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한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나름 공부도 많이 하시고 입담도 좋아서 대중에게 꽤 알려진 목사님이셨다.
본문에 집중하는 모습도 좋고 간간이 유머를 섞어서 청중들을 배려하는 방식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말씀을 받드는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종이 아닌 말씀을 채찍처럼 다루는 독재자처럼 보였다.
말씀이 주인이 아닌 설교자가 주인인 모습이었고,
말씀을 이용하여 청중들을 휘어잡으려는 의도가 보였다.
마치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은 자신의 것만이 절대적인 양 설교하는 모습에서
말씀을 섬기는 자의 겸손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권력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전하지도 못하면서 애꿎은 성도들에게만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대개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이 당대의 권력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였다.
저 자리, 저 강대상에만 서면 저렇게 되는가?
처음부터 저러진 않았을텐데.. 저 자리에 익숙해져서 저렇게 뻔뻔해진 것인가?
아, 설교란 정말 가능한 일인가..
말씀의 봉사자로서 나를 최소화하고 말씀만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 정말 가능한가..
나는 그렇게 했었는가..
강단에 서지 않아도 되는 이 시기가 실상은 나에게 얼마나 복된 기간인지 모른다.
가능하다면 그냥 이렇게 설교하지 않으며 살고 싶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Saturday, November 30, 2013
Wednesday, November 27, 2013
신앙이란
기독교의 신앙은 신념(belief)보다는 의탁(trust)에 더 가깝다. 또는 신념에서 의탁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신념으로는 하나의 체계(belief system)를 만들 수 있다. 신념들을 끌어 모으고 층위를 나누고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신앙이 이 수준에 머물면 머릿 속이 그가 옳다고 믿는 지식으로만 가득차게 된다. 삶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멋진 신념체계만 만들면 되고, 그 신념을 되뇌이고 강화하고, 더 나아가 그 신념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까지 저지를 수도 있다. 전인적인 삶의 변화보다는 신념체계라는 골격만 남은 딱딱한 해골처럼 되는 것이다.
의탁으로서의 신앙은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긴 상태를 의미한다. 나의 전 인격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내 삶이 내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마치 내 아이가 나를 향해 몸을 던지듯, 하나님을 향해 나를 던지는 삶, 환경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해 늘 든든한 삶,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삶을 말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그 분과 함께 가려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참으로 어리석고 힘든 길을 가야만 한다. 가지려하기 보다는 나눠야 하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겨야 하고, 대접받기 보다 대접해야 하고..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분에게 내 삶을 맡기고, 그 분만을 따라 가는 것. 신앙/믿음이란 궁극적으로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그냥 구구단을 외우듯이 신조들을 되뇌이는 것만이 믿음이라면 그런 믿음으로 구원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의탁으로서의 신앙은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긴 상태를 의미한다. 나의 전 인격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내 삶이 내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마치 내 아이가 나를 향해 몸을 던지듯, 하나님을 향해 나를 던지는 삶, 환경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해 늘 든든한 삶,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삶을 말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그 분과 함께 가려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참으로 어리석고 힘든 길을 가야만 한다. 가지려하기 보다는 나눠야 하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겨야 하고, 대접받기 보다 대접해야 하고..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분에게 내 삶을 맡기고, 그 분만을 따라 가는 것. 신앙/믿음이란 궁극적으로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그냥 구구단을 외우듯이 신조들을 되뇌이는 것만이 믿음이라면 그런 믿음으로 구원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Monday, November 25, 2013
천주교 시국미사
천주교 시국미사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특히 신부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그들에게는 요즘 개신교 목회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야성이 살아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그 소리에 이끌리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진리를 향해 눈을 뜨게 되는,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 예전에는 개신교회가(물론 일부였기는 하지만) 더 활발하게 이런 목소리들을 냈었는데, 지금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이런 야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것 같다. 체제에 포섭되어 순한 양이 된지 오래되었으니.. 목정평에서 금식기도회를 할 것 같기는 하나 천주교만큼 파급효과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이런 단체라도 있다는 것에 위로를 삼는다. 개신교 목회자들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면서도 악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하는 경우가 많은데, 천주교 신부들이 세상의 권력과 악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체면을 세워 주고 있는 것 같다.
Tuesday, November 19, 2013
Trust로서의 신앙
신앙을 맡기는 것(trust)이라 할 때, 맡기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 살펴보면 신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몇 달 전에 만 세 살짜리 내 아들을 처음으로 어린이 집에 맡겼다. 하나 뿐인 아들을 맡기는 것이니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겠는가. 일단 근처의 어린이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원장을 만나 어린이 집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교사는 몇 명인지, 식단은 어떻게 되는지, 원비는 얼마인지 등등을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그러고 나서 한 곳을 선택해 아이를 맡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를 맡기기 시작했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잘 먹고 있는지, 선생님들이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 교사들이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지 등등에 관해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했다. 아이가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함께 의심이 점점 줄어들면서 어린이 집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믿음과 함께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고, 특히나 아이가 당면한 문제들(점심 먹기, 화장실 이용하기 등)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져갔다. 이 모든 일들이 어느 순간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믿으라고 해서 그냥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믿음은 거짓 믿음, 불안하기만 한 믿음일 수밖에 없다. 믿음은 불안을 어느 정도 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불안하기만한 믿음이라면 그것이 내 삶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냥 무조건 믿는 믿음은 가능하지도 않고 특히나 이성적인 사람에게 그런 믿음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이다. 아이를 맡기기 전에 어린이집에 대해서 알아본 것처럼, 신앙의 대상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인 것이다. 내가 소중할수록 더 열심히 하나님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내 자식이 소중하기에 어린이집에 대한 사전조사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는가.
물론 하나님에 대한 공부는 완벽할 수가 없다. 어린이집에 대한 조사도 완벽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공부가 완벽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 어린이집이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 판단되면 그 이후는 일단 아이를 맡겨야 한다. 맡기는 일을 미루기만 하면 그 어린이집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도, 신뢰 관계를 형성할 기회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공부만 했지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공부만 영원히 하게 될 뿐 하나님을 직접 알아갈 기회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도 불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아이를 맡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라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이 생겨난다.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은 어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께 나를 맡겨야 하나?
아이를 맡겨야 할 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부모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든 아니면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한 상황이든)아이를 맡기게 된다. 내가 아이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왜 굳이 다른 곳에 아이를 맡기겠는가?
나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 자신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내 생명의 완성을 내 스스로 이루어 낼 수 있는가? 단순히 신체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의 통합적 온전성을 나 스스로 이룩할 수 있는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 최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인간이란 스스로 선택을 하면서 만들어진다(물론 선택이란 늘 주어진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의 선택이기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약을 인정한다 해도 사람이 일생동안 선택을 통해서 만들어져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선택은 종류에 따라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치명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선택들을 아무런 기준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바르게 할 수 있는가?
완전하신 하나님에게 나를 맡길 때 나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해 계속되는 선택들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질 때 나 역시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내가 내 아이를 혼자서 잘 돌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듯 같은 이유로 나 역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Sunday, November 10, 2013
Friday, November 8, 2013
유진 피터슨의 The Pastor를 읽고
일전에 현재 출석하고 있는 뉴질랜드 교회의 목사님이 빌려준 The Pastor라는 책을 공감하며 읽은 적이 있었다. 유진 피터슨의 책이었는데,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목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제삼아 자서전으로 쓴 책이었다.
나에게 목사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내 아버지이다. 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목사의 아들로 자랐다. 아버지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나 예기치 못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즈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신학교육을 받은 후 목회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목회관은 우리집의 가훈이기도 한 "십자가를 지자"였다. 아버지는 고난받는 길을 택해서 다니셨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작은 교회로 가서 그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눈물로 기도하시다가, 기도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만큼 편해질 때면, 그 교회를 떠나 다시 작은 교회로 옮기셨다. 교회가 자립할만큼 성장하면 다시 작은 교회로, 커지면 다시 작은 교회로..
아버지의 기도는 늘 새벽 2시에 시작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 교회당 제단 중앙에 걸린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낸 시간들은 아버지의 무릎과 발등에 훈장과 같은 옹이들을 남겼다. 그 굳은 살들은 아버지의 몸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신학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그 흔적은 나를 늘 겸손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유진 피터슨의 아버지는 정육점의 주인이었고, 유진은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훗날 목회에 도움이 될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나 역시 아버지와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제 나에게도 아들이 있고 아직 먼 꿈이기는 하지만 내 아들도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훗날 내 아들도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내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을까.. 내 몸/삶에는 어떤 흔적이 새겨지게 될까..
나에게 목사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내 아버지이다. 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목사의 아들로 자랐다. 아버지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나 예기치 못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즈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신학교육을 받은 후 목회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목회관은 우리집의 가훈이기도 한 "십자가를 지자"였다. 아버지는 고난받는 길을 택해서 다니셨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작은 교회로 가서 그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눈물로 기도하시다가, 기도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만큼 편해질 때면, 그 교회를 떠나 다시 작은 교회로 옮기셨다. 교회가 자립할만큼 성장하면 다시 작은 교회로, 커지면 다시 작은 교회로..
아버지의 기도는 늘 새벽 2시에 시작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 교회당 제단 중앙에 걸린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낸 시간들은 아버지의 무릎과 발등에 훈장과 같은 옹이들을 남겼다. 그 굳은 살들은 아버지의 몸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신학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그 흔적은 나를 늘 겸손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유진 피터슨의 아버지는 정육점의 주인이었고, 유진은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훗날 목회에 도움이 될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나 역시 아버지와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제 나에게도 아들이 있고 아직 먼 꿈이기는 하지만 내 아들도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훗날 내 아들도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내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을까.. 내 몸/삶에는 어떤 흔적이 새겨지게 될까..
Tuesday, November 5, 2013
사랑은 행하는 것
일주일에 하루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하루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이 일에 더해 앞으로 2, 3일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도 하게 될 것 같다. 요즘은 또 난민들이 눈에 들어와서 난민 정착 지원하는 일도 하고 싶기는 한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교회에서는 딱히 하는 일은 없다. 한인 가정이 한 가정 뿐이라서 주일에 식사 한끼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에 교회 일에 시간을 쓰지는 않고 있다. 담임목사님이 새로운 비전 수립을 위한 팀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거기에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 교회에 출석한지 4개월 밖에 안되고, 키위 문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다. 아직은 이 나라와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할 때 아닌가.
복지 국가라 하지만 역시 이나라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은 예수의 제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예수의 사랑은 말이 아니고 행함이었다. 특히나 우선적으로 율법에 의해, 체제에 의해 죄인으로 규정된 자들을 죄없다 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은 사람이 예수였으며, 그 투쟁과 희생이 그분의 사랑이었다. 말로만 사랑하라 떠들지 않았고, 안온한 삶을 살면서 선지자 코스프레를 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거대한 악의 힘과 맞서 싸우며 지극히 작은자 하나라도 구해내기 위해 애썼던 분이었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일은 잘 하면서, 악과의 싸움은 모른척 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다. 어찌보면 회개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악과의 투쟁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유혹하여 온전한 삶을 파괴하는 세상의 권력들이나 체제와의 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십자가를 지는 일과 다름아니다. 예수를 미워했던 세상의 미움을 우리도 받아야 한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그들의 지배가치와 권세에 대항해 치열하게 싸우는 일, 그러면서도 우리가 결국은 이긴다는 희망으로 기뻐하는 자세,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다림으로 설레는 마음 등은 그 나라가 임하는 순간까지 우리가 결코 잊/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Subscribe to:
Posts (Atom)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
-
얼마 전에 한국에서 방문한 친구가 선물로 탁구 러버를 몇 장 가져왔었다. 내가 써보고 싶은 러버들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더니 선물로 사 가지고 온 것이었는데 그 중의 1순위가 디그닉스 09C였다. 작년에 한국 방문시 09C를 처음으로 사서, 역시 한...
-
여자 탁구 선수들 중에 처음 봤을 때부터 호쾌함이 돋보였던 선수가 일본의 사츠키 오도였다. 사츠키 오도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저 선수가 복싱도 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가벼운 스텝이나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보고 있자면 복...
-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드디어 새로운 장비를 구입했다. 나름 리서치를 좀 해서 블레이드는 옵차로프 ALC, 전면에는 디그닉스 09C, 후면에는 디그닉스 80을 구매했다. 옵차로프 ALC: 중량은 내가 방문했던 매장에 더 가벼운 것이 없어서 8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