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1, 2017

2017년의 마지막 밤

2017년의 마지막 밤이다.
왠지 이곳에 뭔가를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의식적으로 오늘 밤이 2017년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 없는 밤일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송구영신 예배로 분주한 밤이겠지만
나는 송구영신이라는 명목으로 성탄절 기간을 망치고 싶지 않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 의미에 대해 집중할 시간이 교회에 좀더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 전통에서 성탄절을 12일 동안 기념했듯이
지금도 2 주 정도는 오롯이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연말연시는 그냥 가정이나 밖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보내도 되지 않을까..
굳이 왜 교회에서 성탄절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뒷전으로 밀어내면서까지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야 할까..

2017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별다른 큰 일없이 보냈던 것 같다.
교회에도 가정에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있었어도 내 머리 속에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올 한해는 그냥 잘 지냈던거다.

감사하다. 아이도 잘 크고 있고
아내도 건강하고 성도들에게도 큰 우환이 없었고..
한국의 가족들도 잘 있고..
일단 내 바운더리 안에서는 큰 일이 없어서 감사하다.
하지만 세상을 보면 여전히 어려운 일들이 가득하다.
온 세상이 하나님께 감사할 일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길 기도한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들 자기들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좋겠다.

2018년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모른다.
이제 더이상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산다.
성령의 바람이 부는대로 움직이며 산다.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몸에 힘이 빠졌다.
그냥 성령에 기대어 산다.

얼마 전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서 제일 가난한 성도의 집보다 싼 집을 살 수 있었다.
내가 교인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면 미안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예수님보다 더 잘 살고 있다.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내 믿음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

Saturday, December 16, 2017

마리아의 찬가

충분한 어려움을 예상하고도
하나님의 아들을 품겠다는 어려운 선택을 했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헤롯왕에 쫓겨 이집트로 피난을 가고
돌아와서도 계속 나사렛이라는 깡촌에 살게 되고
남편마저 잃은 과부가 되어
일곱명이 넘는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살다가
아무 죄도 없는 큰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아들의 부활 소식을 접한 후
그 아들을 기억하고 아들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들의 곁에 남아 아들의 영이 임할 때까지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한다(행 1:14).
어린 나이에 두려움 속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엘리사벳에게서 들었던 위로의 메시지를 승화시킨 자신의 찬송가를
똑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그 찬송가는 누가의 손에 의해 성경에 남게 된다(눅 1:46-55).

자신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자신이 품었던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두려워하는 자가 긍휼을 얻고,
교만한 자가 흩어지고,
권세있는 자가 심판을 당하고,
비천한 자가 높아지고,
주리는 자가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고,
부자가 빈 손으로 보내졌으니..

맞습니다.
당신의 찬송대로
당신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Wednesday, December 13, 2017

반성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박해를 받을 것인가..
박해는 선한 자가 악한 권력에 저항할 때 받는 것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악한 권력은 선한 자를 박해하지 않는다.
선하기만 해서는 박해를 받지 않는다.
박해를 받으려면 저항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려면 악한 세력에 저항해야 한다.
저항의 최전선에 있을 수록 십자가를 지기 쉽다.
악은 개인 속에도 자리를 잡지만
집단 속에도 자리를 잡는다.
성경은 개인의 악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 속에 자리잡은 악을 고발하기도 한다.
그러한 악에 저항하면 즉시 박해를 받을 수 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죄다.
그것을 알기에 대개는 악을 스스로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방관한다.
박해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악한 권력을 방해하지 말라는 악의 유혹에 속절없이 넘어진다.
예수 사건을 통해 악의 작동원리가 만천하에 공개된 후에도 인간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다.
그 유혹 중의 하나가 편안함이다.
편안함에 빠지면 박해를 피하려 한다.
박해받는 삶보다 편안한 삶을 택하려 한다.
나도 지금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맡은 일에서 오는 어려움은 박해가 아니다.
그냥 모든 직업인이 갖는 어려움과 다르지 않다.
그 어려움을 박해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십자가를 바라만 보고 있지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박해받는 자들과 연대하고 있지 않다.
천국에서 누려야 할 편안함을 이 땅에서 누리려 하고 있다.
이 땅에서는 영혼의 평안만을 누리면 되는데,
육신의 편안함까지 누리려 하고 있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웃들이 가득찬 이 세상에서 말이다..
주님 이 연약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의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이 배은망덕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 이 입에 발린 기도..
말 뿐인 기도..
왜 이리 약해진건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