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28, 2025

Secrets We Keep

넷플릭스에서 미니시리즈를 하나 봤다. "Secrets We Keep"이라는 제목의 덴마크 작품인데, 처음에는 덴마크 상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필리핀 오페어(au pair)들의 고충을 다룬 드라마인 줄만 알았다. 극의 초반부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의 성격이나 거기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혼선을 주다가 결론은 예상 가능한 그런 드라마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어려운 현실도 물론 나오지만 그것 외에도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문제, 부부간의 문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 법과 현실의 문제, 사회적 계층 간의 문제 등등 많은 문제들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예전에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하며 겪었던 기억들 중의 일부가 오버랩되면서 개인적으로 더 공감이 되는 드라마였다. 지금은 내가 일했던 15년 전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나빠지고 있는 걸까? 정의로운 사회라는 건 과연 가능한 걸까? 가족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평등이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걸까?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기회를 줘야할까? 이런 저런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게 만드는 꽤 괜찮은 드라마였다. 

Sunday, May 18, 2025

통증

육체노동 중에서는 그래도 편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몸 어디 한 곳에 꼭 통증이 있다.
지금은 왼쪽 손목이 아프다.
그 전에는 왼쪽 무릎 뒷 쪽에 통증이 있었고 또 좀 더 전에는 오른쪽 팔꿈치 쪽이 아팠었다.
주로 관절 근처 근육이나 힘줄에 통증이 자주 생긴다.
아무래도 일의 특성상 큰 힘을 쓰기 보다는 작은 힘을 자주 쓰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그래도 탁구를 치면서 몸의 통증이 좀 줄어들었다.
특히 코어 근육이 좋아졌기 때문인지 요즘은 허리가 거의 아프지 않다.
탁구를 칠 때 하체를 주로 사용하고 골반을 축으로 중심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코어가 좋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이 많이 되기 때문에 살도 자연스럽게 빠져서 
지금은 아주 날렵한 몸매가 되었다.
그런데도 통증이 아주 없지는 않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일게다.
영어로 Occupational Overuse Syndrome 이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니
일을 쉬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않겠나.
통증이 있으면 쉬라고 하는데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가 전해주었던 말씀처럼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며, 또 권면합니다.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 (살후 3:12)."
통증이 있어도 열심히 몸을 움직여 먹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축복하며 두 손 모은다.

Thursday, May 8, 2025

아내의 졸업식

아내가 드디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을 했다.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했기에 한 학기에 한 과목씩만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몇 년간 꾸준히 공부를 해서 이번에 공부를 마친 것이다. 아내가 미국에서 학사 공부를 할 때는 내가 그래도 미국 대학원에서 먼저 공부를 하고 있었던터라 이런저런 도움을 좀 줬었지만, 이번 석사 과정은 순전히 아내의 힘으로 이뤄냈다. 

아내가 일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이 공부를 혼자서 잘 마무리해내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서 오늘 열심히 사진도 찍어주고,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같이 했다. 아내는 내 도움이 없었으면 어떻게 공부를 했겠냐고 하지만 아내가 내 도움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내 입장에서는 도움이랄 것도 없는, 남편으로서 해줘야 할 당연한 일들이었다. 아내가 앞으로 공부를 더 할 지 안 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겠다면 기꺼이 서포트를 해 줄 생각이다. 아내는 내 서포트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Tuesday, May 6, 2025

예수님은 어디에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을 먼저 만난 안드레와 빌립이 베드로와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려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설교자들이 이 본문으로 전도를 강조하는 설교를 많이 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인 질문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안드레와 빌립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려가기만 하면 됐다. 예수님이 거기에 실제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사람들을 데려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지상에 예수님이 계시질 않는데 대체 어디로?

쉬운 대답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고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예수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지만 몸으로서의 예수를 만나려면 교회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찾고자하면 찾을 수 있다. 한 교회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이 보기는 잘하지만 듣지는 못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는 교회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의 정신(성령)에 이끌려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에 애쓰고 있는 교회가 어딘가에 꼭 있을 것이다.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몸으로 교회와 함께 살아가면 된다. 

나도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교회를 한번에 찾은 것이 아니다. 여러 곳을 가보고 결정을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담임 목회자가 예수의 정신을 따라 살려고 하는가와 교회가 그 정신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가이다. 다른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다. 예수의 정신이 그 교회에 살아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죽은 교회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산 교회를 찾아라.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