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5, 2025

예수와 교회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가 순수 과학이라면 교회는 스마트폰과 같은 응용 과학 기술이 아닐까 하는.

스마트폰에도 물리학이나 화학, 전자기학 같은 순수 과학의 원리들이 들어 있지만 실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원리에 무관심하다. 그냥 그 기기가 제공해 주는 서비스를 통해서만 만족감을 느끼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기로 옮겨 탄다. 

교회에도 물론 예수라는 원리가 적용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무관심하다. 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삶보다는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속감, 교제, 마음의 평안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

기도의 내용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내용보다는 세속의 성공이나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예수의 정신을 체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기에 이러한 모습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2천년동안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들어왔어도 여전히 이런 현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암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과학과 응용 과학 기술, 둘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둘 다 필요하고 둘 다 진보하고 발전해야 한다.여전히 순수 과학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러한 결과들을 응용한 새로운 기술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예수에 관한 연구도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 그 연구 결과가 반영된 새로운 형태의 교회도 계속 나와야 한다. 유선 전화에서 무선 전화를 거쳐 스마트폰이 나왔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기기가 또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거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나오기는 할 텐데, 단지 좀 더 예수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잘 심어줄 수 있는 교회가 나타나길 희망해 볼 뿐이다.

Wednesday, November 19, 2025

뉴질랜드 성공회와 어번 비전

영국 성공회의 수장은 켄터베리 대주교가 아니라 영국 국왕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왕이 교회의 수장으로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침례교 출신인 나로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행히도 뉴질랜드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의 일원이긴 하지만 영국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관구이다. 특히 뉴질랜드 성공회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대주교 세 명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세 명의 대주교는 각각 파키하(유럽계), 마오리, 퍼시피카(폴리네시안) 그룹을 대표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곳 성공회 예배에 참여하면 백인 교인들이 대다수임에도 마오리어를 꽤 많이 들을 수 있다. 리터지에도 마오리어가 많이 사용되고 마오리 찬양도 많이 부르고 있다. 사제들은 특히 마오리어 공부를 많이 해서 예배에서 사용되는 마오리어는 꽤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세 명의 대주교 중 한 명인 파키하 대주교의 딸과 사위가 담임 사제로 있다. 우리 부부와는 목회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유쾌하고 명랑한 사제 부부다. 둘 다 아버지/장인의 영향을 받아서 아버지가 빈민가에서 시작한 Urban Vision이라는 단체의 사역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어번 비전은 수도원의 영성과 공동체성을 도시 내부에서 사회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이다. 그 아버지는 대주교가 된 지금도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집에서 자기 가족들만 살아본 적이 없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어번 비전 사역에 동참하는 코어 그룹들은 한 집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수도원처럼 공동체 내의 모든 걸 공유한다. 개인 소득의 상당 부분이나 전부를 공동 계좌에 넣고 그걸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충당한다. 청빈한 삶을 살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고 절약한 돈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고 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약자, 소외된 자와 함께 계신다는 대답을 찾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가 예수님과 함께 일한다는 정신이 그 단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성공회가 이렇게 평생을 빈민 운동에 헌신하고 지금도 그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을 대주교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교회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성공회 역시 교인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교회당이 문을 닫고 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사람들이 얼마 없다. 어번 비전도 30년이 되어가지만 참여 인원이 많지 않다. 이 지점에서 내가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물음과 또 마주치게 된다. 교회가 예수 정신에 입각하여 제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고 교인들 조차도 예수나 예수적 삶에 관심이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Wednesday, November 5, 2025

순수한 사람

아내의 생일을 맞아 아들이 레고로 꽃을 만들어 줬는데 그걸 보고 아내가 아주 행복해 하고 있다. 아직도 순수하다. 아내와는 대학교 4학년 말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순수하지 않았다면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나와 사귀지도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로 한 해 동안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그 이듬해 기업의 채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는 전년도 취업 재수생까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경쟁률이 꽤 높았었다. 다행히도 그룹 공채에 2차(3차?)까지 합격을 해서 여의도 트윈타워에 면접을 보러가야 했는데 나에게 양복과 구두가 없었다. 제대로 된 양복과 구두는 살 형편이 안되어서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양복처럼 보이는 케주얼 상하의와, 구두처럼 보이는 단화를 같이 사러 다녔었다. 

그 옷을 입고 면접장에 가보니 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제대로 된 말끔한 양복에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이 대비되며 뭔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만약 그 때 합격을 하지 못했더라면 내 안에 가난에 대한 어떤 안좋은 기억이 상처처럼 남았을 것이다. 

아내는 그런 나의 가난을 개의치 않았다. 초라한 우리 부모님 집에 같이 인사하러 갔었을 때도, 갔다 오고 나서도, 나에 대한 애정에 변화가 없었다. 결혼 후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는 트레일러 홈에서 살면서 흑인 동네 가게에서 일도 하고 세탁소에서도 일하며 같이 공부했었다. 돈이 없어서 7년 동안 한국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원망하지도, 내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 했고 나랑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어디든 같이 다니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반지하에서 살았는데 그 기간이 임신 기간이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반지하에 살게 되었었는데 그 때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장인 장모님은 딸이 그런 곳에 사는 게 속상하다고 와보지도 않았는데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거기서도 우리 둘은 즐겁게 살았다. 그 때 맛있게 먹었던 초등학교 앞 떡볶이와 근처 분식집에서 먹었던 멸치 국수의 맛을 우리는 지금도 그리워한다. 

이 나라로 오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민 가방 두 개에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나라로 왔다. 어려움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지만 아내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2007년식 차를 타고 낡고 오래된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밝고 웃음이 많다. 일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 점심 데이트 하자고 하니 또 너무 좋아하고 있다. 순수한 사람이다 정말.  

Tuesday, November 4, 2025

비폭력저항

악에 저항하는 방식 중에 폭력을 써서 저항하는 방식과 폭력을 쓰지 않는 비폭력저항의 방식이 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대부분 비폭력저항의 노선을 따르려고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비폭력저항을 악에 대한 저항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폭력은 무조건 안된다는 입장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도 안되는가? 적의 의지를 꺽어 놓을 정도로만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안되는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것도 안되는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 따라 비폭력저항에서 폭력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엊그제 교회에서 이 나라 비폭력저항의 최초 사례라고 여겨지는 파리하카 지역에서 있었던 저항운동(1881년 11월 5일)을 기념하는 예식이 있었다. 1870년대 후반 당시 식민 정부가 파리하카 지역의 토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비폭력저항을 고수했었던 그 지역 마오리인들의 정신을 기리는 예식이었다. 비폭력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남아공 저항보다 약 25년 정도 앞서서 있었던 운동이었기 때문에 비폭력저항의 역사에서는 꽤 유명한 저항 사례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마하트마 간디 재단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재단의 후손 및 대표자들이 이 곳을 방문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비폭력저항을 기본값으로 지정해 두고는 있지만 비폭력저항의 실패 사례가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저항 상대가 무자비할 경우 그 피해는 너무나 끔찍하다. 한국의 3.1 운동이나 중국의 천안문 시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는가. 파나마나 케냐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있었고. 파리하카의 경우 영국 식민 정부가 그나마 양심이 있는 정부여서 발포를 안했던 것이지, 만약 그 정부가 천안문 시위 당시의 중국이나 삼일운동시 일본 식민정부였다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을 것이다. 파리하카의 경우도 당시에만 사상자가 없었을 뿐 그 시위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재판도 없이 남섬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다.  

비폭력저항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도부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야 하고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고 전세계 언론에게 호소도 해야 한다. 단순한 거리 시위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협조 전술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알린스키처럼 기발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도 좋은 예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때로는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요청하기도 하지 않았나. 

설교자가 비폭력저항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만 늘어놓고 끝나는 바람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여기에라도 끄적여 본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