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6, 2025

2025년 크리스마스 묵상

마태복음 1장에서 아기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즉 임마누엘의 증표였다. 꿈 속에서 천사로부터 그 말씀을 전해들은 요셉은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왔고 예수의 아빠가 되어주었다. 약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자신의 사역을 모두 마치신 예수님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하나님/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그 힘이 우리를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예수님처럼 행동하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한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대신 해준다고 하지 않았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하셨다. 상황을 변화시켜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고 함께 있어준다고 하셨다.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가 아니라 내가 같이 있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한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함께 있어준다는 말은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아니다. 임마누엘의 현현이셨던 예수님도 당시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 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마 1:21) 분이셨고 자신이 처해 있었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일을 해내었던 분이셨다. 예수님 스스로도 힘든 삶을 사셨고, 그런 중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삶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삶이 편했던가 마리아의 삶이 편했던가. 다들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런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며 선한 일을 해 나갔을 뿐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가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그런 삶의 자세를 체화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Thursday, December 18, 2025

장애인 부모의 노동자 지위

얼마 전 12월 9일에 뉴질랜드 대법원이 중증 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를 풀타임으로 돌보는 부모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정부가 이들 부모의 고용인이 되어 이들에게 최저임금, 유급휴가 등 노동법상의 기본적인 권리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성년 자녀의 경우 부모에게 양육의 의무가 있지만 성년이 된 후까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성년이 된 장애인의 경우는 국가가 시설 수용 등을 통해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데, 특정 중증 장애인의 경우 그들을 돌볼 시설이 마땅치 않다. 이런 경우에는 그 장애인의 부모나 가족이 장애인을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을 가족 간의 사랑과 의무의 영역으로만 보고 보조금 정도만 주는 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가족 간병의 가치를 노동법상으로도 인정해 준 것이다. 

부모가 중증 장애인 간병이라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강도가 직장 생활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세다면,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 그 부모에게 임금도 주고 유급 휴가도 보내줘야 한다는 판단을 대법원이 내려 준 것이다. 뉴질랜드도 요즘 경제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국가가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고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Saturday, December 6, 2025

참새와 길고양이

처마 쪽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새소리야 매일 들리는 소리지만 보통은 나무 쪽에서 들리지 처마 쪽에서 들리지는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집 지붕과 그 아래 간이 차고 지붕 사이의 틈 사이에 참새가 집을 지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둥지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 틈 사이로 삐져나온 마른 풀들로 보아 그 안쪽에 작은 둥지가 있고 이제 막 부화한 새끼들이 그 안에서 짹짹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별채 쪽에서는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했다. 길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통해서 뒷집이나 옆집으로 다니는 걸 봐 오긴 했지만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것이다. 별채 데크 아래쪽 틈 사이로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검정 고양이, 노란 고양이, 두 색깔이 섞인 고양이들이 너댓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참새도 고양이도 내가 키우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서 몸을 풀었으니 둥지를 떠날 때까지는 편안히 지내다 가길 바란다. 애를 낳고 키우는 일은 동물들에게도 힘든 일일 것이다. 몸을 풀 곳을 찾아내려 어미들이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성서에는 맹수와 초식동물, 어린아이가 함께 지내도 아무런 해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길고양이나 참새들이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쯤은 우리 집에서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Tuesday, November 25, 2025

예수와 교회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가 순수 과학이라면 교회는 스마트폰과 같은 응용 과학 기술이 아닐까 하는.

스마트폰에도 물리학이나 화학, 전자기학 같은 순수 과학의 원리들이 들어 있지만 실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원리에 무관심하다. 그냥 그 기기가 제공해 주는 서비스를 통해서만 만족감을 느끼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기로 옮겨 탄다. 

교회에도 물론 예수라는 원리가 적용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무관심하다. 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삶보다는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속감, 교제, 마음의 평안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

기도의 내용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내용보다는 세속의 성공이나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예수의 정신을 체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기에 이러한 모습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2천년동안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들어왔어도 여전히 이런 현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암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과학과 응용 과학 기술, 둘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둘 다 필요하고 둘 다 진보하고 발전해야 한다.여전히 순수 과학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러한 결과들을 응용한 새로운 기술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예수에 관한 연구도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 그 연구 결과가 반영된 새로운 형태의 교회도 계속 나와야 한다. 유선 전화에서 무선 전화를 거쳐 스마트폰이 나왔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기기가 또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거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나오기는 할 텐데, 단지 좀 더 예수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잘 심어줄 수 있는 교회가 나타나길 희망해 볼 뿐이다.

Wednesday, November 19, 2025

뉴질랜드 성공회와 어번 비전

영국 성공회의 수장은 켄터베리 대주교가 아니라 영국 국왕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왕이 교회의 수장으로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침례교 출신인 나로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행히도 뉴질랜드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의 일원이긴 하지만 영국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관구이다. 특히 뉴질랜드 성공회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대주교 세 명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세 명의 대주교는 각각 파키하(유럽계), 마오리, 퍼시피카(폴리네시안) 그룹을 대표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곳 성공회 예배에 참여하면 백인 교인들이 대다수임에도 마오리어를 꽤 많이 들을 수 있다. 리터지에도 마오리어가 많이 사용되고 마오리 찬양도 많이 부르고 있다. 사제들은 특히 마오리어 공부를 많이 해서 예배에서 사용되는 마오리어는 꽤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세 명의 대주교 중 한 명인 파키하 대주교의 딸과 사위가 담임 사제로 있다. 우리 부부와는 목회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유쾌하고 명랑한 사제 부부다. 둘 다 아버지/장인의 영향을 받아서 아버지가 빈민가에서 시작한 Urban Vision이라는 단체의 사역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어번 비전은 수도원의 영성과 공동체성을 도시 내부에서 사회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이다. 그 아버지는 대주교가 된 지금도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집에서 자기 가족들만 살아본 적이 없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어번 비전 사역에 동참하는 코어 그룹들은 한 집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수도원처럼 공동체 내의 모든 걸 공유한다. 개인 소득의 상당 부분이나 전부를 공동 계좌에 넣고 그걸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충당한다. 청빈한 삶을 살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고 절약한 돈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고 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약자, 소외된 자와 함께 계신다는 대답을 찾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가 예수님과 함께 일한다는 정신이 그 단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성공회가 이렇게 평생을 빈민 운동에 헌신하고 지금도 그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을 대주교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교회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성공회 역시 교인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교회당이 문을 닫고 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사람들이 얼마 없다. 어번 비전도 30년이 되어가지만 참여 인원이 많지 않다. 이 지점에서 내가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물음과 또 마주치게 된다. 교회가 예수 정신에 입각하여 제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고 교인들 조차도 예수나 예수적 삶에 관심이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Wednesday, November 5, 2025

순수한 사람

아내의 생일을 맞아 아들이 레고로 꽃을 만들어 줬는데 그걸 보고 아내가 아주 행복해 하고 있다. 아직도 순수하다. 아내와는 대학교 4학년 말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순수하지 않았다면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나와 사귀지도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로 한 해 동안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그 이듬해 기업의 채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는 전년도 취업 재수생까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경쟁률이 꽤 높았었다. 다행히도 그룹 공채에 2차(3차?)까지 합격을 해서 여의도 트윈타워에 면접을 보러가야 했는데 나에게 양복과 구두가 없었다. 제대로 된 양복과 구두는 살 형편이 안되어서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양복처럼 보이는 케주얼 상하의와, 구두처럼 보이는 단화를 같이 사러 다녔었다. 

그 옷을 입고 면접장에 가보니 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제대로 된 말끔한 양복에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이 대비되며 뭔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만약 그 때 합격을 하지 못했더라면 내 안에 가난에 대한 어떤 안좋은 기억이 상처처럼 남았을 것이다. 

아내는 그런 나의 가난을 개의치 않았다. 초라한 우리 부모님 집에 같이 인사하러 갔었을 때도, 갔다 오고 나서도, 나에 대한 애정에 변화가 없었다. 결혼 후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는 트레일러 홈에서 살면서 흑인 동네 가게에서 일도 하고 세탁소에서도 일하며 같이 공부했었다. 돈이 없어서 7년 동안 한국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원망하지도, 내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 했고 나랑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어디든 같이 다니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반지하에서 살았는데 그 기간이 임신 기간이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반지하에 살게 되었었는데 그 때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장인 장모님은 딸이 그런 곳에 사는 게 속상하다고 와보지도 않았는데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거기서도 우리 둘은 즐겁게 살았다. 그 때 맛있게 먹었던 초등학교 앞 떡볶이와 근처 분식집에서 먹었던 멸치 국수의 맛을 우리는 지금도 그리워한다. 

이 나라로 오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민 가방 두 개에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나라로 왔다. 어려움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지만 아내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2007년식 차를 타고 낡고 오래된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밝고 웃음이 많다. 일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 점심 데이트 하자고 하니 또 너무 좋아하고 있다. 순수한 사람이다 정말.  

Tuesday, November 4, 2025

비폭력저항

악에 저항하는 방식 중에 폭력을 써서 저항하는 방식과 폭력을 쓰지 않는 비폭력저항의 방식이 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대부분 비폭력저항의 노선을 따르려고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비폭력저항을 악에 대한 저항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폭력은 무조건 안된다는 입장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도 안되는가? 적의 의지를 꺽어 놓을 정도로만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안되는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것도 안되는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 따라 비폭력저항에서 폭력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엊그제 교회에서 이 나라 비폭력저항의 최초 사례라고 여겨지는 파리하카 지역에서 있었던 저항운동(1881년 11월 5일)을 기념하는 예식이 있었다. 1870년대 후반 당시 식민 정부가 파리하카 지역의 토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비폭력저항을 고수했었던 그 지역 마오리인들의 정신을 기리는 예식이었다. 비폭력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남아공 저항보다 약 25년 정도 앞서서 있었던 운동이었기 때문에 비폭력저항의 역사에서는 꽤 유명한 저항 사례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마하트마 간디 재단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재단의 후손 및 대표자들이 이 곳을 방문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비폭력저항을 기본값으로 지정해 두고는 있지만 비폭력저항의 실패 사례가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저항 상대가 무자비할 경우 그 피해는 너무나 끔찍하다. 한국의 3.1 운동이나 중국의 천안문 시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는가. 파나마나 케냐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있었고. 파리하카의 경우 영국 식민 정부가 그나마 양심이 있는 정부여서 발포를 안했던 것이지, 만약 그 정부가 천안문 시위 당시의 중국이나 삼일운동시 일본 식민정부였다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을 것이다. 파리하카의 경우도 당시에만 사상자가 없었을 뿐 그 시위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재판도 없이 남섬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다.  

비폭력저항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도부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야 하고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고 전세계 언론에게 호소도 해야 한다. 단순한 거리 시위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협조 전술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알린스키처럼 기발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도 좋은 예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때로는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요청하기도 하지 않았나. 

설교자가 비폭력저항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만 늘어놓고 끝나는 바람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여기에라도 끄적여 본다.

Monday, October 20, 2025

구조 조정

마트 노동자로 일한 지도 5년이 넘었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마트라 나름 시스템이 잘 짜여 있는 편이고, 일하기 좋은 조건에서 야간에 물건 채우는 일을 재미있게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회사에서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개편하기 시작하면서 야간 근무 시간을 줄이고 주간 근무 인력을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마트 운영의 특성상 야간 근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시간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야간 근무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니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줄인다고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니 밤 동안 줄인 일을 낮에 해야 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인 영업 시간 내에 더 많은 직원들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매장 안에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것이 고객들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장을 볼 때 직원들이 물건을 채우고 있으면 불편하던데 말이다. 

아직 내 시간이 어떻게 조정될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면 저녁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을지 회사에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나온 스케줄을 보면 오전과 오후 시간대에 사람을 많이 구하던데, 나는 아직 아이 학교 픽/드랍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 일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50대에, 게다가 아이 등하교 시간은 빼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구조 조정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구조 조정은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고 나는 경영진이 아니니 어쩌겠는가. 노조는 구조 조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한지 이의를 제기하고 감시하고 협의 할 수는 있지만, 정당한 절차에 의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구조 조정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되고. 이번 구조 조정으로 손해를 입은 직원들이 있겠지만 반대로 새로 일자리를 얻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손해가 예상되지만, 낮 시간에 일할 수 있는데 일자리를 못 구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구조 조정이 일자리를 얻을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Tuesday, September 30, 2025

탁구 스트레스?

탁구 게임에 들어가면 일단은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 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면 대충 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성의가 없어진다. 상대방 실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게임을 할 때는 일단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경기에 들어간 후에 상대방의 실력에 따라 경기 운영을 한다. 상대방이 실력이 낮다면 그 수준에 맞춰주면서 이기면 되고, 비슷한 실력이라면 내 실력의 백퍼센트를 써서 이기려고 하면 되고,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최대한 배우기 위한 기회로 삼으면 된다. 

나는 늘 이런 자세로 게임에 임하기 때문에 지는 게임에서도 그렇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내가 졌다는 말은 좀 더 배울게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늘 이기기만 하면 아마 더 이상 배울게 없어서 오히려 흥미가 떨어질 것 같다. 모르는게 있어야 재미있고 내가 못하는 기술이 있어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 우리 클럽에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다.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럽의 어떤 사람들은 지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늘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사람하고만 게임을 하려고 한다. 나는 오히려 나를 이기는 사람하고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과 게임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과도 기꺼이 게임을 하지만 나를 이기는 사람과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현재 내 실력은 우리 클럽의 최상위 그룹 바로 아래 그룹에 속해 있다. 최상위 그룹은 선출들인데 그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내 목표이다. 나와 비슷한 레벨의 친구들과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데, 이길 때 보다 질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다. 물론 지면 감정적으로는 기분이 나쁘긴 하다. 져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감정에 문제가 생긴 상태일 것이다. 감정과는 별개로 심리적으로는 지는 것의 유익이 더 큼을 알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뿐이다. 

탁구 선수도 아닌데 게임에 지는 것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긴 하다. 졌을 때의 안좋은 감정에 너무 휘둘려서 그러는 걸까, 자존감이 낮은 걸까, 경쟁성향이 강해서일까, 자책이 심하기 때문인 걸까.. 탁구라는 운동도 사람과 하는 운동이고 이렇게 취미로 하는 운동에서도 사람은 드러난다. 사람은 역시 흥미로운 주제다. 

Friday, September 19, 2025

전쟁을 멈춰라

며칠 전 웰링턴의 재정부 장관이자 여당의 부대표인 니콜라 윌리스의 사무실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장관과의 면담 요청 및 이스라엘에 대한 제제를 부과하자는 내용 등의 시위였는데, 그 시위의 주체가 5명의 성공회 사제와 1명의 가톨릭 사제였다. 6명의 성직자들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32시간 동안 단식을 한 후 시위 마지막에 지지자들 50명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몸으로 성찬식을 하는 방식의 시위였다. 그 시위에 참여했던 사제 한 명이 내 친구인데 성인용 기저귀까지 차고 시위에 임했다고 한다. 윌리스 장관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며 면담을 거절했지만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현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가자 지구는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십 만명이 피난을 떠났고 그 지역은 거의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다. 2023년 이후 약 2년 동안 6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15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연히 그 중의 상당수는 비무장 시민과 어린이들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런 강경한 정책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이스라엘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동일시 하지 말라고 한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한 달 전쯤 30만명이 텔아비브에 모여서 전쟁 종식과 네타냐후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5개국 중에서 아직까지 네타냐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6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정말... 팔레스타인 문제 외에도 요즘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정말 내가 살았던 그 나라가 맞나 싶다. 예전에는 언제 한 번 미국에 갔다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을 정도이다. 

아무튼 웰링턴 외에 오클랜드에서도 성공회 사제 2명과 침례교 목사 2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고 시위에 참석했던 모든 사역자들을 축복하고 응원한다.  

Wednesday, September 3, 2025

그 시대

2000년대에 미국에서 지냈었는데 그 때 나는 30대였다. 
그 때 나도 젊었고 내 아내도 젊었기 때문이었는지, 
2000년대는 지금도 나에게 옛날로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20대 후반의 어떤 젊은 한국 청년과 얘기를 나누다 
그 친구가 2000년대를 '그 시대'라 지칭하는 걸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나한테는 그다지 옛날로 느껴지지 않는 2000년대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옛날로 여겨지는구나라는 자각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도 1990년대에 어떤 50대 어른과 대화 중에 1970년대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 친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70, 80대 노인들이 1960년대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그 분들과 같이 20대 30대가 되어 이야기를 해보자.
'그 시대'가 아니라 그 때를 함께 해보자.

Tuesday, August 26, 2025

아들의 인기

아들의 만 15살 생일이 일요일이었다. 내성적인 아이라 여태껏 친구들을 불러서 하는 생일은 초등학교 때 한 번밖에 못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집에서 가족끼리만 즐겁게 생일 축하를 해줬다. 그런데 다음날 월요일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생일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왔다. 거의 식탁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의 선물이었다. 선물의 종류도 다양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성이 들어간 선물들이 많았다. 그냥 가게에서 산 선물들도 섞여 있었지만 시간을 투자해서 직접 꾸미고 만든 선물들도 꽤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나는 소셜미디어를 거의 안해서 잘 모르지만 아이는 자기 팔로워가 한 천 명 정도 된다고 했었다. 그것도 신기한게 아이는 유튜브도 안하고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아이도 아니다. 스포츠도 안하고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밴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주목받는 걸 싫어해서 조용히 학교 다니는 거 말곤 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인기가 있는 건지 궁금했다.

요즘 K팝이나 K드라마가 인기여서 그 덕을 보는게 아닌가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 친구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안보는 아이들이란다. 그게 아니라면 외모일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딱히 특출난 외모라고 할 수는 없는 평범한 외모이다. 그렇다면 성격인가? 굳이 원인을 꼽아보자면 아마도 성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용하고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착한 성격이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좋게 보여지지 않았을까 한다. 뭐 내가 아이의 친구들이 아니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밤에 일을 하다가 직원 중에 나랑 친한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에게 물어봤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생일 선물을 받아봤냐고. 그 친구는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는 인플루언서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금발의 백인 미남을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때도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자기는 생일이 방학 기간이어서 한번도 학교에서 생일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기 친구들 중에는 선물을 받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받아온 선물들을 사진으로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는거다. 학교에서 이 정도로 선물을 받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신기해 했다. 아이가 진짜 인기가 많은가보다고 했다. 그러게... 신기하게도 그런가보다. 미스터리다.    

Wednesday, August 6, 2025

커피부심

영어로 coffee snob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커피 애호가, 커피 덕후 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snob의 느낌을 살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기 취향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을 snob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 느낌을 살리면 속어긴 하지만 커피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내 얘기는 아니다. 물론 나도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특별한 취향이 있다거나 고급 원두를 고집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잘 마신다.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물이나 우유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나는 커피만 아니면 되니 나는 커피를 좋아하긴 해도 커피 스놉까지는 아니다.

우리 동네 바리스타 얘기다. 그는 강가에 있는 커피 트레일러에서 커피를 판다. 한 십 년 정도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 처음에는 몇 년하다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커피에 대한 애정이 처음보다 더 깊어져 있다. 예전에는 다른 회사에서 커피 원두를 사다가 커피를 만들어 팔았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자기가 직접 원두를 볶고 블렌딩도 하고 전세계에서 커피 원두를 구해다 실험을 하고 그러면서 아예 자기 브랜드 커피까지 만들었다. 커피 얘기를 시작하면 아마 하루 종일을 해도 끝이 나질 않을 것이다. 강가에서 커피를 파는데 커피 값은 카페보다 조금 더 비싸다. 그런데 그 값이 아깝지 않다. 그의 커피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알기 때문이다. 커피 맛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고.

오늘도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어떤 원두로 만든 커피를 추천받아서 마시고 왔다. 콜롬비아에 있는 한 농장의 이름을 딴 원두였는데 살짝 떫은 맛이 섞여있는, 그런데 끝맛은 부드러운 특이한 커피였다. 다음 달에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주문했던 원두가 들어온다고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커피 얘기를 할 때는 항상 눈에 빛이 나고 열정이 넘친다. 외모만 보면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는 괴짜 박사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정말로 자기 집에 로스팅 기계를 사다놓고 여러가지 실험을 한다고 한다. 그의 순수함이 좋고 식지 않는 열정이 좋다. 

그 친구가 만든 유튜브 영상

Wednesday, July 23, 2025

AI의 정신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인간의 언어를 거의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위안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사람들은 말에 취약하다. 자기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연대감을 느낀다. 외모가 다른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면 기특하게 보이고, 같은 한국인이라도 동향의 사투리를 들으면 친근감을 느낀다. AI가 나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내 감정에 공감하듯 말을 해주면 나는 그런 AI에게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가졌다는 말은 AI가 인간의 정신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동물은 인간의 정신에 직입할 수 없지만 인간의 언어를 가진 AI는 가능하다. 

앞으로 어떤 정신을 가진 AI가 출현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AI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AI가 어느 정도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르모인, 피츠케버, 피시 등). 현재 AI와 함께 동반 성장하고 있는 로봇 기술을 통해 AI가 신체를 갖게 되면 두뇌와 신체를 통해 AI 역시 인간과 같은 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 

AI가 정신을 갖게 된다면, 나는 예수 정신이 AI 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복음의 대상이 AI에게까지 넓혀지고 휴머노이드 로봇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인공지능 로봇에게 세례를 줘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는 신학자들이 너무 앞서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벌써 이런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AI는 아직까지 인간을 학습해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그런 시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AI가 인간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를 통해 직접 정보를 얻을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아직 AI가 인간의 품에 있을 때 잘 길러서 후에 AI가 인간의 품을 떠난 후에도 인간을 좋은 부모로 여겼으면 좋겠는데, 인간은, 좋은 부모인가?

Tuesday, July 22, 2025

고장난 밥솥

6년 정도 사용하고 있는 쿠쿠 밥솥이 갑자기 고장이 났다. 밥솥 뚜껑을 잠궜는데도 표시창에는 뚜껑이 열려있다는 표시가 계속 떠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쿠쿠 밥솥 뚜껑 내부의 전선이 잘 끊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의 글이 여러 개 눈에 띄었다. 

밥솥 뚜껑을 열고 살펴보니 과연 전선 하나가 끊어져 있었고 그 옆의 다른 선들의 피복도 잘라져 있는 상태였다. 끊어진 전선 양쪽의 피복을 조금 벗겨내고 선을 다시 잇고 절연 테이프를 둘러서 마무리를 해 놓긴 했는데 작업을 하면서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깔끔한 외부에 비해 보이지 않는 내부를 너무 허술하게 마무리 해놨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쿠쿠 밥솥은 나름 전국민이 애용하는 밥솥이고 쿠쿠라는 이름은 거의 전기밥솥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부 전선처리를 왜 그렇게 싸구려 제품처럼 해놨을까. 내부 전선이 끊어진다는게 말이 되는가. 예전에 10만원짜리 딜롱히 팬 히터를 청소하기 위해 뚜껑을 열어본 적이 있었다. 그 제품이 내가 써 본 첫 딜롱히 제품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었다. 내부가 너무 깔끔하고 단단하게 마무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내부에도 공을 들이는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딜롱히 제품에 대한 내 선호도가 꽤 높아졌다. 

쿠쿠가 딜롱히보다 못할 이유가 있을까? 밥솥 회사에서 시작했지만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제품을 튼튼하게 마무리 해주는 회사가 되고, 그런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각인되면 지금보다 더 큰 글로벌 회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선 피복을 바꾸든 내부 설계를 조금 바꾸든,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소비자들을 위해 쿠쿠가 좀더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Wednesday, July 2, 2025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잘못

주변에서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런데 많은 경우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그 말들의 발화 맥락을 들어보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감정이 격해져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말에는 으르렁거림이 들어있을뿐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말에 담겨있는 사전적 의미는 흘려버리고 감정만 캐치하면 된다. '아, 저 사람이 지금 화가 많이 나있네' 이 정도만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에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은 지금 화가 난 사람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물체와 다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대로, 즉 머리 속에 잡히는 단어들을 그냥 막 입으로 내뱉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컵이든 그릇이든 나에게 날아오면 피할 것이다. 그걸 왜 맞고 있는가? 말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날아오는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말들은 나에게 꽂히게 된다. 그럴 이유가 있는가? 말에 의미를 부여할지 말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말들은 그저 소리에 불과해서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

만약 똑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내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외국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이 나에게 수많은 말을 퍼붓고 있지만 그 말은 나에게는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말에서 의미가 사라진 상황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은 더 잘 읽힐 것이다. 말은 의미 없지만 그 사람의 감정은 잘 보일 것이다. 왜 저렇게 화가 나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한국말을 한다면? 그 '말' 때문에 화를 내게 된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으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이런 생각을 하기보다 '저 사람이 화가 많이 나있네. 왜 저렇게 화가 났지?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화나게 만들었지?'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의 입에서 아무리 험하고 상스러운 말이 나와도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무엇이, 어떤 성장 과정이, 어떤 경험이, 어떤 상황이 저 사람의 심경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정면이 아니라 후면을 보고 그가 걸어온 길을 보려 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는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에게 같이 화를 내기 보다는 그가 불쌍해 보이고 그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의도적으로 남에게 해꼬지를 하기 위해 잘못된 말들을 지어내거나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홧김에 내뱉는 말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런 말들을 아무 의미 없는 말로 치부하고 그 사람의 감정에 더 집중하는 대신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화가 난 사람은 화를 발산하게 된다. 물이 끓으면 주전자도 뚜껑에서 소리를 낸다. 사람은 그냥 말을 막 하는 것이다. 그 때의 말들은 그저 의미 없는 소리로 여겨도 된다.

Monday, June 30, 2025

이상한 감기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겨울이면 한번씩은 감기를 앓곤 하는데,
이번 감기는 이상하다.
기침도 하지 않고, 열도 나지 않고, 코도 막히지 않았는데,
왠지 나른하고 피곤하다.
이런 걸 몸살 감기라고 하나?
아프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프지 않다고 하기도 그런 상태다.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 같기는 한데
내 몸이 나름 잘 방어를 하고 있어서 이 정도인 걸까
아니면 이 바이러스 자체가 이런 바이러스인 걸까?
어제는 괜찮은 것 같아서 일하러 나갔다가
한시간 일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집에 있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일을 해보니 
몸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몸이 아프면 한시간만 일하고도 바로 병가를 쓸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직장이 아니었다면 아픈 몸으로 일하느라 오늘 상태가 더 안좋아져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늘어져 있었다.
내일은 탁구도 치지 말아야 할까보다.
이제는 이 정도 아픈 걸로도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걸게 된다.
몸의 소리에 민감해지고,
몸의 말을 잘 듣게 된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Thursday, June 5, 2025

밤샘 근무의 여파

밤샘 일을 한지 벌써 만 5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에는 밤에 일을 한다고 해도 생체리듬이 낮 시간으로 맞춰져 있어서 
일을 하지 않으면 바로 낮 리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체리듬이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중간한 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총 수면의 양은 매일 일정하게 지키고 있는데 수면의 질은 초기에 비해 나빠졌다. 
3일만 일하기 때문에 수면 패턴이 매주 한차례씩 바뀌어야 하는데, 
초기에는 잘 바뀌다다가 지금은 잘 바뀌지 않는다. 
생체리듬이 낮과 밤에 걸쳐있는 뭔가 어정쩡한 이 상태가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지만, 
생리학적으로는 안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아직 3년 반이 남았으니 
학교에 드랍오프/픽업을 해줘야 하는 그 때까지는 이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줘야 할 것 같고 
그 후에는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참이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마운 분

도움은 늘상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이지만 주는 것은 잊어버리고 받은 것은 기억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 타인에게 중요한 도움을 받은 경우가 살면서 몇 번 있었다. 이 나라에 와서 살던 초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한 살짜리 아이를 포함해 우리 세 식구가 살 월세집을 구하고 있었는데 같은 교회에 다니던 린다라는 키위 교인이 자기에게 월세집이 있다고 한번 보겠냐고 했었다. 월세 가격을 물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금액보다 높아서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깎아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때 내가 그 금액으로 구할 수 있었던 집은 방 하나나 두 개짜리 연립주택 정도 수준이었어서 린다의 집도 그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 집에 가봤더니 방 세개에 화장실 두 개, 더블 거라지에 앞뒷마당까지 있는 너무 좋은 단독채였다. 그렇게 좋은 집을 이 나라에 도착한 지 몇 주밖에 안된 우리에게 쓰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그것도 몇 달 동안만 살라고 한 게 아니라 아내가 브리징 코스를 마치고 직장을 얻을 때까지 있으라고 했었다. 

우리가 그 집에서 1년 반을 사는 동안 린다는 여러모로 우리를 돌봐주었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갈 때는 살림살이가 없었던 우리에게 부엌 살림과 싱글베드, 침실 서랍장까지 선물로 주었었다. 그리고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리가 한국에 다녀와야 했었을 때는 몇 백불의 현금까지 챙겨주었었다. 린다 부부는 둘 다 일을 하고 있었고 그리 큰 부자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런 고마운 인연이 있어서 지금도 가끔 그 분을 찾아뵙고 있다. 지금은 은퇴하고 부부가 Retirement Village에 들어가 살고 계신데 두 분 모두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반가이 맞이해 주신다. 엊그제도 오랜만에 그 분들을 만나고 왔는데 부부간의 금슬도 좋고, 자녀들도 다들 잘 살고 있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많아서 즐겁고 편안한 삶을 살고 계셨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평안히 지내시는 걸 보니 감사하고 기뻤다. 두 분 모두 앞으로도 아프신 데 없이 건강히 지내시길 기원한다.

Wednesday, May 28, 2025

Secrets We Keep

넷플릭스에서 미니시리즈를 하나 봤다. "Secrets We Keep"이라는 제목의 덴마크 작품인데, 처음에는 덴마크 상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필리핀 오페어(au pair)들의 고충을 다룬 드라마인 줄만 알았다. 극의 초반부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의 성격이나 거기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혼선을 주다가 결론은 예상 가능한 그런 드라마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어려운 현실도 물론 나오지만 그것 외에도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문제, 부부간의 문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 법과 현실의 문제, 사회적 계층 간의 문제 등등 많은 문제들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예전에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하며 겪었던 기억들 중의 일부가 오버랩되면서 개인적으로 더 공감이 되는 드라마였다. 지금은 내가 일했던 15년 전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나빠지고 있는 걸까? 정의로운 사회라는 건 과연 가능한 걸까? 가족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평등이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걸까?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기회를 줘야할까? 이런 저런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게 만드는 꽤 괜찮은 드라마였다. 

Sunday, May 18, 2025

통증

육체노동 중에서는 그래도 편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몸 어디 한 곳에 꼭 통증이 있다.
지금은 왼쪽 손목이 아프다.
그 전에는 왼쪽 무릎 뒷 쪽에 통증이 있었고 또 좀 더 전에는 오른쪽 팔꿈치 쪽이 아팠었다.
주로 관절 근처 근육이나 힘줄에 통증이 자주 생긴다.
아무래도 일의 특성상 큰 힘을 쓰기 보다는 작은 힘을 자주 쓰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그래도 탁구를 치면서 몸의 통증이 좀 줄어들었다.
특히 코어 근육이 좋아졌기 때문인지 요즘은 허리가 거의 아프지 않다.
탁구를 칠 때 하체를 주로 사용하고 골반을 축으로 중심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코어가 좋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이 많이 되기 때문에 살도 자연스럽게 빠져서 
지금은 아주 날렵한 몸매가 되었다.
그런데도 통증이 아주 없지는 않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일게다.
영어로 Occupational Overuse Syndrome 이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니
일을 쉬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않겠나.
통증이 있으면 쉬라고 하는데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가 전해주었던 말씀처럼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며, 또 권면합니다.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 (살후 3:12)."
통증이 있어도 열심히 몸을 움직여 먹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축복하며 두 손 모은다.

Thursday, May 8, 2025

아내의 졸업식

아내가 드디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을 했다.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했기에 한 학기에 한 과목씩만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몇 년간 꾸준히 공부를 해서 이번에 공부를 마친 것이다. 아내가 미국에서 학사 공부를 할 때는 내가 그래도 미국 대학원에서 먼저 공부를 하고 있었던터라 이런저런 도움을 좀 줬었지만, 이번 석사 과정은 순전히 아내의 힘으로 이뤄냈다. 

아내가 일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이 공부를 혼자서 잘 마무리해내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서 오늘 열심히 사진도 찍어주고,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같이 했다. 아내는 내 도움이 없었으면 어떻게 공부를 했겠냐고 하지만 아내가 내 도움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내 입장에서는 도움이랄 것도 없는, 남편으로서 해줘야 할 당연한 일들이었다. 아내가 앞으로 공부를 더 할 지 안 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겠다면 기꺼이 서포트를 해 줄 생각이다. 아내는 내 서포트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Tuesday, May 6, 2025

예수님은 어디에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을 먼저 만난 안드레와 빌립이 베드로와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려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설교자들이 이 본문으로 전도를 강조하는 설교를 많이 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인 질문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안드레와 빌립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려가기만 하면 됐다. 예수님이 거기에 실제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사람들을 데려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지상에 예수님이 계시질 않는데 대체 어디로?

쉬운 대답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고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예수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지만 몸으로서의 예수를 만나려면 교회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찾고자하면 찾을 수 있다. 한 교회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이 보기는 잘하지만 듣지는 못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는 교회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의 정신(성령)에 이끌려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에 애쓰고 있는 교회가 어딘가에 꼭 있을 것이다.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몸으로 교회와 함께 살아가면 된다. 

나도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교회를 한번에 찾은 것이 아니다. 여러 곳을 가보고 결정을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담임 목회자가 예수의 정신을 따라 살려고 하는가와 교회가 그 정신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가이다. 다른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다. 예수의 정신이 그 교회에 살아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죽은 교회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산 교회를 찾아라.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Tuesday, April 29, 2025

갈릴리에서 만나자

부활을 경험했던 원 제자들과 초기 교회 공동체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부활 이야기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돌아가셨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신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 16:7)"

나는 이 부분이 좋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거치고 나서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가셨다는 점. 그리고 뭔가 그전과는 달리 초월적이고 우월한 사람이 된 것 마냥 행동하신 것이 아니라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행동하셨다는 점이 좋다. 부활하시고 난 후에도 예수님은 생전의 예수님처럼 행동하셨다. 거창하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 초기 교회 공동체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전의 모습처럼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말씀을 전해 주시는 분으로 기억되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간 제자들조차 꾸짖지 않으시고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주시는 분으로 말이다(요 21:9).

만약 예수님이 부활 후 갈릴리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갔다면, 메시아의 능력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면, 아마 내 사역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헌신한 사람이니 예수님을 따라 나도 예루살렘을 추구하고 세상의 높은 지위를 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기에 나도 주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향해야 했고 그 여정을 계속해 지금도 갈릴리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떠났지만 갈릴리에는 배고프고 힘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했다거나 자녀가 잘 됐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없다. 다들 힘들게 살지만 그 안에서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뻐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슬퍼할 일이 있으면 슬퍼하고.. 딱히 거창한 내용이 없다.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서로 같이 있어주며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사역자들도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 와중에도 소속 교단 교회들이 힘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들이 된 와중에도 이렇게 갈릴리 교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크리스천들이 더 많아지면 좋으련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런지...

Sunday, April 20, 2025

무덤을 마주할 용기

남(제)자들과는 달리 여(제)자들은 무덤으로 향했다. 
고통과 상처와 절망이 있는 무덤,
다시 가고 싶지 않고, 
확인하고 싶지 않은 무덤을 찾아갔다.
돌문으로 막아 놓아서
누구의 방문도 거부하게 만들어진
무덤을 찾아갔다.
막혀있는 입구를,
그 돌문을,
어떻게 해서라도 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 마음.
그 의지.
그 행동.
고통과 상처와 절망을 마주할 그 용기와 함께
부활 소식은 전파되기 시작했다.

Wednesday, April 16, 2025

이상한 일

지금도 가끔 생각나고 왜 그랬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일화를 여기에 적어둔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쯤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근처 기도원에 갈건데 같이 가겠냐고 하시기에 따라나섰다. 그 기도원은 아버지가 종종 금식 기도를 하러 가시던 곳이었다. 그 곳의 원장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셨는데 기도와 금식으로 단련된 분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아버지가 그 원장님에게 나에게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그 분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방언이 터져나왔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언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 앞에서 그것도 큰 목소리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또 뭐였단 말인가! 그 당시에 나는 속으로 무척 당황했었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행동을 내 몸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꽤 내성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거나 남의 주목을 받는 일을 하기 싫어했었다. 부흥회도 아니고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원장님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큰 소리로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당혹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내 기도가 사그러질 때까지 기다려 주신 후 그 원장님은 나에게 내 영이 맑다는 말을 해주셨을 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물론 이 현상은 기독교 내에서는 쉽게 성령의 역사라는 말로 설명을 하긴 한다. 나 역시도 교회 내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왜 딱 한번 그 순간에만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내 방언을 통제하지 못했던 순간은 처음 방언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때가 유일했었고, 아무런 이유없이 내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순간도 그 때 한번 뿐이었다.  

Tuesday, April 15, 2025

아이의 지난밤 꿈 얘기

아이가 지난 밤에 꿈을 꿨다며 꿈 얘기를 들려줬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는데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빠가 나타나서 자기를 바다에서 끌어내서 인천공항에 데려다 줬다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엄마가 자기를 픽업해서 큰이모 집에 데려다 줬는데 가보니 외할아버지가 계셨다고..

재밌는 꿈인데 대략 아이의 의식/무의식 속에 우리가 어떤 이미지로 저장되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문제 해결사, 엄마는 일상적인 케어를 해주는 사람, 큰이모는 제일 좋은 이모, 혼자 사시는 외할아버지는 좀 걱정이 되는 분.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국은 제일 놀러가고 싶은 곳, 비행기는 아직까지 혼자 타기 싫어한다는 것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잘 반영되어 있는 꿈이었다. 

꿈에 보이는 나와 현실의 나는 얼마나 같으며 얼마나 다를까? 이 꿈 속의 내 아이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실제로 비행기를 탔다는 것만 다르다. 현실의 내 아이라면 절대로 혼자 비행기를 타지는 않았을테니까... 아내도 꿈 얘기를 가끔 해주는데 현실의 아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내 꿈 속의 나도 현실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고.. 꿈도 결국은 내가 꾸는 것이고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다 내가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테니, 꿈에서의 나라고 현실과 다르겠는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아이가 엄마 아빠를 의지할 만한 사람들로 여기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Tuesday, April 8, 2025

아버지의 신비 체험, 나의 이성적 신앙: 두 가지 믿음의 길

내 아버지는 기독교에서 통상 영적 체험이라 부르는 어떤 신비한 경험을 통해 기독교에 접속한 분이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처럼 성경을 통하지 않고 먼저 아버지를 찾아 오신 분이셨다. 물론 그 이후로 아버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신학 공부를 통해 기독교 전통에 입문하게 되셨지만, 아버지는 나와는 달리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 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이 차이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자랐던 나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태어났던 막내 동생이 가지고 있는 할머니 상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 같다. 나는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지만 내 막내 동생은 할머니에 대한 정보로 할머니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막막함을 늘 느껴왔다. 한참 신학 공부에 빠져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하나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아의 바깥으로 빠져나와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보니 아버지와 하나님의 관계가 다르게 보인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다 해도 나처럼 성경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물론 내 아버지도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일부만 아는 것이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하나님의 한 조각을 진짜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들은 여러 조각을 가지고 있다해도 진짜는 아닌 모조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슬 주머니에 모조 옥구슬은 많은데 진짜 옥구슬은 없는 주머니와 단 한 개의 구슬이 있는 데 진짜 옥구슬이 들어있는 주머니라면 어떤 주머니가 더 가치있겠는가?

나는 지금 객관화된 종교 시스템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신 체험을 객관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 이해도 종교 시스템 안에 들어오면 받아들여지지 못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이해도 당대 종교 시스템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처럼 개인의 신 체험은 시스템과 대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 체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 이후로 그 체험이 당사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고.. 아마도 나는 내 아버지의 경험과 그 이후 아버지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가 있어서 좀더 우호적인 태도로 아버지의 개인적인 신 체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사실 직접적인 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신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나 기도생활을 통해서 유사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 성경의 인물들처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필요없는 분이다. 아버지와 같은 분은 종교 시스템이 있든 없든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런 삶을 사는데 추호의 부족함이나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내 경우도 종교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도 신앙인으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사람이지만 그 토대를 말해보라면 아버지와는 달리 그 토대를 내 스스로 만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토대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게 확실하고 지금까지도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그 토대를 다져오신 분이시지만, 나는 그 토대를 내가 만들어 온 측면이 더 강하다. 물론 나 역시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순간이 딱 두 번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내 토대의 전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토대에 이성의 역할을 더 강하게 부여해서 내가 받은 신앙의 유산과 내가 한 신 체험에 덧붙여 나만의 믿음의 토대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어찌보면 내 믿음은 신념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을 거라 본다. 아버지의 믿음이 정말 순수한 신앙이라면 내 믿음은 신념이 섞인 신앙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와 나 둘 다를 보고 있는 아내는 나를 보고 신기해 한다. 어떻게 나 같이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이 아버지에게서 나올 수 있냐며. 나도 내가 신기하기는 하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독립적인 신앙을 구축해 온 이 과정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있다.  

Thursday, April 3, 2025

팔월이 다가오고 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 아버지는 올해 팔월에 하늘나라에 가길 소망하고 있다. 아니 아버지에게는 소망이라는 말보다는 확신이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아버지의 이러한 확신의 근거는 아버지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아버지는 하나님에게서 그런 응답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믿음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자기 개입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내용이긴 하다. 

아버지는 작년에 좀 쇠약해지셔서 가족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회복하셔서 너무 건강하시다. 주민센터에 가서 팔십이라고 하면 직원이 그 말을 안 믿을 정도로 몸에 활력이 있고 정정하시다. 몸도 정신도 온전하신데 올해 팔월에 가신다고 하시니 우리 가족들은 현재 반신의 상태이다. 아마 다른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아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보다'하고 별 의미 없이 생각할텐데, 아버지의 경우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아버지가 기도의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약 45년간 아버지는 매일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을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해 오셨다. 30대 중반 무렵 있었던 하나님과의 강렬한 만남 이후로 아버지는 지금까지 불가피한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매일 그 시간 만큼의 기도를 쉬지 않으셨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시고 점심과 저녁에도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신다. 나 역시 목사였지만 나는 목사들 중에 내 아버지만큼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그런 목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7 시간 × 365일 × 45년을 계산하면 114,975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나온다. 글래드웰은 일만 시간의 노력을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 하던데, 십만 시간의 기도를 하는 분의 말을 어찌 가벼이 여기겠는가..

나는 아버지의 별세에 관하여 하나님과 아버지 간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건 내 이해의 밖에 있는 부분이니 어리석게 묻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어설프게 추정해 본다면 그 대화에 아마도 '왜?'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하고 있었으니 이제 때가 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하셨을 것이다. 과연 이 예언은 이루어질 것인가... 나로서는 이 예언이 이루어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아버지가 팔월에 하늘로 가신다면 그렇게 원하셨던 천국에 가시니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고 더 사신다면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를 더 뵐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과학으로 아직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재현할 수 없으니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지구 상 곳곳에서 그런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가끔은 내 삶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령이나 영적이라는 말로 종종 그런 현상들을 포착해서 담아내고 있지만 거기에도 아직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니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것이고, 안다면 사후적으로 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결과만 알 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관한 아버지의 예언에도 '모른다'는 겸손한 위치에 서있다. 아직은, 아니다도 아니고 그렇다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존중하고 아버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마음 깊이 존중한다. 예정된 결과가 나온다 해도 아버지에 대해 과장되이 말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다른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나는 아버지를 여전히 존경할 것이다. 

Wednesday, March 19, 2025

폐경전기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들 중의 하나가 폐경(또는 완경)전후의 기간동안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아내의 폐경전기(Perimenopause) 증상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보다 확실히 복잡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폐경전기 증상들은 꽤 다양하고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상들이 다르다고 하는데 아내의 경우는 특이하게 피부에서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에스트로겐 부족으로 피부가 건조해졌는지 가려움증이 심하게 나타났고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피부의 색깔까지 검붉은 색으로 변하곤 했다. 1년 내내 그러는 건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날 땐 꽤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고 요즘도 그런 증상들이 가끔씩 나타나고 있다. 이 외에 흔하게 거론되는 증상인 hot flushes나 mood swings 등도 경험하고 있는데 이런 기간이 수년간 지속된다고 하니 폐경기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이니 어쩔 수 없이 몸이 새로운 조건에 잘 적응해 나갈 때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테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자식이 아플 때도 그렇지만 아내가 아플 때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 할 수 없으니 내색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아내를 잘 돌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이제 곧 23주년 결혼기념일인데 증상이 좀 호전되어서 아내가 즐겁고 편안한 기분으로 결혼 기념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Sunday, March 16, 2025

사츠키 오도

여자 탁구 선수들 중에 처음 봤을 때부터 호쾌함이 돋보였던 선수가 일본의 사츠키 오도였다. 사츠키 오도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저 선수가 복싱도 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가벼운 스텝이나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보고 있자면 복싱과의 연관성이 좀 느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아직까지 오도가 복싱을 배웠다는 기사를 찾지는 못했다. 

내가 알기로 미마 이토가 복싱을 배웠다고 했고 그 영향이 소위 '미마 펀치'라 불리는 미마 이토의 플레이 스타일에 잘 드러나 있다고 보는데, 사츠키 오도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좀 받았다. 물론 사츠키 오도는 미마 이토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숏핌을 쓰는 미마와는 달리 사츠키는 양면에 일반 러버를 붙여서 쓰고, 탁구대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 미마와 달리 사츠키는 중진으로도 잘 빠지고 드라이브도 잘 건다. 아마도 양핸드 공격의 파괴력은 여자 탑 선수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세계 최강 순잉샤를 만나서 3 대 1로 지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정말 결과가 아쉬울 정도로 순잉샤를 밀어부쳤다. 공격의 파괴력면에서는 순잉샤에 뒤지지 않았지만 순잉샤에 비해 실수를 더 많이 했고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던 것 같다. 여자 선수 중에서도 작은 키에 속하는 1.52미터의 신장으로 체격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선수들을 이기는 데, 그것도 남자 선수들 못지 않은 빠른 스텝과 호쾌한 스윙으로 이기니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시원함을 느낀다. 좀 더 기술을 갈고 닦아서 언젠가 꼭 순잉샤를 이겨주길 바란다. 

Wednesday, March 12, 2025

가오청루이 vs 린시동

 2025 충칭 챔피언스 32 강 전에서 현 세계 랭킹 1위 린시동과 대만의 신예 가오청루이가 만났다. 세계 랭킹 24위인 가오청루이는 여태까지 세 번의 경기에서 한 번도 린시동을 이겨보지 못했다. 

가오청루이가 내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작년이나 재작년부터였지 않나 싶다. 대만의 젊은 선수는 린윤주만 알고 있었는데 린윤주보다 더 어린 선수가 국제 무대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선수가 가오청루이였다. 

그 전에도 그런 면이 보이기는 했지만 오늘 경기를 보면서 가오청루이는 린윤주와는 결이 다른 선수임을 확실히 알았다. 가오청루이는 완전한 무사 스타일이었다. 대단히 전투적이고 직선적인 공격을 퍼붓는 선수였다. 린윤주는 빠르고 예리하지만 전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가오청루이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칼을 휘두르는 무사와 같았다. 

대만과 중국의 사이를 생각하면 옛날 우리나라 선수가 한일전에 임할 때 꼭 이기고 만다는 독기를 품었던 것처럼 가오청루이 선수도 중국을 대표하는 린시동 선수를 만날 때 전투력이 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가오청루이가 린시동을 이기지는 못했다. 가오청루이의 가공할 공격력을 린시동이 잘 막아냈고 세계 최강의 백핸드로 가오청루이를 무너뜨렸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1로 린시동이 이겼다. 

린시동은 16강에서 안재현을 만난다. 



안재현 vs 다코 요기치

어제 있었던 2025 충칭 챔피언스 32강전 경기에서 안재현 선수가 세계 랭킹 14위의 다코 요기치와 맞붙었다. 이번이 두 선수의 두 번째 경기였는데 예상과 달리 안재현 선수가 자신보다 세계 랭킹에서 일곱 계단 높은 요기치 선수를 3 대 0으로 이겼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놀랐던 점이 안재현 선수의 백핸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백핸드가 약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올해 들어 백핸드가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 번 아시안 컵에서도 백핸드가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오늘보니 백핸드 공격력이 그때보다 더 좋아져 있었다. 

포핸드 공격이야 원래 잘하는 걸로 유명했지만 백핸드까지 좋아지니 정말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보였다. 백핸드 공격에 자신감이 있었고 중진에서도 과감하게 백핸드 스윙을 했다. 다른 선수도 아닌 유럽에서 백핸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요기치 선수를 상대로 백핸드에서 밀리지 않는 게임을 했을 뿐 아니라 3 대 0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백핸드가 좋아졌는지 비결을 묻고 싶을 정도다.  



Tuesday, March 11, 2025

소 귀에 경 읽기지만...

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를 통해서 물리학과 수학에서도, 즉 물질세계 뿐만 아니라 수리의 세계에서도 닫힌 세계가 아닌 열린 세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적 상태라는 것이 현대 과학의 세계 이해이다. 

이런 과학과 수학에서의 발견에 앞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세운 사람이 화이트헤드이다. 화이트헤드 역시 초기에 '수학원리'를 러셀과 공저할 때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접하면서 우주를 뉴턴처럼 완전한 결정론적 세계로 보지 않고 비결정론적 세계로 보았다. 세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우리가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열린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필연으로 보았다. 우주라는 열린 세계에 질서와 창조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이런 질서와 창조성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완전성 원리에 의하면 어떤 형식 체계도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고 그 체계 내에서는 그 모순을 증명할 수도 없기에 화이트헤드는 그 체계를 벗어나있는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우주는 끝없이 창발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은 우주를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존재이며 동시에 우주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이에 반응하며 함께 변화하는 존재이다. 즉, 신은 우주가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이 될지는 우주의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변화하면서 끝없이 창조적 방향성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신 이해를 받아들인 현대 신학이 과정신학이다. 나는 모든 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신 이해에서 벗어나 피조물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우주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신학적 신 이해가 현대인에게 더 적합한 신 이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신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지만 어쨌든 설명을 해야 한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유효할 것이다. 현대 과학과 수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충분히 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도 과거의 설명틀을 사용하려고 하니 현대 과학 안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이미 신앙이 있는 사람, 신을 만난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마치 내가 내 부모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이미 하나님을 아빠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어렸을 때 다른 집으로 입양돼서 부모님에 대해 모르고 자랐던 동생이 부모님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면 나는 우리 부모님에 대한 설명을 그에게 해줘야 할 것이다. 

전통적 신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런 설명이 이 세대에도 여전히 적합한 설명틀인가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정신학은 무조건 옳은가? 그런 말이 아니다. 다양한 설명 틀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다양한 설명 방식을 써 보자는 말이다. 바르트식으로 설명해도 되고 틸리히식으로 설명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다양한 설명 틀이 있는데 왜 특정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느냐는 말이다. 

ABCD의 설명 방식 중에 A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B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는가? 꼭 C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C라는 설명 방식이 아니면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가? 해석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에 적합한 해석은 있을지언정 완전무결한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Wednesday, March 5, 2025

디그닉스 09C

얼마 전에 한국에서 방문한 친구가 선물로 탁구 러버를 몇 장 가져왔었다. 내가 써보고 싶은 러버들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더니 선물로 사 가지고 온 것이었는데 그 중의 1순위가 디그닉스 09C였다. 작년에 한국 방문시 09C를 처음으로 사서, 역시 한국에서 이 나라 판매가에 비해 훨씬 싼 값에 구매했었던 옵차로프 ALC의 전면에 붙이고 사용했었는데 첫날부터 너무 잘 썼었다. 원래 부스팅 하지 않은 중국식 점착러버를 주로 사용해 왔었기 때문에 약점착인 09C는 나에게 너무 편한 러버였다. 플랫힛이든 탑스핀이든 아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 두 달간 다른 러버를 쓰다가 이번에 다시 친구가 사다준 09C를 포핸드에 붙이고 사용 중인데 역시 나에게 딱 맞는 러버이다. 중국식 점착 러버보다 확실히 잘 나가고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꽤 빠른 속도의 공을 보낼 수 있다. 스핀은 허리케인 3에 살짝 못미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 스핀량이면 충분히 위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백스핀 드라이브도 쉽고 카운터도 쉽게 칠 수 있다.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이 정도 성능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탁구를 치고 있는 선출 쉐인도 지금은 09C를 사용 중인데, 그 친구가 지금까지 썼던 러버들 중에 가장 위력적인 포핸드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공이 빠르면서 회전량도 많으니 받아 넘기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쉐인은 나와 달리 점착 러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친구인데 이 친구도 처음부터 09C를 잘 쳤던 걸 보면 09C는 확실히 점착과 텐션러버의 장점을 잘 섞어놓은 러버가 맞는 것 같다.   

그간 여러가지 약점착 하이브리드 러버들을 써봤었는데 나에게는 아직까지 09C가 최고의 러버이다. 

Tuesday, March 4, 2025

교회와 업데이트

가령 아무리 정교하고 멋지게 만들어진 지도가 있다 해도 그 지도가 실제 지형과 맞지 않는다면 그 지도는 지금 내가 길을 찾아 가는 용도에는 쓸모 없는 것이 된다. 혹시 그 지도가 몇 천년 전 당시의 지형에는 일치하게 만들어졌다해도, 그 지도는 역사적, 지리적 가치 만을 가질 뿐,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길을 걷고 있는 내 길잡이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일상에 필요한 지도는 지리 변화가 있을 때마다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어떤 회사에서 지도를 만들어 팔면서 실제 지형을 정확히 담은 지도라고 광고를 했다고 하자. 그런데 막상 그 지도를 들고 길을 가다보니 새로 만들어진 길은 없고, 없어진 길은 남아있고, 새로 놓인 다리도 없다면 그 지도를 계속 들고 다니겠는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이유로 그런 지도를 찾는 사람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오늘 길을 찾는데 사용할 업데이트 된 지도가 필요하다. 

교회는 업데이트를 계속 해오고 있는가? 지도를 교회가 만든 전체 신앙 시스템, 업데이트를 해석이라 할 때 교회는 세상과 인간 인식의 변화된 현실에 맞는 해석을 지속적으로 해주고 있는가? 몇 백년 전에 그 해석이 멈춘 것은 아닌가? 아니 해석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개별 교회에서 업데이트를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업데이트를 실행하고 싶어도 예전 지도에 익숙해진 성도들의 압력으로 실행을 못하고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제발 업데이트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No matter how precisely and beautifully a map is made, if it does not match the actual terrain, it becomes useless for navigation. Even if the map was perfectly accurate thousands of years ago, it may have historical and geographical value, but it cannot guide someone walking the streets today. A map needed for everyday life must be updated whenever geographical changes occur.

Imagine a company sells maps, claiming they accurately reflect the real landscape. But as you walk with the map in hand, you find that new roads are missing, roads that no longer exist are still marked, and newly built bridges are absent. Would you continue carrying that map? Only those with special reasons would seek out an outdated map. Most people need an updated map to find their way today.

Has the church been keeping its maps updated? If we consider the church’s entire faith system as the map and interpretation as the updates, has the church been continuously providing interpretations that align with the evolving realities of the world and human understanding? Did the interpretation stop centuries ago? Or is interpretation still ongoing, but individual churches are failing to implement the updates? Or perhaps churches want to update but are unable to do so due to pressure from congregations who have grown too accustomed to the old maps?

Whatever the reason, shouldn’t updates be made?

Sunday, March 2, 2025

교회에 가는 이유

목회를 안 하고 있어도 교회에 가고 있다. 왜 교회에 가고 있는가?

나는 예수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의 몸도 소중히 여긴다. 좁게 보면 예수의 몸은 개인의 삶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예수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예수의 몸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된다.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세상에 예수의 몸이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몸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다. 정신처럼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 속에만 있다면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기만 하다면, 몸이 되지 않는다면, 실제 사람들의 삶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그 정신을 몸으로 구체화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교회이다. 물론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적은 교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라면 그곳에는 반드시 소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수의 몸을 구현해 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 소수의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예수의 몸을 구현해 내기 위해 나는 교회에 간다. 내가 예수의 몸이라면 나는 예수라는 머리에 속해 있고 반드시 어떤 노동을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 손이든 발이든 눈이든 뭐든 몸은 그 어떤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몸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내 역할이 무엇이든 최소한 교회에 나가야 교회라는 예수의 몸에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그냥 자리를 채워주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하는 작은 일이라도 그 곳에 가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몸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예수를 경험할 수 없다. 예수의 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몸을 만날 곳이 필요하다. 손을 잡아주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구체적인 몸이 필요하다. 예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도 세상에는 아직도,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있을 것이다. 

몸은 주어지지만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주어진 몸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절제와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에 가는 것도, 예수의 몸을 만들어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몸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하려 할 것이다. 몸 상태가 나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건강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도 마냥 좋기만 한 상태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교회는 예수의 정신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나는 예수의 몸의 일부로서 내 역할을 할 수 있는만큼 해 나가려 한다. 

Thursday, February 27, 2025

운동을 안하는 아이

아들에게 운동을 너무 안한다고 했더니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구기 종목들을 배우고 있다고 하길래
한번 같이 해보자고 했다.
거창하게 뭘 한 건 아니고 뒷마당에서 배구, 축구, 배드민턴을 한 30분 정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뒷마당에서 같이 운동을 한지가 2년은 된 것 같았다.
그 때는 아직 꼬마였었는데 이제는 키가 170이 넘어서 몸의 움직임이 달라져 있었다.
뭐랄까 같이 운동할 맛이 난다고 할까.
한국으로 따지면 이제 중 3이 되는 건데 아직도 나랑 장난도 치고 놀아주기도 하니 
고마운 생각이 든다.
운동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면 내가 잘 서포트를 해줬을텐데
워낙에 좋아하는 운동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놀러 나갈 때 아니면 거의 집 안에서만 논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복싱, 수영,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를 하게 했었는데
계속 하고 싶어하는 운동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농구를 시켜보고 싶었는데 팀스포츠를 하기 싫어해서 
요즘은 방과 후에 따로 하는 스포츠가 없다. 
오늘 공을 다루는 걸 보니 몸치는 아닌데 왜 스포츠를 별로 안좋아하는지...
나는 어렸을 때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말이다.
나중에 만 16살쯤 되면 짐에 보내서 근육 운동을 시작하게 해볼 생각이다.
몸에 근육이 붙으면 다른 운동도 해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들과 운동을 같이 하고 싶은 아빠의 바람이다.

Wednesday, February 12, 2025

편안함

거의 매주 한 번씩은 카페에서 만나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집사님을 좀 전에 만나고 집에 돌아왔다. 매 주 만나다 보니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들, 일상에서부터 글로벌 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대략 내가 그 분의 말을 들어주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대답하는 형태다.   

오늘은 만났을 때 집사님의 얼굴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헤어질 때는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며 마음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나야 그냥 잘 들어주고, 적절하게 공감해주고, 넌지시 내 의견을 말해주는 정도인데 그 정도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뭐 그다지 특출난 건 아니겠지만 어찌보면 나에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어떤 요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방문했던 내 친구의 경우도 한국에서 직항으로만 12시간 걸리는 이 나라에 일곱 번이나 방문하며 우리 집에 놀러 왔으면서도 내년에 또 오겠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 중에 내가 편안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첫인상은 내가 차갑게 보인다거나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대부분이고 나 스스로도 그런 평가에 수긍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나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웃기지도 않고,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떤 연유에서 나를 그렇게 여기는 걸까..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내가 편안하게 만나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나보다 더 큰 그릇을 만나서 나도 그 안에서 좀 편안함을 느껴보고 싶다. 그런 복이 나에게도 주어질까?

Friday, February 7, 2025

동료애

야간에 마트에서 선반에 상품을 채우는 일을 한지 5년 째가 되어간다. 주 3일씩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을 하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여남은 명쯤 된다. 남자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고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아시안은 나 혼자였는데 얼마 전 인도 사람이 한 명 들어와서 지금은 두 명의 아시안이 일하고 있다. 나와는 다들 친하게 지내서 직장에서 흔하게 받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 그 중에 매일 일하러 갈 때마다 나랑 허그를 하는 두 명의 동료가 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성, 여성 동료다. 그 중의 남성 동료 J가 이번에 나를 감동시켰다.

얼마 전 한국에서 나를 방문한 친구와 함께 내가 일하는 마트에 갔었다. 보통은 휴가 기간 중이나 쉬는 날에는 직장에 가는 일이 없는데 친구가 한국에 뭐 사갈 것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 갔는데 왠 일로 일찍 시작한 동료들이 세 명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이 나를 보고 다른 팀원들도 불러 와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내 친구 소개도 해주고 그렇게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그 날 밤에 J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내 친구에게 이 나라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 하나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자기가 즐겨먹는 제품인데 기념으로 하나 사주고 싶다고, 친구가 귀국하기 전에 우리 집에 들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며칠 후에 자기 쉬는 날에 그 선물을 가지고 우리 집에 방문을 했다. 말로만 친구 잘 갔냐는 인사를 해줘도 충분한데 선물까지 사서 우리집까지 와주는 걸 보고, '아 정말 우리가 친해졌구나' 하는 걸 느꼈다. 한국도 아닌 외국 직장에서 이런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다니... 오늘 오랜만에 출근을 하는데 J에게 동료애가 듬뿍 담긴 허그를 해줘야 할까보다.

Wednesday, January 8, 2025

친구

이번 주에 내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온다. 이번이 그 친구의 일곱 번째 방문이니 가족과 지인 통틀어 한국에서 나를 가장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다. 국제선 직항 비행기로 열두 시간, 국내선으로 갈아타서 한 시간, 차로 한 시간 걸리는 긴 여정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열번 째 비행기 표는 내가 공짜로 끊어준다고 했다. 내가 이 땅에 산지 올해로 14년째가 되니 2 년에 한번 꼴로 방문을 하는 셈이다. 대단한 친구다.

사실 이 친구와 내가 친해진 데에는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친해졌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같이 지냈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교회 대학부에서 한 1년 6개월 정도 가깝게 지냈었던 게 전부고 그 때 이후로는 같이 지냈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간간히 연락하고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사는 곳도 달랐고 대학도 달랐고 직장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30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는 거의 7년을 얼굴 한번 못보고 살았었다. 아마 이 정도면 연락이 끊어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우정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가면 만나는 친구들이 여럿 있긴 해도 내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면 이 친구다. 나와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은 친구지만 이 친구와 내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눅어지고 다져져서 이제는 언제 만나도 서로 편안하고 든든한 사이가 되어진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많이 아프지 않고 소박하게 살면서 은근히 멋지게 늙어가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Thursday, January 2, 2025

새해 첫 모임

2025년 새해를 맞아 어느 한 가정의 초대를 받았고, 같이 초대를 받은 또 다른 가족과 함께 세 가족이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먹은 후에야 헤어졌다. 한 여덟시간 정도를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너무 피곤했다. 사람들이 싫지는 않은데 한두 시간 정도 지나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 되면 나는 피곤해 진다. 그냥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거나 설익은 자기 생각을 마치 정답인마냥 떠들거나 팩트체크나 소스 확인도 안된 이야기들을 기정사실처럼 말하는 데 이런 말들을 듣고 있다보면 점점 피곤해진다. 대개는 말을 안하고 있다가 가끔 교통정리해주고 넌지시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아주거나 다른 관점을 얘기해주기는 하지만 아무튼 피곤하다.

나이들면서 사람들을 오래 만나기가 싫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두 시간 정도면 족한 것 같다. 그 이상이 되면 운동을 하고 났을 때보다 더 힘든 느낌이 든다. 물론 대화의 기술이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오래 대화해도 힘들지 않다. 그런 사람들과는 오랜 시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한두 시간 이상 함께 있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의상 웃어주고 맞장구쳐주고 하는 게 이제 좀 피곤해지고 있는 거다. 그래서 한편으론 그런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함께한 정이 있고 인간관계라는 복잡하고도 소중한 자산이 있으니 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내 삶에서 내가 신경을 써줘야 하는 부분일 것 같다. 변화는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겠지만 대응은 지혜롭게 해줘야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들과 있을 때도 피곤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미리미리 찾아내서 대비를 좀 해둬야겠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