리 시에 탁구 클럽이 하나 있다. 팬데믹 전에는 매주 월요일 밤마다 탁구를 했었는데 팬데믹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월요일 밤에 일을 하게 되기도 해서 근 2년간 탁구를 칠 기회가 없었다. 클럽에 수요일에도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는 했는데, 그러다 얼마 전부터 수요 모임이 시작되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2 년 만에 탁구를 치니 몸이 좀 둔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내 탁구 실력이 아주 좋은 건 아니다. 한번도 레슨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가끔 유튜브를 찾아 보고 따라해 보는 정도이니 그저 평범한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래도 운동 신경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나름 잘 받아주고 잘 넘겨준다. 같이 탁구를 하는 회원들 중에서 중간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이 나라에서 탁구를 하기 전에는 서양 사람들이 탁구를 한다면 얼마나 잘 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잘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확실히 몸에 근육이 많고 힘이 좋으니 공에 회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람들의 폼이 일정하지 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들 특이한 폼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폼으로 탁구를 하는 데 여기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폼으로 공을 친다. 그런데도 공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잘 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볼링장에 가서도 느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대로 운동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도 선수급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폼으로 운동을 하지만 그냥 아마추어 수준으로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폼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즐기는 것 같다. 레슨을 꼭 받을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이상한 폼으로도 수십년간 꾸준히 치기는 하니까 구력이 붙어서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실력이 되는 것 같다. 무협지 식으로 말하면 사파의 고수들이 많다. 

고수들이 많으니 나도 전력을 다해 스매싱을 날릴 수 있고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치고 나면 등짝에 땀이 주르르 흐른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탁구를 다시 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앞으로 나도 열심히 실력을 연마해서 이 동네 한국계 탁구의 고수가 되어 보려 한다. 

Friday, June 3, 2022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의 주권이니 전지전능이니 하는 말들이 내 머릿 속에서 빠져나간지 꽤 되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설명할 때도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거나 하나님이 다 알아하실 것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다 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고통과 슬픔들 앞에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너무 공허하고 허황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하나님이 자연에 부여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인다. 태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이 주권을 발휘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도 물리적인 부분은 당연히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고 치료제가 없으면 죽는 것이다. 총에 맞으면 죽는 것이고 차에 치이면 죽는 것이다. 다 물리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이고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자연 법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뜻이란 의지이고 이것은 당연히 심리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듯이 내 뜻도 있다. 이 뜻이 서로 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이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여한다거나 물리법칙에 의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준다는 식으로 신앙을 조형해 나가는 것은 전혀 기독교 신앙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성육신과 상호 의존성에 있다고 믿는다. 예수의 삶에서 밝히 보여졌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육신/삶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도 인간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던 예수와 그의 삶과 가르침을 받아들였던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가고 있지 않는가. 예수가 없고 제자들이 없다면,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그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지 내 삶에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자리에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 세상에서,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여야 할 것이다. 

Thursday, May 26, 2022

돈을 좇지 않는 삶

어떻게 해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편안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삶을 좇는다고 가정한다면, 나 역시도 편안한 삶을 좇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한 삶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삶은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하나님 나라'의 삶이고, 그 삶이란 다름 아닌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 사랑은 항상 관계적이기에 그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넓어질 수록 사랑의 세계가 확장되어갈 것이기에 온 세상을 품는 하나님 나라의 경계는 확실히 내 가족과 내 민족과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려주셨던 이러한 하나님 나라라는 편안한 삶은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삶이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편안한 삶을 더 추구한다. 더 비싼 동네, 더 비싼 집, 더 비싼 차, 더 비싼 학교..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도 이너 서클에서의 사랑이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웃을 정해놓고 사랑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웃의 개념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확장시킨 예수의 가르침이 맘에 와 닿겠는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예수의 길은 좁은 길이 될 수 밖에 없고 십자가의 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돈을 좇아서 얻게 되는 편안한 삶이 아닌 예수를 좇음으로 얻게 되는 편안한 삶. 하늘에 아버지가 계시고 땅에 이웃이 있고.. 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곧 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귀한 사람들이니,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 그런 삶을 살다보면 남의 몫을 가로채지 않으니 부자가 될 수 없고, 많이 벌게 되면 나누니 부자가 될 수 없고, 돈을 좇지 않으니 부자가 될 수 없고.. 부자가 될 수 없는 이러한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Monday, May 2, 2022

미스터리

주변에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전세계 70억 명의 인구 중 단 한 명을 선택하고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선택한 단 한 명의 사람을 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을 주는 것이라 할 때, 내가 선택한 그 한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왜 어려운 것일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왜 어려운 것일까.. 뭐 어려운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원하는 데, 왜 그런 것들을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왜 못하는 걸까, 왜 안하는 걸까..  

Wednesday, April 20, 2022

내 신앙과 자녀의 신앙

부활주일 오전 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원래 마트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일찍 끝내고 왔다. 이 나라는 아직까지도 성금요일과 부활주일, 크리스마스에 상업 활동이 제한되어 있다. 이날에 대형마트나 대형 상점들은 다 문을 닫는다. 소규모 상점이나 카페, 테이크어웨이 가게 등만 영업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사실 부활주일은 법정공휴일은 아닌데 관습적으로 그렇게 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부활주일에 문을 열지 말지를 지방정부에서 정하도록 해서 어떤 지역에서는 마트도 문을 연다고 한다. 점점 이 나라에서도 기독교적인 색채가 약해지고 있음을 이런 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마트는 부활주일에 문을 닫기로 되어 있어서 오늘 일찍 올 수 있었다. 예수님 덕에 집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내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도 다 예수님 덕이다. 예수님 덕에 세속적인 욕심을 다 버릴 수 있었고, 그분이 만들어 주신 길을 따라가는 바람에 새로운 가치관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의 길이 옳다고 믿고 있고 죽을 때까지 그 길을 따라 가려 하고 있다. 

다행히 아내도 나와 뜻이 같아서 둘이 함께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있다. 아이는 어찌 될지  모르겠는데, 아이도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아이에게는 내가 배웠던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를 알려 주고 있다. 교리적 기독교가 아닌 내가 깨달은 기독 신앙을 전해 주고 있다. 물론 내 아이도 내가 그랬듯 제 아버지의 신앙과 다른 색깔의 신앙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예수님에게 등돌린 삶을 살지는 않기를 바란다. 

최근에 아이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시간 낭비 같다는 말을 했다. 자기가 예배에 참여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꽤 진지한 고민을 했다. 나는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만 11살의 나이에 왜 나는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내 아이는 저런 생각을 하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하나님을 꽤나 체험적으로 경험했었다.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는 상상 속의 하나님이 아닌, 살아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내 아이의 나이에 방언을 받기도 했고 기도하는 아버지의 기적과 같은 수많은 간증도 직접 옆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하나님을 전해 주는 방식은 그렇게 체험적이지 않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방식인데, 이러한 방식은 실제로 아이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마음을 갖기 전에는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신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으니 말이다. 아이 때는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느끼는 게 좋을 텐데, 그건 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신앙은 강요가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 내 아이에게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 것이다. 대신 열심히 지혜를 짜내어 아이가 예배를 드리도록 유혹할 것이다. 유혹이 실패해서 아이가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면 화내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요가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아이를 키울 것이고 아이가 하나님을 믿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Wednesday, April 13, 2022

신앙의 세계

신앙은 물리의 세계가 아니라 심리의 세계에서 작동한다. 물리의 세계는 하나이지만 심리의 세계는 제각각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물리적 예수라는 인물이 심리적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신학에서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쉽게 이야기하면 물리적 예수는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그렇듯 태어나고 죽었을 뿐이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 예수는 그냥 태어나지 않았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는다. 물리의 세계에 없는 사실이 왜 신앙의 세계에는 있는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의 세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강변의 아파트를 살 수 없고,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은 더욱 강화되고, 바이러스에, 전쟁에, 살기는 더욱 힘들어 지고, 아프고, 병들고, 죽고.. 비단 요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인간 사회는 늘 이러한 상황을 겪어왔고 그런 현실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다. 신앙은 이러한 현실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치료제와 같다. 

메트릭스라는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인간의 신체는 정신의 안정이 없이는 오래 살지 못한다. 인간을 가두고 인간의 몸에 흐르는 전기를 빼내어 쓰던 기계들이 깨달은 것은 전기 추출 주머니에 갇힌 인간의 정신에 그 몸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잘 짜여진 서사를 부여해 주면 인간이 더 오래 살더라는 것이었다. 인간이 더 오래 살아야 더 오랫동안 전기를 뽑아낼 수 있기에 기계들은 인간의 뇌에 자극을 주어 삶의 서사를 부여해 주었다. 

신앙도 인간의 정신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 그 세계가 없는 인간은 없다. 그 신앙이 종교적 신앙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의 정신에 하나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물리적 세계의 실상에 100퍼센트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에 만족하더라도 주변 세계의 참상까지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내면에 잘 짜여진 세계를 만들어 준다. 그 세계에서 위안을 받았던 사람들이 그 세계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약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믿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몸이 아플 때 약을 먹듯이, 아니면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예방 차원에서 약을 먹듯이, 그냥 약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혈압약을 먹고 어떤 사람은 갑상선약을 먹고 어떤 사람은 당뇨약을 먹듯이, 어떤 사람은 불교약을 먹고, 어떤 사람은 기독교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일이다. 

나는 기독교라는 약을 먹고 있다. 그게 나한테 맞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라는 이 약도 다 똑같지는 않다. 물리적인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기독교라고 하지만 이 약도 제 각각이고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세계 안에서 나에게 잘 맞는 약을 찾아서 만들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약이 나한테 잘 듣는다고 모든 사람에게 다 잘 듣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작게 보면 기독교, 크게 보면 모든 종교, 더 크게 보면 모든 신앙이 다 그렇다. 자기에게 맞는 신앙을 찾아서 잘 가꾸어 가면 된다. 약은 중요하다. 하지만 약은 약일 뿐 약이 내 삶의 전부도 아니고 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다. 심리적 약과 물리적 현실을 혼동하지 않고 심리적 약으로 힘을 얻어서 물리적 세상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교가 아편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수가 아편을 팔지 않았고 싯달타가 아편을 판 것이 아닌데 종교가 제도화 되어 가면서 신도들에게 그 좋은 약을 아편화 시켜서 팔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이 정신을 차리면 좋겠는데 한번 중독되면 깨어나기가 여간 쉽지 않으니.. 

Friday, April 8, 2022

위계 사회

위계는 복합적이다. 단순히 나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복잡한 위계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한국어가 아닐까 한다. 

한국어에는 위계가 내재되어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를 위계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위계에서 벗어난 말을 하면 질타를 받게 되고 위계에 맞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거의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살다보면 그런 면에서 훨씬 자유로움을 느낀다. 물론 영어에도 위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있지만 한국어처럼 위계가 언어에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영어에서 I 는 I이고 You는 You다. 한국어에서 I는 '나'일 수도 있고 '저'일 수도 있다. You는 너무 복잡하다. 너, 당신, 그쪽, 아줌마, 아저씨, 선생님... 끝이 없다. You에 대응하는 호칭을 잘못 선택하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외국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도 영어를 할 때와 한국어를 할 때 자세가 달라진다. 영어를 할 때는 태도가 자유롭지만 한국어를 할 때는 공손해진다. 말이 이렇게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한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엄청난 시간이 흘러 한국어에 내재되어 있는 위계가 사라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Monday, March 28, 2022

캠핑장에서 만난 아주머니

캠핑장의 등급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이번에 간 캠핑장은 가장 기본적인 편의 시설만 갖춘 곳이었다. 텐트를 치고 자는데 한 사람당 9불이었고 샤워는 돈을 주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강가에 어느 정도 나무 숲이 있고 바로 앞에 절벽도 있어서 뷰가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아직은 초가을이어서 한 낮의 온도가 22도 밤에는 12도 정도였다. 한 밤 중에는 쌀쌀했지만 강가에서 자유로이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이어서 밤늦게까지 불을 피우며 밖에서 이야기하기에는 괜찮았다.

예전에 담임했던 한인 교회 남성 교우 두 분과 함께 도착해보니 텐트를 치는 야영객들은 아무도 없었고 모터홈이 하나, 그냥 일반 해치백 승용차 한대만 있었다. 모터홈이 대개 그렇듯 은퇴한 노부부가 운전하며 전국을 여행 중이었다. 남편이 중국계였고 아내분은 백인이었는데 아시안 세 명인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부모님은 광저우 출신이고 자기는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와이프들은 어디있냐고 해서 남자들끼리 왔다고 했더니 아내분이 살짝 웃었다. 아내들은 캠핑을 싫어해서 남자들끼리만 1박하러 왔다고 했다.

동료들이 야영비를 내러 간 사이에 승용차를 타고 와있던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50 대 후반이나 60대 초반 쯤으로 보였는데 어디서 사시냐고 했더니 약간 머뭇거리다가 혼자서 차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노마드 랜드'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실제 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분을 만난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 커서 자기 아빠가 있는 호주로 가버리고 혼자 살기엔 렌트비가 너무 비싸서 차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일단은 딸이 살고 있는 다른 도시까지 가보려 한다고 했다. 차 안에는 고양이와 새가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함께 다니는 고양이와 새가 있어서 덜 외롭겠다고 얘기해주기는 했는데 마음이 좀 그랬다. 노년에 차에서, 그것도 모터홈도 아닌 일반 승용차에서 홀로 생활을 해야하는 처지라니.. 물론 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딸도 그리 형편이 좋지는 않을 거라 짐작되었다.

밤에 텐트에 누웠는데 아직 초가을이어도 열기가 없으니 쌀쌀했다. 자동차도 히터를 틀지 않으면 추울텐데 아주머니는 괜찮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7시 반쯤에 세수하면서 다시 뵀는데 그 시간에 떠난다고 했다. 다음 숙박지는 어디실까.. 떠나는 차의 배기구에서 연기가 좀 나는 걸로 보니 차 상태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는데 무사히 딸네 집에 잘 도착하고 살 곳도 곧 찾으시길 기원해 본다.        

Friday, March 25, 2022

본 회퍼의 그리스도론

 


그리스도론,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정현숙 옮김, 복있는 사람 2019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은 침묵 속에 시작된다... 교회의 침묵은 말씀 앞에서의 침묵이다... 선포된 말씀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말씀은 선포되어야만 한다 (21)."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면 입을 다물고 침묵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겸손히 내 삶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다. 말 또는 언어가 이성의 산물이라면. 인간에게도 이성이 있기에 인간도 말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의 말(이성)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말로 구성된 세상이 인간 세상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말과 언어로 구성된 세계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인간의 말에만 익숙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에게 질문을 해야한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 스스로 말하십시오"라는 질문 외에는 할 수 있는 질문이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은 질문자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며 질문자 자신을 상대화하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 대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다.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보다는 내가 절대자가 되어 당신을 판단하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러한 자세로는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기에 그 분 스스로 자신을 내보일 때만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미 자신을 우리에게 내 보이셨다.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시라고.. 그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은 교회 안에서만 묻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다.  교회 밖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어떻게 그걸 증명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어떻게-질문' 만이 던져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신 교회 안에서는 어떻게-질문이 아닌 '누구-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이 질문을 진심으로 묻게 될 때 교회는 그 분의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Thursday, March 17, 2022

넷플릭스 The Bombardment

신정론이 다인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천인지라 신정론에 관한 물음이 심장에 깊이 박히는 영화였다. 오랜만에 다시 신정론을 마주했다. 여전히 어려운 주제이다. 특히나 전지전능한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정말 풀 수 없는 숙제일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죽어가는 아이의 질문 'Did God drop a pencil?'에 뭐라 답할 수 있겠는가..

나처럼 신이 나를 특별 대우해줄 것이란 기대가 전혀 없고, 그저 일상을 은혜로 받아들이며, 신의 뜻을 따라 사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신정론을 논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정론은 껄끄러운 주제다. 

전통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성도들에게는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며 신을 변호할 때도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들어가면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냥 사람이 할 도리만 잘 하면 되지 않겠는가..

영화에는 자녀와 부모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령 부모들은 자녀가 아침을 잘 먹지 않을 때 아이에게 화를 낸다. 밥을 잘 먹지 않는 행위와 아이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밥을 잘 먹게 할까를 고민하되 아이에게 화를 내지는 말아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영화를 보면 느끼게 되겠지만 아이가 살아 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 때 아이를 소중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Thursday, February 24, 2022

백신 반대 시위와 뉴질랜드 경찰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수도 웰링턴에서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2 주가 넘는 시간 동안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고 있다. 시위 장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상인들, 주변 대학의 학생들은 생활에 불편을 표하고 있지만 경찰은 강경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던 총리는 인터뷰에서 경찰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인의 거의 90 퍼센트 정도가 백신 접종을 하고 있기에 광장에 모인 소수의 인원들의 방역 정책 완화 요구에 총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 국민들도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한다고 해도 여론의 큰 반발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경찰은 강경 진압의 의사를 보이고 있지 않다. 경찰의 최고 책임자인 앤드류 코스터는 4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인데, 경력을 살펴보니 아던 총리와 비슷한 비둘기 파가 아닌가 한다. 총리가 비둘기파인 것은 괜찮지만 경찰청장까지 비둘기파라면 문제가 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은 선량한 시민을 지켜줘야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사용해도 되는 권한을 부여받은 집단이다. 물론 그 힘이 잘못 사용될 수도 있기에 당연히 경찰의 무력사용은 시민 사회에 의해 견제되어야 하고 투명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경찰이 만약 도를 넘어선 무력 사용을 한다면 나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경찰이 너무 온순해서 선량한 시민들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그 역시도 문제가 될 것이다.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사회가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아무도 그와 더 이상은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제 집에 가는 게 좋겠다고 점잖게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는 집에 가기를 거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런데 경찰이 와도 그 사람은 집에 가지 않는다. 경찰이 있는데도 똑같이 동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동네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위대를 온건하게 대하는 경찰을 보는 게 신선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경찰에 대한 답답함 또한 느껴진다.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과격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 사람들을 집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캐나다는 시위 참석자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켰다고 했던가? 아무튼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비폭력의 방식으로 시위대의 해산을 유도해 낼 수 있길 바란다. 

Friday, February 11, 2022

과민성 대장 증후군 치료기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 Irritable bowel syndrome)에 여러 증상이 있는데, 내 경우는 묽은 변을 하루에 4 - 5회 보는 증상이었다(IBS-D). 이 증상이 있기 전에는 아침에 한 번 화장실에 가는 아주 정상적인 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략 10 년 전 쯤 이 증상이 나타났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2, 3일간 앓아 누웠었는데, 그 이후부터 이 증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피검사, 대변검사, 대장 내시경까지 다 해봤지만 특이점이 없었다. 장에 좋다는 유산균을 종류대로 먹어봐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고 설사를 줄이는 지사제나 psyllium husk 같은 보조제를 먹어도 별 차이가 없었다. Low FODMAP 다이어트라고 장이 안좋은 사람들에게 좋다는 음식물을 가려 먹어도 그대로였다. 매일 하루에 네, 다섯번씩 화장실에 가야했다. 그리고 신호가 오면 화장실에 급하게 가야했기 때문에 화장실이 없는 곳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외부 활동에도 제약을 받았고, 어디를 가든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놔야 안심이 됐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그나마 나중에 전문의를 통해서 찾아낸 증상 완화제가 Colestid였다. 그 약이 내 증상을 완화시킨 유일한 약이었다. 원래 Colestid는 콜레스테롤 치료제이고 그 약의 부작용이 변비였는데, 그 부작용이 나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약이  Bile acid malabsorption에 효과가 있는 것이어서 내 증상이 IBS가 아니라 BAM 때문이었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IBS든 BAM이든 치료약이 없는 상황이라 나로서는 매일 Colestid를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약을 먹으면 하루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만 화장실에 가면 됐었다. 나로서는 이정도도 꽤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그러다 몇 달전에 Complicated UTI(복잡성 요로감염?) 문제로 항생제를 복용해야 할 일이 생겼었다. 치료가 잘 안되어서 세 종류의 항생제를 먹게 됐었는데, 그 세 가지 항생제 중에 한 가지 항생제를 먹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IBS 증상이 사라졌다. Ciprofloxacin이라는 항생제였다. 꽤 다양한 종류의 균을 죽이는 항생제였는데, 이 약으로 내 IBS 증상이 사라진 걸 보면 아마도 내 장 안에 잦은 배변 증상을 일으키는 어떤 유해균이 살고 있었던 것 같고, 그 균을 Ciprofloxacin이 죽였던 것 같다. 

내 증상이 사라진 데에 다른 변수가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지금으로서는 다른 변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시기에 그  약 외에 다른 약을 먹은 적이 없고 식단을 바꾼적도 없으니까.. 증상이 사라진지 이제 두 달 정도가 되었고 두 달 동안 하루에 한 번씩만 화장실에 가고 있다. 변의 상태도 묽지 않고 정상적이다. 10년 전의 상태로 완벽하게 돌아간 것이다!! 혹시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면 의사와 상담해서 항생제를 한번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Sunday, January 30, 2022

DIY 실패

우리 집 차고에 있는 문은 수동으로 열고 닫아야 하는 롤러 도어이다. 한국에서 '샷다'라고 불리는 문과 비슷하다. 문을 위로 들어 올리면 위쪽으로 돌돌 말리면서 열리고 내릴 때는 위로 말려있던  두루마리가 풀리면서 닫히는 문이다. 손으로 열고 닫는데 그리 큰 힘이 들지는 않지만 전동 개폐기가 있다면 좀 더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우리와 친하게 지내는 가정에서 자동 개폐기를 공짜로 얻게 되었다. 자기 집을 개조하면서 떼어낸건데 내가 쓰겠다고 해서 가져왔다. 

우리집 차고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그 기계를 대보니 부착 가능한 제품이다. 롤러의 중심축을 지지대에서 들어올린 다음에 그 축에 끼워넣으면 될 것 같다. 위로 말려져 있는 문을 혼자서 통째로 들어 올리기엔 무거워 보인다. 말려 있는 문을 풀어줘서 위쪽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문을 내리고 한쪽 조임쇠를 벗겨낸다. 이제 반대쪽 조임쇠도 약간 풀어줘서 축이 조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면 되겠지.. 그런데 반대쪽 조임쇠를 푸는 순간 갑자기 '팅' 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살펴보니 롤러 도어 안쪽에 있는 스프링이 풀리는 소리다. 아, 스프링이 있었구나.. 스프링이 풀려버리니 롤러 도어를 들어올려도 위로 감기지 않는다. 

문이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이 말은 내가 차고 안에 갇혔다는 말이다. 우리 집은 80년된 집이어서 집과 차고가 분리 되어있고 우리 집 차고에는 출입문이 따로 없다. 그냥 롤러 도어를 통해서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롤러 도어가 닫혀 버린 것이다.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이런.. 111을 불러야 하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롤러를 살펴본다. 아래쪽에서 손잡이를 잡고 위로 들어올리니 롤러가 감기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되나.. 아하, 달력을 감을 때 처럼 위쪽에서 롤러 자체를 잡고 돌리면 되겠구나... 도어 중간 아래 쪽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위쪽에서 롤러를 잡고 돌려보니 문이 감겨 올라온다. 십년 감수했다. 문이 다시 닫히지 않게 의자를 문 아래쪽에 괴어 놓고 몸을 굽혀 빠져 나왔다.

차고에서 빠져나와 유튜브를 좀 찾아보니 스프링을 다시 감으려면 공구들이 필요했다. 나에게 없는 공구들이다. 살까? 공구 대여점에서 빌릴까? 스프링은 어느 정도 감아야 되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기술자를 불렀다. 다음 날 젊은 기술자가 왔는데 대략 15분 정도에 스프링을 다시 감고, 차고 문이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나에게 꽤 어렵게 보이는 일을 너무도 쉽게 해치우는 거다. 그러게.. 기술자가 괜히 기술자겠는가.. DIY를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무튼 DIY를 할때는 아무리 쉬워 보일지라도 방심하지 말고 미리미리 리서치를 충분히 해 둬야 할 것이다.

Friday, January 7, 2022

초등학교 졸업

작년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다들 하는 졸업이니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할 때 아이는 그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처음에 그 학교에 갔을때 타인종들이 너무 없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가 좀 꺼려졌었다. 그 때 한 학년 위에 한국인 아이가 한 명 있었을 뿐 아시안들도 별로 없었다. 백인 비율이 90 퍼센트 정도 되는 학교였다. 아이가 4학년 때쯤 한국 아이들이 저학년에 세 명 쯤 들어왔는데 잘 적응을 못하고 다른 학교로 가버린 적도 있었다. 

아이 성격이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친구나 사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친한 친구를 하나 사귀어서 그 아이랑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 외에 다른 애들이랑은 잘 놀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이랑도 잘 지낸다고 하지만 밖에서 다른 아이들이랑 논 적이 별로 없다. 아이는 한국 아이들과 더 놀고 싶어한다. 

내가 목회를 했을 때는 교회에 한국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같이 자주 놀곤 했었는데 지금은 키위 교회를 다니다 보니 한국 아이들과 놀 기회가 적어졌다. 한 살때부터 이 나라에서 자라고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줄곧 키위 학교를 다녔는데도 아이는 키위들보다는 한국애들을 더 좋아한다. 지금도 키위애들이랑 놀래 한국 애들이랑 놀래 그러면 한국애들하고 논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애들을 좋아하는 애가 혼자서 키위학교를 6년간 다녔으니 참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지난 달 졸업식에서는 그 해 졸업생 중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수학상을 받았다. 학교 트로피가 대물림되는데 매년 수상자의 이름이 그 트로피에 새겨진다. 2021년에는 아이의 이름이 새겨졌고 내년에는 아이 이름 밑에 2022년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학교 트로피에 이름을 남겼으니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 초등학교에 다녔으면서도 그런 상을 타보지 못한 나보다 더 잘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 특별한 상을 타지 못했으니 말이다.

올 해부터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중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랑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