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성기업 파업에 관한 말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그곳 노동자들이 연봉을 7천이나받으면서 파업을 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에서 이에 관한 기사를 냈는데, 임금부분에 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월 평균 임금은 449만2007원으로 1년으로 환산할 경우 5390만4084원이다. 이 중 기본급은 171만9978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38.3%에 불과하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만원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반면 잔업·특근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은 89만1485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19.8%에 달한다. 1년으로 따지면 1069만7820원이다. 기본급은 급여의 40%에 불과한 반면 잔업·특근·야근 수당이 20%에 달하는 구조다. 야간작업에 따른 피로 누적과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심야근무를 없애는 연속 2교대 근무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출처:경향신문 5/24/2011)
외국인노동자들이 월급 150에서 180을 받고 일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사람 중에도 그만큼의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인들을 데려다쓰냐고 한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저 정도 돈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초과근무를 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주일내 이른바 3D 업종에서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저정도다.
유성기업도 마찬가지다. 평균 16년 경력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일년 내 거의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연 5천 4백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대다수 우리나라 서민들이 왜 그리도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고 사용주의 편을 드는가 하는 부분이다. 심야근무 대신 연속 2교대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그들의 요구가 그렇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인가? 내 부모 내 자녀가 밤낮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좋은가? 어떻게든 그런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판단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Thursday, May 26, 2011
Tuesday, May 24, 2011
빈라덴과 회개
오사마빈라덴이 미군의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 당한 후,
미국의 복음주의 권에서 빈라덴이 죽기 전에 회개했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었나보다.
복음주의권에서는 회개를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려하는 자세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미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살해된 빈라덴은 회개를 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회개를 할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미군에 의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만약 빈라덴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만 회개 기도를 올린 것으로 끝났다면
당연히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권에서 빈라덴이 죽기 전에 회개했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었나보다.
복음주의권에서는 회개를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려하는 자세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미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살해된 빈라덴은 회개를 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회개를 할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미군에 의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만약 빈라덴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만 회개 기도를 올린 것으로 끝났다면
당연히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Wednesday, May 18, 2011
임금 체불
얼마 전 어떤 외국인노동자로부터 700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700만원이라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큰 돈인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700만원이라면 얼마나 큰 돈이겠는가..
저정도 금액이면 외국인 노동자가 몇달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인데,
그걸 한푼도 받지 못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노동자가 떼인 돈을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법원에서 돈을 주라고 판결을 내려도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돈을 받는 건 별로 본적이 없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두고온 가족에게 매월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 본국의 가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700만원이라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큰 돈인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700만원이라면 얼마나 큰 돈이겠는가..
저정도 금액이면 외국인 노동자가 몇달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인데,
그걸 한푼도 받지 못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노동자가 떼인 돈을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법원에서 돈을 주라고 판결을 내려도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돈을 받는 건 별로 본적이 없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두고온 가족에게 매월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 본국의 가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구원 경험
요즘 아들 녀석이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난리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치고 있는 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간절한 눈빛을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다.
아주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 아이에게는 내가 자기를 방바닥에서 하늘로
번쩍 들어올려주는게 구원일거다.
구원 경험은 중층적이다.
개인적으로 체험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체험되기도 하며,
물리적 차원이기도 하고 영적 차원이기도 하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병든 자에게 구원이란 병이 낫는 것이고,
배고픈 자에게 구원이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에게는 풀려나는 것이 구원이고,
독재에 신음하는 자들에게는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 구원일 것이다.
물론 이런 차원의 구원 경험이 영속적이진 못하다.
다시 아프고 다시 배고프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러한 구원 경험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죄와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궁극적 구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러한 중층적 구원의 실상을 일상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 되고 만다.
구원 경험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온 세계가 구원 경험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 사건이 발생하는 근원을 하나님으로 인식한다.
그 구원이 낮은 단계의 것이든 높은 단계의 것이든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구원의 역사가 세대와 민족을 넘어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치고 있는 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간절한 눈빛을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다.
아주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 아이에게는 내가 자기를 방바닥에서 하늘로
번쩍 들어올려주는게 구원일거다.
구원 경험은 중층적이다.
개인적으로 체험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체험되기도 하며,
물리적 차원이기도 하고 영적 차원이기도 하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병든 자에게 구원이란 병이 낫는 것이고,
배고픈 자에게 구원이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에게는 풀려나는 것이 구원이고,
독재에 신음하는 자들에게는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 구원일 것이다.
물론 이런 차원의 구원 경험이 영속적이진 못하다.
다시 아프고 다시 배고프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러한 구원 경험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죄와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궁극적 구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러한 중층적 구원의 실상을 일상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 되고 만다.
구원 경험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온 세계가 구원 경험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 사건이 발생하는 근원을 하나님으로 인식한다.
그 구원이 낮은 단계의 것이든 높은 단계의 것이든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구원의 역사가 세대와 민족을 넘어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Sunday, May 15, 2011
겸손과 자신감
전혀 계획에 없었던 만남이 어제 있었다.
이 만남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에도 여러가지 요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이 만남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일상은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그 수많은 요소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령 어제의 만남도 내가 밖으로 나간 시간과 밖에서 아내랑 아이와 아침을 먹는 데 걸렸던 시간, 음식점에서 아들이 보채기 시작한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 전화를 걸었을 때의 내 위치, 친구의 상황, 그날의 일기 등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불일치 했어도 어제의 내 일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것이다.
그 만남은 내가 단순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그 행위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제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수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혹자는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 이 만남을 가능케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상황 속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설령 집에 돌아와서 전화를 했다 해도, 사정상 그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는 단순한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제의 만남에 관여된 다른 요소들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했던 거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덕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사람의 행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 행위의 중요함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데 관여한 수많은 다른 요소들의 중요함 만큼만 중요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비록 내가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일의 성취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 관여한 모든 요소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내 역할은 얼마나 미미하면서도(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중요한가(내 역할이 없으면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 복합적 의미를 깨달으면 전자에서 겸손함과 후자에서 자신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만남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에도 여러가지 요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이 만남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일상은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그 수많은 요소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령 어제의 만남도 내가 밖으로 나간 시간과 밖에서 아내랑 아이와 아침을 먹는 데 걸렸던 시간, 음식점에서 아들이 보채기 시작한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 전화를 걸었을 때의 내 위치, 친구의 상황, 그날의 일기 등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불일치 했어도 어제의 내 일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것이다.
그 만남은 내가 단순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그 행위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제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수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혹자는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 이 만남을 가능케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상황 속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설령 집에 돌아와서 전화를 했다 해도, 사정상 그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는 단순한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제의 만남에 관여된 다른 요소들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했던 거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덕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사람의 행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 행위의 중요함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데 관여한 수많은 다른 요소들의 중요함 만큼만 중요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비록 내가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일의 성취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 관여한 모든 요소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내 역할은 얼마나 미미하면서도(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중요한가(내 역할이 없으면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 복합적 의미를 깨달으면 전자에서 겸손함과 후자에서 자신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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