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5, 2018

무너지는 관계들

슬픈 증상이다.
여고생이 아버지의 친구에 의해 살해를 당하다니...
관계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건가..
가족관계, 친구관계, 노사관계.. 모든 관계들이 무너지고 있다.
모든 관계들 중의 가장 근원적인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으니
어쩌면 이런 인간관계들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답답하다.
겸손히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면
이런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무시하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무시하는
이 세대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주여 우리를 긍휼하소서..

Friday, June 15, 2018

신화와 영화

이해가 안되는 세상사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신화를 사용했다.
요즘은 과학을 통해서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만 과학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인간의 생사화복이나 자연재해등에 대한 설명을 신화를 통해 했었다.
신화적 세계에 등장하는 천사와 악마는 이땅에 보이는 부조리들을 설명하는 하나의 설명 방식이었다.
신화적 표현은 지금도 우리의 언어 생활에 반영되어 있다. 천사같다, 악마같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신화는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세력과 인간을 자신의 지배하에 놓으려는 세력 간의 싸움이 진행 중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비록 그 언어는 천사나 마귀와 같은 신화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거기에 실재가 반영되어있다.
어찌보면 신화는 현대의 영화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어떤 부분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더 잘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신화적 설명 방식이 지금은 과학에 비해 설득력을 많이 잃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신화적 설명방식에 의존하기도 한다.
과학이 완전히 신화적 설명방식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는 한 신화는 아마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겨자씨

벌써 6월이다.
시간이 참 빠르게 간다.
한 주 한 주가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설교 준비를 하고 있다.
본문이 겨자씨 본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겨자씨에서 본 예수님의 견해가 인상적이다.
사람들의 눈에 보잘 것 없고 흔해 빠진 겨자풀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었다니..
그런 눈을 가지고 살면 좋을 것 같다.
내 주변에 있는 풀 한포기, 들꽃 하나, 새 한 마리도 허투로 보지 않고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작고 보잘것 없다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을 긍정해주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있음을 응원하며 함께 해주면 좋겠다.

밤이 깊다.
벽난로의 불도 꺼져간다.
눈을 감고 떴을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
그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다고..
겨자씨만큼이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