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15, 2012

대선 4일 전

대선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외국에 있다보니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만 대선 소식을 듣고 있는데,
다행히도 투표일이 가까워질 수록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야 일찌감치 12월 7일에 이곳에서 2시간 떨어진 웰링턴에까지 차를 몰고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 기호 2번에 표를 주었고, 이제 그가 대통령이 될지 여부는 한국에 있는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뉴스를 보면 박근혜가 될지 문재인이 될지 아직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인것 같은데, 이 싸움이 이렇게까지 박빙이 될 줄은 몰랐다. 박근혜가 너끈히 이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만약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박근혜가 낙선한다면, 16대 대선 때만큼 짜릿할 것 같다.  물론 외국에 나와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와 같은 축제의 기분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그저 TV를 통해서라도 문재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만약 박근혜가 된다면.. 정말 씁쓸하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동포 유권자의 반 가량이 선택한 사람인 것을.. 그들의 선택도 존중해줘야하지 않겠는가..

Wednesday, December 5, 2012

1차 대선 토론을 본 후

1차 대선 토론을 봤다.
때리는 놈이 너무 싸움을 잘해서 상대방을 흠씬 두들겨 패고 있다면
설령 맞는 놈이 잘못해서 맞고 있을지라도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때리는 놈보다는 맞는 놈이 불쌍해 보일 것이다.

이정희 후보는 의도한대로 박근혜 후보를 난타했고,
박근혜 후보는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맞기만 했는데,
이 모습이 유권자들에게는 오히려 박근혜 후보를 동정하고
이정희 후보를 욕하게하는 구실을 제공했다고 본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은 점을 감안할때,
논리적으로 옳은 말 또는 사실을 말 할 때라도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지 않을 방식으로 말하는 전술을 폈어야 했는데,
너무 세게 나갔다는 생각이다.

우리 말에 '정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정희 후보, 맞는 말을 했음에도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나 점잖은 사람들에게는 '정 떨어진다'는 인상을 남겼을 것 같고, 오히려 박근혜 후보에 대한 동정심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준 것 같다.

박근혜 후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탄 것이 오히려 플러스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Monday, December 3, 2012

두번째 크리스마스

뉴질랜드에서 두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한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영 어색해서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었는데,
1년이 지나고 난 지금은 이곳에 적응을 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몸으로 느껴지고 있다.
며칠 전 12월 1일에 시내에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보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한 12월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추웠다면 퍼레이드를 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12월이 따뜻하니 얼마나 좋은가.
날씨가 따뜻하니 마음도 더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그래 크리스마스는 원래 따뜻한 날이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장식도 좀 할 생각이다.
산타에게 빼앗긴 크리스마스에 아이가 길들여지지 않게 집안에 아기 예수님도 들여놓고 마굿간, 구유도 만들어 놓고 싶은데, 아직 그럴 형편은 안되고..
어쨌든 저렴하게나마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긴 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꼬마들이 크리스마스에 산타, 산타만 입에 달고 사는게 안타까웠는데,
내 아이마저 산타에게 빼앗기면 안되지 않겠는가..

Tuesday, October 30, 2012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가 만 두살이 되니 이제 슬슬 Terrible Two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주장도 강해지고 떼를 쓰기도 하는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참 난감하다.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이 손찌검이긴 하지만, 가급적 힘(폭력)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주로 엄한 말과 단호한 태도를 통해 훈육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은 내 압도적인 힘으로 아이를 무력화 시키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 때가 있다.
그렇게해서 아이를 내 뜻에 복종시키고 나면 늘, 나 역시 월터 윙크가 지적한 대로 '폭력을 통한 구원 신화'에 얼마나 물들어 있으며 이 치명적인 지배가치에 실제로 맞서기란 또한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몸소 느끼게 된다.

손찌검 같은 낮은 단위의 폭력이라도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테고, 그러려면 어찌되었든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효과적인 말의 형식을 찾던 중 자주 가는 육아사이트에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았다.

Alternatives to threats


You want your child to:Instead of this:Say this:Which is better because:
Go to bed and stay there"If you get out of bed one more time, I'll scream.""After I put you to bed, I expect you to stay there."The expectation for the behavior is clear and unemotional.
Eat his peas and carrots"You're going to sit at the table until you finish your peas.""Remember — we won't have a snack before bed."It reminds him that the kitchen's closed, but he can still choose whether or not to eat.
Brush his teeth"No bedtime story if you don't let me brush your teeth.""It's time for bed. What do we do first to get ready?"It lets him know it's time for his bedtime routine without being punitive.
Behave in the grocery store"Stop running now or no TV when we get home.""Can you help me find the cereal you like?"It distracts from the negative behavior and offers a positive alternative.
Ask without whining"If you whine once more, I'll take away your pull toy.""I'd like to listen, but I can only understand your normal voice."It lets him know you're interested in what he's saying but won't accept the tone.
Clean up his room"No dinner until your room is clean.""Let's pick up your toys and put them in your toy chest. Do you want to do that before or after dinner?"It makes your expectations clear, but also gives your child a choice.
Stop tattling"I'm not taking a tattletale to the playground.""It sounds like you're upset with your sister. You need to tell her why."It helps your 2-year-old understand that kids have to work it out together.
Be quiet in the car"If you scream one more time, we'll turn around and go home.""I'm having a hard time driving. I need to pull over until you're settled."It lets your child know the effect, limits, and consequences of his behavior.

Sunday, September 9, 2012

한지붕 여러교회

하나의 건물에 여러 교회가 모이면 어떨까..
예전에 콜로라도에 놀러 갔을 때 그곳 휴양지에 있는 교회에서 주일이면 각 교단별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당을 본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전 9시에 장로교 11시에 침례교 오후 1시에 성공회.. 이런 식으로 시간대를 나눠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비단 휴양지가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은 도시에서도 그런 식으로 교회 건물을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교회당을 여러 교회가 나눠써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교회당 건물을 여럿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고, 각 교단의 전통에 대해 배우고 존중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에도 한인 순복음교회와 장로교회가 있는데 두교회 모두 교인 수가 적은데다 두교회 모두 각기 다른 키위 교회당을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두 교회가 힘을 합쳐서 하나의 교회당을 세우고 시간을 나눠서 교회당을 사용하면 어떨까.

Saturday, June 30, 2012

큰 꿈

아버지는 말하자면 이미 70년대에 현재 박진영이나 다른 연예기획사들이 진행하고 있는 미국 진출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기고자 했었다. 앞서도 너무 앞선 계획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당신께서 가수셨기에, 물론 유명가수는 아니셨더라도, 연예계에 대해 충분히 아셨을텐데 어찌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셨는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의 이런 큰꿈을 꾸는 성향이 60대 후반의 목사이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 꿈이 크기는 하지만 내용이 건강하고, 그 꿈으로 인해 아버지 역시 노년에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큰 꿈을 갖길 좋아하는 아버지의 성향은 앞서 언급한 사업의 실패로 인해 우리 집안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때도 변하지 않았었다. 그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초등학생이던 누나와 나에게 늘 해외 유학의 꿈을 심어주셨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나와 나는 어릴때부터 크면 당연히 유학을 갈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집안이야 그 후에도 계속 가난했지만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 속에 심어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이유가 전부이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누나와 내가 현재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아버지와 달리 나는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약간은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 아버지가 하늘의 사람이라면 나는 땅의 사람일테고, 아버지가 이상주의자라면 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일테다. 내가 붙들고 있는 두 개의 화두 중 하나가 incarnation이듯이 좀더 down-to-earth적인 방식으로 이상을 실현해보려 애쓰는 사람이 나이고, 현실은 거의 안중에 없고 이상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버지인 것이다. 어찌보면 나는 아버지의 성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실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버지의 이상적이기만한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으나, 지금은 아버지 연배의 많은 분들이 현실에 치여 꿈을 상실한 채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현실적으로 꿀 수 없는 꿈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제압당하지 않고 꿈을 지켜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도달하지 못한 어떤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아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될까. 나도 꿈꾸는 아버지로 기억될까.. 그렇게 되고 싶다. 나도 내 아들에게 큰 꿈을 꾸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고 꿈을 심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 이런 말도 꼭 해주고 싶다. "큰 꿈을 가져라.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네 꿈의 방향이 상향이 아닌 하향인 한에서만 그 크기를 인정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 큰 꿈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바 세상의 수많은 고통받는 자들을 품는 류의 꿈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나중에 직업적으로 도달한 위치가 세속의 높은 자리가 될지 낮은 자리가 될 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떤 위치에 있건 네 꿈의 방향은 늘 하향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라." 

Sunday, June 24, 2012

감사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다.
대략 40년동안을 북반구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여름이어야 할 때에 겨울을 맞고 있다.
추운 6월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추운 6월을 보내고 있다.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1년 가까이 공식적인 목회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지내다보니 많은 것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스펀지에서 물이 빠지듯, 나무 잎사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듯..... 황량해진다고 해야할까.. 아님 가벼워지고 있는 걸까..
뭔가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었는가..
성서, 교회, 책, 신학, 철학, 사회활동, 지인들.. 이런 것들이 서서히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도 보게된다.
아내, 아들, 가족, 이웃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아마도 이들이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가 내 삶의 근간인 것 같다.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산다. 잎사귀가 다 떨어져나가 맨몸이 되어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겨울을 이겨낸다.뿌리만 건강하면 잎은 다시 돋아나게 마련 아니던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거고..
이것 저것 떨어져나가니 예전보다 선명하게 뿌리가 보이는데, 다행히 뿌리가 건강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감사가 지금 내 행복의 근원이다.

Monday, June 11, 2012

기억에 남는 스승

기억에 남는 스승이 한분 계시다.
대학시절 내 전공이었던 철학과 교수님이시다.
고교시절부터 수재였던 그분이 지방 명문고를 수석졸업 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당시 서울대 교수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가 왜 법대나 의대에 안가고 철학과에 왔느냐며..

그 교수님은 학부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독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독어에 능했는데, 우연히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불어를 배운 후 그분의 추천으로 프랑스로 유학, 파리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내 모교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하고 계셨다.

그분과의 만남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언제인가 그분의 연구실에서 나눴던 대화 때문이다. 말씀하시길 공부를 계속해오다 보니 젊었을 때 가르쳤던 내용 중에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가르쳤던 내용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가르친 자신의 잘못이 너무 크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성의 소유자인 노교수님이 과거 자신이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 일개 학부생 앞에서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진리 앞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분이 계실까..

그 후로 나는 그 교수님을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다.
힘들때는 가끔 찾아뵙고 고민 상담도 했었고, 철학에 관련된 물음도 가져가곤 했다. 내가 신학에 관심있어하는 것을 아신 후로는 신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좋은 자료들을 찾아주시기도 했고 헬라어를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야만 했다.

졸업후 일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는데, 노부부가 서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낯이 익었다. 그 교수님이셨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운 얼굴을 본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며 교수님과 사모님의 버스비까지 같이 요금함에 넣었고,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시던 교수님은 댁에 언제라도 놀러오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아, 그 때 찾아뵈었어야 했다..
언제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2년정도 흘렀는데, 대학교 친구로부터 그 교수님이 몇달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께 받은게 너무 많은데 나는 겨우 마을버스비만 한번 내드리고 말았다니...
허탈함과 죄송함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줄 알고 떠드는, 과오를 인정할 줄 모르고 성찰할 줄도 모르는 수많은 교수들 사이에서 그 분은 별처럼 빛나던 분이셨다.

Friday, June 8, 2012

반복적 수행의 중요성

몇 달 이상 같은 장소를 청소하다보니 이제는 어느 책상이 지저분한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층마다 꼭 몇몇 책상에 가면 거의 늘 쓰레기들이 휴지통이 아닌 그 주변에 떨어져 있다. 휴지통이 바로 책상 밑에 있는데 왜 그 안에 잘 버리지 못하고 꼭 그 옆이나 뒤에 쓰레기를 흘리는 것일까.. 자기가 퇴근하고 난 후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하긴 예전에 내가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도 내가 퇴근하고 난 후 내 책상 밑을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지금 내가 청소하는 건물에서 낮동안 일하는 사람들도 내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 할 것이고, 그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그들이 떠난 후 그 자리를 매일 청소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좋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어떤 행동을 몸에 새겨 넣는 일과 어떤 생각을 정신에 새겨 넣는 일, 둘다 중요한 일이고 둘다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다.

Monday, May 7, 2012

베트남 동료

T는 나와 함께 청소일을 하고 있는 베트남 친구이다. 20대 후반인 T는 석사 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동갑내기 아내를 위해 뉴질랜드까지 따라와준 좋은 남편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을 때 만난 베트남 사람들 중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는데, T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베트남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과학고를 나온 영재 출신이었다. 베트남 전국 물리학 경시대회에서 3위를 했었다고 한다. 학부에서는 물리학대신 IT를 공부했고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인터넷에 이력서를 올려 놓기만 하면 여러 회사에서 연락을 받곤 했던 T도 뉴질랜드에서는 그저 동남아시아 이방인에 불과했다. 열심히 자리를 알아봤지만 결국 프로그래머 자리를 얻지 못하고 새벽과 밤에 청소일을 해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일을 잘 한다는 소리를 한국에서 여러번 들었었는데, T가 아마도 그 평가에 걸맞는 전형적인 베트남 사람인 것 같다. 성실하고 책임감있고 부지런하고.. 물론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또 다른 베트남 친구 C는 베트남 고위 공무원으로 현재 이곳 대학에서 Ph.D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다른 동료들 모두에게 불성실하게 일하는 친구라는 평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주에 T에게서 한달 후면 청소일을 그만둔다는 말을 들었다. 거의 1년만에 프로그래머 일자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제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T에게 꼭 필요한 좋은 소식이라고 축하를 해주었다. T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이방인, 내국인을 막론하고, 차별받지 않고, 좋은 일자리를 구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니..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Saturday, April 21, 2012

손 대접하기

몇달간 집에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냥 편하게 이사람 저사람 와서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유학시절, 내게도 밥을 주었던 사람들,
또는 부담없이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이 생각난다.
편하게 아무때나 찾아가서 밥 한끼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도 체면 차리지 않고 나눠먹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서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는 살림에 손님 대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없으면 없는 대로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출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니..
약간 과장해서 사르밧 과부의 심정으로 손님들을 대접하고 있다.
엊그제도 장을 보면서 '이걸로 일주일 버티자' 했는데, 그날 점심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한방에 훅!
그래도, 음식보다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먹는 것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고,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크리스천인 이상,
내가 조금 굶는 한이 있더라도 손 대접하는 일을 멈추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희생없이 사랑을 한다? 당치도 않는 소리다.

Thursday, April 12, 2012

가족의 탄생

"가족의 탄생"(2006)을 보았다.
김영민 선생이 '빼어난 계보학'이라 평한 영화라서 한번 찾아보게 되었는데, 가족이라는 구성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간략히 서술하자면 가족은 혈연 공동체라는 닫힌 계가 아니며, 핏줄하나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열린 공동체라는 것.

예수님 역시 가족을 혈연 공동체로서의 닫힌 구성체가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 외적 한계를 허문, 즉 중심은 있으되 경계가 없는 열린 공동체로 보았다. 교회란 이런 모습을 현실 세계 속에서 실현해 나가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데, 이의 실현은 이 영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 관심과 돌봄, 나눔, 희생 등을 통해서만 가능해 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동생의 귀환은 불필요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왜 그 장면을 불편하게 생각했을까를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그 어려움 --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가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비용--을 겪어내며 만들어진 가족 공동체에 또 다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내가 부지불식간 불편하게 여기고 있음이 그 이유였다. 영화를 보는내내 '아, 가족은 이렇게 열린 공동체여야 해'라는 생각으로 보다가 마지막에 다시 새로운 인물이 가족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나도 모르게  문 - 가족으로 편입되는-을 닫으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그 문은 늘 열어놔야 하는데 말이다.

Sunday, April 8, 2012

아버지의 편지

예전 신학 공부를 위해 유학했던 시절 초기에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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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향한 부모의 눈물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내가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일반 부모들의 눈물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후 흘리셨을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 당하는 그 광경을 지켜 보시던 하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그 때부터 너를 향하여 눈물 흘릴 때 마다 더욱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절제하고 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 할 때가 너무 많다. 나도 너를 미국에 보내고 난 후 눈물 속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미국 생활을 하다가 때로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네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


또 다른 눈물의 의미는 주님이 30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눈물이다. 30세에 느닷없이 집을 떠나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는가 하면,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3년 반만에 끝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던 주님을 지켜 보시고 가슴 아파 몸부림치시던 마리아와 요셉의 눈물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너를 미국으로 보낸 후 흐르던 눈물의 의미를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셔서 너무 너무 감사를 드리고 있다. 아들아, 이제 부터는 육신의 정을 멀리하고 마리아와 요셉의 심정으로 멀리서 너를 지켜보고 너를 위하여 간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너도 이제 부터 육신의 부모 보다는 주님이 그러셨던 것 처럼,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죽도록 하늘 아버지께 충성하기를 바란다.


물은 곧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물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공급하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비유로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은 실로 물과 같이 살다 가셨다. 물은 가장 낮은 자리에 존재한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 십자가의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다. 십자가는 바로 가장 낮은 자리, 자기 자아를 죽이고 욕심을 버린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바다에 이르러서야 물은 다시 하늘로 승천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십자가의 자리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최고 영적 성숙을 이룬 영광의 자리가 될 것이다.


아들아! 이제는, 일거수 일투족, 생각하는 모든 것,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존재하여라. 주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 하여라. 오직 하늘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하여라..

Tuesday, April 3, 2012

목사와 아내

2007년 8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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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내와의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그 분은 아내보다 성도들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아내는 성도 아닌가..
성도가 만 명이면 아내는 만 한 번째 인가..

사역에 장애가 되면 아내를 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결혼을 했는가..

아내를 사역의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다. 사랑은 사람을 도구로 삼는 게 아니다.
아내는 나와 한 몸이다. 아내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이다.

결혼 생활은 또 하나의 성례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나가기 때문
이다. 성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결혼 생활을 통해 직
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내를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교회를 위해서 그런다고? 성경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추구하는 궁극적 지향점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
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자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하위
개념이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일 뿐이다.

그런데 이 교회 공동체는 가족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가족이 없
으면 교회도 없고 인간 세상도 없다. 하나님은 교회가 초월적 가족
공동체가 되길 원하시지, 해체적 가족 공동체가 되길 원하시는 게
아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기 가족 만의 울타리를 넘어서 하나
님을 아버지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구성원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다. 이는 가족을 해체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족 간의 사
랑이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을 말한다. 가족을, 아내를 희생시키라
는 말이 아니다.

성도들도 아내도 다 같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아내도 성도이
다. 아내를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 왜 아내를 희생시키는가..

성도들은 당신이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돌보신
다. 그것을 믿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아내는 다른 남자가 아닌 "오직 당신만이" 돌볼 수 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성도들이 싫어하는가?
교회가 싫어하는가?
그 교회를 떠나라. 그것이 사랑이다.
당신의 사랑에 책임을 지라. 당신의 결혼 서약에 책임을 지라. 그렇
지 못할 것이라면 목사의 자리에서 물러서라. 그것이 떳떳하다.

사랑은 자기 기만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고난주간

올해도 어김없이 고난주간이 돌아왔다.
예년에도 이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번 고난주간은 왠지 더 무거운 느낌이다.
이 무거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세상의 악은 활개를 치고 있고, 그로인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고,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 없어 보이고..
나 역시 내 가족 먹여 살리느라 정신이 없고..
이런 와중에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은 자기 것 없는 삶을 사시다, 외려 자신의 목숨을 세상을 위해 내어 놓기까지 하셨으니.. 아, 참 맘이 무겁다.
생존문제가 차꼬처럼 내 발목을 잡고 있으니 수난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만 볼뿐, 현재로선 달리 그 고난에 동참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아니다...

핑계다.

전복과 욕심

얼마전에 여행을 다녀왔다.
북섬 끝자락에 있는 펠리서 베이라는 곳이었는데, 바다에서 자연산 전복을 잡을 수 있고 야생 물개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전복은 규정상 12.5센티미터 이상 크기로 일인당 열 마리만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같이 간 동료들이 허리까지 물에 잠긴채 바위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더듬 전복을 찾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가을이라 바닷물이 차가운 편이었지만,
자연산 전복을 먹어보겠다는 동료들의 일념을 꺽지는 못했다.
결국 그분들의 수고로 나도 덩달아 자연산 전복을 처음으로 맛보았는데,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크기로 인해 한번 놀라고, 그 싱싱하고 쫄깃한 맛에 또 한번 놀랐다.
해변에서 즉석으로 회를 쳐서 먹고, 남은 것은 숙소로 가지고 와서 볶아먹고, 데쳐먹고, 삶아먹고, 라면에 넣어먹고, 죽도 쑤어 먹고.. 그 귀하다는 자연산 전복이 나중에는 같이 상에 올라온 삼겹살에도 밀리는 신세가 될 정도로 질리도록 먹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런 생각이 스친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귀한 생명을 빼앗은 것일까..'
전복이 10센티 이상 크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것은 단순한 조개가 아니라,
그 차가운 바다 밑 바위에 붙어서 10년 동안 버티고 살아온 귀한 생명이었던 것이다.
10년, 그 귀한 10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연 나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한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나는 왜 그걸 먹은 것일까..
먹을 것이 없어서, 몸이 아파서, 배가 고파서 먹은 것이 아니고 그냥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 귀한 생명을 먹어버린 것이다.
동료들은 왜 그리 욕심을 부렸던 것이며, 나는 왜 그들을 제어하지 못했을까..
그냥 한마리씩만 잡아서 맛만 봐도 되었을 터인데, 왜 그토록 많은(물론 1인당 10개 이하이긴 했지만) 전복을 잡았던 것일까..
예전에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아들이는 사람들을 TV에서 봤을 때 그들을 비난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과 내가 다를게 뭐가 있나..
나는 과연 전복을 먹은 것인가 내 욕심을 먹은 것인가..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Wednesday, February 22, 2012

목회지

죽음을 앞둔 한 목사의 깨달음 The Garden

내가 있는 곳이 내 목회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데, 비슷한 분을 알게 된 것 같다.
제도권 교회 밖으로 나오니 더 편하게 비기독교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물론 크리스천들과도 교제를 하고 신앙상담도 해주지만,
그보다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교회 안에서 목사로만 있다보면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
지금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Saturday, February 18, 2012

식사기도

식사기도는 짧게 하는 편이지만,
식사기도를 할 때마다 나를 살리는 것은 밖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가발전을 할 수 없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먹어야 살고,
내가 먹어야 하는 것들은 다 나의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나를 살린다.
내가 내 힘으로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것이 내 안으로 들어와야 내가 산다.
밖으로부터의 구원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법.
타자는 필수적이다.

Friday, February 17, 2012

영어 설교

현재 출석하고 있는 뉴질랜드 교회 담임목사인 딕비가 언제 설교 한번 하라고 한다.
한국말로 하면 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더니 영어 잘하니까 영어로 하라고 한다.

영어 설교는 미국 유학 중 세번 해본 것이 전부이다.
세번 다 설교학 교수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때 느꼈던 바 영어 설교는 어지간하면 안해야겠다는 생각.
영어라는 도구가 설교할 때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설교는 한국어로 할 때도 어려운데 그걸 영어로 하라니..
어쩔 수 없이 해야되는 상황이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가급적 하고 싶지 않다.
마치 한 치수 작은 옷을 입고 단위에 올라가는 느낌.
불편하고 답답하고.. 게다가 준비하는 시간도 많이 걸리니..

설교를 몇편 들어보니 딕비 목사는 나와 코드가 비슷한 것 같다.
성도들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지도 않고, 기복주의적이지 않고, 성도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는 설교를 한다. '내가 설교해도 저런 내용으로 했겠다' 싶은 적이 여러번 있었다.
아직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좋은 설교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같은 길을 걷는 동역자로서 뿌듯한 마음이다.

만나

오늘도 5시간 동안 열심히 만나를 줍고 왔다.
거의 4시간 동안 진공청소기를 맨채 카펫에 묻은 작은 티끌들만 찾아다니니
만나 줍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받는 최저임금이 우리 집의 만나이다.
나는 내 만나를 줍고
아내는 또 다른 곳(요양원)에서 자기 만나를 줍는다.
이걸로 우리 세식구가 사는 거다.
만나를 쌓아둘 수 없듯이 최저임금도 쌓이지 않는다.
그날 벌어서 그날 쓰면 그걸로 끝.
내일은 내일의 만나로 살 것.

이 광야 생활이 언제 끝날까 싶다가도,
광야를 벗어났을 때 만나게 될 어려움들이 지금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속으로 매번 "여기가 좋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광야에서는 자신과의 싸움만 하면 되지 않는가..
자신과의 싸움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이 싸움이 제일 쉬운 싸움이다.
자신만 지키면 되는 싸움은 얼마나 쉬운 싸움인가..
악과의 싸움, 체제와의 싸움,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들이 훨씬 어려웠다.

매일매일 만나 줍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 쯤이야.. 눈감고도 하는 거지ㅎㅎ

Monday, February 13, 2012

김영민 선생

12월 20일경부터 청소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낮에는 아이보고 밤에는 청소하고 하다보니 말과 글에서 많이 멀어진 느낌이다.
책을 볼 시간도 별로 없고 차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다보니 블로그에 글 올리는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그래도 요즘 유일하게 틈틈히 읽고 있는 책이 김영민 선생의 '비평의 숲과 동무 공동체'이다. 내가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때가 아마 미국 유학 후반기 쯤 되었던 것 같다. 대략 한 3,4년쯤 된 것 같은데, 그동안 이분의 책 중 동무와 연인, 사랑 그 환상의 물매, 동무론, 공부론을 읽었고 이분 홈페이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글을 읽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한국어와 한자어들 때문에 사전을 찾아가며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사전없이도 읽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 분의 책을 이해하기에는 내 공부의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비평의 숲과 동무 공동체'는 선생의 동무론 3부작의 마지막 책인데, 내가 앞으로 조형해 나갈 교회 공동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있으면 책의 내용을 좀 정리해보고 싶은데 그럴만한 여유가 현재는 없다.
아무튼 한국에 이런 철학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늦게나마 이분의 글에 닿게 된점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Wednesday, January 25, 2012

트리거 핑거

청소 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오른손 넷째 손가락을 구부렸다 펼 때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직도 그 증상이 있어서 인터넷을 좀 찾아봤더니 Trigger Finger라는 증상과 일치했다. 손가락에 있는 tendon이 부어서 sheath에 걸리적거리는 증상이었다. 치료법으로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푹 쉬는 게 제일 좋고, 증상이 심하면 간단한 수술을 하면 된다고 한다. 내 경우는 상태가 별로 심하지 않고 초기이기 때문에 손가락에 무리가 가지 않게만 하면 괜찮을 것 같긴 하다. 오랜만에 육체노동을 하다보니 이런 병도 생기고..
아이 보는 것도 어찌 보면 육체 노동이라 낮과 밤에 계속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랑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이 두사람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황량했을까..
내 아픈 손가락으로 안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들이 치료제다.

Monday, January 23, 2012

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

신의 뜻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
사랑은 희생.
신의 뜻을 따른다는 말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
그 희생의 최고치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
어렵더라도 그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자의 인생이리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곳은 내 삶의 자리.
내 인생 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면 된다.
그가 외국인노동자일 수도, 장애인일 수도, 비정규직노동자일 수도, 고아일 수도 있다.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면 된다.
그들이 나보다 못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하나님의 아픔이기에, 시혜의 대상이 아닌 이웃이기에 돕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자의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동체가 교회여야 한다.
어떻게하면 우리 사회의 낮은 자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교회.
그러나 해도 안된다는 절망으로 무거운 교회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희망으로 기쁘고 가벼운 교회.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줄 아는 교회.
그 희망을 향하여 절망을 끌고 나아갈 줄 아는 교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즐거운 교회.
그런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

Saturday, January 21, 2012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살다보면 일이 생각/예상/계획했던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나 역시도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면 그랬던 적이 여러차례 있었던 것 같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걱정이 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과 걱정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걱정되는 것이 자연적 반응이라면, 걱정하는 것은 의지적이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걱정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을 예수님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걱정을 해도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걱정 때문에 몸도 마음도 인간관계도 상하게 되는데 걱정을 왜 하는가?

나 같은 경우는 걱정이 되어도 걱정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세상의 어떤 일이든 절대화시키지 않는다.
하나님 외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내 계획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일이 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이것만은 반드시'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되면 좋고 안되면 '다른 길이 또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는 것도 힘든데, 걱정까지 하면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일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이 계획대로 안되었을 때는 변화된 상황에 맞춰서 다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움직이지, 아무것도 안하고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이 내 예상대로 안될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개입이 기대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말은 상황을 내 뜻대로 변화시켜준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 내면/영혼을 감화시켜주신다는 말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러한 개입을 받아들인다면 크리스천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양식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형식은 말하자면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식이었다. 만나로 산다는 것, 은혜요 축복이지만 그 형식은 매일 새벽 광야에 나가 허리를 굽혀 그날 먹을 좁쌀만한 양식을 주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항아리를 열면 매일 자동으로 밀가루가 가득히 쌓여있는 그런 형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벌어 하루먹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고 그들의 신앙을 후손에게 전수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바로 가서 살거라는 예상/계획이 깨어지고 광야에서 살게되었지만, 그 빈궁한 중에도 하나님의 개입을 받아들여 그들 자신을 지키고 후손에게  야훼 신앙을 전수한 히브리인들의 이야기는, 그저 옛날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Sunday, January 8, 2012

양과 염소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염소의 대표 이미지는 playful하다는 것이었다. 장난기가 많고 높은 곳도 잘 오르내리며 거의 모든 풀을 먹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대로 양의 대표 이미지는 stupid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염소는 고집센 짐승으로 양은 온순한 동물로 여겨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인식이었다.

양과 염소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우리가 어떤 자연/문화적 조건 속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성서 텍스트 속에서 양과 염소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우리 머리 속의 양과 염소가 아니라 성서 기자의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있는 양과 염소의 이미지를 찾아내야 한다. 양과 염소의 이미지가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성서 시대의 양과 염소의 이미지 역시 지금 우리 머리 속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양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염소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아마도 키우기 까다로운 양이 아닌, 이풀 저풀 다 잘먹는 착한(?) 염소를 통해 우유와 고기를 공급받는 대개의 저개발 국가나 가난한 지역 사람들에게 성서기자들의 저러한 이미지 선택은 영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일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