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8, 2025

아버지의 신비 체험, 나의 이성적 신앙: 두 가지 믿음의 길

내 아버지는 기독교에서 통상 영적 체험이라 부르는 어떤 신비한 경험을 통해 기독교에 접속한 분이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처럼 성경을 통하지 않고 먼저 아버지를 찾아 오신 분이셨다. 물론 그 이후로 아버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신학 공부를 통해 기독교 전통에 입문하게 되셨지만, 아버지는 나와는 달리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 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이 차이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자랐던 나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태어났던 막내 동생이 가지고 있는 할머니 상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 같다. 나는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지만 내 막내 동생은 할머니에 대한 정보로 할머니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막막함을 늘 느껴왔다. 한참 신학 공부에 빠져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하나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아의 바깥으로 빠져나와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보니 아버지와 하나님의 관계가 다르게 보인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다 해도 나처럼 성경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물론 내 아버지도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일부만 아는 것이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하나님의 한 조각을 진짜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들은 여러 조각을 가지고 있다해도 진짜는 아닌 모조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슬 주머니에 모조 옥구슬은 많은데 진짜 옥구슬은 없는 주머니와 단 한 개의 구슬이 있는 데 진짜 옥구슬이 들어있는 주머니라면 어떤 주머니가 더 가치있겠는가?

나는 지금 객관화된 종교 시스템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신 체험을 객관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 이해도 종교 시스템 안에 들어오면 받아들여지지 못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이해도 당대 종교 시스템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처럼 개인의 신 체험은 시스템과 대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 체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 이후로 그 체험이 당사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고.. 아마도 나는 내 아버지의 경험과 그 이후 아버지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가 있어서 좀더 우호적인 태도로 아버지의 개인적인 신 체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사실 직접적인 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신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나 기도생활을 통해서 유사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 성경의 인물들처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필요없는 분이다. 아버지와 같은 분은 종교 시스템이 있든 없든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런 삶을 사는데 추호의 부족함이나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내 경우도 종교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도 신앙인으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사람이지만 그 토대를 말해보라면 아버지와는 달리 그 토대를 내 스스로 만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토대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게 확실하고 지금까지도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그 토대를 다져오신 분이시지만, 나는 그 토대를 내가 만들어 온 측면이 더 강하다. 물론 나 역시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순간이 딱 두 번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내 토대의 전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토대에 이성의 역할을 더 강하게 부여해서 내가 받은 신앙의 유산과 내가 한 신 체험에 덧붙여 나만의 믿음의 토대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어찌보면 내 믿음은 신념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을 거라 본다. 아버지의 믿음이 정말 순수한 신앙이라면 내 믿음은 신념이 섞인 신앙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와 나 둘 다를 보고 있는 아내는 나를 보고 신기해 한다. 어떻게 나 같이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이 아버지에게서 나올 수 있냐며. 나도 내가 신기하기는 하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독립적인 신앙을 구축해 온 이 과정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