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명한 배우가 세 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때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걸 봤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배우가 언젠가 아버지 기일을 맞아 제사를 드리고 오면서 차 안에서 실제로 아버지의 존재를 느꼈다는 말을 꺼냈다. 차 안에서 마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고, 아버지에게 자기가 처음으로 혼잣말로 말을 건넸고, 아버지가 하늘에서 나를 돌봐주시고 여기까지 잘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은 말이었다.
종교적 신앙에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 배우는 세 살때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실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자기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하늘에서 늘 자기를 돕고 있어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종교적 신앙의 한 원형이 아니겠는가.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찌보면 어렵지 않은 이유는 그 배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그 배우의 아버지 이해와 다른 점들도 많다. 하나만 이야기해 보면, 그 배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만을 잘 돌봐주신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체들을 다 돌보신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우리는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온 세상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야 할 것이다).
차이점들이야 많이 있지만 그래도 신앙의 어떤 원형적 형태가 그 배우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신앙인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부녀지간, 부자지간 같은 가까운 관계, 퍼스널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크리스천들도 많다. 참 신앙인이라면 이 배우가 아버지와 가지고 있던 퍼스널한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퍼스널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냥 교회를 다니고 이런저런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퍼스널한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 있는지 꼭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퍼스널한 관계라는 말을 '인격적인 관계'라는 의미보다 '친밀하고 내밀한 관계,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둘이서만 아는 관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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