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30, 2024

잔인한 12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2024년 12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 같다. 12월 초에 시작된 뜬금없는 계엄령 포고부터 12월 말의 최악의 비행기 사고까지.. 둘 다 인재로 인한 것이다. 계엄은 대통령 때문에, 비행기 사고는 무안공항 설계 당시 누군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활주로 끝 조명시설을 흙둔덕과 콘크리트 위에 설치한 탓에. 

처음에 비행기 사고를 들었을 때 동체 착륙한 비행기가 공항 외벽에 부딪쳐 폭발했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공항에 그렇게 강한 벽이 있을 수 있나하는 점이었다. 한국 방송에서는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어떤 토목구조기술사가 그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을 보고 나만 그 부분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 방송을 보다보니 너무나 섣부른 추측들이 난무했다. 외국에서는 추측성 기사들을 거의 자제하는데 한국은 왜 너도나도 추측성 기사나 인터뷰들을 보도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Wednesday, December 25, 2024

2024년 성탄절

이 나라에서 성탄절은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인데 나에게는 아직도 성탄절이 그런 명절은 아니다. 시내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선물가게가 붐비고 하는 것들을 보면 약간은 명절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성탄절을 명절처럼 기다리지는 않는다. 성탄절은 아직도 나에게는 명절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성탄절이 기독교 색채를 거의 벗어버리고 상업화된 측면이 아쉽고,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에 불만이 좀 있는 편이다.

아기 예수.. 갓난아기는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신경을 사로 잡는다. 그 존재 자체에 강한 끌림이 있다. 우리 교회에 한 부부가 갓난 아기아기를 데려 왔을 때 모두의 시선이 그 아기에게 쏠렸었다. 마치 그 아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그곳의 시간과 공간이 아기를 중심으로 재구성 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에게 이렇게 관심이 쏠리면 좋겠는데, 크리스천들마저도 예수님보다는 상업화된 크리스마스 또는 명절화된 크리스마스에 더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크리스마스가 주는 유익들도 있겠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 사건을 반추하며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눈을 맞추고 그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Tuesday, December 17, 2024

아이 친구들

만 열네 살인 아들이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두 명이 왔는데 둘 다 여자애들이다. 요즘 부쩍 그 애들이랑 어울리더니 결국 우리집에까지 그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지금까지는 우리 아이가 그 아이들 집으로 놀러다녔는데, 그 친구들이 우리집에도 한번 와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가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아들을 통해 들어서 잘 알고 있고 그 중 한 명의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얼굴을 알던 사이라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다. 아마도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좋은 친구들을 사귀기를 바랄 것이고 나도 그렇다. 좋은 친구에 대한 범주가 나는 꽤 넓은 편이다. 범죄를 모의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아이들이라면 다 좋은 친구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괜찮고, 종교가 달라도 괜찮고, 피부색이 달라도 괜찮다. 오히려 잘나고 똑똑한 애들보다 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더 잘 챙겨주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친구들의 분포가 꽤 다양하다. 여러 그룹의 친구들이 있다고 하는데 다양한 아이들이 섞여있다. 내성적인 아이라 남앞에 나서기는 싫어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요즘은 오늘 집에 놀러온 친구들과 제일 자주 만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만난다. 시내도 놀러나가고 바다로 수영하러 가기도 하고 그 친구들 집에 놀러가서 밥도 얻어먹고 오고 그런다. 혹시 이성적인 끌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니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오늘은 아내 없이 나 혼자 집에 있는 날이어서 애들은 별채에서 놀고 내가 딱히 먹을 것을 챙겨주거나 애들과 얘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한국 애들이 아닌 이 나라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애들 같으면 편하게 대할 것 같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알 것 같은데, 백인 청소년들을 막상 만나니 뭔가 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부모들이랑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만 있으니 왠지 어려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여자 아이들이라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나? 미스터를 붙이나? 아들의 친구들이 내 퍼스트 네임을 부르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에서는 미스터를 붙인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 나라에서는 또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아들은 친구 엄마의 퍼스트 네임을 부른다고 하니.. 아무튼 문화는 정말 어렵고 그나마 내가 경험해봤고 경험하고 있는 성인들의 문화와 달리 내가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아이들의 문화는 더 어려워보인다.  

Thursday, November 28, 2024

사춘기 아들

현역 목회자는 아니지만 아직은 설교 요청을 가끔 받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목사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내 안에 목사의 정체성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니, 내 아들은 일단 자타 공히 목사의 아들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목사의 아들로 성장했다. 

목사의 아들답게 내 아들은 당연히 지금까지 매주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려왔다. 그렇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시피 현재 내 아이는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아이답게 자기 수준에서 보는 성경은 말도 안되는 책이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존재이니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자기가 교회에 가서 예배 시간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교회에 관심이 없으니 중고등부 모임에 가서 모르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이유도 없고 그냥 자기 학교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다고 하고.. 

여태까지는 가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가서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싫다고 하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제 강요가 아니라면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결심을 분명히 했고 이제 공은 나에게 넘어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신념에 따라 내 아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의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고쳐주는 일도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는 아직 내가 도달한, 또는 현대 신학이 도달한 성경이나 신앙의 이해에 당연히 도달하지 못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모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섣부르고 어리석은 일이다. 

내 아이는 만 열네 살로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춘기의 시기에 도달해 있기에, 그 시기의 특성을 존중해 주면서 대화를 해 나가기로 했다. 주일에 교회에 안 나가도 되지만 집에서는 아빠 엄마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아이는 아직 나와 사이가 좋고 내가 하는 말도 잘 듣는 편이다. 나는 가령 성경의 어떤 사건을 이야기할 때 그냥 믿으라는 말을 하지 않고, 현대적 의미에서 설명해주고, 그 사건에 대한 여러 다양한 해석들을 알려주고 그 해석들 중에서 자기에게 합당한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이곳은 내가 자랐던 환경, 문화와 전혀 다른 곳이다. 아이는 한 살 때부터 이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내가 자랐던 한국이라는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나는 나에게 익숙한 한국 문화 속의 아버지처럼 내 아이를 대해서는 안된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는 엄한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아버지의 모습이 발현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나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이에게 기독교 신앙을 설명해/보여 주고 아이가 나처럼 예수님을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 볼 것이다.     

Thursday, November 21, 2024

마오리

이 땅은 마오리인들의 땅이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이 땅은 그들의 땅이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서양 제국들의 식민주의가 온 세상을 휩쓸어가던 시절 남반구 저 멀리에 홀로 동떨어져 있었던 이 땅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영토를 찾아 뻗친 서양의 촉수가 닿았다. 영국과 마오리 족장들 사이에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된 해가 1840년이니 벌써 거의 200년 가까이 이 땅에 마오리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역사 속에서 마오리인들은 많은 아픔을 겪었다. 땅을 빼앗기고 문화가 억눌리고 언어도 빼앗길뻔하고.. 집안에 손님을 들였더니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미국이나 호주와 달리 의식있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애썼고 지금은 마오리의 문화와 권리가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도 상대적으로 나아진 것이지 마오리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집권 여당이 마오리의 특별한 위치를 무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으니 마오리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반도에서 나고 자라고 일제에 맞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독립투사들을 존경하는 나는 이 땅에 터를 잡고 살아온 마오리들이 겪은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  

뉴질랜드에는 마오리인들을 싫어하고 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백인들과 아시안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노동당과 녹색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오리의 편에 서서 그들의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마오리인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1900년대 초반 한반도와 중국에서 외로운 투쟁을 해나가고 있었던 소수의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했던 나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마오리인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서 법안을 찢어버리며 하카를 외치는 마오리 의원

이 마오리 의원은 20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Hana 의원이다. 나는 이 여성의원의 하카를 들을 때마다 그 당당함과 열정에 놀라움을 느낀다. 그의 몸안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들어 있는 느낌이다. 함께 하카에 동참하는 동료 마오리 의원들과 백인 의원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Thursday, November 7, 2024

작은 땅의 야수들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김주혜라는 한국계 미국 작가가 쓴 책이다. 예전에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어서 또 다른 한국계 미국 작가가 쓴 이 책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파친코는 영문판을 읽었었는데, 이 소설은 한국어 번역판을 읽었다. 영문판이 원작이라는 걸 몰랐다면 한국어판이 원작이라고 생각했을만큼 책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신기하게 파친코도 그렇고 이 소설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확실히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배경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더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었고 지금도 인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착잡해진다. 그런게 세상이고 그런게 인생이라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일까? 

내 삶도 책 속에 담아본다면, 이 책만큼 드라마틱하진 않더라도, 이 책과 비슷한 이런저런 내용들이 담기게 될 것이다. 시대적 상황은 다르고 고통의 무게도 다르겠지만 내 삶 속에도 이 책과 공명되는 사건들, 인물들이 좀 있다. 나는 이제 제주도로 간 옥희처럼 편안히 살고 있다. 여기 사람들에겐 나도 타지인이지만 이젠 여기에도 친구가 있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본래 안하던 일을 배워서 지금은 동료들보다 더 잘하고 있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옥희가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말하는데, 나도 몇 년 전부터,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Wednesday, October 30, 2024

크리스천 동료

노조와 회사간 임금 협상이 진행 중이다. 늘 그렇듯 회사는 적게 주려하고 노조는 정당한 몫을 받아내려 한다. 노조에 속해 있는 나는 밤에 일하기 때문에 노조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하지만 노조의 요청에는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노동절 공휴일에 일하지 말아달라는 전체 메일을 노조에게서 받았다. 사측에 압력을 가하자는 의미다. 공휴일에 일을 하면 1.5배의 임금에 대체휴일을 주기에 나는 대개의 공휴일에 일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노조의 뜻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쉬기로 했다. 다른 노조원들도 대부분 그렇게 했다. 어차피 공휴일에 일하지 않아도 그날치 일당은 받기에 그렇게 큰 손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S는 그날 일을 했다. S는 회사의 처우에 불만이 많고 항상 노조 회의에도 참석하는 사람이다. 노조를 통해 얻는 이익과 회사의 잘못을 따지는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인데 약간의 자기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이번 행동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동료들 몇이 뒷담화를 했다. 일을 꼭해야만 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면 이해를 하겠으나 S는 싱글에 자녀도 없지만 집은 있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형편이 나은 처지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도 실망스럽지만 나는 다른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실은 그는 크리스천이다. 내가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에게 여러가지 신앙적인 질문도 많이 했었고 이런저런 상담도 해주고 그랬었다. S가 이번에 노동절에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노동자들은 다같이 힘을 모아야 된다는 말도 해줬었는데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약간의 희생도 감수하지 못하는 S같은 사람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했던 예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던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는 예수의 명령은 S와 같은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Monday, October 28, 2024

탁구 랠리만 했는데도 실력이 느네

오늘 오랜만에 게임을 했다. L은 학창시절에 탁구를 배웠던 주니어 선출이라 원래 나랑 게임을 하면 내가 맥도 못추고 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두게임 정도 이겼다. 물론 전체 게임은 당연히 졌지만 몇 게임을 이겼다는 것에 나 스스로 놀랐다. 

I는 사파 스타일의 회원이다. 그 친구는 L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나랑 게임을 할때면 내가 그 친구에게 질 때가 꽤 많았다. 그런데 오늘 게임을 했는데 내가 그 친구를 쉽게 이기는게 아닌가!

매번 탁구를 칠 때마다 쉐인과 랠리만 주구장창 했었는데 그러는 사이 내 게임 실력도 같이 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의아하다. 뭔가 전반적으로 공에 대한 감각이 좋아졌다고 봐야 할까? 랠리하면서 확실히 포핸드와 백핸드가 좋아지긴 했다. 특히 포핸드는 포-포 대결에서 쉐인의 포핸드를 뚫기도 할만큼 세졌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이 내 포핸드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L도 내 포핸드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주로 내 백핸드쪽을 공략해서 나를 이겼다. 지금 수준에서 나는 내 백핸드쪽을 공략하는 사람을 이기기는 어렵다. 나보다 잘치는 사람들은 내 약점을 공략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보다 내 백핸드의 수준을 올리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게임은 포핸드만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게임은 더 다양한 기술과 전술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게임을 거의 안하고 랠리 연습만 계속 했는데도, 매번 게임만 하는 사람들을 이겼다는 것이 신기한 거다.  

나는 랠리 연습만 해서는 게임 실력이 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적으로 볼을 다루는 감각이 좋아진 것이다. 그 감각의 발전이 서브나 리시브에도 적용이 된 것 같다. 아무튼 오늘 내 실력이 늘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날이었다. 

Thursday, October 24, 2024

탁구에서의 회전과 스피드

탁구에서 가장 처음 알아야 할 것이 회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냥 똑딱이 수준의 탁구를 한다면 회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탁구를 즐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탁구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회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선 머리로 회전을 이해했다면 몸으로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회전이 실린 탁구공을 받는 연습 뿐만이 아니라 내가 탁구공에 회전을 주는 연습도 해야한다. 서브 뿐만 아니라 백핸드나 포핸드에서도 회전을 줄 줄 알아야 한다. 초급자들과 경기할 때는 회전이 많이 섞인 공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중상급으로 올라갈 수록 회전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중상급자들은 몸으로 회전을 이해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회전을 잘 컨트롤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우리 클럽에도 스피드는 느리지만 회전을 잘 주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회전 많은 볼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의 공은 쉽게 받는다.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이다. 반면 선출인 쉐인의 공은 지금도 받기 어려울 때가 많다. 회전 뿐만 아니라 스피드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곧잘 받아주는 편이지만 처음에는 그의 빠른 공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회전이 섞여도 빠르고 회전이 섞이지 않아도 빠르다. 오히려 회전이 덜 섞인 공이 속도면에서는 더 빠르다. 

쉐인과 공을 치면서 나는 회전을 줄이고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회전을 줄 수 있다면 회전을 주지 않는 법도 알 것이다. 회전을 주다가 회전을 빼고 무회전 샷을 때리거나 무회전 샷을 주다가 회전을 엄청 많이 섞어서 주면 오히려 상대방이 실수를 할 때가 많다. 

탁구에서 회전과 스피드는 항상 같이 있고 문제는 정도이다. 내가 공격을 할 때 얼마만큼의 회전을 섞을지 얼마만큼의 스피드를 더할 지 순간적으로 그 정도를 정해서 그에 맞게 칠 줄 알아야 한다. 

Wednesday, October 16, 2024

아직도 여전히

인간이 신에 대해 신은 이러이러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신학책을 읽는데 신은 이렇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는 순간 그 책을 더 이상 읽기 싫어졌다. 나는 신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그가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해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에 관해서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신에 관해서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신에 관해 쓰고 싶다면, 신과의 조우에서 이런 부분을 경험/이해했다, 내가 경험한/이해한 신은 이러이러했다, 혹은 어떤 저자의 신 경험/이해는 이러이러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최선이지 않을까? 

신은 거기 계시는 분, 또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만 받아들이고 역사 속에 드러난 그분의 뜻, 또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가 포착한 그 분의 뜻(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여, 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그 일을 행하는 중 실제로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나누고 해결하는데에 힘을 쏟고, 신학교는 그에 맞는 이론을 정리하고 공론화하는 일에 집중하면 좋을텐데, 대개는 죽은 아들 불알 만지듯 이미 효용성이 사라진 말들만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젊은 목회자들 중에도 과거의 신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눈에 보이니 대체 언제쯤이나 물갈이가 될까..    

Tuesday, October 15, 2024

욕심이 없는 사람

더 많은 부를 얻어서 편히 사는 게 꿈인 사람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그런 꿈이 없다. 
나는 그저 수많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잘 살게 되는 세상을 꿈꾼다.
내가 많은 집을 소유하기 보다는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한 채씩은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집 없는 사람들이 사야 할 집을 집 많이 가진 사람들이 돈을 더 주고 사는 바람에
집 없는 사람은 월세 살이를 더 오래하게 되는 세상이다.
의식주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데,
그 필수적인 것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진 세상에 나조차 가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내가 가진 것들을 점점 줄여나가며 살고 싶다.
점점 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다.
주변에 가진 것을 더 늘려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좀 줄여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사람들인데 왜 그리 늘리려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Saturday, October 12, 2024

한강 작가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는데, 
무슨 축하냐는 것이다. 
그렇다. 
'소년이 온다'의 작가라면 그리하는게 맞다. 
아직도 중동과 우크라이나는 전쟁통인데 
분수대에 물을 틀면 되겠는가..

Friday, October 11, 2024

교회는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수가 거기 없으므로 나도 거기에 없다. 모든 교회가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라 했다. 여전히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는 교회가 있다.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던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처럼, 지금 이렇게 예수 없는 교회가 판을 치는 기독교에도 남은 교회들은 있다. 물론 엘리야가 그랬듯 나도 그 교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금은 새 술이 필요한 시대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표현이 나와야 한다.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도 잡다한 생각들만 있지 정확한 개념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새 술이 나오기 전 단계라 보인다. 긴 겨울의 단계고, 이 역시 필요한 시기다. 새 술이 없기에 새 부대도 아직 없다. 새 술은 언제나처럼 또 나올 것이고 새 술이 나온다면 새 부대 또한 준비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다같이 겨울을 지내야 한다. 봄인 것처럼, 여름인 것처럼, 가을인 것처럼 환상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겨울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봄은 언젠가 올 것인데, 지금 힘을 다 써버릴 필요는 없다. 겨울에는 겨울을 나는 법이 있다. 이제 초입이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Thursday, September 26, 2024

탁구공을 러버에 묻히는 느낌

내 생각이다. 탁구 러버에 공을 묻힌다는 느낌으로 치라고 할 때 그 말은 살살 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임팩트를 강하게 하라는 말이다. 공이 러버에 묻히는 느낌 혹은 머무는 느낌은 공이 러버에 파묻힐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날아오는 공이 러버 속으로 움푹 파묻혔다가 떠날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그 느낌을 가지려면 살살쳐서는 안된다. 

야구에서는 임팩트가 강하게 일어나면 공이 찌그러졌다가 펴진다. 탁구에서는 러버가 눌렸다가 펴진다. 스매시든 드라이브든 타구할 때 그 느낌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 느낌이 탁구에서의 손맛이다. 공이 라켓에 착 감기는 맛이다. 때로는 임팩트 없이 빗겨치기만 해야할 때도 있지만 탁구의 쾌감은 역시 손 끝에서 느껴지는, 공이 러버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고 그 때 라켓에서 나오는 특유의 소리이다. 

그 느낌을 느끼려면 라켓이 손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느낌은 라켓이 아니라 내 손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라켓의 종류에 따라서 그 느낌이 잘 전달되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지만 어쨌든 라켓과 손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벼운 탁구공을 러버에 파묻히게 하려면 라켓을 묵직하게 쥐어줘야 한다. 순간적으로 최대한 많은 힘이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임팩트 순간에는 라켓을 가볍게 쥐어서는 안된다. 임팩트 순간에는 손과 라켓을 완벽하게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하체에서 올라오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순간 가속이 나오고 그 순간 가속이 있어야 큰 스윙 동작이 아닐 때에도 공을 러버에 묻힐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신앙

아이가 이제 만으로 열네 살이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중 2의 나이이다. 그 나이 때의 나보다 키는 크지만 마른 것은 비슷하다. 내성적이고 부끄럼이 많은 것도 나와 비슷하다. 나와 다른 점도 있는데 예체능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스포츠도 안좋아하고 악기도 안좋아한다. 음치나 박치도 아니고 몸치도 아닌데 왜 예체능에 관심이 없는지.. 아이의 말에 의하면 주목받기 싫어서 그렇다는데 이런 점을 보면 내 아이가 나보다 더 내성적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나와 다르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나와 달리 내 아이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다. 종교적 체험이 없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는데, 이성적으로 종교를 이해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데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는 아이가 어떻게 자기가 관심도 없는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겠는가.. 종교 아니고도 과학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현상들이 설명 가능하고, 아직은 의미나 가치의 영역에 관한 깊이 있는 물음도 없기 때문에 지금 현재 상태에서 아이를 종교의 세계로 끌어 들이기는 쉽지 않게 여겨진다. 

사실 나 스스로도 아이를 종교의 세계로 억지로 끌어 들이고 싶은 마음이 크지는 않다. 언젠가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때, 그 때 신앙을 가져도 된다. 신앙은 신비의 영역에 있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인간의 마음대로 주입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신념이겠지 신앙이겠는가..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신비인 이상 그분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신앙도 신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내 아이에게 내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아이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도울 것이다.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인생의 고통과 슬픔도 경험하고, 인생의 의미도 묻게 되고,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고민하게 될 때 나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Sunday, September 8, 2024

탁구 용품의 중요성

쉐인은 탁구 장비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선수 출신에 이제까지 40년이 넘게 탁구를 쳐왔지만 지금도 새로운 용품이 나오면 대부분 사서 써보는 편이다. 블레이드도 사이버쉐이프를 사용하고 러버도 좋은 러버를 사용한다. 요즘은 엑시옴에서 새로 나온 C55나 안드로 뉴존, 율라 인퍼노, 스티가 DNA 플래티넘 같은 러버들을 사용중이다. 쉐인 같은 능력자라면 싼 제품을 써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길텐데 아직도 용품에 집착하는 점이 의아했었다.

그러다 쉐인이 얼마 전에 자기 라켓의 무게를 맞춘다고 엑시옴 36.5 라는 블레이드에 베가 유럽이라는 러버를 붙이고 온적이 있었다. 베가 유럽은 가볍고 스폰지가 연해서 서양에서는 백핸드 쪽에 많이 사용하는 러버이다. 그런데 그 라켓으로 백핸드를 치니 쉐인의 대포알 같은 플랫힛이나 용처럼 휘어들어오는 탑스핀 샷의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늘상 쉐인과 공을 치기 때문에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은 힘에 똑같은 기술로 치지만 위력이 반감되는 것을 보고 장비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보다 하수와 공을 칠때는 상관이 없겠지만 나와 같은 레벨이나 나보다 더 잘 치는 사람과 공을 칠 때는 그에 합당한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갈 수록 부실해지는 몸의 능력을 장비로 잘 커버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상대방과 비슷한 수준을 맞춰줘야 재미도 있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아야 다치지도 않을 것이기에 탁구를 오래 치려면 재정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Thursday, August 15, 2024

옵차로프 이너포스 ALC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드디어 새로운 장비를 구입했다. 나름 리서치를 좀 해서 블레이드는 옵차로프 ALC, 전면에는 디그닉스 09C, 후면에는 디그닉스 80을 구매했다. 

옵차로프 ALC: 중량은 내가 방문했던 매장에 더 가벼운 것이 없어서 89g 짜리를 샀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이너 카본임에도 공이 빠르고 묵직하게 나가는 느낌이다. 그립은 티모볼 ALC에 비해 두툼한 편인데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전에 빌려서 쳐봤던 하리모토 이너포스보다 더 빠른 느낌이 들어서 나에게는 이 블레이드가 더 잘 맞는다.

디그닉스 09C : 드디어 09C를 써보았다. 지금껏 부스팅 없는 허3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성격의 09C는 다루기에 너무 편안했다. 스트로크나 탑스핀 모두 불편함이 없었고 푸쉬볼 어택도 쉬웠다. 2 주 쯤 지나니 스펀지가 좀 부드러워져서 공 스피드도 아주 빨라지고 뭐 하나 나무랄게 없는 러버였다. 가격이 비싸서 다시 이걸 사서 쓸지는 모르겠지만 가격 걱정없이 러버를 정하라고 하면 아마도 이 러버를 선택할 것 같다. 

디그닉스 80: 원래 디그닉스 05를 후면에 써보려고 했으나 05가 너무 빠르다는 말들이 있어서 05보다 더 다루기 편하다는 디그닉스 80을 샀었다. 05를 사용해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80은 블록하기도 편하고 공격하기도 편했다. 오히려 이제껏 내가 후면에 주력으로 썼던 빅타스 V11보다 더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 셋팅이 가격적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최대치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수준을 넘지는 않을 것 같고 이 러버 다음에는 다시 중간 정도 가격대의 러버로 옮겨갈 생각이다. 사실 쉐인하고 플레이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이정도 셋팅이 필요없을텐데, 선출과 트레이닝 파트너를 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 실력을 장비로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쉐인 외의 다른 클럽 사람들과 칠 때는 값싼 중국산 러버를 사용해도 아무 무리가 없다. 그런데 쉐인과 칠 때는 아무래도 출력을 높여줘야 한다. 내 몸에서 뽑아낼 수 있는 출력에 장비의 출력이 합해져야 그나마 쉐인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Thursday, August 8, 2024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단체전 스웨덴 vs 일본 경기

스웨덴과 일본간의 탁구 단체전 경기를 보기 시작했을 때 스웨덴과 일본의 스코어는 2대2였고 마지막 단식을 치르고 있는 선수는 일본의 하리모토와 스웨덴의 쉘베리였다. 게임스코어는 2대0으로 하리모토가 앞서고 있었다. 하리모토가 한 게임만 더 이기면 일본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톤 쉘베리도 잘하는 선수이지만 하리모토가 워낙 잘하는 선수고 2대0으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경기가 끝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쉘베리가 한게임을 따냈고 그 후로 연이어 두 게임을 더 이기면서 최종스코어 3-2로 스웨덴이 일본을 탈락시키고 결승에 진출했다. 원래 일본이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고 있었는데 그 후로 세 경기를 내리 지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하리모토와 쉘베리 간의 통산 전적은 2승 2패였다. 호각지세였고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 대 0으로 이기고 있었던 경기가 뒤집혔던 것을 보면 이번 시합에서는 아마도 "스웨덴"의 쉘베리보다 "일본"의 하리모토가 심적 부담이 더 컸었던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세계 탑 레벨의 백핸드 공격력을 가지고 있던 하리모토가 백핸드 랠리에서조차 쉘베리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 쉘베리는 두 손을 들어 환호했고, 하리모토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린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같은 아시안으로 하리모토가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되었다. 이례적으로 하리모토의 아버지가 코트에까지 내려와서 하리모토를 위로해 주었다. 어릴적부터 아들을 서포트해왔던 그 아버지의 마음 또한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Tuesday, July 23, 2024

도가니탕

무슨 연유에서인지 아버지는 80세에 천국에 가시길 오랫동안 희망하고 계셨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하시고 정신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으신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그런 특이한 바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올해 한 해 앞당겨 팔순을 축하해 드렸다. 우리 4남매와 그 배우자 그리고 성인이 된 조카들과 모든 어린 조카들까지 다 함께 한국으로 모였다. 세 개의 국적이 모인 가족 모임이었고 2박 3일간 리조트에서 예배도 드리고 잔치도 하고 가족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도 처가 식구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틈틈이 부모님 댁을 방문했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여 출국하기 전전날 혼자서 부모님 댁을 방문해서 아버지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함께 했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어머니께서 기력이 좀 약해지신 아버지와 먼 길 떠나는 외아들을 위해 도가니탕을 준비해 주셨다. 아버지와 단 둘이 식탁에 앉아서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어머니는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도가니탕이 참 맛있었다. 아버지와의 식사도 편안했다. 아버지도 나도 그릇을 모두 비웠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 되었고 아버지는 나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려 하셨다. 운전이 조금 서툴러지신 아버지를 어머니가 말리고 택시를 불러줬다. 택시를 타기 전에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어머니도 안아드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졌다. 지금 나는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진 먼 이국 땅에 다시 와있고 뭔가 알 수 없는 기분 속에 며칠을 살아가고 있다. 내년이 어떤 모습이 될지.. 내년에도 아버지와 도가니탕을 먹을 수 있게 될지.. 

Wednesday, July 3, 2024

마지막 만남은 아니길..

이제 곧 부모님을 만나러 한국으로 간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두 분 다 건강하시긴 하지만 노년의 건강이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뵙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장모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중환자실에 의식불명으로 누워계시는 모습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언제든 그런 모습으로 뵙게 될지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만.. 처음으로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는 말씀을 들었다. 살도 많이 빠지시고 입맛도 없다 하신다고.. 나이 듦에 따른 당연한 변화겠지만 당연하게 들리기 보다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든다. 나에게도 내 친구들이 경험했던 그 시간, 세상 모든 자녀들이 경험했거나 경험하게 될 그 시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번에 가면 아버지를 좀 안아드려야겠다. 설마 내가 울지는 않겠지.. 웃어야 겠지..

Thursday, June 13, 2024

바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떤 마음 상태가 바다를 부르는 걸까? 여느 날처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줬고, 가끔 그렇듯 테이크 어웨이 커피를 사서 차 안에서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또 떠나고 싶은건가... 하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없는데...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바다를 더 자주 찾지 않았겠는가... 바닷가 도시에 살면서도 바다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현재의 삶에 안주하며 살았다는 말일게다. 

예전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이 지안이었다. 드라마의 끝 부분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그 이름의 한자를 묻고는 이름의 뜻대로 평안에 이르렀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질문에 여주인공이 '네'라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지금 평안에 이르러있다. 그런데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는 하나보다. 이렇게 바다를 보러 왔으니 말이다. 



Tuesday, June 11, 2024

기독교 신앙

기독교인인 나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었던 방식 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가졌던 관계 양식을 내면화 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 그 내면화된 신앙을 이웃 사랑의 형식으로 육화/구체화하는 것이다.

성육신은 말씀이 육화되었다는 말이다. 부활도 영만이 아니라 새로운 육체를 강조한다. 정신만이 아니라 신체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수의 정신이 깃들면 새로운 몸/현실이 출현한다는 말이다. 정신이 개조되었는데 몸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예수의 영이 임했는데 육의 변화가 없단 말인가? 예수의 영이 임한다면 그 변화가 비록 미미할지라도 변화가 시작될테고 그 변화는 점진적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다. 즉 예수의 정신을 가진자가 예수의 정신과 상관없이 예수의 정신과 상반되는 것들을 여전히 추구하며 변화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신앙은 내면화에서 머물 수가 없다. 옛 자아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독 신앙인은 예수의 정신이 깃든 새로운 자아의 출현이고 새로운 몸/삶의 출현이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말장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새로운 삶이 보이지 않는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나 죽은 자들만 그득하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 무덤을 박차고 나오는 자들이 없다. 옛 몸이 그리도 좋은가? 옛 생활 방식이 그리도 좋은가? 의심스럽다. 정말 그들은 예수 정신을 따라 살고 싶은 건지...

Sunday, June 2, 2024

전지희의 1점

일하는 날인데 몸이 좀 안좋아서 일찍 왔다. 마침 세계 탁구 챔피언십 경기 중 전지희와 순잉샤의 경기를 생중계 하고 있기에 새벽 1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을 하기로 했다. 

전지희(세계 13위)는 꽤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여자 탁구 세계 1위 순잉샤에게는 지금까지 6전 전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요즘 전지희의 폼이 좋은 편이긴 하나 오늘 경기에서도 전지희가 순잉샤를 이길 확률은 극히 낮을 거라 예상하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역시 전지희가 초반부터 밀렸는데, 더 안타까운 점은 오늘따라 순잉샤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점이었다. 우리 말에 작두를 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오늘 순잉샤가 딱 그런 날이었다. 도무지 막을 수 없을 공도 다 막아내고 도무지 성공할 것 같지 않은 공격도 다 성공시켰다. 정말 전지희가 그 어떤 공격을 해도 뚫을 수가 없는 철옹성과 같았다. 순잉샤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해도 전지희가 이기기 어려운 상대인데 오늘 같은 최상의 컨디션이라면 전지희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 보통의 선수라면 의기 소침하거나 표정이 안좋아지거나 거의 포기하듯 경기를 대충하거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전지희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게임 스코어 2 대 0에 마지막 세번째 경기에서도 5대 0으로 지고 있었는데, 과감한 공격으로 1점을 따낸 뒤에 정말 해맑고 행복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두 손을 번쩍들고 환호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웃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그때까지 순잉샤를 응원하던 수많은 중국 팬들이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환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탁구 경기를 보면서 멋진 기술에 놀란 적은 많아도 이렇게 선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웃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경기에서 형편없이 지고 있는 중에도 한 점을 따낸 것에 기뻐하는 전지희의 모습을 보며 정말 깜짝 놀랐다. 전지희 선수는 올해 만 31세로  나이가 좀 많은 편에 속하는 선수이다. 반면 순잉샤는 23세의 젊은 선수이다. 나이와 경력과 수많은 관중들과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위치를 다 떠나서, 자기가 엄청난 점수차로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무겁고 비관적인 상황을, 단 1 점을 따낸 후 기뻐하며 믿기지 않는 긍정의 힘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정말 대단한, 모두의 예상을 깨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평생 탁구를 쳐왔고, 셀 수 없는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가 그 1 점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과 순수함을 가지게 되었을까? 

전지희의 웃음에 홀려 이 새벽에 이 글을 남긴다. WTT Champions Chongqing 2024 Day3 에 열린 전지희와 순잉샤의 16강 매치의 최종 결과는 11-7, 11-1, 11-2 로 전지희가 순잉샤에게 3-0으로 완패했다. 그러나 나는 세번째 게임에서 1 점을 따내고 환호하며 기뻐하던 전지희의 웃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Wednesday, May 29, 2024

하리모토 이너포스 ALC

탁구 블레이드(목판) 중에 이너 카본 형태의 목판이 있다. 나는 여태까지 아우터 카본 블레이드만 써봤었는데, 우리 클럽의 고수 중의 한 명인 D가 자기가 쓰고 있던 하리모토 이너포스 ALC라는 블레이드를 당분간 써봐도 된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집에 가지고 와서 내 티모볼 alc에 부착되어 있었던 러버들을 다 떼어내고 두 목판으로 각각 탁구공을 튕겨 봤다. 확실히 아우터 카본인 티모볼에 비해 하리모토에서 진동이 좀 더 느껴졌다. 목판에서 나는 소리도 티모볼은 높고 하리모토는 낮았다. 아우터가 이너보다 탄성이 더 높다는 말일거다. 실제로 쳐봐도 이런 차이가 그대로 느껴질까? 

티모볼에 붙어 있던 러버를 그대로 하리모토에 옮겨 붙이고 엊그제 한번 시타를 해봤다. 확실히 차이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고 쉽게 적응 가능한 정도의 차이였다. 하리모토가 티모볼에 비해 스피드가 덜한 반면 회전은 더 있었고 공도 덜 뻗어나갔다. 공이 덜 뻗어나가니 플랫 힛이 꽤 안정적으로 들어갔고 탑스핀도 오버미스가 덜했다. 티모볼에 비해 더 마음껏 스윙을 해도 공이 잘 들어갔다. 뭔가 lively한 느낌은 덜하지만 좀 더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당분간 이 라켓을 좀 더 사용해 본 다음에 마음에 들면 다음 달에 한국에 방문할 때 이너 카본 블레이드를 하나 구매해 볼까 한다. 이 나라에 비해 한국이 탁구 용품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러버나 블레이드 하나쯤 사 놓아도 좋을 듯 싶다.  

Thursday, May 23, 2024

하나의 꿈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을 수 있고, 그 꿈이 이루어질 수도 좌절될 수도 있다. 꿈이 이루어 질때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나만 잘해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했다고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다 꿈을 이루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등하는 게 꿈인 사람이 수 백 명 있다해도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은가.  꿈을 꾸는 건 좋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꿈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 또 다른 꿈을 찾으면 된다. 유명한 가수가 되는 꿈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꿈을 가진다면 오디션에서 일등을 못했어도 계속 노래할 수 있다. 

꿈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에 계속 매여있지 말고, 비슷한 꿈을 계속 만들어 나가면 된다. 아니면 전혀 다른 꿈을 찾는 것도 괜찮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는데도 안됐다면 미련을 두지 말고 다른 꿈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자기가 만든 꿈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끄적여본다.

Thursday, May 16, 2024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Adventure before dementia

공원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던 모빌홈에 써있던 문구다. 창문으로 보이는 실루엣을 보니 아마도 노부부가 타고 여행을 다니는 중인가 보다. 노인이 되면 나도 저렇게 여행을 다니며 살 수 있을까? 그럴 여건이 되느냐가 하나이고, 그걸 원하느냐가 또 하나일 것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저런 로망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게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행에 대한 흥미가 줄었기도 하고 아내도 그닥 불편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 해도 가벼운 여행이 좋고 그냥 깔끔한 숙소에서 자는 게 좋다. 

젊었을 때는 나도 꽤나 어드벤처러스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곳을 찾기 보다는 지금은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치매가 오게 된다면, 다른 말로 더 늙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전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다. 그냥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제껏 받아 온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은혜를 베푼다는 말은 우리 말로 정을 나눈다는 말로 바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이 많으신 하나님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나에게 베풀어주신 정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며 사는 삶. 그렇게 살다가면 좋을 것 같다. 

Doing jeongs before dementia

Wednesday, May 8, 2024

외국에 오래 살아도

영어권 국가에 산지 20 년이 되었다. 
그 긴 세월동안 하루에 영어를 접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늘 영어를 접하며 산다. 
그래도 찰나의 순간 내 시선을, 내 청각을 사로잡는 것은 한글이고 한국어다. 

오늘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하고 카운터를 지나는 순간 내 주변 시야에 잠깐 뭔가가 걸렸다.
한글이었다. 
카운터 위에 널부러져있던 신문 별지 여행판 표지에 한국이 핫하다는 문구가 박혀있었다.
그리고 뒷 배경 사진에 약간 흐리게 어떤 가게의 간판이 찍혀있었다. 
"골목집" 
대문짝만하게 써있던 영어가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읽어내지 못했을 그 흐릿한 세 글자가 내 시선을 잡아당겼던 것이다. 

한국인.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아무리 서양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현지인을 만나도,
한국인이다.

여전히 한국 이름을 쓰고,
여전히 한국 음식을 먹고,
여전히 한국 말을 하고,
여전히 한국 자랑을 멈추지 않는
나는 
한국인이다. 





Monday, April 29, 2024

티바 K3

티바 K3를 포핸드로 써봤는데 역시 허리케인 3를 능가하지 못했다. 스핀은 확실히 덜하고 스피드는 아마도 살짝 빠르거나 같은 느낌이었다. 탑시트에서 튀는 느낌이 허리케인보다 더 느껴졌다. 그래서 허리케인 3보다는 편하게 칠 수는 있었는데 위력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쉐인도 그렇다고 했다. 허리케인 3보다 디펜스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했다. 허리케인 3는 확실히 손에 착 감기는 맛이 있고 힘껏 스윙을 해도 오버미스가 적다. K3는 빠르기는 해도 왠지 가벼운 느낌이고.. 푸쉬나 드랍도 당연히  허리케인이 낫고.. 허리케인 3의 승이다. 

Thursday, April 18, 2024

허리케인 8

탁구 라켓을 두 개 사용하고 있는데 둘 다 포핸드 쪽에 허리케인 시리즈를 쓰고 있다. 하나는 허리케인 3, 또 다른 하나는 허리케인 8-80 이다. 요번에 시험삼아 허리케인 8-80을 떼고 허리케인 8을 붙여서 써봤다. 일단 허리케인 8이 8-80에 비해 무게가 가벼웠다. 8-80은 경도 38도, 8은 39도짜리를 썼는데도 8이 더 가벼웠다. 아마 한 5-6 g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타구를 해보니 공이 가볍게 잘 나가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스핀이 허리케인 3에 비해 확실히 약하다. 3처럼 묵직하게 공을 잡아주는 맛이 없다. 8은 그냥 힘들이지 않고 치기는 좋아서 입문자들이나 편하게 탁구를 치고 싶은 사람들이 치기엔 좋은 러버지만 나처럼 탁구에 진심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러버라 평하고 싶다. 8보다는 차라리 8-80이 나은 것 같고 8 시리즈 보다는 확실히 허리케인 3가 훨씬 나은 러버라 할 수 있겠다. 파워도 좋고 스피드도 있고 스핀도 잘 먹히고.. 라켓을 맘껏 휘두르면서 칠 수 있는 러버다.    

현재 내 라켓 셋팅은 티모볼 ALC 에 포핸드는 허리케인 3 네오 성광 블루스펀지 39도, 백핸드는 빅타스 V11 엑스트라 맥스 버전이다. 라켓 무게는 185 g. 손목에 무리없이 치기에 좋은 무게이다. 

Wednesday, April 10, 2024

다시 허리케인 3

포핸드 러버는 다시 허리케인 3 네오 성광 블루 스펀지 39도로 돌아왔다. 8-80도 좋긴 한데 스핀 양이 아무래도 허리케인 3에 못미치는 것 같고 공이 러버에 걸리는 클릭감이 3가 더 좋아서 다시 3 를 쓰고 있다. 첫 러버가 허리케인 3 였어서 그런지 지금도 제일 편안한 느낌이다. 39도는 스트로크를 해도 볼의 스피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드라이브는 말할 것도 없고... 허리케인 8이 39도라는데 다음엔 그것도 한번 써볼까 한다. 

백핸드 러버는 빅타스 v11 엑스트라가 맘에 들어서 당분간 이걸 계속 써볼 생각이다. 일단 가벼워서 라켓 무게를 낮추는데 딱 좋고 의외로 블록이 잘 된다. 쉐인의 공이 엄청 강한데 마법처럼 공이 클릭 되면서 낮게 잘 깔려 되돌아간다. 백핸드 공격은 아직 포핸드만큼 잘 되고 있지 않아서 딱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포핸드를 주력으로 하고 백핸드를 보조로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내 수준에서는 사용하기 충분히 좋은 러버인 것 같다. 

요새는 매번 클럽에 갈때마다 거의 쉐인하고만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상하게 쉐인이 나만 찾는다. 나한테 문자로 연락해서 클럽에 갈건지 확인도 하고 말이다. 나랑 비슷한 실력의 회원들이 몇명 있는데 나한테만 연락을 하니 나야 감사한 일이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가장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탁구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서 쉐인과 대화가 통하기도 하고..

쉐인은 나보다 몇살 많은 같은 50대인데, 20대 초반에 독일 탁구 프로리그에서 활약했던 사람이다. 8, 90 년대 한창 탁구가 인기가 많았을 때 이 나라에서 독일까지 가서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니 탁구에 한해서는 정말 전세계 상위 몇 프로에 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탁구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럽 중국은 물론 대한민국 탁구 선수들의 이름까지 다 알고 있고(유남규부터 오준성까지), 거기에 한국 탁구 용품 회사들까지 다 알고 있다(엑시옴은 물론이고 넥시, 티마운트까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예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소도시여서 살기는 좋지만 탁구를 배우기에는 아쉬운 곳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쉐인 덕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다른 곳에서는 레슨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쉐인 정도의 실력자와 매주 네다섯 시간씩 일대일로 자유롭게 공을 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쉐인하고 공을 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실력이 높아져 있었다. 우리 클럽에 쉐인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선출이 2명 더 있는데 지금은 내가 랠리에 한해서는 그들과 웬만큼 공을 날카롭게 주고 받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불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포핸드는 이제 내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온 것 같다. 백핸드도 계속 쉐인과 연습하다보면 곧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Thursday, March 7, 2024

허리케인 8-80

요즘 DHS사에서 나온 허리케인 8-80이라는 러버를 포핸드에 사용하고 있다. 그 전에 K3 하이브리드라는 러버를 써봤었는데, K3에 비해서 허리케인 8-80이 속도는 느리지만 회전이 좀 더 먹히고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허리케인 3에 비해서 힘이 덜 들어가니 편안한 느낌도 들고.

탁구를 본격적으로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타격보다 회전을 익히기 위해 허리케인 3를 사용했어서 그런지 지금도 점착식 러버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회전이 익숙해진 후에는 회전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 후에는 타격을 통해 공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스매싱 방식, 또는 스트로크 방식을 연습했었다. 그런 연습을 할 때는 중국식 점착 러버가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엑시옴 베가 프로, 베가 투어를 사용했었고, 도닉에서 나온 블루스톰 2 도 사용했었다. 블루스톰은 너무 잘 나가서 컨트롤이 어려웠었고 나에게는 베가 투어가 꽤 괜찮았었다.

스트록/스매싱을 익혀서 공에 속도감을 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다시 회전과 속도를 결합시키기 위해 점착 러버와 스피드 스폰지를 합친 하이브리드 러버를 사용해 보고 있다. K3 도 좋지만 나에게는 현재 허리케인 8-80 38도가 더 괜찮은 것 같다. 후면은 지킬앤하이드 V 47.5 를 사용 중인데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무게만 괜찮다면 허리케인 8-80 을 후면으로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한다.     

내 블레이드가 카보나도 290 인데 무게가 96g 으로 꽤 묵직한 블레이드다. 허리케인8-80을 양쪽으로 장착하면 거의 200g에 근접할 것 같아서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현재 셋업도 196g이라 무게를 좀 더 줄이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 후면 러버를 가벼운 빅타스 V 11 으로 바꿔보려 한다. 빅타스 11이 괜찮으면 대략 장비 셋업을 마무리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대충 나에게 맞는 러버들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서 딱히 사용해보고 싶은 러버가 없다. 아, 아직 버터플라이 러버들은 사용해보지 못하긴 했는데.. 예전과 달리 지금은 굳이 비싼 돈 들여서 그 러버를 사용해봐야 하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Sunday, March 3, 2024

어떤 유명 배우의 신앙고백 (?)

어떤 유명한 배우가 세 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때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걸 봤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배우가 언젠가 아버지 기일을 맞아 제사를 드리고 오면서 차 안에서 실제로 아버지의 존재를 느꼈다는 말을 꺼냈다. 차 안에서 마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고, 아버지에게 자기가 처음으로 혼잣말로 말을 건넸고, 아버지가 하늘에서 나를 돌봐주시고 여기까지 잘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은 말이었다.   

종교적 신앙에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 배우는 세 살때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실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자기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하늘에서 늘 자기를 돕고 있어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종교적 신앙의 한 원형이 아니겠는가.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찌보면 어렵지 않은 이유는 그 배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그 배우의 아버지 이해와 다른 점들도 많다. 하나만 이야기해 보면, 그 배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만을 잘 돌봐주신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체들을 다 돌보신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우리는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온 세상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야 할 것이다). 

차이점들이야 많이 있지만 그래도 신앙의 어떤 원형적 형태가 그 배우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신앙인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부녀지간, 부자지간 같은 가까운 관계, 퍼스널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크리스천들도 많다. 참 신앙인이라면 이 배우가 아버지와 가지고 있던 퍼스널한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퍼스널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냥 교회를 다니고 이런저런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퍼스널한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 있는지 꼭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퍼스널한 관계라는 말을 '인격적인 관계'라는 의미보다 '친밀하고 내밀한 관계,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둘이서만 아는 관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단상

부산에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가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한번 쯤은 방문했을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유튜브로만 관전을 했었다. 보면서 든 생각들을 적어본다.

1. 관중석을 유럽처럼 좀더 가깝게 배치하면 안됐을까? 선수들과 최대한 가깝게 관중들이 있어야 더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현장 모습이 잡힐텐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 타임아웃 시간에 다른 나라 벤치에서는 코치만 선수에게 지시를 하고 다른 선수들은 화이팅만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나라는 코치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이런저런 코멘트를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치의 권위가 예전같지 않아진건가? 이런 장면도 권위가 약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드러내는 하나의 증상으로 볼 수 있을까? 

3. 여자 대표팀에는 확실히 주천희 선수가 들어와야 할 것 같았다. 전지희 선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고 전지희, 주천희, 신유빈 이렇게 세 선수가 주축이 되면 중국과의 경기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4. 백핸드의 필요성. 백핸드야 예전에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중요성이 포핸드를 능가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백핸드의 사용 능력이 포핸드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5. 스핀을 정확히 읽는 것은 선수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스핀을 잘 못 읽어서 서비스 리턴을 잘 못하거나 랠리에서 실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한테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짐짓 위안이 되었다. 

Thursday, February 8, 2024

어려워진 교회 상황

우리 교회 부목사 부부가 우리를 초대해줘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세시간 가량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제 은퇴목사로 목회 일선에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아직도 열심히 사역하는 목사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든다. 오늘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애틋한 마음이 들었고 사역자들이 처한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부부는 둘 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인 앵글리칸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지만 풀타임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교회가 목회자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교회만 해도 담임 목사가 이중직을 하고 있고 우리 도시에서 가장 큰 앵글리칸 교회도 담임 목사에게 절반의 사례비 밖에 못주고 있는 형편이다. 

교회 사정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역자들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직은 젊고 아이도 없어서 부담이 덜 되겠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재정적 부담이 더 커져갈텐데.. 지금은 남편 목사가 바리스타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잘할 수 있을만한 감각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서 기회가 있을 때 좀더 전문적인 일자리를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 부부 목사 중 아내 목사의 아버지는 앵글리칸 교단의 현직 주교이다. 현직 주교의 딸조차 풀타임 사역지를 얻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이나라 교회의 상황이 어렵다. 사람들이 다시 교회를 찾을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목회자들이 이중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신학교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중직을 찾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그 준비를 시작하는게 좋을 것이다.  

Monday, January 29, 2024

다시 일상으로

동생과 조카가 일년간의 체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 세 식구도 이제 단촐한 우리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오늘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앞으로 5년간 다닐 학교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왔다. 여전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걸 힘들어 하고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겨내야지..  

동생은 귀국하자마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중에 트럭이 뒤에서 들이받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트럭 운전자가 졸음 운전을 한 것 같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족들 모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차가 많이 망가졌다고.. 귀국 신고식이 참 요란했다. 

나는 오늘 휴가중이라 월요일 저녁 탁구클럽에 다녀왔다. 밤 시간에는 노인분들이 별로 없어서 훨씬 활동량이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다. 내심 기대를 하고 갔는데 하필 어르신 한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고 아무도 그 분과 탁구를 치자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들 잘 치는 사람들하고 치기에 바빴다. 누군가 쳐 드리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그분과 치지를 않아서 결국은 내가 그분과 탁구를 쳤다... 오랜만에 월요일 저녁에 나간건데.. 잘한 일이긴 하지만 아쉽긴하다. 아, 탁구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있는데 이 동네에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Monday, January 1, 2024

2024년 1월 1일

방금 아이와 함께 둘이서 2024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다. 본래 일찍 자는 아내는 이미 자러 들어갔고.. 아이는 올해부터 고등학생이 된다. 물론 이곳 학제상 고등학생이고 한국으로 따지면 이제 중 2가 되는거다. 한국에 중 2병이라는 말이 있는 걸로 보면 이 때쯤에 아이들의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던데, 내 아이도 슬슬 그런 것 같긴 하다. 좀 더 독립적이 되어가는 것 같고 친구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가고 있다. 패션에도 눈을 조금 떠서 이제는 자기가 스스로 옷을 매칭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아직은 또래들의 패션 경향을 따라가는 정도이긴 하지만 이제 부모 맘대로 옷을 입혀도 되는 때는 지나간 듯하다.

2023년 한 해 동안은 내 동생이 1년 동안 우리 집 별채에서 조카와 함께 살았다. 동생은 1년간 쉬면서 영어 공부를 했고 초등학생 조카도 이곳 학교를 다녔다. 동생도 올 때에 비하면 영어가 늘긴 했지만 초등학생 조카의 경우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확실히 아이들은 영어를 쉽게 습득한다. 이곳에 올 때 에이비씨 정도만 알았던 녀석이 이제는 여기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놀 정도로 편하게 영어를 한다. 어렵게 영어를 배웠던 내 오랜 시간과 노력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내 아이는 처음으로 사촌동생과 일 년을 함께 지냈는데 그 둘 사이를 지켜보는 일이 흥미로웠다. 아이가 처음에는 동생이 온다고 엄청 들뜨고 좋아했다가 막상 동생과 며칠 지내보더니 동생이 자기와 성격이 꽤 다르다는 사실에 힘들어 했었다. 여기에서는 그냥 말로 하면 다들 잘 들어주고 yes/no만 정확히 해주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렇게 말로만 했을 때 무시하고 보채는 동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한국 같으면 동생이 말을 안들을 때 형이 화내고 혼내고 윽박지르고 하기도 하는데 그런 걸 당해보지도 못했고 해보지도 못했던 터라 말을 안듣는 동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라 힘들어 했었다.  

가끔씩 동생과 내가 적절하게 개입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을 하기도 해서 지금은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아마 아이에게는 지난 일 년이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람만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각 사람에 맞는 방식으로 대인관계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만 알아도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내는 작년 한 해동안 정말 내 존경을 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남편의 여동생을 정말 잘 대해 주었다. 동생이 언니는 정말 천사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잘 대해줬고 내가 뭐라 불평할 말이 없을 정도로 동생과 조카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혼 초와 달리 이렇게 성숙해진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동생이 조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2024년은 우리 가족이 다시 우리 가족만의 루틴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나도 일하고, 아내도 일하고, 아이도 학교 생활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탁구는 계속 칠 것이고, 교회도 계속 같은 교회에 다닐 것이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그저 별 탈 없이 무사하게 올 한 해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