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5, 2025

순수한 사람

아내의 생일을 맞아 아들이 레고로 꽃을 만들어 줬는데 그걸 보고 아내가 아주 행복해 하고 있다. 아직도 순수하다. 아내와는 대학교 4학년 말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순수하지 않았다면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나와 사귀지도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로 한 해 동안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그 이듬해 기업의 채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는 전년도 취업 재수생까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경쟁률이 꽤 높았었다. 다행히도 그룹 공채에 2차(3차?)까지 합격을 해서 여의도 트윈타워에 면접을 보러가야 했는데 나에게 양복과 구두가 없었다. 제대로 된 양복과 구두는 살 형편이 안되어서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양복처럼 보이는 케주얼 상하의와, 구두처럼 보이는 단화를 같이 사러 다녔었다. 

그 옷을 입고 면접장에 가보니 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제대로 된 말끔한 양복에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이 대비되며 뭔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만약 그 때 합격을 하지 못했더라면 내 안에 가난에 대한 어떤 안좋은 기억이 상처처럼 남았을 것이다. 

아내는 그런 나의 가난을 개의치 않았다. 초라한 우리 부모님 집에 같이 인사하러 갔었을 때도, 갔다 오고 나서도, 나에 대한 애정에 변화가 없었다. 결혼 후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는 트레일러 홈에서 살면서 흑인 동네 가게에서 일도 하고 세탁소에서도 일하며 같이 공부했었다. 돈이 없어서 7년 동안 한국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원망하지도, 내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 했고 나랑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어디든 같이 다니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반지하에서 살았는데 그 기간이 임신 기간이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반지하에 살게 되었었는데 그 때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장인 장모님은 딸이 그런 곳에 사는 게 속상하다고 와보지도 않았는데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거기서도 우리 둘은 즐겁게 살았다. 그 때 맛있게 먹었던 초등학교 앞 떡볶이와 근처 분식집에서 먹었던 멸치 국수의 맛을 우리는 지금도 그리워한다. 

이 나라로 오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민 가방 두 개에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나라로 왔다. 어려움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지만 아내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2007년식 차를 타고 낡고 오래된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밝고 웃음이 많다. 일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 점심 데이트 하자고 하니 또 너무 좋아하고 있다. 순수한 사람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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