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30, 2010

예수의 흔적

말씀이 육신을 입을 때, 오직 그때에만 구원은 가능하다.

예수님은 온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셨고,

제자들은 그런 그분을 말씀 그 자체로 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것도 다름아닌 자신의 살과 피이다.

십자가 죽음 후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닌 몸의 부활이었다.

그 새로운 몸에도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에 새겨진 십자가의 흔적-손에 못자국, 허리에 창자국-을 보고 부활을 믿었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싶은가.

당신의 손을 내밀라.

거기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당신의 삶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나눔의 흔적이 있는가?

낮아짐의 흔적이 있는가?

사랑의 흔적이 있는가?

세상의 악과 싸운 흔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흔적으로 주님을 전하라.

없다면 조용히 입 닥치고 먼저 그 흔적을 당신의 몸/삶에 새기라.

제발, "입"은 그 후에 열자.

Wednesday, May 19, 2010

그 방법 밖에 없는건가..

아, 결국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

대기업 재단이 매년 십억씩을 대주는 방향으로..

 

그래서 힘있는 자들, 돈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고

섬겨주고 그래야 하나보다.

그래야 돈을 얻어 낼 수 있으니까..

우리 학교 아이들도 최고로 교육을 시켜서 부자 만들고

유명한 정치가 만들고 그래야 하나보다.

그래야 이 아이들도 커서 돈 좀 쓸테니까..

어리석구나..

대자본의 힘을 빌어서 밖에 할 수 없더냐..

그 안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 지겠는가..

그 돈을 대주는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들어내는 교육 아니겠는가..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입시 교육 아니겠는가..

기득권 세력에 편입하려는 교육 아니겠는가..

그런 학교를 또 뭐하러 만드나..

입시 지옥과 인종 차별적인 학교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심신을 치유하고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워내는 그런 학교를 만들면 안되나..

규모가 작고 허름하고 학생 수가 몇명 안되더라도

학교에 갈 수 없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봐주는

그런 학교면 안되나..

답답하구나..

 

 

필요하면

"Preach the gospel constantly and, if necessary, use words"

- Francis of Assisi


"끊임없이 복음을 전파하라. 그리고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라"

-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말이 아닌 몸/삶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

몸이 앞서고 말이 뒤를 따르는 상태.

끊임없이 몸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려면

내 삶이 어떠해야 하겠는가.

말로하는 복음 전파보다 훨씬 어렵지 않겠는가.

프란체스코는 왜 그 어려운 길을 갔는가.

그래야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프리칭은 단순한 전파가 아니다.

프리칭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행위를 하는 데

말이 아닌 몸/삶을 사용한다.

Incarnation.

프란체스코도 말씀이 몸을 입어야만 구원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까..

 

Tuesday, May 18, 2010

돈을 받아야만 하나?

이 동네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 해야 자립심도 생기고

스스로 당당해지게 된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공짜로 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돈을 내도록 해야

자본주의 훈련도 되고 자존심도 생긴다는 이야기 말이다.

 

돈 몇 푼에 자기 자존심을 일치 시키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러한 생각을 바꿔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어떻게 돈과 자존심을 연결하려고 하는가..

 

3천원짜리 밥을 5백원 주고 먹게 해주면 그 사람이 떳떳해하고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가?

차라리 돈을 주고 받아야만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돈이 없어도 사랑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은 사람들이

그 정도의 은혜도 베풀지 못하는가?

돈으로가 아닌 은혜로 그들을 감화시키고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자본주의 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그 나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 그들을

동참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공짜로 먹으니까 감사함을 모른다고?

그럼 돈 몇백원 내고 먹으면 감사해 할까?

 

감사할 줄 모르는 몇 명도 있지만

감사해 하는 몇 명도 있다.

 

공짜로 열명을 먹였는데

그 중의 한사람만이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으로

그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녹일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은혜도 주는 것이다.

받기 시작하면 사랑도 사라지고 은혜도 사라지는 법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 뭔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주었듯

그들도 남들에게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Wednesday, May 12, 2010

허위의식

지식인의 허위의식 이라는 말이 있다.

말로는 민중, 소외자 들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소외계층이 아닌 사람들.

갈 곳이 있고 뒤를 받쳐줄 사람들이 있으면서

마치 자기들도 소외계층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입으로는 마르크스와 사회주의를 외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그 곳에서 몸을 빼 떠났던 사람들.

 

신앙인의 허위의식이란 어떤가.

말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돈과 명예와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돌아갈 집이 있고 쌓아둔 돈이 있고 뒤를 봐줄 사람들이 있으면서

말로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산다고 하는 사람들.

입으로만 하나님나라를 외치는 사람들.

 

포즈는 좋다.

사진이외에 남는 게 무엇이냐.

Monday, May 10, 2010

일 중독 사회

일이 또 슬슬 많아질 조짐이 보인다.

일 중독 사회.

왜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쪽으로

사회가 발전해 나가지 못하는 걸까.

 

Saturday, May 1, 2010

아들

오늘 아이의 성별을 알았다.

아들이란다.

 

아들이든 딸이든 첫번째 아이를 위해 해왔던 기도가 있다.

욕심이 없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욕심이 없는 아이,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

이거면 된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날때는 몸이 필요한데

이 아이가 그 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

자연 속에서 살게 해주는 것.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과 풀이 있는 곳

빌딩이 아닌 산과 나무와 개울이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아이의 교육?

나중 문제다.

우선은 놀아야 한다.

맘껏 즐겁게, 놀 수 있는 만큼 놀아야 한다.

엄마 아빠와 친구와 자연에게서 배우는 것이 먼저이다.

글을 통한 지식 전달은 그 후여야 한다.

 

어떻게 이걸 현실로 만들지 생각중이다.

현재 나에게 가능한 대안은 네가지이다.

1번이 될지, 2번이 될지, 3번이 될지, 4번이 될지..

아직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조만간 결정이 나긴 할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