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청소일을 하고 있는 콩고인 동료 J는 정치적 망명을 통해 뉴질랜드로 온 사람이다. J에 의하면 콩고는 민주 공화국이지만 말만 그렇지 실제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나라란다. J는 본래 경찰 수사관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반체제 인사를 체포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자 자신의 직업은 물론 집과 재산까지 모두 빼앗겼다고 한다. 그리고 체포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때 카톨릭 신부, 개신교 선교사와 함께 갇히게 되었단다. 신부와 선교사를 구하기 위한 교황청과 미국의 도움으로 J까지 같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7명의 아이들과 이웃나라로 피신한 후 뉴질랜드로 오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한다.
J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내 인생은 참 편한 인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 내 삶의 모습을 보고 고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지만, 지구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내가 지금하고 있는 고민이 얼마나 하찮은 고민인가 하는 것을 쉽게 깨달을 것이다. 정말 고민해야 할 내용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나라, 즉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동등하게 대접받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되는 그런 세상의 실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민도 상대적이다. 지금 현재의 고민이 절대적인 것 같겠지만, 고민도 상대화시켜야 한다. 고민을 상대화 시키지 못하면 결국 고민이 내 삶을 지배할 것이고 그 안에 갇힌 나는 그 고민의 노예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라도 내 삶과 관련된 소소한 고민들을 상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Friday, December 30, 2011
Wednesday, December 21, 2011
취직하다
드디어 일자리를 찾았다.
일전에 면접을 보았던 뉴질랜드 청소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시간도 정확히 내가 원하던 저녁시간 5시 15분부터 하루 4시간 30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청소할 장소도 시청과 시립도서관이다. 게다가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고 팀으로 일을 하니 크게 어렵지 않을듯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정확히 필요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청소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자리였는데, 일전에 썼던 글에서처럼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친구가 추천을 해줘서 면접을 보고 이렇게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실업자들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쓰는 동지들이 많이 있을텐데, 실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도 크리스천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얻어서 좋기는 하지만 나 혼자만 실업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 땅에서의 삶이 다 그런것 같다.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내가 원하던 것을 얻어서 기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정말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세상, 예수님이 그려준 하나님나라의 모습, 못 가진자, 실업자 모두가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어서 와서 정말 맘놓고 기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마라나 타!
일전에 면접을 보았던 뉴질랜드 청소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시간도 정확히 내가 원하던 저녁시간 5시 15분부터 하루 4시간 30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청소할 장소도 시청과 시립도서관이다. 게다가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고 팀으로 일을 하니 크게 어렵지 않을듯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정확히 필요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청소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자리였는데, 일전에 썼던 글에서처럼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친구가 추천을 해줘서 면접을 보고 이렇게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실업자들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쓰는 동지들이 많이 있을텐데, 실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도 크리스천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얻어서 좋기는 하지만 나 혼자만 실업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 땅에서의 삶이 다 그런것 같다.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내가 원하던 것을 얻어서 기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정말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세상, 예수님이 그려준 하나님나라의 모습, 못 가진자, 실업자 모두가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어서 와서 정말 맘놓고 기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마라나 타!
Monday, December 19, 2011
3주 휴가가 가능한 교회
크리스마스부터 신년초에 걸친 3주간의 휴가.
이 꿈같은 휴가가 교회 사역자들에게 가능한가?
한국 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뉴질랜드 교회에서는 가능하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키위교회 목회자들 전원이 교회 사무실도 닫고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3주간의 휴가에 들어간다.
담임목사, 부목사, 중고등부, 어린이 사역자들, 행정직원까지 말이다.
물론 뉴질랜드니까 가능한 일이다.
대개의 직장인들이 2, 3주씩 휴가를 떠나는 나라 아닌가..
문화 자체가 그러니 교회에서도 목사들이 3주씩 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주일 한번을 쉬기가 어렵다.
목사들 스스로도 휴가 때문에 주일에 사역을 안한다는 자체를 싫어할 것이고, 설령 주일을 쉰다고 해도 교인들이 그 모습을 좋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보다 더 휴가에 인색한 모습이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 휴가 기간에 교회 행사(성경학교나 수련회)에서 봉사하라고 한단다.
교인들을 그렇게 들볶는데 사역자들이 어떻게 주일에 휴가를 떠나겠는가..
산위의 도시가 되어야 할 교회가 산아래 도시보다 더 못하니..
한국 교회도 이제는 교회 직원들이나 사역자들에게 충분한 휴가를 주고, 교인들의 휴가를 뺏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흙과 인간
아이가 흙을 좋아한다. 내가 텃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고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꼬챙이 하나를 손에 쥐고 이곳 저곳 기우뚱기우뚱 옮겨다니며 땅을 헤집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농사군의 모습이다. 게다가 이녀석은 흙을 먹기까지 한다. 아직은 모든 것을 입에 집어넣는 시기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흙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이 머리에 박혀있는 나로서는 흙을 입에 넣는 아이의 모습이 영 생경하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나 역시 저 나이때는 그랬을 것인데 말이다.
흙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우리의 몸이 흙에서 나왔다는 창세기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의 몸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다시 땅으로 돌아갈거라는 그 신비로운 말씀말이다. 그 말씀에 의하면 아이가 흙을 좋아하는 것은 정말 말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흙에서 동질감을 느낄테니 말이다. 몸과 흙을 하나로 본 고대 히브리인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놀라다가 흙 안에 깃든 생명의 현묘함에 잠시 아득했다. 내 눈앞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며 흙을 헤집는 저 아이의 생명은 과연 어디에서 온것일까.. 내 생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 몸은 흙에서 빌려썼는데 흙이 아닌 생명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기독교 신앙은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에게 둔다. 쉽게 말하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명이 내 것이라면 함부로 할 수도 있겠지만,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명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 귀한 생명이 깃들어있는 몸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하나님도 몸을 먼저 만들지 않았던가.. 몸이 없으면 하나님의 숨이 담길 곳도 없는 법. 하나님은 아이를 통해 숨쉬고 아이는 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흙(자연)과 그곳에서 나온 인간을 통(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그런 방법이 있다고 지랄하는 자의 소리는 모두 무시하시길..
흙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우리의 몸이 흙에서 나왔다는 창세기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의 몸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다시 땅으로 돌아갈거라는 그 신비로운 말씀말이다. 그 말씀에 의하면 아이가 흙을 좋아하는 것은 정말 말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흙에서 동질감을 느낄테니 말이다. 몸과 흙을 하나로 본 고대 히브리인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놀라다가 흙 안에 깃든 생명의 현묘함에 잠시 아득했다. 내 눈앞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며 흙을 헤집는 저 아이의 생명은 과연 어디에서 온것일까.. 내 생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 몸은 흙에서 빌려썼는데 흙이 아닌 생명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기독교 신앙은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에게 둔다. 쉽게 말하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명이 내 것이라면 함부로 할 수도 있겠지만,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명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 귀한 생명이 깃들어있는 몸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하나님도 몸을 먼저 만들지 않았던가.. 몸이 없으면 하나님의 숨이 담길 곳도 없는 법. 하나님은 아이를 통해 숨쉬고 아이는 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흙(자연)과 그곳에서 나온 인간을 통(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그런 방법이 있다고 지랄하는 자의 소리는 모두 무시하시길..
Sunday, December 18, 2011
진정한 비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롤로 메이(R. May)에까지 이르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지혜서들은 '진정한 비극을 대면하는 체험은 일면 정화적'이며 따라서 그 참여자들을 화해시킨다는 점을 전한다"(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p.21, 김영민).
이 말이 옳다면, 진정한 비극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그 사건을 <대면>하는 사람들을 정화/회개시켜 화해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진정한 비극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그 사건을 <대면>하는 사람들을 정화/회개시켜 화해에 이르게 할 것이다.
Saturday, December 10, 2011
닥터페퍼
음식 중에는 특별히 어떤 추억과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 있다.
내게 있어서 그런 음식 중의 하나가 Dr. Pepper이다(탄산음료를 음식이라 하니 좀 그렇지만 본래 '음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을 뜻하니 그리 불러도 괜찮을 듯 싶다).
닥터페퍼는 Waco, Texas에서 처음 만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유학 생활을 했던 텍사스주에서는 코카콜라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음료수였다. 내가 닥터페퍼를 처음 접했던 때는 미군부대에서 근무했을 때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맛을 영 느끼지 못하다가 나중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야 이 음료수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는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페인트를 칠했었는데, 대개의 경우 15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 매번 이 음료수를 마셨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돈이 없었던 때라 제일 싼 음료수를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제일 싼 음료수가 바로 닥터페퍼였다. 그 때 블루셔츠를 입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1불에 2개 또는 3개씩 팔리던 닥터페퍼를 마시며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었다. 그 기간이 무려 4년이었고 그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과 일을 했었다. 그 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오늘 아시안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Dr. Pepper를 발견했다. 가격은 무려 NZD 2.20.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추억을 산다는 기분으로 거금(?)을 지불하고 그 음료수를 사서 마셔보았다. 닥터페퍼, 혀끝에 감도는 그 여전한 향긋함 속에 텍사스의 열기와 페인트 냄새가 아련히 배어있었다.
내게 있어서 그런 음식 중의 하나가 Dr. Pepper이다(탄산음료를 음식이라 하니 좀 그렇지만 본래 '음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을 뜻하니 그리 불러도 괜찮을 듯 싶다).
닥터페퍼는 Waco, Texas에서 처음 만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유학 생활을 했던 텍사스주에서는 코카콜라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음료수였다. 내가 닥터페퍼를 처음 접했던 때는 미군부대에서 근무했을 때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맛을 영 느끼지 못하다가 나중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야 이 음료수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는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페인트를 칠했었는데, 대개의 경우 15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 매번 이 음료수를 마셨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돈이 없었던 때라 제일 싼 음료수를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제일 싼 음료수가 바로 닥터페퍼였다. 그 때 블루셔츠를 입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1불에 2개 또는 3개씩 팔리던 닥터페퍼를 마시며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었다. 그 기간이 무려 4년이었고 그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과 일을 했었다. 그 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오늘 아시안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Dr. Pepper를 발견했다. 가격은 무려 NZD 2.20.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추억을 산다는 기분으로 거금(?)을 지불하고 그 음료수를 사서 마셔보았다. 닥터페퍼, 혀끝에 감도는 그 여전한 향긋함 속에 텍사스의 열기와 페인트 냄새가 아련히 배어있었다.
효자
어제 우리집에 아이가 이곳에서 사귄 일본 친구들이 놀러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인데, 둘다 2010년 8월생으로 우리 아이와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약간 크고 두 아이, 소스케와 세이나, 는 또래보다 약간 작아서 셋이 같이 서있으면 우리 아이가 형이나 오빠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놀러오기 전에는 아이가 친구들이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좀 했었다. 이제껏 모든게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살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녀석이 대견하게도 두 아이가 모든 장난감을 다 차지하고 노는데도 전혀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둘이 노는 모습을 좋아하며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2시간 동안 함께 노는데 장난감 가지고 한번도 다투질 않았다. 아직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정말 내 기도대로 욕심이 없는 아이가 태어난 것일까..
아이들 엄마들과 얘기하면서 우리 아이가 얼마나 키우기 쉬운 아이인가도 알게 되었다.
한 아이는 음식 알러지가 있었고, 한 아이는 과일을 잘 먹질 않았다. 둘 다 피부가 약해서 기저귀도 비싼 것만 쓰고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우리 아이는 음식 알러지도 아직까지 없었고, 과일도 잘 먹고, 피부도 강해서 제일 싼 기저귀를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아토피도 없고... 효자가 따로 없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인데, 둘다 2010년 8월생으로 우리 아이와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약간 크고 두 아이, 소스케와 세이나, 는 또래보다 약간 작아서 셋이 같이 서있으면 우리 아이가 형이나 오빠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놀러오기 전에는 아이가 친구들이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좀 했었다. 이제껏 모든게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살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녀석이 대견하게도 두 아이가 모든 장난감을 다 차지하고 노는데도 전혀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둘이 노는 모습을 좋아하며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2시간 동안 함께 노는데 장난감 가지고 한번도 다투질 않았다. 아직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정말 내 기도대로 욕심이 없는 아이가 태어난 것일까..
아이들 엄마들과 얘기하면서 우리 아이가 얼마나 키우기 쉬운 아이인가도 알게 되었다.
한 아이는 음식 알러지가 있었고, 한 아이는 과일을 잘 먹질 않았다. 둘 다 피부가 약해서 기저귀도 비싼 것만 쓰고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우리 아이는 음식 알러지도 아직까지 없었고, 과일도 잘 먹고, 피부도 강해서 제일 싼 기저귀를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아토피도 없고... 효자가 따로 없다.
Friday, December 9, 2011
엘리야의 까마귀
최저임금 일자리는 대개 진입장벽이 낮은 일자리들이다.
그 분야에 경력이 없어도 일단 일을 배우고 시작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 일들이다. 그런데 지금 주로 그런 일들을 찾고 있는데도 일자리가 없다.
얼마전에는 편의점과 청소회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눈높이를 낮출 만큼 낮췄다고 생각하는 데도 일자리를 못찾고 있으니 참...
지금껏 살아온 중에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태껏 일자리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석달정도 일자리를 못잡고 쉬다보니 실업자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이 와중에서도 이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친구가 나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스리랑카 사람들을 많이 도왔었는데, 뿌린대로 거두는 것일까, 일면식도 없었던 스리랑카 친구가 이곳에서 나를 돕고 있다.
그 친구는 회계사인데 일자리를 잡지 못해서 현재 청소일과 피자 배달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내가 지원한 청소 회사도 그 친구의 추천으로 지원한 곳인데, 지금도 틈만 나면 계속 상사들에게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그 회사에서 청소일을 잡으면 다 그 친구 덕이라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친구가 피자 배달도 하는데, 가끔씩 주문착오로 배달하지 못한 피자를 늦은 밤 퇴근하면서 우리집에 주고 가기도 한다.
덕분에 먹을 게 없을 때는 도미노 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밤중에 그 친구가 주고간 피자 몇 상자를 보고 있노라면 '엘리야의 까마귀란 이런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스리랑카인들을 도울 때는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멀리 뉴질랜드에서, 이나라에 살고 있는 그 많은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스리랑카인인 그 친구만이 나를 돕다니..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분야에 경력이 없어도 일단 일을 배우고 시작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 일들이다. 그런데 지금 주로 그런 일들을 찾고 있는데도 일자리가 없다.
얼마전에는 편의점과 청소회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눈높이를 낮출 만큼 낮췄다고 생각하는 데도 일자리를 못찾고 있으니 참...
지금껏 살아온 중에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태껏 일자리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석달정도 일자리를 못잡고 쉬다보니 실업자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이 와중에서도 이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친구가 나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스리랑카 사람들을 많이 도왔었는데, 뿌린대로 거두는 것일까, 일면식도 없었던 스리랑카 친구가 이곳에서 나를 돕고 있다.
그 친구는 회계사인데 일자리를 잡지 못해서 현재 청소일과 피자 배달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내가 지원한 청소 회사도 그 친구의 추천으로 지원한 곳인데, 지금도 틈만 나면 계속 상사들에게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그 회사에서 청소일을 잡으면 다 그 친구 덕이라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친구가 피자 배달도 하는데, 가끔씩 주문착오로 배달하지 못한 피자를 늦은 밤 퇴근하면서 우리집에 주고 가기도 한다.
덕분에 먹을 게 없을 때는 도미노 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밤중에 그 친구가 주고간 피자 몇 상자를 보고 있노라면 '엘리야의 까마귀란 이런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스리랑카인들을 도울 때는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멀리 뉴질랜드에서, 이나라에 살고 있는 그 많은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스리랑카인인 그 친구만이 나를 돕다니..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Thursday, December 8, 2011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남반구는 크리스마스를 한여름에 맞이하게 된다.
북반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난생 처음 눈과 추위가 없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게 되어서 그런지 어제까지는 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본래 예수님이 태어났던 곳의 날씨도 이곳과 비슷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들레헴과 인접해 있는 예루살렘의 12월 기온이 낮에는 평균 14도까지 올라간다. 여기처럼 20도 이상을 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 추위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안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이곳 기후가 오히려 본래 크리스마스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이제껏 성탄절은 늘 눈과 추위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게 마치 진짜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이번에 맞이하게 될 성탄절이야말로 가장 성탄절스러운 성탄절이 될 터였다.
2000년전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셨다는 메시지는, 요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은 나같은 실업자에게도 기쁜 소식인가?
아마도 그 분이 전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따를 수 있다면 실업문제로 어려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희망의 싹이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 물질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돈보다 사랑이 우선인 그런 세상을 꿈 꿀수 있게 됐다는 것, 내 일자리만을 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낮은 차원의 구원보다는 실업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는 그런 세상으로의 구원의 길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 앞에 놓여졌다는 차원에서 성탄은 나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눈, 휘황찬란한 장식들, 산타, 크리스마스 트리... 등으로 조성되는 분위기로 생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셨다는 바로 그 사실, 그 기쁜 소식에 집중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북반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난생 처음 눈과 추위가 없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게 되어서 그런지 어제까지는 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본래 예수님이 태어났던 곳의 날씨도 이곳과 비슷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들레헴과 인접해 있는 예루살렘의 12월 기온이 낮에는 평균 14도까지 올라간다. 여기처럼 20도 이상을 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 추위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안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이곳 기후가 오히려 본래 크리스마스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이제껏 성탄절은 늘 눈과 추위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게 마치 진짜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이번에 맞이하게 될 성탄절이야말로 가장 성탄절스러운 성탄절이 될 터였다.
2000년전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셨다는 메시지는, 요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은 나같은 실업자에게도 기쁜 소식인가?
아마도 그 분이 전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따를 수 있다면 실업문제로 어려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희망의 싹이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 물질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돈보다 사랑이 우선인 그런 세상을 꿈 꿀수 있게 됐다는 것, 내 일자리만을 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낮은 차원의 구원보다는 실업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는 그런 세상으로의 구원의 길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 앞에 놓여졌다는 차원에서 성탄은 나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눈, 휘황찬란한 장식들, 산타, 크리스마스 트리... 등으로 조성되는 분위기로 생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셨다는 바로 그 사실, 그 기쁜 소식에 집중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Wednesday, November 30, 2011
일자리 찾기의 어려움
일자리 찾기가 영 쉽지 않은데, 두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낮에 아이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저녁/밤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녁에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이곳 가게들이 대부분 이른 저녁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시내에 있는 제일 큰 쇼핑몰이 5시 반에 문을 닫을 정도니... 그나마 늦게 문을 닫는 부문이 리테일 쪽이라 그쪽으로 이력서를 돌렸는데, 연락이 없다.
왜 그럴까.. 짐작되는 이유는 내 학력이 내가 찾는 일에 비해 overqualified 되어있다는 점이다. 단순 노동에 이제껏 그런 일을 업으로 삼아본 적이 없는 석사 학위자를 쓰려고 하겠는가...
기타 이곳의 침체된 경기, 실업 문제, 보이지 않는 인종적 차별 등의 변수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최소 일주일에 20시간은 일을 해야 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나는 낮에 아이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저녁/밤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녁에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이곳 가게들이 대부분 이른 저녁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시내에 있는 제일 큰 쇼핑몰이 5시 반에 문을 닫을 정도니... 그나마 늦게 문을 닫는 부문이 리테일 쪽이라 그쪽으로 이력서를 돌렸는데, 연락이 없다.
왜 그럴까.. 짐작되는 이유는 내 학력이 내가 찾는 일에 비해 overqualified 되어있다는 점이다. 단순 노동에 이제껏 그런 일을 업으로 삼아본 적이 없는 석사 학위자를 쓰려고 하겠는가...
기타 이곳의 침체된 경기, 실업 문제, 보이지 않는 인종적 차별 등의 변수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최소 일주일에 20시간은 일을 해야 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Saturday, November 26, 2011
삶의 자리
2007년 8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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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싸이에 글을 하나 남겼다.
그 글 중에 이런 문장이 하나 있었다.
"Crew 4 동료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가 이 글을 읽고 왜 동료가 두 명인데 네 명이라고 썼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난 네 명의 동료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저 글을 썼다.
내가 염두에 둔 내용은 우리 크루가 "Crew 4"라는 것이었다.
한국 말로 하면 "4조"라는 말이다.
난 "Crew 4"를 염두에 두고 저 글을 썼는데 읽는 이는 네 명의 동료로 읽었다.
물론 글을 쓴 내가 따옴표를 Crew 4의 앞뒤로 찍지 않은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Crew 4"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말이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이 없이 그냥 Crew 4라고 적은 것이다.
아마 성서 기자들도 나와 같은 실수를 했을 지도 모른다.
글을 적다가 자기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데에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글을 쓰는 경우 말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말인데 후대의 독자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록된 문자를 그대로, 정말 그 문자 수준에서만, 해석을 한다면 누구라도
내 아내가 행했던 바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을 거다.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는 기록된 문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Crew 4가 어떤 말인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내 삶의 자리를 추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근거없이 맘대로 그 의미를 해석해낸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그 문장의 해석의 근거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한다.
성서 기자의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 없이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내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Crew 4를 해석해 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서 기자와 텍스트에 대한 정말 무서운 폭력이 아닌가?
삶의 자리를 떠난 성서 이해는 성서 기자에 대한 무시요 더 나아가서는 성서 기자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무시이다.
내 관심사
2007년 9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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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사람들이 신경 쓰는 많은 일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교리를 가지고 치고 박고 싸우는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든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
인간은 인간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인간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관심은 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다.
왜? 하나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일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해본 기억은 없다.
어떤 뜨거운 감정 같은 것은 느껴본 적은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것 같은 기억은 없다.
성경을 읽을 때도 성경의 내용에 의해서 내가 감동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나에게 말을 한 적은 없다.
하나님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인간들은 보인다.
인간들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상황들이 보인다.
인간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애썼던 상황들은 보인다.
인간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위해 애썼던 예수라는 사람도 보인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던 사람들도 보인다.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라 믿었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 풀어주기 위해 애썼던 예수.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 예수.
예수의 삶이 구원의 삶이었다.
예수처럼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삶인 것이다.
구원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다른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교리, 성경, 교단별 특징.. 다 관심 없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 주변의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
이것 말고 내 관심사는 없다.
그런데 이것만도 너무 어렵다..
사역자의 기본
2007년 12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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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는 성도인가 아닌가..
사역자도 성도이지 않은가..
성도를,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그 분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사역자 역시 성도이다.
성도 중에서 교회에서 행해지는 특정한 일들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그러니까 성도로서의 삶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사역자로서의 역할을 추가로 부여받은 사람이 사역자이지 않은가?
성도들이 하는 일들을 사역자들이 한다고 해서 사역자 스스로 그것을 모멸로 여기거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거나 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목사나 전도사를 그만 두더라도 성도의 역할은 남는다.
성도의 역할이 가장 기본이다.
성도들이 하는 일들을 감당하면서 추가로 사역자로서의 일까지 감당해야하니까 사역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고, 그 것 때문에 성도들이 사역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아닌가..
돈 주는 대로 딱 그만큼만 일하겠다면 사역자가 일반 근로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
의자 나르고 음향 장비 설치하는 일을 전도사, 목사가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그 일들은 성도들만이 해야되는 일인가?
대접받기 좋아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종이 되겠는가..
주님의 종은 주님의 자녀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자녀의 신분에서 주님의 종의 신분으로 한단계 신분 하락을 감행한 사람들이 사역자들이 아닌가..
그 자발적인 낮춤에 성도들이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만 주의 종이라 하고 행동은 그렇지 않다면, 대접받기만 좋아하고, 몸으로 봉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면 누가 그 종을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자기 잘못은 보지도 못하고 다른 종의 흉만 보고 다닌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종을 좋아하겠는가..
어떤 교회가 그 사람을 데려다 쓰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역자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정말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목숨 바칠 수 있는가,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40일 금식
2008년 11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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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간다.
금식 기도는 남들을 따라서 또는 자기 수련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하는 것이다.
마귀는 여기서도 유혹하는 자로 등장한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여기까지 마귀는 줄곧 유혹하는 자이다.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성서까지 인용하기도 한다.
둘째 아담인 예수도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은 마귀의 유혹을 받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실로 마귀는 모든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애쓴다.
예수를 유혹했던 세 가지 방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그 세가지 방법이 다 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세가지 마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는 감히 예수의 제자라 불릴만 할 것이다.
돌이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말해도 안된다.
돌이 빵이 되라고 말해봐야 안된다.
예수는 이 순간 인간이다. 마귀는 인간을 유혹한다. 마귀가 하나님을 유혹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라. 하나님이 되어라.
너의 하나님 됨을 보여라. 이러한 능력만 있으면 너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라가 아니고 그렇게 "말"해 보아라.
말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 하나님이다.
마귀의 유혹은 대단한 수준이다. 정곡을 찌르고 있다.
마귀는 허투루 유혹하지 않는다. 중심을 흔든다. 최고의 유혹자이다.
마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육화된 하나님임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마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의 하나님됨을 드러내 보이면 예수는 하나님일 뿐이다. 인간은 아니다.
돌이 빵이 되라고 말을 해서 그것을 가능케 할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
예수는 안다. 문제는 빵이 아니라는 것을.
돌을 빵으로 만들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만나를 생각해보라.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방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찍혀있다.
빵으로만 물질로만 산다면 그건 동물이다.
사람도 동물로 살 수 있다.
피조물로 살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다른 동물들처럼 살 수 있다.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평생 수고하고 자식들 먹이고
자기 먹고 살기 위해 애쓰고.. 전부 동물 수준이다.
동물도 그 정도는 한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게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마귀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다고.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는 성서의 말씀을 이용해서 마귀의 유혹을 벗어난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진정 사람으로 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동물, 물질 수준의 삶 밖에 살 수 없다.
마귀는 모방의 천재다.
즉시 예수를 모방한다.
말씀으로 예수를 유혹한다.
말씀으로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자,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일 수 있다.
목사, 장로, 집사일 수 있다. 신학 교수일 수 있다.
모두가 유혹자가 될 수 있다.
말씀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의해
그 말씀은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
예수는 말씀에 대한 문자적 수용을 거부한다.
말씀이니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순종하지 않는다.
말씀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전체 성경과의 조화 속에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말씀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요 잘못된 적용임을 알고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조건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 많다.
왜 하나님을 시험하는가?
사람을 시험할 권리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할 권리도 그럴 수도 없다.
세번째 유혹은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
그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유혹이다.
정치가, 권력자들이 할 수 있는 유혹이다.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사람을 유혹할 수 있다.
돈을 가진 자는 돈으로, 정치 권력을 가진 자는 정치 권력으로 사람을 유혹할 수 있다.
그들의 조건은 단 한가지.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라.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유혹자들을 섬기고 있는 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그들이 가진 영광이 더욱 현실적이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난다.
신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들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자들에게 가서 경배하고 그들을 섬긴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교묘하게 성도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을 섬기게 한다.
사람들을 부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마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명령이라도 우리는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야 한다.
악마는 떠나간다.
악마는 떠나가야 할 존재다.
함께 살아갈 대상은 아니다. 악마는 언제나 우리 곁에 가까이 올 수 있다.
세상의 악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를 통해서도 우리를 유혹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악마가 우리 곁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악마와 같이 살아갈 수는 없다.
악마와 우리는 가야할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악마를 물리쳐야 하지 악마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
세상의 지배 가치와 함께 동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때로 이러한 삶이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 가치관대로 살고 그에 속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러한 삶이 더 옳고 좋게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라. 사탄은 물러가야 한다.
사탄이 물러가면 그 때서야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돕는 천사들이 많이 있음을..
나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Tuesday, November 15, 2011
부자들의 기부
부자들이 기부를 하면 칭송을 받는다. 비록 그 기부가 그들 재산의 10퍼센트 또는 1퍼센트 밖에 안되어도, 그 액수는 서민이 평생 일해도 벌수 없는 양의 금액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부자가 얼마나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부자의 기부를 칭송하기만 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너희들도 돈많이 벌어라, 돈이 많아야 기부라도 하지."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 사회에 몇백억 몇천억씩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만큼의 부를 얻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몫을 가로챈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반 서민들이 보기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기부해도 여전히 부자로 살아가며,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행태를 바꾸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기부는 그들의 추한 얼굴을 숨기기 위한 화장일 뿐이다.
부자들이 기부하는 것은 칭송받아야 할 행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노력 이상으로(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만큼 일하지 않는가?) 많은 돈을 벌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회와 이웃들에게 그 돈을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부 행위를 칭송하고 싶다면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닢을 더 칭송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기부조차도 돈의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는 이 썩어빠진 세상..
부자들이 기부하는 것은 칭송받아야 할 행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노력 이상으로(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만큼 일하지 않는가?) 많은 돈을 벌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회와 이웃들에게 그 돈을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부 행위를 칭송하고 싶다면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닢을 더 칭송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기부조차도 돈의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는 이 썩어빠진 세상..
Monday, November 14, 2011
어머니의 한마디
생각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서 두 달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한지는 아직 한 달이 채 안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형편상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일자리 문제는 우리 가정의 생존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내 마음도 그리 느긋한 편이 아니다. 그래도 이제껏 어려웠던 순간들을 잘 넘겨왔던 일들을 기억하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마음을 컨트롤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어머니와 통화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내 생각을 환기시키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어머니 역시 우리 형편을 뻔히 알고 계시고, 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에 자식 걱정을 안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하나님이 더 급하시지.."
하나님도 우리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에 나나 아이를 굶기지 않으시려고 우리보다 더 급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계실거라는 뜻이다.
예전에 우리가 이사를 갔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집이 안좋아서 내가 며칠을 고생하며 집을 고치고, '이제 다 됐구나'라고 생각한 며칠 후 비가 왔었는데,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것이었다. 낙심하여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우울한 마음을 단번에 날려보냈다. "비가 어디서 새는지 알았으니 잘 됐네. 거기만 막으면 되겠구나."
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가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왜 내 걱정이 안되시겠는가.. 그런데 내 부모님은 당신들의 걱정을 나에게 전가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내 시야를 넓게 해줌으로서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면서도 모른체'하고 우리의 시선을 살짝 돌려놓는 방법. 나는 그래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마음이 편하다.
오늘 어머니와 통화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내 생각을 환기시키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어머니 역시 우리 형편을 뻔히 알고 계시고, 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에 자식 걱정을 안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하나님이 더 급하시지.."
하나님도 우리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에 나나 아이를 굶기지 않으시려고 우리보다 더 급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계실거라는 뜻이다.
예전에 우리가 이사를 갔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집이 안좋아서 내가 며칠을 고생하며 집을 고치고, '이제 다 됐구나'라고 생각한 며칠 후 비가 왔었는데,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것이었다. 낙심하여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우울한 마음을 단번에 날려보냈다. "비가 어디서 새는지 알았으니 잘 됐네. 거기만 막으면 되겠구나."
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가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왜 내 걱정이 안되시겠는가.. 그런데 내 부모님은 당신들의 걱정을 나에게 전가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내 시야를 넓게 해줌으로서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면서도 모른체'하고 우리의 시선을 살짝 돌려놓는 방법. 나는 그래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마음이 편하다.
Saturday, November 12, 2011
언어폭력
사람의 가장 깊은 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말이다.
신체를 사람의 외부, 영혼을 사람의 내면이라고 한다면, 말은 사람의 내면 곧 영혼에 닿는 도구이다. 손이 사람의 신체를 만질 수 있듯이 말은 사람의 영혼을 만진다. 마찬가지로 손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듯이, 말도 사람의 내면을 공격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지 못한다. 손의 공격/폭력을 잘 막는 사람들도 말의 공격/폭력으로부터는 자신을 잘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면 그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왜 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방어하지 못할까? 말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말이 다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어떤 말은 단지 화자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도 있고, 어떤 말은 틀린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어떤 말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말이기도 하다. 모든 말이 다 동일한 무게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어떤 말은 그냥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말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어떤 말이 의미가 있는 말인지 없는 말인지에 대한 선택은 말을 듣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쁜 말을 안하면 좋겠지만, 인간 세상이 어디 그렇게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던가. 나쁜 말을 들었을 때는 말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호신술을 익혀 몸을 보호하듯 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도 익혀야 할 것이다.
신체를 사람의 외부, 영혼을 사람의 내면이라고 한다면, 말은 사람의 내면 곧 영혼에 닿는 도구이다. 손이 사람의 신체를 만질 수 있듯이 말은 사람의 영혼을 만진다. 마찬가지로 손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듯이, 말도 사람의 내면을 공격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지 못한다. 손의 공격/폭력을 잘 막는 사람들도 말의 공격/폭력으로부터는 자신을 잘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면 그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왜 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방어하지 못할까? 말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말이 다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어떤 말은 단지 화자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도 있고, 어떤 말은 틀린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어떤 말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말이기도 하다. 모든 말이 다 동일한 무게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어떤 말은 그냥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말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어떤 말이 의미가 있는 말인지 없는 말인지에 대한 선택은 말을 듣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쁜 말을 안하면 좋겠지만, 인간 세상이 어디 그렇게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던가. 나쁜 말을 들었을 때는 말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호신술을 익혀 몸을 보호하듯 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도 익혀야 할 것이다.
자비량 목회
나는 예전부터 작은 교회 공동체를 꿈꿔왔고 그를 위해 Bi-vocational/Tent-making/자비량 목회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아니 오히려 자비량 목회를 더 적극적으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Bi-vocational이라는 용어는 미국 침례교, Tent-making은 미국장로교, 자비량은 한국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한데, 무슨 직업으로 자비량을 할 것인지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내가 천성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목회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지라,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며 소진된 에너지를 혼자 있는 시간에 충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자비량 직업까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에너지 소진이 너무 심해서 목회까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내가 큰 무리없이 바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페인트칠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꽤 오랫동안 페인트를 칠해보았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곳에서 페인터로 취직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페인터 구인이 많지 않은데다 아이 때문에 저녁에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인터 다음으로 생각해본 직업은 수의사이다. 이 직업 역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닌 동물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내 기준에 부합하는 직업이다.
물론 이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부하는데 5년이나 걸리고, 공부가 어려워서 졸업을 장담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학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실현된다면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긴 하다.
대개의 작은 교회는 전임 목회자를 먹여 살리는데 재정을 거의 다 소비하고 있다.
교회가 목회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내가 중, 대형 교회 목회를 꿈꾸는 목사라면 자비량 목회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만난 예수, 내가 깨달은 목회와 목사정신에 충실하고자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자비량 목회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 부분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아직 내가 어떤 목사가 되어갈지 장담할 수 없다.
자비량 목회를 과연 할 수 있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나에게 확실한 것은 최소한 내가 그 길을 가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후는 내 삶으로 확인해 나갈 뿐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한데, 무슨 직업으로 자비량을 할 것인지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내가 천성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목회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지라,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며 소진된 에너지를 혼자 있는 시간에 충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자비량 직업까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에너지 소진이 너무 심해서 목회까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내가 큰 무리없이 바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페인트칠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꽤 오랫동안 페인트를 칠해보았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곳에서 페인터로 취직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페인터 구인이 많지 않은데다 아이 때문에 저녁에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인터 다음으로 생각해본 직업은 수의사이다. 이 직업 역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닌 동물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내 기준에 부합하는 직업이다.
물론 이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부하는데 5년이나 걸리고, 공부가 어려워서 졸업을 장담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학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실현된다면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긴 하다.
대개의 작은 교회는 전임 목회자를 먹여 살리는데 재정을 거의 다 소비하고 있다.
교회가 목회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내가 중, 대형 교회 목회를 꿈꾸는 목사라면 자비량 목회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만난 예수, 내가 깨달은 목회와 목사정신에 충실하고자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자비량 목회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 부분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아직 내가 어떤 목사가 되어갈지 장담할 수 없다.
자비량 목회를 과연 할 수 있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나에게 확실한 것은 최소한 내가 그 길을 가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후는 내 삶으로 확인해 나갈 뿐이다.
Thursday, November 10, 2011
최저임금도 안주다니..
이곳에도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임금을 주는 한국인 사장들이 있나보다.
그 돈받고 일할 뉴질랜더들은 당연히 없을테니, 그 돈이라도 필요한 한국 사람들만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뉴질랜더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주면 좋을텐데, 오히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임금을 한국인 직원에게 주면서 일을 시키는 한국인 사장이 있다는 소식에 참 마음이 아프다. 최저임금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그걸 깍으면 되겠는가.. 그것도 같은 동포에게 말이다.
그 돈받고 일할 뉴질랜더들은 당연히 없을테니, 그 돈이라도 필요한 한국 사람들만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뉴질랜더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주면 좋을텐데, 오히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임금을 한국인 직원에게 주면서 일을 시키는 한국인 사장이 있다는 소식에 참 마음이 아프다. 최저임금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그걸 깍으면 되겠는가.. 그것도 같은 동포에게 말이다.
Wednesday, November 9, 2011
자식 사랑이란..
아이가 요즘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좀 안좋았다.
보통 저녁 먹고 잠자기 전에 우유를 마시고 자는데, 어제 그제 두번 연속으로 우유 먹은 것을 토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이가 토한 시점이 두번 다 내가 안고 있던 때여서, 그 시큼한 토사물을 전부 내가 뒤집어쓰고 말았다.
일단 뱃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음식물은 아무리 어린 아이의 것이라도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냄새나는 것을 얼굴부터(하필 얼굴에 토해서..) 온통 뒤집어 쓰고 있으면서도, 우스웠던 것은 내 옷과 몸에 묻은 그 토사물로 인한 불편함이 아니라, '얘 괜찮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의 토사물이 나에게 묻었다면 얼마나 찝찝하고 짜증났겠는가.
그런데 그 토사물의 주인이 내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냄새와 젖은 옷과 몸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잊고, 아들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의 심정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자식을 낳고 나서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제의 그 일로 나는 내 부모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 아픔에 나보다 더 아파해 하는 분들이 내 아버지, 어머니 아니겠는가..
보통 저녁 먹고 잠자기 전에 우유를 마시고 자는데, 어제 그제 두번 연속으로 우유 먹은 것을 토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이가 토한 시점이 두번 다 내가 안고 있던 때여서, 그 시큼한 토사물을 전부 내가 뒤집어쓰고 말았다.
일단 뱃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음식물은 아무리 어린 아이의 것이라도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냄새나는 것을 얼굴부터(하필 얼굴에 토해서..) 온통 뒤집어 쓰고 있으면서도, 우스웠던 것은 내 옷과 몸에 묻은 그 토사물로 인한 불편함이 아니라, '얘 괜찮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의 토사물이 나에게 묻었다면 얼마나 찝찝하고 짜증났겠는가.
그런데 그 토사물의 주인이 내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냄새와 젖은 옷과 몸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잊고, 아들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의 심정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자식을 낳고 나서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제의 그 일로 나는 내 부모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 아픔에 나보다 더 아파해 하는 분들이 내 아버지, 어머니 아니겠는가..
Tuesday, November 1, 2011
짐바브웨
아는 분이 짐바브웨에서 사역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나와 아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생각이 있다고 얘기 했다.
물론 현재 내가 뉴질랜드에 와있고 1년동안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 그쪽에서 일년 후에도 우리를 필요로 하면 당연히 갈 생각이다.
어디든 나와 아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못 갈 곳이 없다.
한국은, 나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아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뉴질랜드는 나와 아내 둘다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뉴질랜드보다 더 못사는 나라에서 우리를 부르면 우리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약한자, 고통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않고 어떻게 예수의 제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와 아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생각이 있다고 얘기 했다.
물론 현재 내가 뉴질랜드에 와있고 1년동안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 그쪽에서 일년 후에도 우리를 필요로 하면 당연히 갈 생각이다.
어디든 나와 아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못 갈 곳이 없다.
한국은, 나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아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뉴질랜드는 나와 아내 둘다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뉴질랜드보다 더 못사는 나라에서 우리를 부르면 우리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약한자, 고통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않고 어떻게 예수의 제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Saturday, October 29, 2011
일자리 구하기
IRD 번호도 받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한 일자리가 리테일쪽이다.
어차피 최저임금을 받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나마 경력이 있는 분야가 리테일이니
일단 그쪽부터 공략을 해야할 것 같다.
만약 리테일쪽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다음으로 유력한 직종이 아마도 청소쪽이 아닐까 한다. 그마저도 자리를 찾기가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게다가 아이 때문에 저녁이나 밤시간에 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재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 최저임금이 13불이라서 나와 아내가 각각 20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이미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이제 나만 일자리를 구하면 생활하는데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한 일자리가 리테일쪽이다.
어차피 최저임금을 받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나마 경력이 있는 분야가 리테일이니
일단 그쪽부터 공략을 해야할 것 같다.
만약 리테일쪽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다음으로 유력한 직종이 아마도 청소쪽이 아닐까 한다. 그마저도 자리를 찾기가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게다가 아이 때문에 저녁이나 밤시간에 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재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 최저임금이 13불이라서 나와 아내가 각각 20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이미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이제 나만 일자리를 구하면 생활하는데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Friday, October 28, 2011
Wednesday, October 19, 2011
뉴질랜드 최저임금
아내가 Caregiver 잡을 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뉴질랜드 최저임금이 13불이란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4,320원인 것에 비하면 환율을 900원으로 했을 때 11,700원이니 거의 세 배 수준에 근접하는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당은 최저임금을 15불로 올리는 안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뉴질랜드는 실업수당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큰 부자도 없지만 거지도 없는 나라가 뉴질랜드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4,320원인 것에 비하면 환율을 900원으로 했을 때 11,700원이니 거의 세 배 수준에 근접하는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당은 최저임금을 15불로 올리는 안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뉴질랜드는 실업수당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큰 부자도 없지만 거지도 없는 나라가 뉴질랜드이다.
Saturday, October 15, 2011
근처 해변
오늘 근처 해변에 잠깐 바람쐬러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1인승 카약을 들쳐메고와서는 파도치는 바다 속으로 홀로 노를 저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거침없이 노를 저어 가는데,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바닷가에 서서 그분이 파도와 싸우는/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탁트인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해변도 물론 아름답고 멋졌지만, 이상하게도 홀로 카약을 짊어지고와서 파도 속으로 노저어 들어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Friday, October 7, 2011
양배추 김치
말로만 들었던 양배추 김치를 드디어 먹어보았다.
양배추 김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처음 들었었는데, 예전 미국 한인사회가 지금처럼 크게 형성되기 전, 배추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한인들이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였다. 그 전설의 양배추 김치를 뉴질랜드에 와서 먹어보게 될줄이야..
맛은? 음.. 김치 사촌쯤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만드신 분의 솜씨가 좋아서인지 기대 이상이었다. 양배추의 사각거리는 맛이 나름 괜찮았다.
나야 김치 없어도 잘 사는 사람이라, 김치에 대한 애착이 그리 심하지 않은데, 대개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가도 김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나도 평상시에는 한국 음식이 별로 생각나지 않지만 얼마전 몸이 아팠을 때는 이상하게도 한국 음식이 생각났던 걸 보면, 음식과 몸은 확실히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2세들과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들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한국사람인 내가 볼때는 국적 불명의 음식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이겠지만 한국 양념을 쓰지 않고 만든 그 음식이 그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음식'이었다. 내가 이 음식을 만들때는 이러이러한 양념을 써야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 땅에서 나고 자란 2세들에게는 그 땅에서 나온 음식들이 더 자기들의 입맛에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부모는 한국인인지라 한국 음식을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고, 2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음식을 어떤 식으로든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든 음식에는 그래서 완전히 한국적이지도, 완전히 미국적이지도 않은 그들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만약 내 아이가 양배추 김치만 먹고 자란다면 아이에게 김치란 양배추 김치일 것이다. 상상을 좀 해보자면,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우리 아이는 가끔 스스로 양배추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그것이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양배추 김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처음 들었었는데, 예전 미국 한인사회가 지금처럼 크게 형성되기 전, 배추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한인들이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였다. 그 전설의 양배추 김치를 뉴질랜드에 와서 먹어보게 될줄이야..
맛은? 음.. 김치 사촌쯤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만드신 분의 솜씨가 좋아서인지 기대 이상이었다. 양배추의 사각거리는 맛이 나름 괜찮았다.
나야 김치 없어도 잘 사는 사람이라, 김치에 대한 애착이 그리 심하지 않은데, 대개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가도 김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나도 평상시에는 한국 음식이 별로 생각나지 않지만 얼마전 몸이 아팠을 때는 이상하게도 한국 음식이 생각났던 걸 보면, 음식과 몸은 확실히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2세들과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들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한국사람인 내가 볼때는 국적 불명의 음식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이겠지만 한국 양념을 쓰지 않고 만든 그 음식이 그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음식'이었다. 내가 이 음식을 만들때는 이러이러한 양념을 써야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 땅에서 나고 자란 2세들에게는 그 땅에서 나온 음식들이 더 자기들의 입맛에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부모는 한국인인지라 한국 음식을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고, 2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음식을 어떤 식으로든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든 음식에는 그래서 완전히 한국적이지도, 완전히 미국적이지도 않은 그들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만약 내 아이가 양배추 김치만 먹고 자란다면 아이에게 김치란 양배추 김치일 것이다. 상상을 좀 해보자면,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우리 아이는 가끔 스스로 양배추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그것이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Wednesday, October 5, 2011
CV 작성
CV(Curriculum Vitae)를 작성하고 있다.
미국은 보통 Resume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CV는 주로 Academic쪽에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 뉴질랜드는 그런 구분없이 이력서는 그냥 CV라 부른다.
이쪽 CV에서 중요한 부분이 Referee인데 보통 3명 정도는 기본으로 적는 것 같다.
업무 관련된 추천인 2명, character 관련 추천인 1명 정도로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업무 관련으로 적을 사람은 없고, 캐릭터 쪽으로는 벌써 한 6명 정도의 키위가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지금 교회쪽에서 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내가 가진 경력 중에 써먹을 수 있는 경력이 그나마 리테일 쪽하고 페인트 쪽이다.
그런데 페인트 쪽은 여기 도시가 워낙 작아서인지 대개가 개인사업자들이고 규모가 큰 곳은 별로 없어서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리테일 쪽은 대형 업체들이 꽤 있어서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데 아직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취직이 된다고 해도 내가 당장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기껏해야 최저임금이나 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일단 어디든 들어가기만 하면 옛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최소 크루 리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아무튼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은 보통 Resume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CV는 주로 Academic쪽에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 뉴질랜드는 그런 구분없이 이력서는 그냥 CV라 부른다.
이쪽 CV에서 중요한 부분이 Referee인데 보통 3명 정도는 기본으로 적는 것 같다.
업무 관련된 추천인 2명, character 관련 추천인 1명 정도로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업무 관련으로 적을 사람은 없고, 캐릭터 쪽으로는 벌써 한 6명 정도의 키위가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지금 교회쪽에서 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내가 가진 경력 중에 써먹을 수 있는 경력이 그나마 리테일 쪽하고 페인트 쪽이다.
그런데 페인트 쪽은 여기 도시가 워낙 작아서인지 대개가 개인사업자들이고 규모가 큰 곳은 별로 없어서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리테일 쪽은 대형 업체들이 꽤 있어서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데 아직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취직이 된다고 해도 내가 당장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기껏해야 최저임금이나 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일단 어디든 들어가기만 하면 옛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최소 크루 리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아무튼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Monday, October 3, 2011
한인 교회에 가다
뉴질랜드에 온지 25일 만에 처음으로 한인교회를 방문했다.
키위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하는 교회였는데, 전체 성도수가 40여명 되는 교회였다.
유학생을 빼고 이 도시에 거주하는 한인 가정의 숫자가 대략 40여 가정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 불교도도 있을 것이고 카톨릭도 있을 터이니, 한인 교회는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2개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같은 교단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제 찾아간 교회는 장로교회였는데 두교회 중 더 오래되고 더 큰(?) 교회였다.
목사님이 한국에서 오신지 2년밖에 안되셨는데 열심히 하셔서 그나마 성도수가 늘었다고 한다.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열심히 목회하시는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의 목회자였다. 매일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구역예배, 주일 성경공부까지 한국 교회를 그대로 옮겨온 모습이었다. 그 외에 이런저런 프로그램들까지.. 이 작은 교회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예배와 프로그램을 소화하나 싶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이나 뉴질랜드 교회 목사들은 한국 교회처럼 목회를 하라고 하면 두손 두발 다 들고 말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키위교회 목사는 주일 오전에 1부, 2부 설교하는 게 다다. 1주일에 설교 준비 한 편 한다. 물론 이런 저런 교회일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식적인 교회 예배는 1주일에 한번이다. 설교 준비를 1주일에 한번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설교 준비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편의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20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루 8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잡으면 3일이 걸린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뉴질랜드에 와서도 한국 교회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 분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좀 들었다. 물론 그 분 역시 배운대로 하고 계실 것이고, 그 교회 성도들 역시 그걸 당연하게 여길 것이고.. 오히려 나 같이 자유로운 목사를 아마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키위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하는 교회였는데, 전체 성도수가 40여명 되는 교회였다.
유학생을 빼고 이 도시에 거주하는 한인 가정의 숫자가 대략 40여 가정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 불교도도 있을 것이고 카톨릭도 있을 터이니, 한인 교회는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2개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같은 교단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제 찾아간 교회는 장로교회였는데 두교회 중 더 오래되고 더 큰(?) 교회였다.
목사님이 한국에서 오신지 2년밖에 안되셨는데 열심히 하셔서 그나마 성도수가 늘었다고 한다.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열심히 목회하시는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의 목회자였다. 매일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구역예배, 주일 성경공부까지 한국 교회를 그대로 옮겨온 모습이었다. 그 외에 이런저런 프로그램들까지.. 이 작은 교회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예배와 프로그램을 소화하나 싶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이나 뉴질랜드 교회 목사들은 한국 교회처럼 목회를 하라고 하면 두손 두발 다 들고 말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키위교회 목사는 주일 오전에 1부, 2부 설교하는 게 다다. 1주일에 설교 준비 한 편 한다. 물론 이런 저런 교회일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식적인 교회 예배는 1주일에 한번이다. 설교 준비를 1주일에 한번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설교 준비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편의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20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루 8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잡으면 3일이 걸린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뉴질랜드에 와서도 한국 교회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 분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좀 들었다. 물론 그 분 역시 배운대로 하고 계실 것이고, 그 교회 성도들 역시 그걸 당연하게 여길 것이고.. 오히려 나 같이 자유로운 목사를 아마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Sunday, October 2, 2011
아이 잠재우기 5일째
아이를 따로 재우기 시작한지 5일째 밤이다. 오늘도 아이는 7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7시가 되면 잠이 오든 안오든 그냥 아기침대(cot)에 눕히고 음악틀고 불을 끄고 나온다.
그러면 몇 분안에 잠이 들고 아침까지 그냥 잔다. 처음엔 자기가 자기 몸을 어떻게 눕혀야 할지 몰라서 이상한 자세로 자기도 하고, 앉아서 자기고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엎드려서 잘 잔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누워서도 잘 잘것 같다.
따로 재우기 시작한 초기 3일 정도는 낮에 보챔이 심했다. 로레인에 따르면 separation anxiety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나 나와 떨어지기를 싫어했는데 그것도 점점 나아져서 어제 오늘은 나와 떨어져서 혼자 잘 놀았다.
아이들은 피곤해지면 보채기 시작한다. 낮에 그 신호를 잘 포착해서 아이가 피곤해질때쯤 침대에 눕히면 낮잠도 잘 잔다. 잠을 푹 자니 지금은 눈에 띄게 소리지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에게 보채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도 밤에 7시부터 혼자 자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시도해본 결과 아이 따로 재우기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에게 권장하는 바이다.
7시가 되면 잠이 오든 안오든 그냥 아기침대(cot)에 눕히고 음악틀고 불을 끄고 나온다.
그러면 몇 분안에 잠이 들고 아침까지 그냥 잔다. 처음엔 자기가 자기 몸을 어떻게 눕혀야 할지 몰라서 이상한 자세로 자기도 하고, 앉아서 자기고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엎드려서 잘 잔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누워서도 잘 잘것 같다.
따로 재우기 시작한 초기 3일 정도는 낮에 보챔이 심했다. 로레인에 따르면 separation anxiety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나 나와 떨어지기를 싫어했는데 그것도 점점 나아져서 어제 오늘은 나와 떨어져서 혼자 잘 놀았다.
아이들은 피곤해지면 보채기 시작한다. 낮에 그 신호를 잘 포착해서 아이가 피곤해질때쯤 침대에 눕히면 낮잠도 잘 잔다. 잠을 푹 자니 지금은 눈에 띄게 소리지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에게 보채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도 밤에 7시부터 혼자 자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시도해본 결과 아이 따로 재우기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에게 권장하는 바이다.
Thursday, September 29, 2011
아이 잠재우기
뉴질랜드에 와서 잠시 머무르고 있는 집의 안주인 로레인이 아이 잠재우는 분야의 전문가이다. 메시대학에서 간호학 석사를 마친 분인데 아이 잠재우는 일로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 영유아 전문 간호사이다. 로레인의 이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 집에 머물게 된 우리는 뜻하지 않게 로레인으로부터 육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어제밤부터 로레인이 직접 우리 아들을 따로 재우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로레인에 따르면 우리 아이에게서 보이는 특징적인 징후들, 예를 들면 소리지르기, 안아달라고 하기.. 등등의 현상들이 overtired된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라는 것이다. Overtired되었다는 것은 잠을 충분히 못잤다는 말인데 14개월된 아이는 밤에 12시간은 자야한다고 한다. 밤에 12시간을 자려면 저녁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자야한다는 말이다. 우리 아이는 여태 그렇게 오래 자본 적이 없을 뿐더러, 내가 아는 한 대다수의 한국 어린이들도 그렇게 오래 잠을 자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한국 어린이들에게서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소리지르는 행위, 보채는 행위는 그 아이들이 충분히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를 잠재우냐는 말이다. 그것도 부모가 아이와 같이 자지 않으면서 말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를 아이 방에 있는 아기 침대에 저녁 7시에 눕히고 아침 7시에 꺼내는 것이다. 물론 처음 몇날 동안은 아이가 고생을 한다. 우리 아이도 어젯밤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를 염두에 둔 로레인이 아이를 리빙룸에 재우고 자기가 그 옆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우리방이 이층에 있는데 아이를 이층에 있는 다른 방에서 재우면 부모가 그 소리를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는데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꺼내주고 싶었다. 그래도 3일만 참으면 된다는 말에 꾹 참았다.
아이는 첫날치고는 잘 견뎌주었다. 처음에 한 30분 울었을까 그 후에는 이따금씩 잠깐 울고 조용히 있었다.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부모없이 혼자서, 그것도 젖꼭지 노리개도 물지 않고 혼자 잔것이다.
지금은 둘째날 오후인데 3시간짜리 낮잠을 재우는 중이다. 낮잠도 밤에 재우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다. 잠자는 방을 어둡게 하고 자기 침대에 눕히고 아이들 음악을 틀어준다. 세시간은 좀 긴 것 같은데, 로레인은 우리 아이 나이때에는 이정도는 자야 한다고 한다. 침대에 눕힌지 한시간 반정도 지났는데, 처음에 한참 울다가 지금은 조용해졌다. 가끔씩 나를 부르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소리를 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은 것 같다.
로레인에 의하면 어떤 아이든 스스로 잠자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치려고만 하면 말이다.
우리 부부는 뉴질랜드에 와서 뜻하지 않게 Parenting Guru를 만난 셈이 되었다. 잠재우는 것 외에 아이 테이블 매너, 음식 만들기, 유아 프로그램, 장보기 등등 뉴질랜드에서 부모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 아이가 이제 완전히 잠들었나 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더욱 감사한 것은 어제밤부터 로레인이 직접 우리 아들을 따로 재우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로레인에 따르면 우리 아이에게서 보이는 특징적인 징후들, 예를 들면 소리지르기, 안아달라고 하기.. 등등의 현상들이 overtired된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라는 것이다. Overtired되었다는 것은 잠을 충분히 못잤다는 말인데 14개월된 아이는 밤에 12시간은 자야한다고 한다. 밤에 12시간을 자려면 저녁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자야한다는 말이다. 우리 아이는 여태 그렇게 오래 자본 적이 없을 뿐더러, 내가 아는 한 대다수의 한국 어린이들도 그렇게 오래 잠을 자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한국 어린이들에게서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소리지르는 행위, 보채는 행위는 그 아이들이 충분히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를 잠재우냐는 말이다. 그것도 부모가 아이와 같이 자지 않으면서 말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를 아이 방에 있는 아기 침대에 저녁 7시에 눕히고 아침 7시에 꺼내는 것이다. 물론 처음 몇날 동안은 아이가 고생을 한다. 우리 아이도 어젯밤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를 염두에 둔 로레인이 아이를 리빙룸에 재우고 자기가 그 옆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우리방이 이층에 있는데 아이를 이층에 있는 다른 방에서 재우면 부모가 그 소리를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는데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꺼내주고 싶었다. 그래도 3일만 참으면 된다는 말에 꾹 참았다.
아이는 첫날치고는 잘 견뎌주었다. 처음에 한 30분 울었을까 그 후에는 이따금씩 잠깐 울고 조용히 있었다.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부모없이 혼자서, 그것도 젖꼭지 노리개도 물지 않고 혼자 잔것이다.
지금은 둘째날 오후인데 3시간짜리 낮잠을 재우는 중이다. 낮잠도 밤에 재우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다. 잠자는 방을 어둡게 하고 자기 침대에 눕히고 아이들 음악을 틀어준다. 세시간은 좀 긴 것 같은데, 로레인은 우리 아이 나이때에는 이정도는 자야 한다고 한다. 침대에 눕힌지 한시간 반정도 지났는데, 처음에 한참 울다가 지금은 조용해졌다. 가끔씩 나를 부르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소리를 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은 것 같다.
로레인에 의하면 어떤 아이든 스스로 잠자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치려고만 하면 말이다.
우리 부부는 뉴질랜드에 와서 뜻하지 않게 Parenting Guru를 만난 셈이 되었다. 잠재우는 것 외에 아이 테이블 매너, 음식 만들기, 유아 프로그램, 장보기 등등 뉴질랜드에서 부모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 아이가 이제 완전히 잠들었나 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Friday, September 23, 2011
퍼온글) Why YOU Should Plant a Church
Why YOU Should Plant a Church by Bob Hyatt
From http://www.seedstories.com/
From http://www.seedstories.com/
In the early days of our church planting adventure I spent some time seeking out other church planters, hoping for some wisdom and encouragement. Man, did I get a wake up call.
There seem to be two distinct schools of thought in the church planting community. The first is “This is hard. Are you sure you want to do this? You don’t look like you’ve got what it takes… I’m not so sure you should do this! Have you prayed about it?”
Gee… thanks.
The second school of thought starts off sounding much like the first, but then takes a dramatic turn: “This is hard. What do you need? How can I help you? Man, what an adventure! Let me pray for you.”
Do you hear the difference?
The sad truth is I heard a whole lot more of the first than I did of the second. To be honest, it was discouraging to hear such defeatist talk from those on the front lines of the revitalization and renewal of the church- church planters themselves.
I KNOW I CAN DO IT... IT'S YOU I'M NOT SO SURE ABOUT
Let’s just put it out there. You have to be a certain type of personality to jump ship from the institution, the known, the safe and head off into the uncharted waters of church planting. It’s not for everyone… and for the A-type personalities who often make up the ranks of those who have jumped, those who are sailing those uncharted waters, when we see others getting ready to do the same, a common first impulse may be to wonder who they think they are… don’t they know that this church planting thing is for the few, the proud, the best of the best? And since we’re doing this different, emergent-type thing… we really don’t need more competition, do we?
Better to weed out the weak.
I actually had church planters tell me disdainfully that church planting was the “sexy” new thing and I better think twice before I just jumped on the bandwagon. I was “assessed” in a 45 minute conversation and found lacking.
It’s a good thing I didn’t listen to the discouraging talk of the A-type personalities I encountered… that I felt called to do this, that I realized that God loves it when people step out in faith and start new churches… and it’s a good thing I remembered that this is kingdom, not competition.
WHY NOT?
It makes sense to weed out the weak when you start with the basic assumption that no one should step out and plant a church unless specifically instructed to by God and unless they have “what it takes.” I like to approach it from a different viewpoint.
Why shouldn’t you plant a church?
Most people when asking themselves that question usually come up with three common reasons…fear, finances and failure.
Fear? Is it scary? Yes, of course it is. But for me, a turning point was realizing that I had never really done anything in my life that required actual faith. Yes, I had picked up and moved to Europe for two years. Did that require faith? I had a great salary waiting for me, a church community to integrate me, and the knowledge that if it didn’t work out, I could always just find something else to fall back on. Faith? Sort of, but not really.
I came to the point in considering church planting where I realized that I simply didn’t want to get to 70 and look back never having taken an actual step of faith… never having started something, never having begun a journey whose end I could not clearly see from the beginning. I didn’t want the regret of not having taken a shot at a dream of mine.
Finances? Sure- that was a consideration. When we decided to plant the church we had just bought a house and gotten pregnant. I knew that looking back this was either going to seem like a great step of faith of a complete lack of common sense. I suppose the jury is still out on that…
But we had to decide, my wife and I, that if taking this step cost us our house, set us back financially… that simply wasn’t too big a price to pay for God’s kingdom. If we did what we felt we needed to do, and there were financial costs, so be it. We’d rather see people come into relationship with God than have a house. We’d rather see those who have given up on church find community again than have a new car. We had to ask ourselves “What is the absolute worst thing that could happen if we do this?” And when we really started looking at it, it just didn’t seem like that big a deal.
Failure? In a conversation with a good friend on the day we decided to plant this church, he asked me a great question: How will you define failure? I realized through our talk that failure wasn’t if we did this and had to close the doors in a year because not many people showed up and we couldn’t pay the bills. Failure would be if we failed to love the people God did bring us, if we failed to love each other in community, if we failed to feed, clothe and otherwise care for anyone. That would be failure… not if we simply failed to achieve any type of long term momentum and institutional stability.
I realized that for me personally, failure would be if I didn’t even try.
If you do this might you fail? I guess it depends on how you define failure. They say 80% of church plants fail. I don’t know about that… all I can say is that I think that many church plants that seem to be failures by the standard of “Did they make it?” were probably great adventures for many involved, probably introduced people to Christ and probably made a practical difference in the lives of some people who really needed those small, “failing” churches.
I think that the biggest failures in the church planting world aren’t the ones who function as a community for 1, 2 or 5 years and then disband to go do something else. I think the biggest failures in the church planting world are the churches that never even get started, for whatever reason- whether because of fear, because of lack of encouragement or simply because no one asked “Well, why shouldn’t we?”
ENCOURAGING CHURCH PLANTING BY ENCOURAGING CHURCH PLANTERS
All this has left me at a place where I really want to encourage those who are at the end of their rope, banging their head against the institutional wall, feeling like those they really love and want to see introduced to Christ are beyond the reach of modernistic, institutional churches.
You can do this.
It’s not rocket science.
Through my experience in church planting I have learned that there’s a hard way to do this and an easy way. The hard way involves plans and proposals, hundreds of thousands in seed money, denominational strings and a host of headaches. “Start with a bang!” they will tell you. “Mailers to every home in three zip codes!” they will advise you. A full band! Complete children’s ministry! Advertising!!!!
Don’t listen.
Start small. Raise some support, trust God for the rest and get a job at Starbucks if need be. Let your community be what it will be. Refuse to do for the people who come the ministry that they should do for themselves. Concentrate on laying a foundation of community and common core values and let your church grow organically without superimposing a grand “vision” on it.
When we were still in the dream phase of this thing people would ask me- “What will it look like?” I grew to love answering “I have no earthly idea.” All I could say was that if a bunch of cloggers and bluegrass musicians showed up, well… we’d be the clogging church. If a bunch of skate punks showed up, we’d be the skate church. I wasn’t out to niche target-market our community, and so felt great freedom to just sit back and watch what happened. I still feel that freedom…
Like I said, it’s not rocket science. You can do this thing. Just look at the guys Jesus started with…
THE QUESTION
No- not everyone should plant a church. Not everyone is called, gifted or able… but just the fact that you’re thinking about it says something. Just the fact that you want to tells me a lot. And if you actually step out and do it? Well… that says volumes about you, about your courage and about your faith in the God who is advancing His kingdom all around this world.
The question isn’t “Why should I plant a church”… it’s why shouldn’t you! Here’s what I know: God loves it when His people take a step of faith. He will go ahead of you, with you and behind you in this adventure. If you love those He brings you, you will be a success whether it lasts for a year, two years or the rest of your life.
So go ahead- take the leap. Plant a church! And let me know how I can help.
Monday, September 19, 2011
뉴질랜드 12일 째
뉴질랜드에 온지 오늘로 12일째다.
집과 차를 마련했으니 이제 일자리만 찾으면 된다.
아내는 오늘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살짜리 아들녀석에게 이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교회에서 키위아이들과 놀게 했다.
뉴질랜더들은 자기들을 '키위'라고 부른다.
나는 키위라 하면 과일을 떠올리는데 뉴질랜더들은 키위새를 떠올린다고 한다.
어쨌든 이안은 키위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키위 어른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르고 있다.
이제 곧 이녀석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속이 편치 않다.
어린이집도 좋은 곳은 이미 자리가 없고, 가격도 세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 있기는 한데 시설이 너무 낡았고,
게다가 그 곳이 더욱 꺼려지는 것은 원장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는 것.
8살짜리 아이 엄마라는데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학교 어린이집에 자리가 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내가 돌봐야지 싶다.
광야에 나가면 하나님을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다는 말처럼
여기서도 여태껏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어린이집이나 일자리도 잘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어제 설교는 감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그 사랑이 크리스천 감사의 근원이 아니던가.
욕심을 줄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는 차원은 타종교인들도 하는 얘기아닌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다.
집과 차를 마련했으니 이제 일자리만 찾으면 된다.
아내는 오늘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살짜리 아들녀석에게 이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교회에서 키위아이들과 놀게 했다.
뉴질랜더들은 자기들을 '키위'라고 부른다.
나는 키위라 하면 과일을 떠올리는데 뉴질랜더들은 키위새를 떠올린다고 한다.
어쨌든 이안은 키위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키위 어른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르고 있다.
이제 곧 이녀석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속이 편치 않다.
어린이집도 좋은 곳은 이미 자리가 없고, 가격도 세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 있기는 한데 시설이 너무 낡았고,
게다가 그 곳이 더욱 꺼려지는 것은 원장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는 것.
8살짜리 아이 엄마라는데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학교 어린이집에 자리가 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내가 돌봐야지 싶다.
광야에 나가면 하나님을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다는 말처럼
여기서도 여태껏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어린이집이나 일자리도 잘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어제 설교는 감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그 사랑이 크리스천 감사의 근원이 아니던가.
욕심을 줄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는 차원은 타종교인들도 하는 얘기아닌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다.
Sunday, September 11, 2011
뉴질랜드 도착
9월 7일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국제선 12시간 직항, 국내선 1시간의 긴 비행을 마친 후였다.
네 명의 교인이 마중을 나왔는데, 미리 준비된 내 차에 아들의 카시트까지 장착한 채였다.
샤론은 긴 비행에 지쳐 있을 1살짜리 아들을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주었다.
그동안 이메일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대단히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단의 집으로 가는 동안 아직 오른쪽 운전석에서 운전하는 것이 서툰 나를 대신해 단이 운전을 했는데, 모든 차들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우리가 당분간 머무를 단의 집은 깔끔한 upper-middle-class 동네에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에 깜짝 놀랐는데, 오른편으로는 지평선이, 왼편으로는 산이 보였고 그 중간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양들과 소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단의 집 펜스 바로 아래 작은 농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키우는 양들이 펜스 근처까지 와서 풀을 뜯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날씨는 아직 초봄이라 쌀쌀했지만 신선한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국제선 12시간 직항, 국내선 1시간의 긴 비행을 마친 후였다.
네 명의 교인이 마중을 나왔는데, 미리 준비된 내 차에 아들의 카시트까지 장착한 채였다.
샤론은 긴 비행에 지쳐 있을 1살짜리 아들을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주었다.
그동안 이메일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대단히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단의 집으로 가는 동안 아직 오른쪽 운전석에서 운전하는 것이 서툰 나를 대신해 단이 운전을 했는데, 모든 차들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우리가 당분간 머무를 단의 집은 깔끔한 upper-middle-class 동네에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에 깜짝 놀랐는데, 오른편으로는 지평선이, 왼편으로는 산이 보였고 그 중간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양들과 소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단의 집 펜스 바로 아래 작은 농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키우는 양들이 펜스 근처까지 와서 풀을 뜯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날씨는 아직 초봄이라 쌀쌀했지만 신선한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Saturday, September 3, 2011
안철수
안철수의 서울 시장 출마설로 요즘 정계가 시끄러운가보다.
오늘 기사에서 윤여준이 안철수는 세상을 이념, 계층으로 나눠보지 않고 상식, 비상식으로 본다는 말을 했는데, 안철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니 정확한 진술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상식/비상식으로 나눠보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상식/비상식 관점도 이치적(two-valued) 관점이 가지는 오류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 아니면 비상식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비상식인가..
물론 선동을 하려면 이런 이치적 방법을 쓰는게 가장 효과적이긴 하다.
우리가 하는 것은 상식적이고 저들이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리다. 뭐 이런 식이다.
안철수는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안철수를 좋아하고 지지하면서도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는 이유가..
오늘 기사에서 윤여준이 안철수는 세상을 이념, 계층으로 나눠보지 않고 상식, 비상식으로 본다는 말을 했는데, 안철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니 정확한 진술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상식/비상식으로 나눠보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상식/비상식 관점도 이치적(two-valued) 관점이 가지는 오류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 아니면 비상식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비상식인가..
물론 선동을 하려면 이런 이치적 방법을 쓰는게 가장 효과적이긴 하다.
우리가 하는 것은 상식적이고 저들이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리다. 뭐 이런 식이다.
안철수는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안철수를 좋아하고 지지하면서도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는 이유가..
Friday, August 26, 2011
돌
어제가 아들 녀석의 돌이었다.
딱 1년 전 어제 오전 10시 55분. 아내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머리를 내밀며 아프게
울어대던 녀석을 처음 만났었다.
아내가 15팩의 수혈을 받으며,
혈소판 부족으로 인해 25시간의 진통동안 무통주사도 받지 못하고
그 모든 고통을 몸으로 받아내며 세상으로 밀어낸 아이였다.
그 25시간 동안 나도 아내 옆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깨어있었다.
마침내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리고 그 생명의 울음 소리를 들었을 때, 난생 처음 온 몸으로 느껴지던 그 느낌,
그 핏덩어리 생명체와 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강하게 연결된듯한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버지로서의 내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감사하다. 1년동안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열이 두번 정도 오른 것 빼고는 키우는데 건강 문제로 걱정한 적이 없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고..
나에게 너무 매달려서 가끔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하다. 그저 감사하다.
모든게 감사하다.
딱 1년 전 어제 오전 10시 55분. 아내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머리를 내밀며 아프게
울어대던 녀석을 처음 만났었다.
아내가 15팩의 수혈을 받으며,
혈소판 부족으로 인해 25시간의 진통동안 무통주사도 받지 못하고
그 모든 고통을 몸으로 받아내며 세상으로 밀어낸 아이였다.
그 25시간 동안 나도 아내 옆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깨어있었다.
마침내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리고 그 생명의 울음 소리를 들었을 때, 난생 처음 온 몸으로 느껴지던 그 느낌,
그 핏덩어리 생명체와 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강하게 연결된듯한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버지로서의 내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감사하다. 1년동안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열이 두번 정도 오른 것 빼고는 키우는데 건강 문제로 걱정한 적이 없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고..
나에게 너무 매달려서 가끔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하다. 그저 감사하다.
모든게 감사하다.
Tuesday, August 16, 2011
고마운 분들
이번에 뉴질랜드에 가게되면 집을 구하기 전까지 당분간 웰시 부부 댁에 머물 예정이다.
이 노부부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단지 내가 접촉한 뉴질랜드 교회를 통해 소개를 받고 몇차례 이메일만 주고 받았을 뿐이다.
남편인 단이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하는 분이라서 중고차를 부탁드렸었다.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3, 4천불 정도의 차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얼마전 12만 7천 킬로 주행한 3천불짜리 혼다 시빅을 구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혼다 정비사인 친구에게서 추천을 받은 차라며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다.
뉴질랜드 가기 전에 벌써 차를 구하게 되어서 감사하던 차에
오늘 메일이 왔는데 자기가 그 차를 사서 자기 이름으로 이미 등록을 했으니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보험료와 기름값만 내고 그 차를 그냥 타고 다니라고 한다.
그리고 보험회사까지 알아보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단은 일흔이 넘은 연세에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교회 관리도 도맡아 하시는 분이라고
뉴질랜드 교회 사무직원이 알려주었다.
단이 나에게 보여준 행동은 일반적인 수준의 도움 이상의 것인데
뉴질랜드 도착 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꽤 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간 사회가 이정도라도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노부부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단지 내가 접촉한 뉴질랜드 교회를 통해 소개를 받고 몇차례 이메일만 주고 받았을 뿐이다.
남편인 단이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하는 분이라서 중고차를 부탁드렸었다.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3, 4천불 정도의 차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얼마전 12만 7천 킬로 주행한 3천불짜리 혼다 시빅을 구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혼다 정비사인 친구에게서 추천을 받은 차라며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다.
뉴질랜드 가기 전에 벌써 차를 구하게 되어서 감사하던 차에
오늘 메일이 왔는데 자기가 그 차를 사서 자기 이름으로 이미 등록을 했으니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보험료와 기름값만 내고 그 차를 그냥 타고 다니라고 한다.
그리고 보험회사까지 알아보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단은 일흔이 넘은 연세에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교회 관리도 도맡아 하시는 분이라고
뉴질랜드 교회 사무직원이 알려주었다.
단이 나에게 보여준 행동은 일반적인 수준의 도움 이상의 것인데
뉴질랜드 도착 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꽤 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간 사회가 이정도라도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Sunday, August 14, 2011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때
우면산에 있는 절 하나가 지난번 산사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 절에 공부하러 와있던 학생이 물에 휩쓸렸는데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그 절의 신도들이 부처님의 은덕을 입에 담을만한 일이지 싶다.
만약 그 산에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가 이번 비 피해를 비껴갔다면 그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에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은덕이든 하나님의 은혜든 이러한 말을 공개적으로 할 때는 그 은덕이나 은혜에서 비껴있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산사태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들,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에 부처님의 은덕이나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공개적으로 함부로 사용할 말이 아니다.
나에게는 은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일 수도 있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 절의 신도들이 부처님의 은덕을 입에 담을만한 일이지 싶다.
만약 그 산에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가 이번 비 피해를 비껴갔다면 그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에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은덕이든 하나님의 은혜든 이러한 말을 공개적으로 할 때는 그 은덕이나 은혜에서 비껴있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산사태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들,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에 부처님의 은덕이나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공개적으로 함부로 사용할 말이 아니다.
나에게는 은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일 수도 있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목탁소리
우리 교회 뒷편에 나즈막한 산이 있고 그 아래 절이 있다.
평상시 주일에 그 절에서 목탁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 조용하고 은은하게 목탁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하늘나라에서 스님들이 목탁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졌다. 사자와 어린양, 독사와 어린이가 함께 뛰놀 수 있는 곳이라면
불자와 기독인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뭐가 이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에서도 불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평상시 주일에 그 절에서 목탁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 조용하고 은은하게 목탁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하늘나라에서 스님들이 목탁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졌다. 사자와 어린양, 독사와 어린이가 함께 뛰놀 수 있는 곳이라면
불자와 기독인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뭐가 이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에서도 불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영성의 3요소
아버지는 기도를 오랫동안 해오신 분이신데, 아버지에 의하면 Spirituality에는 Spiritual Sense, Spiritual Communication, Spiritual Character의 3요소가 있다고 한다. 생각나는대로 대략 그 윤곽이라도 잡아보자면;
Spiritual Sense는 영적 감각인데 이는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촉각으로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을 구별하고 미각으로 쓴맛과 단맛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감각으로 하나님에 속한 것과 악에 속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영적 감각도 오감처럼 처음에는 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섬세해진다. 막 태어난 아이의 오감은 완전히 발달될때까지 몇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훈련에 의해 특정 감각이 더욱 발달 되기도 한다. 영적 감각도 영적 훈련에 의해 계발될 수 있을 것이다.
Spiritual Communication은 영적 교통인데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교통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바 단독적일 수 없고 관계적이라 할 수 있겠다. 영적 감각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이나 이웃과 영적 교통을 통해 영적 관계를 형성 발전시키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세번째 요소인 Spiritual Character를 형성하게 된다.
Spiritual Character는 영적 성품을 말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맺음과 관련이 있다. 영적 감각과 영적 교통을 통하여 영적 성품이 만들어져가고 결과적으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영적 열매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영적 성품의 최고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영성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닮아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는 영성의 3요소는 아버지의 30여년에 걸친 기도생활을 통해 체험적으로 얻어진 결과물이기에 아버지와 같은 기도생활을 하지 못한 내가 이에 대해 감히 평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버지는 학적인 분이 아니시기에 나와 학문적인 대화가 용이한 분은 아니시다. 그래도 오랜시간동안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오시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세계를 경험한 분이시기에, 그런 점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충분한 설명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를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것 외에도 아버지가 해주신 말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만약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버지가 지금까지 나에게 해주신 말들을 뼈대로 삼고 거기에 살을 덧대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겠다. 나중에 언제인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런 작업을 시도할지도...
Spiritual Sense는 영적 감각인데 이는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촉각으로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을 구별하고 미각으로 쓴맛과 단맛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감각으로 하나님에 속한 것과 악에 속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영적 감각도 오감처럼 처음에는 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섬세해진다. 막 태어난 아이의 오감은 완전히 발달될때까지 몇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훈련에 의해 특정 감각이 더욱 발달 되기도 한다. 영적 감각도 영적 훈련에 의해 계발될 수 있을 것이다.
Spiritual Communication은 영적 교통인데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교통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바 단독적일 수 없고 관계적이라 할 수 있겠다. 영적 감각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이나 이웃과 영적 교통을 통해 영적 관계를 형성 발전시키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세번째 요소인 Spiritual Character를 형성하게 된다.
Spiritual Character는 영적 성품을 말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맺음과 관련이 있다. 영적 감각과 영적 교통을 통하여 영적 성품이 만들어져가고 결과적으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영적 열매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영적 성품의 최고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영성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닮아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는 영성의 3요소는 아버지의 30여년에 걸친 기도생활을 통해 체험적으로 얻어진 결과물이기에 아버지와 같은 기도생활을 하지 못한 내가 이에 대해 감히 평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버지는 학적인 분이 아니시기에 나와 학문적인 대화가 용이한 분은 아니시다. 그래도 오랜시간동안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오시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세계를 경험한 분이시기에, 그런 점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충분한 설명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를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것 외에도 아버지가 해주신 말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만약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버지가 지금까지 나에게 해주신 말들을 뼈대로 삼고 거기에 살을 덧대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겠다. 나중에 언제인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런 작업을 시도할지도...
Monday, August 1, 2011
야곱의 씨름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벌였던 씨름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내 기억에 남는 가장 독특한 해석은 Jack Miles가 God: A Biography라는 책에서 보여주었던 해석이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책에서 마일스는 야곱이 씨름을 벌였던 상대방이 다름 아닌 에서라 말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밤에 종들과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야곱에게 몰래 찾아간 사람은 에서였고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야곱과 격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갔는지 아니면 손 좀 봐 줄려고 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에서는 어린 시절 부엌데기였던 야곱에게 힘에서 밀리게 된다.
날이 밝으면 자기 정체가 드러날까봐 에서는 반칙(?)을 써서 동생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네가 하나님을 이겼다'(이스라엘)는 이름을 준 후에, 이름을 밝히라는 야곱의 요구에 끝까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그때가 동이 틀 무렵이었는지라 야곱은 어렴풋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곳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부른다.
날이 새고 강을 건너 에서를 만난 야곱은 예상외로 호의를 베푸는 에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창 33:10)."
그 말을 하면서 서로 의미있는 미소를 교환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해석이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책에서 마일스는 야곱이 씨름을 벌였던 상대방이 다름 아닌 에서라 말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밤에 종들과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야곱에게 몰래 찾아간 사람은 에서였고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야곱과 격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갔는지 아니면 손 좀 봐 줄려고 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에서는 어린 시절 부엌데기였던 야곱에게 힘에서 밀리게 된다.
날이 밝으면 자기 정체가 드러날까봐 에서는 반칙(?)을 써서 동생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네가 하나님을 이겼다'(이스라엘)는 이름을 준 후에, 이름을 밝히라는 야곱의 요구에 끝까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그때가 동이 틀 무렵이었는지라 야곱은 어렴풋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곳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부른다.
날이 새고 강을 건너 에서를 만난 야곱은 예상외로 호의를 베푸는 에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창 33:10)."
그 말을 하면서 서로 의미있는 미소를 교환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해석이다.
Friday, July 29, 2011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달
대략 한달 후면 또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된다.
아직 비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8월 말쯤이면 받을 수 있을거고..
뉴질랜드에 들어가서 초기 정착까지 거쳐야 할 여러가지 통과의례들,
이를테면 공항 픽업, 임시거처, 집 구하기, 자동차 구입..등에 대해 도움을 줄 사람들은 이미 확보된 상태이다.
특히 웰시부부의 호의는 나에게 감동을 줄 정도다.
나 역시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들을 해왔지만
내가 그들에게 보였던 호의 이상을 웰시 부부가 나에게 보이고 있다.
물론 김영민 선생의 말처럼 '호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나에게 보여준 일관적인 태도와
그의 인간성에 대한 샤론의 긍정적인 평가, 사진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선한 눈매 등을
종합해 보면 그의 호의가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외국에서의 삶에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좋은 현지인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처음에 사람을 잘못 만나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 나를 돕게 될 샤론, 린다, 웰시부부 모두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주기로 한 걸 보면 다들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덕분에 이번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달은 맘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내 앞에서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비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8월 말쯤이면 받을 수 있을거고..
뉴질랜드에 들어가서 초기 정착까지 거쳐야 할 여러가지 통과의례들,
이를테면 공항 픽업, 임시거처, 집 구하기, 자동차 구입..등에 대해 도움을 줄 사람들은 이미 확보된 상태이다.
특히 웰시부부의 호의는 나에게 감동을 줄 정도다.
나 역시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들을 해왔지만
내가 그들에게 보였던 호의 이상을 웰시 부부가 나에게 보이고 있다.
물론 김영민 선생의 말처럼 '호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나에게 보여준 일관적인 태도와
그의 인간성에 대한 샤론의 긍정적인 평가, 사진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선한 눈매 등을
종합해 보면 그의 호의가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외국에서의 삶에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좋은 현지인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처음에 사람을 잘못 만나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 나를 돕게 될 샤론, 린다, 웰시부부 모두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주기로 한 걸 보면 다들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덕분에 이번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달은 맘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내 앞에서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Wednesday, July 20, 2011
베드로의 배반?
예수님으로 인해 배가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가
그 날에 얻은 엄청난 수익으로만 만족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했다면,
또는 고기가 안 잡힐 때만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기 잡게 해주십사 비는 사람으로 남았다면,
베드로는 우리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주님의 은혜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그들이 주를 따르는 모습을 본적은 그리 많지 않다.
주님이 주신 경제적 이익에만 취하여 주님을 떠나보내고
고기가 필요할 때만 다시 주님을 찾는 사람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했다면 그는 최소한 주님을 믿고 따랐다는 말이지만,
당신들은 주님을 배반할 수도 없으니
언제 한번 주님을 믿고 따르기라도 해본적이 있단 말인가..
물고기에 정신이 팔려 주님이 떠나가시는지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차리시오. 주께서 떠나가시고 있소..
그 날에 얻은 엄청난 수익으로만 만족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했다면,
또는 고기가 안 잡힐 때만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기 잡게 해주십사 비는 사람으로 남았다면,
베드로는 우리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주님의 은혜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그들이 주를 따르는 모습을 본적은 그리 많지 않다.
주님이 주신 경제적 이익에만 취하여 주님을 떠나보내고
고기가 필요할 때만 다시 주님을 찾는 사람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했다면 그는 최소한 주님을 믿고 따랐다는 말이지만,
당신들은 주님을 배반할 수도 없으니
언제 한번 주님을 믿고 따르기라도 해본적이 있단 말인가..
물고기에 정신이 팔려 주님이 떠나가시는지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차리시오. 주께서 떠나가시고 있소..
Saturday, July 16, 2011
비자 신청
드디어 비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4-6주가 걸린단다.
아내의 혈소판 수치가 낮게 나와서 뉴질랜드 이민성에까지 서류를 보내야 한단다.
별 거 아닌데 까다롭게 군다.
일 처리가 디테일하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고..
뭐 내가 그들의 일처리 방식에까지 간섭할 처지는 아니고.. 알아서 잘들 하겠지..
9월초쯤이나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랑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모든 일에는 항상 명암이 있는 법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암' 쪽보다는 '명' 쪽을 주로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반대의 경우인 사람을 보면 왜 스스로 자신에게 짐을 더 지우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 자체도 힘든데 거기에 걱정, 근심까지 얹는 사람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4-6주가 걸린단다.
아내의 혈소판 수치가 낮게 나와서 뉴질랜드 이민성에까지 서류를 보내야 한단다.
별 거 아닌데 까다롭게 군다.
일 처리가 디테일하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고..
뭐 내가 그들의 일처리 방식에까지 간섭할 처지는 아니고.. 알아서 잘들 하겠지..
9월초쯤이나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랑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모든 일에는 항상 명암이 있는 법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암' 쪽보다는 '명' 쪽을 주로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반대의 경우인 사람을 보면 왜 스스로 자신에게 짐을 더 지우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 자체도 힘든데 거기에 걱정, 근심까지 얹는 사람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Thursday, July 14, 2011
예방접종
뉴질랜드도 아이 예방접종은 비자 여부에 상관없이 무료로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나서 가장 어이없었던 일 중의 하나가
아이 예방접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잘 사는 나라가,
더욱이 저출산으로 인해 출산 장려 정책을 쓰고 있는 나라가
아이들 예방접종조차 무료로 안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를 낳고나서 가장 어이없었던 일 중의 하나가
아이 예방접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잘 사는 나라가,
더욱이 저출산으로 인해 출산 장려 정책을 쓰고 있는 나라가
아이들 예방접종조차 무료로 안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Friday, July 8, 2011
아이 보기
요즘 내 일과는 아이보기이다.
아이가 이제 10개월을 넘겼는데 운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덩달아 내 운동량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영 힘들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과 퇴근하고 몇시간 보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이 보느라 힘들어 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필히 아내 없이 아이를 며칠동안이라도 봐봐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아이 보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선 이 녀석이 밤에 그냥 푹 자질 않는다.
자다가 뒤척이고 뒤척이다 깬다. 깨면 그냥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운다.
밤중에 아이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가.
서둘러 달래서 재워야 한다. 그러는 중에 팔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자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6시도 못되서 일어난다.
일어나면 분유를 먹여야 한다.
분유먹이고 좀 놀아주면 또 잔다. 한시간 정도.
8시에 아침밥을 먹이고 놀아준다.
10시에 분유 먹인다. 놀다가 잔다. 자다가 일어난다.
일어나면 놀아주든지 뭘 먹여야 한다. 이렇게 밤10시까지 있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사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아, 이유식도 만들어야 한다.
회사일은 퇴근이라도 있지. 아이 보는 일은 퇴근이 없다.
갈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동작도 빨라지고..
장난 아니다.
그나마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다행이지.
어머니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비자 서류 준비도 하고 뉴질랜드 사람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하고 있다.
그래도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감사하고
뉴질랜드 일이 잘 풀려가서 감사하다.
비자만 빨리 나오면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이제 10개월을 넘겼는데 운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덩달아 내 운동량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영 힘들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과 퇴근하고 몇시간 보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이 보느라 힘들어 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필히 아내 없이 아이를 며칠동안이라도 봐봐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아이 보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선 이 녀석이 밤에 그냥 푹 자질 않는다.
자다가 뒤척이고 뒤척이다 깬다. 깨면 그냥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운다.
밤중에 아이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가.
서둘러 달래서 재워야 한다. 그러는 중에 팔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자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6시도 못되서 일어난다.
일어나면 분유를 먹여야 한다.
분유먹이고 좀 놀아주면 또 잔다. 한시간 정도.
8시에 아침밥을 먹이고 놀아준다.
10시에 분유 먹인다. 놀다가 잔다. 자다가 일어난다.
일어나면 놀아주든지 뭘 먹여야 한다. 이렇게 밤10시까지 있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사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아, 이유식도 만들어야 한다.
회사일은 퇴근이라도 있지. 아이 보는 일은 퇴근이 없다.
갈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동작도 빨라지고..
장난 아니다.
그나마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다행이지.
어머니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비자 서류 준비도 하고 뉴질랜드 사람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하고 있다.
그래도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감사하고
뉴질랜드 일이 잘 풀려가서 감사하다.
비자만 빨리 나오면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Friday, July 1, 2011
아내의 부재
아내가 시험 준비 때문에 한달간 서울에 가 있기로 했다.
이 말은, 즉 나와 아들이 아내/엄마와 한달 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이 떨어져있는 첫째 날인데 나는 벌써 병치레를 했다.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체기가 있고 그랬던 것이다.
내 '머리'는 아내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데
몸과 마음을 포함한 전체로서의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역시 사람이란 뇌로만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다.
뇌도 나의 부분, 그것도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만은 않은 부분일 뿐이다.
아내의 부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내 '뇌'가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물론 뇌가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뇌의 한계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뇌는 그 정도까지 밖에 계산하지 못한다.
뇌 자신보다 더 큰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제 10개월 된 내 아들은 아내의 부재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받아들인다기보다 아예 모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10개월짜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거고 보이면 있는 거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경우는
연애 시절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어쩌겠나, 잘 견뎌보는 수밖에..
이 말은, 즉 나와 아들이 아내/엄마와 한달 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이 떨어져있는 첫째 날인데 나는 벌써 병치레를 했다.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체기가 있고 그랬던 것이다.
내 '머리'는 아내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데
몸과 마음을 포함한 전체로서의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역시 사람이란 뇌로만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다.
뇌도 나의 부분, 그것도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만은 않은 부분일 뿐이다.
아내의 부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내 '뇌'가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물론 뇌가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뇌의 한계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뇌는 그 정도까지 밖에 계산하지 못한다.
뇌 자신보다 더 큰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제 10개월 된 내 아들은 아내의 부재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받아들인다기보다 아예 모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10개월짜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거고 보이면 있는 거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경우는
연애 시절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어쩌겠나, 잘 견뎌보는 수밖에..
Thursday, June 23, 2011
인연
뉴질랜드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두 달 후에는 그 곳에 가야 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까 생각을 좀 하다가
뉴질랜드 현지인 교회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길래
다른 루트를 찾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답장이 왔다.
벌써 여기저기 가능한 숙소들을 알아보고,
교인들 중에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메일 주소까지 보내주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비록 문화, 인종, 언어도 다르지만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 자매이다.
이게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증명되어져야 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두 달 후에는 그 곳에 가야 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까 생각을 좀 하다가
뉴질랜드 현지인 교회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길래
다른 루트를 찾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답장이 왔다.
벌써 여기저기 가능한 숙소들을 알아보고,
교인들 중에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의 이메일 주소까지 보내주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비록 문화, 인종, 언어도 다르지만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 자매이다.
이게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증명되어져야 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Monday, June 20, 2011
반물질
현재 알려져 있는 우주의 네가지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최초에 우주가 탄생했을 때 그 힘은 하나였을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우주를 지배하는 하나의 힘에 대한 이론을 과연 얻을 수 있을까?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기위해 과학자들은 소립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요근래 반물질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렸는데, 아마도 초대칭성 이론에서 말하는 입자의 쌍들을 말하는 것 같다.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소립자와 같은 수의 초대칭성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니 말이다.
빅뱅시에 물질과 반물질이 생성되었는데 지금은 물질만이 있고 반물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둘이 만나면 둘다 소멸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된다고 한다.
결국 물질과 반물질은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긴데..
그래서 어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존재할 거라는 예측을 내놓았었나보다.
그리고 최근 CERN에서 실험을 통해 반물질을 16초간 붙잡는데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연 반물질들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정말 있을까..
세상은 정말 쌍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쌍은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음과양, 남과 여,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 선과 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의 힘.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이 힘은 하나님으로 귀결될테고..
물리학에서는 어떤 이론으로 이 힘을 설명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데 최초에 우주가 탄생했을 때 그 힘은 하나였을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우주를 지배하는 하나의 힘에 대한 이론을 과연 얻을 수 있을까?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기위해 과학자들은 소립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요근래 반물질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렸는데, 아마도 초대칭성 이론에서 말하는 입자의 쌍들을 말하는 것 같다.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소립자와 같은 수의 초대칭성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니 말이다.
빅뱅시에 물질과 반물질이 생성되었는데 지금은 물질만이 있고 반물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둘이 만나면 둘다 소멸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된다고 한다.
결국 물질과 반물질은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긴데..
그래서 어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존재할 거라는 예측을 내놓았었나보다.
그리고 최근 CERN에서 실험을 통해 반물질을 16초간 붙잡는데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연 반물질들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정말 있을까..
세상은 정말 쌍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쌍은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음과양, 남과 여,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 선과 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의 힘.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이 힘은 하나님으로 귀결될테고..
물리학에서는 어떤 이론으로 이 힘을 설명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Friday, June 17, 2011
9개월 아이, yes/no 시작
요즘 아이가 보이는 특징적 행동들:
기어다니기, 도리도리, 이유식 먹기 싫어하기, 옹알이, 소리 지르기, 뭐든 잡아 당기기..
광주 생활을 정리하고 집에 와서 모처럼 쉬고 있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쉰다는 표현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정말 아이 키우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계셔서 다행이지 어머니 없이 나혼자 애를 키운다면..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세상의 모든 '집에서 전업으로 아이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내는 요새 공부한다고 9시부터 4시까지는 집에 없다.
그 기간동안 나와 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있는데
이 녀석이 요즘 부쩍 커서 자기 의사도 강해지고 힘도 세지고 해서
슬슬 훈육을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훈육이라는 말이 거창할 정도이긴 하다.
단순히 아이가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때 엄한 반응을 일관되게 함으로서
아이로 하여금 '뭔가 하면 안되는 게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는 정도니까..
아이가 뭘 아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알지 못해도 느끼기는 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 그냥 내 버려두면 이 아이도 온세상이 자기 천하인 줄 알고
제 멋대로 행동할지 모른다.
미국에 있으면서 보통의 미국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집에서 어떤 가정교육을 받고 있는지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철저하게 '예스'와 '노'를 구분하여 원칙대로 아이를 키웠다.
내가 보기에 냉정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긴 돌이켜 보면 나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부모님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다.
집에서 엄하게 크다보니 밖에서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움직이곤 했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뛰어다니고 그랬다가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는데,
요즘 부모들에게서는 아이들을 그렇게 나무라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어릴때 엄하게 키워야 한다.
엄하다는 말이 무조건 무섭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원칙을 정하고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그렇게 크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제멋대로 행동할 공산이 크다.
모두가 제 멋대로 행동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기어다니기, 도리도리, 이유식 먹기 싫어하기, 옹알이, 소리 지르기, 뭐든 잡아 당기기..
광주 생활을 정리하고 집에 와서 모처럼 쉬고 있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쉰다는 표현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정말 아이 키우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계셔서 다행이지 어머니 없이 나혼자 애를 키운다면..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세상의 모든 '집에서 전업으로 아이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내는 요새 공부한다고 9시부터 4시까지는 집에 없다.
그 기간동안 나와 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있는데
이 녀석이 요즘 부쩍 커서 자기 의사도 강해지고 힘도 세지고 해서
슬슬 훈육을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훈육이라는 말이 거창할 정도이긴 하다.
단순히 아이가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때 엄한 반응을 일관되게 함으로서
아이로 하여금 '뭔가 하면 안되는 게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는 정도니까..
아이가 뭘 아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알지 못해도 느끼기는 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 그냥 내 버려두면 이 아이도 온세상이 자기 천하인 줄 알고
제 멋대로 행동할지 모른다.
미국에 있으면서 보통의 미국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집에서 어떤 가정교육을 받고 있는지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철저하게 '예스'와 '노'를 구분하여 원칙대로 아이를 키웠다.
내가 보기에 냉정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긴 돌이켜 보면 나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부모님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다.
집에서 엄하게 크다보니 밖에서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움직이곤 했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뛰어다니고 그랬다가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는데,
요즘 부모들에게서는 아이들을 그렇게 나무라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어릴때 엄하게 키워야 한다.
엄하다는 말이 무조건 무섭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원칙을 정하고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그렇게 크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제멋대로 행동할 공산이 크다.
모두가 제 멋대로 행동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Thursday, May 26, 2011
유성기업 사태
요즘 유성기업 파업에 관한 말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그곳 노동자들이 연봉을 7천이나받으면서 파업을 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에서 이에 관한 기사를 냈는데, 임금부분에 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월 평균 임금은 449만2007원으로 1년으로 환산할 경우 5390만4084원이다. 이 중 기본급은 171만9978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38.3%에 불과하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만원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반면 잔업·특근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은 89만1485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19.8%에 달한다. 1년으로 따지면 1069만7820원이다. 기본급은 급여의 40%에 불과한 반면 잔업·특근·야근 수당이 20%에 달하는 구조다. 야간작업에 따른 피로 누적과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심야근무를 없애는 연속 2교대 근무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출처:경향신문 5/24/2011)
외국인노동자들이 월급 150에서 180을 받고 일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사람 중에도 그만큼의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인들을 데려다쓰냐고 한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저 정도 돈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초과근무를 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주일내 이른바 3D 업종에서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저정도다.
유성기업도 마찬가지다. 평균 16년 경력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일년 내 거의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연 5천 4백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대다수 우리나라 서민들이 왜 그리도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고 사용주의 편을 드는가 하는 부분이다. 심야근무 대신 연속 2교대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그들의 요구가 그렇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인가? 내 부모 내 자녀가 밤낮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좋은가? 어떻게든 그런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판단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경향신문에서 이에 관한 기사를 냈는데, 임금부분에 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월 평균 임금은 449만2007원으로 1년으로 환산할 경우 5390만4084원이다. 이 중 기본급은 171만9978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38.3%에 불과하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만원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반면 잔업·특근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은 89만1485만원으로 전체 임금의 19.8%에 달한다. 1년으로 따지면 1069만7820원이다. 기본급은 급여의 40%에 불과한 반면 잔업·특근·야근 수당이 20%에 달하는 구조다. 야간작업에 따른 피로 누적과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심야근무를 없애는 연속 2교대 근무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출처:경향신문 5/24/2011)
외국인노동자들이 월급 150에서 180을 받고 일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사람 중에도 그만큼의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인들을 데려다쓰냐고 한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저 정도 돈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초과근무를 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주일내 이른바 3D 업종에서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저정도다.
유성기업도 마찬가지다. 평균 16년 경력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일년 내 거의 쉬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금액이 연 5천 4백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대다수 우리나라 서민들이 왜 그리도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고 사용주의 편을 드는가 하는 부분이다. 심야근무 대신 연속 2교대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그들의 요구가 그렇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인가? 내 부모 내 자녀가 밤낮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좋은가? 어떻게든 그런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판단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Tuesday, May 24, 2011
빈라덴과 회개
오사마빈라덴이 미군의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 당한 후,
미국의 복음주의 권에서 빈라덴이 죽기 전에 회개했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었나보다.
복음주의권에서는 회개를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려하는 자세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미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살해된 빈라덴은 회개를 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회개를 할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미군에 의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만약 빈라덴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만 회개 기도를 올린 것으로 끝났다면
당연히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권에서 빈라덴이 죽기 전에 회개했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었나보다.
복음주의권에서는 회개를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려하는 자세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미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살해된 빈라덴은 회개를 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회개를 할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미군에 의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만약 빈라덴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만 회개 기도를 올린 것으로 끝났다면
당연히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Wednesday, May 18, 2011
임금 체불
얼마 전 어떤 외국인노동자로부터 700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700만원이라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큰 돈인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700만원이라면 얼마나 큰 돈이겠는가..
저정도 금액이면 외국인 노동자가 몇달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인데,
그걸 한푼도 받지 못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노동자가 떼인 돈을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법원에서 돈을 주라고 판결을 내려도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돈을 받는 건 별로 본적이 없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두고온 가족에게 매월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 본국의 가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700만원이라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큰 돈인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700만원이라면 얼마나 큰 돈이겠는가..
저정도 금액이면 외국인 노동자가 몇달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인데,
그걸 한푼도 받지 못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노동자가 떼인 돈을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법원에서 돈을 주라고 판결을 내려도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돈을 받는 건 별로 본적이 없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두고온 가족에게 매월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 본국의 가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구원 경험
요즘 아들 녀석이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난리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치고 있는 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간절한 눈빛을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다.
아주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 아이에게는 내가 자기를 방바닥에서 하늘로
번쩍 들어올려주는게 구원일거다.
구원 경험은 중층적이다.
개인적으로 체험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체험되기도 하며,
물리적 차원이기도 하고 영적 차원이기도 하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병든 자에게 구원이란 병이 낫는 것이고,
배고픈 자에게 구원이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에게는 풀려나는 것이 구원이고,
독재에 신음하는 자들에게는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 구원일 것이다.
물론 이런 차원의 구원 경험이 영속적이진 못하다.
다시 아프고 다시 배고프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러한 구원 경험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죄와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궁극적 구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러한 중층적 구원의 실상을 일상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 되고 만다.
구원 경험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온 세계가 구원 경험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 사건이 발생하는 근원을 하나님으로 인식한다.
그 구원이 낮은 단계의 것이든 높은 단계의 것이든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구원의 역사가 세대와 민족을 넘어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치고 있는 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간절한 눈빛을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다.
아주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 아이에게는 내가 자기를 방바닥에서 하늘로
번쩍 들어올려주는게 구원일거다.
구원 경험은 중층적이다.
개인적으로 체험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체험되기도 하며,
물리적 차원이기도 하고 영적 차원이기도 하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병든 자에게 구원이란 병이 낫는 것이고,
배고픈 자에게 구원이란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에게는 풀려나는 것이 구원이고,
독재에 신음하는 자들에게는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 구원일 것이다.
물론 이런 차원의 구원 경험이 영속적이진 못하다.
다시 아프고 다시 배고프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러한 구원 경험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죄와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궁극적 구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러한 중층적 구원의 실상을 일상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 되고 만다.
구원 경험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온 세계가 구원 경험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 사건이 발생하는 근원을 하나님으로 인식한다.
그 구원이 낮은 단계의 것이든 높은 단계의 것이든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구원의 역사가 세대와 민족을 넘어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Sunday, May 15, 2011
겸손과 자신감
전혀 계획에 없었던 만남이 어제 있었다.
이 만남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에도 여러가지 요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이 만남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일상은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그 수많은 요소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령 어제의 만남도 내가 밖으로 나간 시간과 밖에서 아내랑 아이와 아침을 먹는 데 걸렸던 시간, 음식점에서 아들이 보채기 시작한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 전화를 걸었을 때의 내 위치, 친구의 상황, 그날의 일기 등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불일치 했어도 어제의 내 일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것이다.
그 만남은 내가 단순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그 행위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제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수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혹자는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 이 만남을 가능케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상황 속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설령 집에 돌아와서 전화를 했다 해도, 사정상 그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는 단순한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제의 만남에 관여된 다른 요소들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했던 거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덕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사람의 행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 행위의 중요함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데 관여한 수많은 다른 요소들의 중요함 만큼만 중요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비록 내가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일의 성취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 관여한 모든 요소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내 역할은 얼마나 미미하면서도(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중요한가(내 역할이 없으면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 복합적 의미를 깨달으면 전자에서 겸손함과 후자에서 자신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만남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에도 여러가지 요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이 만남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일상은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그 수많은 요소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령 어제의 만남도 내가 밖으로 나간 시간과 밖에서 아내랑 아이와 아침을 먹는 데 걸렸던 시간, 음식점에서 아들이 보채기 시작한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 전화를 걸었을 때의 내 위치, 친구의 상황, 그날의 일기 등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불일치 했어도 어제의 내 일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것이다.
그 만남은 내가 단순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그 행위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제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수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혹자는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 이 만남을 가능케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상황 속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설령 집에 돌아와서 전화를 했다 해도, 사정상 그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는 단순한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제의 만남에 관여된 다른 요소들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했던 거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덕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사람의 행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 행위의 중요함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데 관여한 수많은 다른 요소들의 중요함 만큼만 중요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비록 내가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일의 성취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 관여한 모든 요소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내 역할은 얼마나 미미하면서도(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중요한가(내 역할이 없으면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 복합적 의미를 깨달으면 전자에서 겸손함과 후자에서 자신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Saturday, May 7, 2011
Saturday, April 30, 2011
비 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내일이 행사일인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우리나라 기상예보에 대해 그리 큰 신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가 온다니 좀 걱정되기는 한다.
야외 행사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행사를 전면 취소하거나
실내로 옮겨 제한된 형태로 행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볼까하는 유치한 생각을 잠깐 해봤다.
옛날,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이 신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
성경에도 그런 사고 방식의 잔재가 남아있긴하다.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으니 성서 저자들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오히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지 않는 일이고,
자연재해에 대비할 방책을 세우는 일이다.
이번 행사와 관련해서는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강당을 미리 물색해 놓는 것이다.
(이미 한 곳에 부탁을 해두었다).
그래도 비와 관련된 기도를 해야 한다면,
내일 비가 와서 행사가 축소된다 하더라도
행사를 위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때문에 내일 와야할 비가 안 와서는 안 된다.
내일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놀려고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어떤 농부들은 내일 비가 꼭와서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면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에 걸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 일에 대해
나중에 예수님께 꾸중을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우리나라 기상예보에 대해 그리 큰 신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가 온다니 좀 걱정되기는 한다.
야외 행사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행사를 전면 취소하거나
실내로 옮겨 제한된 형태로 행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볼까하는 유치한 생각을 잠깐 해봤다.
옛날,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이 신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
성경에도 그런 사고 방식의 잔재가 남아있긴하다.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으니 성서 저자들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오히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지 않는 일이고,
자연재해에 대비할 방책을 세우는 일이다.
이번 행사와 관련해서는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강당을 미리 물색해 놓는 것이다.
(이미 한 곳에 부탁을 해두었다).
그래도 비와 관련된 기도를 해야 한다면,
내일 비가 와서 행사가 축소된다 하더라도
행사를 위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때문에 내일 와야할 비가 안 와서는 안 된다.
내일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놀려고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어떤 농부들은 내일 비가 꼭와서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면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에 걸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 일에 대해
나중에 예수님께 꾸중을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Wednesday, April 27, 2011
행사 준비 중
요즘 행사 준비로 바쁘다.
최소 500여명의 외국인이 모이는 행사인데,
이번 행사가 아마도 이 곳에서 내가 맡게될 마지막 행사가 될 것 같다.
행사 준비하면서 또 다시 느끼고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역시 보기 좋게 뭘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 저기 방송국이나 소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행사가 좀 있어보이게 하는 일들 말이다.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려면 이런 일들을 좀 해주는 게 필수적인데도
나는 이런 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내가 운영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런 류의 사람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기는 한데,
요즘 교회들은 나같은 목회자는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그래서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체제의 바깥에서
체제의 떡고물이 아닌 하늘이 주는 만나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최소 500여명의 외국인이 모이는 행사인데,
이번 행사가 아마도 이 곳에서 내가 맡게될 마지막 행사가 될 것 같다.
행사 준비하면서 또 다시 느끼고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역시 보기 좋게 뭘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 저기 방송국이나 소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행사가 좀 있어보이게 하는 일들 말이다.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려면 이런 일들을 좀 해주는 게 필수적인데도
나는 이런 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내가 운영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런 류의 사람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기는 한데,
요즘 교회들은 나같은 목회자는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그래서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체제의 바깥에서
체제의 떡고물이 아닌 하늘이 주는 만나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Monday, April 25, 2011
부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살다가 고난을 당해서 죽더라도,
"죽일테면 죽여봐라. 죽어도 살아날테니까.
너희가 우리를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너희가 죽인 우리의 주군 예수가 다시 사셨다.
우리도 다시 산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일테면 죽여봐라."
로마와 유대 지배체제의 핍박에 맞서 싸우던 초기 크리스천들에게
부활은 이런 의미였을듯..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죽일테면 죽여봐라. 죽어도 살아날테니까.
너희가 우리를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너희가 죽인 우리의 주군 예수가 다시 사셨다.
우리도 다시 산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일테면 죽여봐라."
로마와 유대 지배체제의 핍박에 맞서 싸우던 초기 크리스천들에게
부활은 이런 의미였을듯..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기도 응답이 더딘 이유, 그럼에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신다.
심지어 악인의 자유일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를 했음에도
그 기도가 즉시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악인이나 악한 체제를 설득하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땅의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면,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하실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을
바꿔야 되고 그러려면 그 정책 변화를 막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아야 한다. 이걸 강제로 하지 않고 설득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우리는 우리대로 이 땅에서 정책 변화를 위해 애쓸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애쓰고 계실 것이다. 장애인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는데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싹 쓸어버리고 즉각 정책을 바꾸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기도응답이 더디게 이루어지더라도 우리가 실망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열심히 설득 작업을하고 계시는구나
나도 더욱 열심히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장애인 정책 변화와 관련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본다면,
기도와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현 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해주고, 장애인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단체에 가입하고, 후원금을 내고, 시의원, 국회의원들의 공약을 살피고, 집회에 참석하고.. 등등. 뭐 이런 일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일에 참여하고 계실 것이다.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분이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나 개인의 삶을 돌이켜봐도, 내가 노력했던 그 이상의 결과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우연이라고 얘기할지 몰라도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노력의 결과라 믿는다.
하나님은 악인의 자유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도 존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신다.
설령 개입하길 원하셔도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원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의사를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실 것이다.
심지어 악인의 자유일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를 했음에도
그 기도가 즉시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악인이나 악한 체제를 설득하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땅의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면,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하실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을
바꿔야 되고 그러려면 그 정책 변화를 막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아야 한다. 이걸 강제로 하지 않고 설득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우리는 우리대로 이 땅에서 정책 변화를 위해 애쓸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애쓰고 계실 것이다. 장애인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는데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싹 쓸어버리고 즉각 정책을 바꾸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기도응답이 더디게 이루어지더라도 우리가 실망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열심히 설득 작업을하고 계시는구나
나도 더욱 열심히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장애인 정책 변화와 관련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본다면,
기도와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현 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해주고, 장애인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단체에 가입하고, 후원금을 내고, 시의원, 국회의원들의 공약을 살피고, 집회에 참석하고.. 등등. 뭐 이런 일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일에 참여하고 계실 것이다.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분이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나 개인의 삶을 돌이켜봐도, 내가 노력했던 그 이상의 결과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우연이라고 얘기할지 몰라도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노력의 결과라 믿는다.
하나님은 악인의 자유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도 존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신다.
설령 개입하길 원하셔도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원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의사를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실 것이다.
Wednesday, April 20, 2011
다양한 경험
생각해보면 한국에 살면서 여태껏 다양한 경험을 해본 것 같다.
대충이라도 적어본다면,
회사 생활도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벤처기업에서 해봤고,
비영리단체에서도 일해봤고,
깡촌, 지방도시, 광역시에도 살아봤고,
서울의 서래마을, 양재, 신촌에서도 살아봤고,
집도 단칸방에서부터 내집은 아니었지만 46평 아파트에서까지 살아봤고,
하숙, 자취, 기숙사 생활도 해봤고,
친척 집에 얹혀살아보기도 했고,
대학 때 아르바이트도 다양하게 해봤고,
사람들도 상위계층인 장관, 국회의원부터
소외계층인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만나봤고,
연예인들도 많이 봤고,
여행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다녀봤고,
팔도의 음식도 많이 먹어봤고,
미군 부대에서 군생활도 했었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고...
미국 유학 7년동안 경험했던 것을 빼고도
한국에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
한국에서 더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없는 듯하다.
한국을 떠난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고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제 또 다시 떠날 일만 남은 건가..
대충이라도 적어본다면,
회사 생활도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벤처기업에서 해봤고,
비영리단체에서도 일해봤고,
깡촌, 지방도시, 광역시에도 살아봤고,
서울의 서래마을, 양재, 신촌에서도 살아봤고,
집도 단칸방에서부터 내집은 아니었지만 46평 아파트에서까지 살아봤고,
하숙, 자취, 기숙사 생활도 해봤고,
친척 집에 얹혀살아보기도 했고,
대학 때 아르바이트도 다양하게 해봤고,
사람들도 상위계층인 장관, 국회의원부터
소외계층인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만나봤고,
연예인들도 많이 봤고,
여행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다녀봤고,
팔도의 음식도 많이 먹어봤고,
미군 부대에서 군생활도 했었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고...
미국 유학 7년동안 경험했던 것을 빼고도
한국에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
한국에서 더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없는 듯하다.
한국을 떠난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고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제 또 다시 떠날 일만 남은 건가..
Tuesday, April 19, 2011
고난주간
변화는 움직임을 통해서 오는데, 움직이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짐이 없어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면,
일반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움직이기 힘들어 한다.
그 짐은 경제적 짐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짐이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짐이 무거운 사람은 힘드니까 움직이지 않으려하고
움직임이 없으니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의외로 많다.
리더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의 짐의 무게가 얼마나 되며, 종류는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서 적용해야 한다.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으면 줄여주고
그럴 수 없다면 근육의 힘을 키워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움직임의 방향은 역시 예수님이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여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이보다 높은 부르심은 없다.
하나님나라라는 이 높은 이상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더더욱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그 나라를 향하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어떤 움직임에도 저항은 있게 마련이고,
저항에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움직임은 고난일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움직임/고난이 힘들게 보여지는 이유는
그가 진 짐이 엄청난 무게였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아마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짐 만이 아닌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을 지셨다.
그가 당연히 짊어졌어야 할 개인적인 짐에 더해,
굳이 자기가 지지 않아도 될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까지
어깨 위에 졌으니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움직이시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는가..
그 정도의 무게를 지고 움직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감당해야 한다.
그 저항은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 동족, 지배체제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몸이 찢어지고 피를 쏟아야 할 만큼의 강도였다.
그러나 그 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길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은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날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짐이 없어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면,
일반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움직이기 힘들어 한다.
그 짐은 경제적 짐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짐이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짐이 무거운 사람은 힘드니까 움직이지 않으려하고
움직임이 없으니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의외로 많다.
리더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의 짐의 무게가 얼마나 되며, 종류는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서 적용해야 한다.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으면 줄여주고
그럴 수 없다면 근육의 힘을 키워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움직임의 방향은 역시 예수님이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여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이보다 높은 부르심은 없다.
하나님나라라는 이 높은 이상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더더욱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그 나라를 향하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어떤 움직임에도 저항은 있게 마련이고,
저항에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움직임은 고난일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움직임/고난이 힘들게 보여지는 이유는
그가 진 짐이 엄청난 무게였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아마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짐 만이 아닌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을 지셨다.
그가 당연히 짊어졌어야 할 개인적인 짐에 더해,
굳이 자기가 지지 않아도 될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까지
어깨 위에 졌으니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움직이시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는가..
그 정도의 무게를 지고 움직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감당해야 한다.
그 저항은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 동족, 지배체제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몸이 찢어지고 피를 쏟아야 할 만큼의 강도였다.
그러나 그 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길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은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날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Wednesday, April 13, 2011
분유와 라면
아이가 요즘 이유식을 먹는데
이유식만 먹기는 좀 일러서 아직까지 분유도 먹고 있다.
분유값이 그다지 싸지는 않다.
프리미엄급이 아닌것도 1박스(3입)에 거의 7만원 가까이 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가서 분유를 사려는데
5만원 이상 구매하면 롯데라면 20봉을 덤으로 주는 행사가 있었다.
분유를 샀고 라면 20봉지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낮,
아이는 분유를 먹고
우리는 라면을 먹었다.
아내와 함께 라면을 먹으며 웃었다.
아이가 우릴 먹이고 있다고..ㅎ
이유식만 먹기는 좀 일러서 아직까지 분유도 먹고 있다.
분유값이 그다지 싸지는 않다.
프리미엄급이 아닌것도 1박스(3입)에 거의 7만원 가까이 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가서 분유를 사려는데
5만원 이상 구매하면 롯데라면 20봉을 덤으로 주는 행사가 있었다.
분유를 샀고 라면 20봉지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낮,
아이는 분유를 먹고
우리는 라면을 먹었다.
아내와 함께 라면을 먹으며 웃었다.
아이가 우릴 먹이고 있다고..ㅎ
계시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자신을 알린다고들 말하는데,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뜻을 알려주신다.
인간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도 하나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이해 너머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시다.
기껏해야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화 시켜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화된 하나님이 하나님인가?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 밖의 사람을 알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처럼 하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손발이 있는지, 목소리가 어떤지
이런 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냥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나중에 알게된다.
지금 우리가 그 부분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 학교 설립 관련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찾아오셔서 수억원대의 기부 의사를 밝히셨다.
그런데 그 분은 기부를 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당사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익명의 기부자였다.
우리 중의 아무도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
단지 그 분의 대리인을 통해 다문화 아이들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그 분의 뜻만을
전달 받았을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분의 뜻을 받아들여
다문화 교육에 그분의 기부금을 잘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재산이 얼마고, 이력이 어떻고, 성별이 어떻고, 기호가 어떻고, 이런 데에 신경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그 분의 뜻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에만 열심을 내자.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뜻을 알려주신다.
인간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도 하나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이해 너머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시다.
기껏해야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화 시켜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화된 하나님이 하나님인가?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 밖의 사람을 알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처럼 하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손발이 있는지, 목소리가 어떤지
이런 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냥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나중에 알게된다.
지금 우리가 그 부분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 학교 설립 관련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찾아오셔서 수억원대의 기부 의사를 밝히셨다.
그런데 그 분은 기부를 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당사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익명의 기부자였다.
우리 중의 아무도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
단지 그 분의 대리인을 통해 다문화 아이들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그 분의 뜻만을
전달 받았을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분의 뜻을 받아들여
다문화 교육에 그분의 기부금을 잘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재산이 얼마고, 이력이 어떻고, 성별이 어떻고, 기호가 어떻고, 이런 데에 신경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그 분의 뜻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에만 열심을 내자.
Sunday, April 10, 2011
축령산 소나무
장성 축령산에 다녀왔다.
축령산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 나무는 잎사귀의 생김새를 제외하고는 외관상으로 매우 흡사하다.
편백나무는 잎이 퍼져있고 삼나무는 뾰족한 데, 둘 모두
전봇대처럼 곧게 뻗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편백나무 삼나무가 아니라
편백나무 숲에서 곧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였다.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보게되는 보통의 소나무는 곧게 뻗지 않고 약간 구불거리며 자란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균 18m나 된다는 이곳 편백나무 숲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마치 자기도 편백나무인 것 마냥 곧게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나무를 덮고 있는 소나무 껍질만 아니었다면,
18미터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외관만 보고 영락없는 편백나무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 옆 소나무만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구불거리며 자라던 나무가
편백나무로만 둘러쌓인 곳에서는 편백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환경은 본성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반면,
편백나무 숲에서 자란 소나무는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쭉쭉 뻗은 모습이 보기 좋아보이긴 하지만
소나무는 소나무들 사이에서 구불거리며 자라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말이다.
(소나무 숲에서 편백나무가 자란다면, 편백나무도 소나무처럼
구불거리며 자랄까? 궁금하다.)
축령산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 나무는 잎사귀의 생김새를 제외하고는 외관상으로 매우 흡사하다.
편백나무는 잎이 퍼져있고 삼나무는 뾰족한 데, 둘 모두
전봇대처럼 곧게 뻗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편백나무 삼나무가 아니라
편백나무 숲에서 곧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였다.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보게되는 보통의 소나무는 곧게 뻗지 않고 약간 구불거리며 자란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균 18m나 된다는 이곳 편백나무 숲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마치 자기도 편백나무인 것 마냥 곧게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나무를 덮고 있는 소나무 껍질만 아니었다면,
18미터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외관만 보고 영락없는 편백나무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 옆 소나무만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구불거리며 자라던 나무가
편백나무로만 둘러쌓인 곳에서는 편백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환경은 본성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반면,
편백나무 숲에서 자란 소나무는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쭉쭉 뻗은 모습이 보기 좋아보이긴 하지만
소나무는 소나무들 사이에서 구불거리며 자라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말이다.
(소나무 숲에서 편백나무가 자란다면, 편백나무도 소나무처럼
구불거리며 자랄까? 궁금하다.)
Friday, April 8, 2011
작은 도시
미국에 있을 때 살았던 곳은 인구수가 약 70만정도 되는 도시였다.
그런데도 처음에 갔을 때는 시골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에 가게될 뉴질랜드의 도시는 7만 정도 된다고 한다.
작은 도시가 싫지는 않지만
미국에 살았을 때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소도시의 불편함이나 현지인들과의 관계보다
그곳에 살고있는 한인들과의 관계가 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처신하면 되겠지만 한인사회가 워낙 좁고 말들이 많은 곳이라..
게다가 인구 수 7만 도시라면 한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말 작은 한인 커뮤니티일텐데.. 별 탈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처음에 갔을 때는 시골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에 가게될 뉴질랜드의 도시는 7만 정도 된다고 한다.
작은 도시가 싫지는 않지만
미국에 살았을 때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소도시의 불편함이나 현지인들과의 관계보다
그곳에 살고있는 한인들과의 관계가 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처신하면 되겠지만 한인사회가 워낙 좁고 말들이 많은 곳이라..
게다가 인구 수 7만 도시라면 한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말 작은 한인 커뮤니티일텐데.. 별 탈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Thursday, April 7, 2011
7개월, 소리지르기
아들 녀석이 요즘 소리지르기 선수가 되었다.
'저러다 득음하는게 아닌가 몰라', 이런 생각을 할 정도다.
맑고 높은 소리, 고막을 찌르는 하이 피치, 그것도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물론 아기들이 가성을 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작은 몸뚱이로 그런 크고 높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대단하긴 하다.
학자들에 의하면 7개월이면 아기들이 나름 의사표현을 하는 시기란다.
소리지를땐 나무라지 말고 대화를 하란다.
아이가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의사전달은 어느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칼자루는 아이가 쥐고 있다.
다른 집에 피해를 줄 수 없으니 소리지르는 녀석이 일단 이기고 들어가는 거다.
단독 주택에 살면 좀 더 빨리 길들일 수 있을 텐데,
원룸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
소리만 지르면 뭐든 다 해결되니 아마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알거다.
그래, 마음껏 소리쳐라.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
'저러다 득음하는게 아닌가 몰라', 이런 생각을 할 정도다.
맑고 높은 소리, 고막을 찌르는 하이 피치, 그것도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물론 아기들이 가성을 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작은 몸뚱이로 그런 크고 높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대단하긴 하다.
학자들에 의하면 7개월이면 아기들이 나름 의사표현을 하는 시기란다.
소리지를땐 나무라지 말고 대화를 하란다.
아이가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의사전달은 어느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칼자루는 아이가 쥐고 있다.
다른 집에 피해를 줄 수 없으니 소리지르는 녀석이 일단 이기고 들어가는 거다.
단독 주택에 살면 좀 더 빨리 길들일 수 있을 텐데,
원룸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
소리만 지르면 뭐든 다 해결되니 아마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알거다.
그래, 마음껏 소리쳐라.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
맑은 물은 없다
회계에 관해서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사업계획서 작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봐버렸다.
안봤어야 되는건데..
찝찝하다.
한국에 들어온지 3개월쯤 되었을때
서울에서 모 공단 보험 심사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분도 외국에서 살다가 들어왔는데,
나보고 다시 나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들어온지 얼마나 됐냐고 묻고는
6개월만 살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라고 말했다.
다른 문제 때문이 아니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 때문이라는 거다.
그 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닫는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보다는 좋아진거겠지..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가 벌써 사라져버렸겠지..
몇 주후면 세족식이 있을텐데...
누가 누구의 발을 씻긴단 말이냐..
씁쓸하다..
사업계획서 작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봐버렸다.
안봤어야 되는건데..
찝찝하다.
한국에 들어온지 3개월쯤 되었을때
서울에서 모 공단 보험 심사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분도 외국에서 살다가 들어왔는데,
나보고 다시 나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들어온지 얼마나 됐냐고 묻고는
6개월만 살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라고 말했다.
다른 문제 때문이 아니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 때문이라는 거다.
그 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닫는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보다는 좋아진거겠지..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가 벌써 사라져버렸겠지..
몇 주후면 세족식이 있을텐데...
누가 누구의 발을 씻긴단 말이냐..
씁쓸하다..
Tuesday, April 5, 2011
노동자의 편은 있는가..
오늘 일본 여성분과 노동청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체불관련해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어떤 한국 아저씨가 혼잣말로,
그러나 실은 우리가 동조해주길 바라는 말투로
체불임금 진정서를 처리하는 근무자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었다.
노동자 편을 들어주지 않고 기업체 편만 들어준다는 말이다.
체불임금을 다 받아주려고 노력하지 않고
사장하고 타협해서 정당히 받아야 할 임금을 깍으려고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공무원들 월급많이 주면 안된다고 화를 내신다.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돈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데)
무슨 월급을 주냐고..
노동부가 이름을 고용노동부로 바꾼지 좀 되었다.
요즘은 노동부라 부르지 않고 고용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 봐도 누구편인지 알것 같지 않은가?
지켜보면 이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고되다.
가진자를 우대하고 없는 자를 천대하는 세상.
노동자보다 고용자를 감싸는 세상.
2011년 4월 5일 내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체불관련해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어떤 한국 아저씨가 혼잣말로,
그러나 실은 우리가 동조해주길 바라는 말투로
체불임금 진정서를 처리하는 근무자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었다.
노동자 편을 들어주지 않고 기업체 편만 들어준다는 말이다.
체불임금을 다 받아주려고 노력하지 않고
사장하고 타협해서 정당히 받아야 할 임금을 깍으려고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공무원들 월급많이 주면 안된다고 화를 내신다.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돈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데)
무슨 월급을 주냐고..
노동부가 이름을 고용노동부로 바꾼지 좀 되었다.
요즘은 노동부라 부르지 않고 고용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 봐도 누구편인지 알것 같지 않은가?
지켜보면 이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고되다.
가진자를 우대하고 없는 자를 천대하는 세상.
노동자보다 고용자를 감싸는 세상.
2011년 4월 5일 내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Friday, April 1, 2011
믿음이 주는 용기
4월 1일이다.
몇 달 후면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된다.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는 그래도 가까운 곳에 사는 누나와 매형이
잘 보살펴주어서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게 될 뉴질랜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서
도착하는 순간부터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처음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은 다 하는 고생을 안하고 넘어가나 싶었는데,
그럴 운명은 아니었나보다 .
먼 곳으로 떠날 때는 항상 아브라함이 생각나는데,
그가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믿음이라는 말과 함께 용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브라함이 노년에 고향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겠는가.
성경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묘사되어있지만
당시 그 사건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사건이었다.
아브라함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말이다.
수태고지를 받았던 마리아가 느꼈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브라함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고,
훗날 히브리서 기자에게 아브라함의 떠나는 모습은 믿음이라는 말로 포착되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왜 떠났을까'를 물었을 것이고
그는 그 물음에 믿음이라는 대답을 찾아낸 것이다.
아무런 물질적 확증 없이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움직이는 모습.
히브리서 기자에게 믿음은 그런 것이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모든 길떠나는 자들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익숙하고 편안한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아직 모름(미지)과 욥기의 모호함 속에 계신다.
도마의 의심과 마리아의 불안함 속에 계신다.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도 용기를 준다.
언제든 낯선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몇 달 후면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된다.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는 그래도 가까운 곳에 사는 누나와 매형이
잘 보살펴주어서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게 될 뉴질랜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서
도착하는 순간부터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처음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은 다 하는 고생을 안하고 넘어가나 싶었는데,
그럴 운명은 아니었나보다 .
먼 곳으로 떠날 때는 항상 아브라함이 생각나는데,
그가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믿음이라는 말과 함께 용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브라함이 노년에 고향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겠는가.
성경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묘사되어있지만
당시 그 사건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사건이었다.
아브라함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말이다.
수태고지를 받았던 마리아가 느꼈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브라함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고,
훗날 히브리서 기자에게 아브라함의 떠나는 모습은 믿음이라는 말로 포착되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왜 떠났을까'를 물었을 것이고
그는 그 물음에 믿음이라는 대답을 찾아낸 것이다.
아무런 물질적 확증 없이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움직이는 모습.
히브리서 기자에게 믿음은 그런 것이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모든 길떠나는 자들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익숙하고 편안한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아직 모름(미지)과 욥기의 모호함 속에 계신다.
도마의 의심과 마리아의 불안함 속에 계신다.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도 용기를 준다.
언제든 낯선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Tuesday, March 29, 2011
사순절
사순절 기간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의 의미를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내는 기간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예수님 곁을 떠났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고난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령, 소외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나 재물을 기꺼이 내어 주고 있는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어주었는가? 그런 기회가 실제로 왔을 때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 적은 없는가?
이천년 전 십자가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학대받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주려할 때 만나게 되는 사장의 폭언이 될 수도 있고, 관공서의 관료주의나 무시가 될 수도 있고, 반이주진영의 원색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소외계층을 돌보고자 할 때 예상외로 접하게 되는 교회의 무관심이 될 수도 있고, 그런 힘든 일 하지 않고 다른 집 아들 딸들 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을 사교육에서 해방시키고자 할 때 마주치는 주변의 염려와 자녀의 장래에 대한 현실적 불안은 또한 어떠한가. 사업을 하면서 거짓과 속임수를 쓰지 않을 때 얻게되는 경제적 손실과 이로 인한 저조한 실적, 사회적 저평가는 또한 어떠한가.
우리는 정녕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순절 기간 중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 내 삶으로 응답해왔는지에 대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그들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응답은 희생적인 삶의 모습이었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그 희생과 고난 속에서 기쁨을 맛보았다. 그 기쁨은 그리스도에게 받은 은혜를 이웃들에게 베푸는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그들의 삶에 구현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비록 그 과정 중에 세상 권세로부터의 핍박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세상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권세를 무력화 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에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무력과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한 모습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현재라고 다를바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의 힘으로 기독교적 가르침을 억압하고 있고, 크리스천들은 이천년전 십자가 사건 이전의 제자들이 그랬듯 고통의 현장에서 도망치기 급급하다. 부활 경험 후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으로 돌아간 초기 제자들보다 못한 지금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는 커녕 자기 삶의 영역에 그 어떤 십자가적 내용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십자가 방지' 영역이 된지 오래다.
어쩌겠는가.. 이번 사순절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 삶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십자가 방지 보호막을 깨뜨리길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들의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짊어질 때, 그 때에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의 의미를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내는 기간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예수님 곁을 떠났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고난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령, 소외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나 재물을 기꺼이 내어 주고 있는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어주었는가? 그런 기회가 실제로 왔을 때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 적은 없는가?
이천년 전 십자가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학대받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주려할 때 만나게 되는 사장의 폭언이 될 수도 있고, 관공서의 관료주의나 무시가 될 수도 있고, 반이주진영의 원색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소외계층을 돌보고자 할 때 예상외로 접하게 되는 교회의 무관심이 될 수도 있고, 그런 힘든 일 하지 않고 다른 집 아들 딸들 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을 사교육에서 해방시키고자 할 때 마주치는 주변의 염려와 자녀의 장래에 대한 현실적 불안은 또한 어떠한가. 사업을 하면서 거짓과 속임수를 쓰지 않을 때 얻게되는 경제적 손실과 이로 인한 저조한 실적, 사회적 저평가는 또한 어떠한가.
우리는 정녕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순절 기간 중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 내 삶으로 응답해왔는지에 대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그들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응답은 희생적인 삶의 모습이었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그 희생과 고난 속에서 기쁨을 맛보았다. 그 기쁨은 그리스도에게 받은 은혜를 이웃들에게 베푸는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그들의 삶에 구현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비록 그 과정 중에 세상 권세로부터의 핍박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세상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권세를 무력화 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에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무력과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한 모습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현재라고 다를바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의 힘으로 기독교적 가르침을 억압하고 있고, 크리스천들은 이천년전 십자가 사건 이전의 제자들이 그랬듯 고통의 현장에서 도망치기 급급하다. 부활 경험 후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으로 돌아간 초기 제자들보다 못한 지금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는 커녕 자기 삶의 영역에 그 어떤 십자가적 내용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십자가 방지' 영역이 된지 오래다.
어쩌겠는가.. 이번 사순절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 삶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십자가 방지 보호막을 깨뜨리길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들의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짊어질 때, 그 때에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Monday, March 21, 2011
부모를 모신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부모를 모셔야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보니
부모를 모신다는 말은 부모 입장에서는 그다지 듣고 싶은 말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아들이 나를 모시겠다고 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그냥 같이 살자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겠는가?
그냥 같이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늘상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바뀌지 않는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냥 같이 살아라.
그게 부모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보니
부모를 모신다는 말은 부모 입장에서는 그다지 듣고 싶은 말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아들이 나를 모시겠다고 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그냥 같이 살자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겠는가?
그냥 같이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늘상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바뀌지 않는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냥 같이 살아라.
그게 부모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Saturday, March 19, 2011
원자력발전소의 무서움
링크: 원자력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죠
이 글 읽고 정말 놀랐다.
작년에 영광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교회 소풍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영광 굴비도 먹으면 안될 것 같다...
이 글 읽고 정말 놀랐다.
작년에 영광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교회 소풍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영광 굴비도 먹으면 안될 것 같다...
Thursday, March 17, 2011
낯가림
아이가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교회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울어대서 아주 곤란했었다.
녀석이 낯가림도 하지만 요즘은 내 표정도 읽는 것 같다.
웃으면 따라 웃고..
한번은 어쩌나 보려고 우는 척을 했었는데 자기도 울려고 하는 것 아닌가..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내 말과 행동, 삶에 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이는 당분간 나를 통해서 배울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를 통해서 배울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아이는 나를 통해 배우고
나는 아이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밀착된 아이들이 낯가림을 하고
낯가림을 통해서 아이는 부모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도 알지 않을까 한다.
부디 아이의 무의식이 사랑으로 가득차길 바란다.
교회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울어대서 아주 곤란했었다.
녀석이 낯가림도 하지만 요즘은 내 표정도 읽는 것 같다.
웃으면 따라 웃고..
한번은 어쩌나 보려고 우는 척을 했었는데 자기도 울려고 하는 것 아닌가..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내 말과 행동, 삶에 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이는 당분간 나를 통해서 배울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를 통해서 배울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아이는 나를 통해 배우고
나는 아이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밀착된 아이들이 낯가림을 하고
낯가림을 통해서 아이는 부모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도 알지 않을까 한다.
부디 아이의 무의식이 사랑으로 가득차길 바란다.
일본과 리비아
일본 핵발전소에서 최후의 50인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자원해서 남기로 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조직의 잘못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은 결국 개인들이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말이다.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수뇌부들이 저지른 일에
뒷처리를 해주는 사람들은 힘없는 일반 기술자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또 하나 가슴 아픈 일은
리비아 자유 민주화 운동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 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고 용병까지 불러들여
비무장 시민들을 짓밟았는데도 카다피를 저지할 힘이 있는 나라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힘없고 가난한 자의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나
그 분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인지..
공적 영역에서 그 나라의 실현을 볼 수 있을 때는 과연 언제인지..
자원해서 남기로 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조직의 잘못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은 결국 개인들이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말이다.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수뇌부들이 저지른 일에
뒷처리를 해주는 사람들은 힘없는 일반 기술자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또 하나 가슴 아픈 일은
리비아 자유 민주화 운동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 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고 용병까지 불러들여
비무장 시민들을 짓밟았는데도 카다피를 저지할 힘이 있는 나라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힘없고 가난한 자의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나
그 분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인지..
공적 영역에서 그 나라의 실현을 볼 수 있을 때는 과연 언제인지..
Tuesday, March 15, 2011
쓰나미와 방사능 유출 그리고 하나님
일본이 난리다.
초기에는 쓰나미의 위력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졌었다면
지금은 쓰나미보다는 방사능 누출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니 이제 우리는
천재보다 인재를 더 두려워해야 할 세상에 살게 된 것 같다.
확실히 하나님보다는 인간이 더 무섭지 않은가?
조용기 목사는 쓰나미를 하나님의 경고 운운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니들이 망쳐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냐' 이러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연 상태에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안되는
우라늄을 농축해놓은 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죽게될
또다른 사람들 살리기에 바쁘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욕먹는 것도 다 사람들 때문이다.
입 다물고 열심히 우리 할 일(돕는 일)이나 하자.
그게 하나님을 돕는 일이다.
초기에는 쓰나미의 위력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졌었다면
지금은 쓰나미보다는 방사능 누출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니 이제 우리는
천재보다 인재를 더 두려워해야 할 세상에 살게 된 것 같다.
확실히 하나님보다는 인간이 더 무섭지 않은가?
조용기 목사는 쓰나미를 하나님의 경고 운운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니들이 망쳐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냐' 이러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연 상태에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안되는
우라늄을 농축해놓은 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죽게될
또다른 사람들 살리기에 바쁘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욕먹는 것도 다 사람들 때문이다.
입 다물고 열심히 우리 할 일(돕는 일)이나 하자.
그게 하나님을 돕는 일이다.
Thursday, March 10, 2011
재의 수요일
사순절의 시작이다.
재를 좀 뿌리고 싶다.
장자연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전주 시내버스 사측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는사람들에게,
바다 건너 카다피 일가에게,
예수 이름에 먹칠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
.
.
이런 사람들에게 재 뿌리고 발라주면 회개를 하려나?
종려나무가 재로 변했다.
호산나에 흔들리던 종려나무.
호산나와 십자가 사이에서
종려나무여 너는 어디에 있었던가...
재를 좀 뿌리고 싶다.
장자연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전주 시내버스 사측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는사람들에게,
바다 건너 카다피 일가에게,
예수 이름에 먹칠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
.
.
이런 사람들에게 재 뿌리고 발라주면 회개를 하려나?
종려나무가 재로 변했다.
호산나에 흔들리던 종려나무.
호산나와 십자가 사이에서
종려나무여 너는 어디에 있었던가...
퍼온글) 스리랑카 타밀족을 섬기는 선교사
예전에 스리랑카 타밀족을 섬기는 선교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분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파송 교회 없이 스리랑카로 들어갔다는 점과
사모님이 둘째를 낳은 지 두 달만에 스리랑카로 들어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현재 이 선교사 부부와 두 자녀가 스리랑카에서 11년째 사역중이라 한다.
지금은 광염교회 파송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
내가 만일 선교를 가게 되면 기본적으로 자비량 사역을 할 생각이다.
사실 스리랑카에서도 자비량을 하려 했는데
아내의 경력이 부족해서 현재로서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아내가 간호사 경력을 더 쌓아야 할 곳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아내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으로서는 뉴질랜드가 유력하다.
일단 뉴질랜드로 가게 되면 그곳에서 또 얼마나 있어야 할지...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데 정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나도 궁금하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다.
삶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삶도 있기 때문이다.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데 정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나도 궁금하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다.
삶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삶도 있기 때문이다.
Wednesday, March 9, 2011
폭력에 관대한 사회
한국 사회가 폭력에 관대하다는 사실은
경찰서나 관공서에서 쉽게 확인된다.
외국인노동자가 분명히 폭행을 당해서 경찰서를 찾아간건데도
크게 부러지거나 멍든 데가 없는 가벼운 폭행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는
'뭔가 잘못했으니까 맞았겠지' 라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해주려 하기도 한다.
참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경찰서나 관공서에서 쉽게 확인된다.
외국인노동자가 분명히 폭행을 당해서 경찰서를 찾아간건데도
크게 부러지거나 멍든 데가 없는 가벼운 폭행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는
'뭔가 잘못했으니까 맞았겠지' 라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해주려 하기도 한다.
참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Saturday, March 5, 2011
폭력
오늘 어느 외국인노동자가 회사에서 폭행을 당한 사건을 접했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하루종일 병원부터 경찰서까지 왔다갔다 했었는데,
그 과정 중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쩌다 폭력에 관대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아무런 잘못없이(잘못아닌 잘못이 있다면 아파서 쉰 것뿐) 폭행당한
그 친구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이 미안함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도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나의 무력함과 이런 나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더욱 커져갔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폭력이 사라질까..
군대? 학교? 가정? 방송?
우리의 죄로 인해 이방인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의 고통에 나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이 무거운 마음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하루종일 병원부터 경찰서까지 왔다갔다 했었는데,
그 과정 중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쩌다 폭력에 관대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아무런 잘못없이(잘못아닌 잘못이 있다면 아파서 쉰 것뿐) 폭행당한
그 친구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이 미안함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도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나의 무력함과 이런 나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더욱 커져갔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폭력이 사라질까..
군대? 학교? 가정? 방송?
우리의 죄로 인해 이방인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의 고통에 나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이 무거운 마음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Monday, February 28, 2011
알면 알수록..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고 더 함께 있고 싶어지는 단체는 없는 건가?
내가 지금 잠시 몸을 맡기고 있는 이 곳은
첫인상은 괜찮았는데 알면 알수록 오래 있고 싶어지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저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고
단지 갈수록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곳이라는 점만 말하고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처음 인상은 좋았어도 갈수록 안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거고
같이 일하기는 어려운 사람도 있는거다.
나를 모든 사람에게 맞추거나 모든 사람을 나에게 맞출 수는 없는 법.
그렇게하다가는 영혼 없는, 껍데기 뿐인 사람이 되거나 세뇌의 달인이 되고 말 것이다.
영혼 없는 사람이나 세뇌의 달인 둘다 되고 싶지 않다.
어긋나고 빗겨가다가 결국 나에게 맞는 사람이나 단체를 만나게 될거라 믿는다.
마치 내가 내 아내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잠시 몸을 맡기고 있는 이 곳은
첫인상은 괜찮았는데 알면 알수록 오래 있고 싶어지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저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고
단지 갈수록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곳이라는 점만 말하고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처음 인상은 좋았어도 갈수록 안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거고
같이 일하기는 어려운 사람도 있는거다.
나를 모든 사람에게 맞추거나 모든 사람을 나에게 맞출 수는 없는 법.
그렇게하다가는 영혼 없는, 껍데기 뿐인 사람이 되거나 세뇌의 달인이 되고 말 것이다.
영혼 없는 사람이나 세뇌의 달인 둘다 되고 싶지 않다.
어긋나고 빗겨가다가 결국 나에게 맞는 사람이나 단체를 만나게 될거라 믿는다.
마치 내가 내 아내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Friday, February 25, 2011
정의와 사랑
크로산이 "가장 위대한 기도"라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정의는 사랑의 몸이며, 사랑은 정의의 영혼"이라는 말을 했다.
둘다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잔인해지며, 정의가 없는 사랑은 공허한 것"이다.
내 식으로 말한다면
정의는 사랑의 육화이다. Justice is the incarnation of love.
"정의는 사랑의 몸이며, 사랑은 정의의 영혼"이라는 말을 했다.
둘다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잔인해지며, 정의가 없는 사랑은 공허한 것"이다.
내 식으로 말한다면
정의는 사랑의 육화이다. Justice is the incarnation of love.
Thursday, February 24, 2011
맨 땅에 헤딩?
지금 나는 일을 배워야 할 시기인데, 일을 만들어서 해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쪽 분야에는 전혀 전문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서울에서 했던 일은 이쪽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었고
직원들도 많이 있었던 곳이라서 나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됐었다.
게다가 거기서도 겨우 몇개월만 있었지 않은가..
이런 마당에 사업계획서?
컨텐츠가 있어야 사업계획서를 쓰지..
컨텐츠를 개발하라고?
뭘 알아야 만들어내지..
내가 이 분야에 전문가도 아니고, 전혀 다른 일 하다가 온 사람인데 어쩌란 말이냐..
이런 상황에서는 있던 의욕마저 꺾이고 말 것 같다.
해결책?
맨 땅에 헤딩하기?
내가 여기 맨 땅에 헤딩하러 왔나?
맨 땅에 헤딩할거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
옆에서 도와주면서 배우러 온 것이다.
맨 땅에 헤딩하다가 피 흘리고 죽어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시행착오를 나도 하란 말인가?
왜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들도 알거 아닌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맨 땅에 헤딩했는데 운좋게 살아 났으면
자기 후배들에게는 그런 일 안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차근 차근 체계적으로 알려주면 안되나?
이 일이 그렇게 매력이 있거나 보상이 크거나 해서 하는 일은 아니잖는가?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쪽 분야로 뛰어들었는데
선배라는 사람들이 가르칠 것 없다고 하고 직접 해보라고만 하고..
한심하다, 한심해..
아니 이런 곳을 찾아온 내가 한심한 것인가?
이 쪽 분야에는 전혀 전문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서울에서 했던 일은 이쪽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었고
직원들도 많이 있었던 곳이라서 나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됐었다.
게다가 거기서도 겨우 몇개월만 있었지 않은가..
이런 마당에 사업계획서?
컨텐츠가 있어야 사업계획서를 쓰지..
컨텐츠를 개발하라고?
뭘 알아야 만들어내지..
내가 이 분야에 전문가도 아니고, 전혀 다른 일 하다가 온 사람인데 어쩌란 말이냐..
이런 상황에서는 있던 의욕마저 꺾이고 말 것 같다.
해결책?
맨 땅에 헤딩하기?
내가 여기 맨 땅에 헤딩하러 왔나?
맨 땅에 헤딩할거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
옆에서 도와주면서 배우러 온 것이다.
맨 땅에 헤딩하다가 피 흘리고 죽어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시행착오를 나도 하란 말인가?
왜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들도 알거 아닌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맨 땅에 헤딩했는데 운좋게 살아 났으면
자기 후배들에게는 그런 일 안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차근 차근 체계적으로 알려주면 안되나?
이 일이 그렇게 매력이 있거나 보상이 크거나 해서 하는 일은 아니잖는가?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쪽 분야로 뛰어들었는데
선배라는 사람들이 가르칠 것 없다고 하고 직접 해보라고만 하고..
한심하다, 한심해..
아니 이런 곳을 찾아온 내가 한심한 것인가?
Tuesday, February 22, 2011
설교는..
*2007년 8월에 썼던 글.
바르트의 Homiletics를 읽다가 들었던 생각을 적어본다.
설교는 결단을 요청하는 수단이 아니다. 설교는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표지판일 뿐이다. 결단은 설교를 들은 청중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성령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이지, 설교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세일즈 맨이 아니다. 세일즈 맨이 팔려는 물건은 그 자신보다 낮은 가치의 물건이다. 그 물건의 지배권은 세일즈 맨에게 있으며 따라서 세일즈 맨은 자기의 뜻에 따라 그 물건을 팔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세일즈 맨은 사람들에게 결단을 요청한다. 물건을 사게 만든다.
설교자는 다르다. 설교자는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의 지배를 받는다. 설교자는 말씀의 봉사자일 뿐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단지 pointing fingers 요 sign posts 여야 한다.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가치에 휩쓸려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을 때 예수님에게로 하나님 나라로 그들의 눈을 돌려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청중들이 하나님 나라로 눈을 돌릴 때 예수님에게로 눈을 돌릴 때 결단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설교자의 손가락이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지 못하고 청중들을 향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설교일 수 없다. 설교자도 청중들과 함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결단까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말씀의 봉사자는 말씀을 주인되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된다. 말씀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 지는 그 말씀에 달려있다. 성령에 맡기는 것이다.
바르트의 Homiletics를 읽다가 들었던 생각을 적어본다.
설교는 결단을 요청하는 수단이 아니다. 설교는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표지판일 뿐이다. 결단은 설교를 들은 청중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성령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이지, 설교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세일즈 맨이 아니다. 세일즈 맨이 팔려는 물건은 그 자신보다 낮은 가치의 물건이다. 그 물건의 지배권은 세일즈 맨에게 있으며 따라서 세일즈 맨은 자기의 뜻에 따라 그 물건을 팔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세일즈 맨은 사람들에게 결단을 요청한다. 물건을 사게 만든다.
설교자는 다르다. 설교자는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의 지배를 받는다. 설교자는 말씀의 봉사자일 뿐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단지 pointing fingers 요 sign posts 여야 한다.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가치에 휩쓸려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을 때 예수님에게로 하나님 나라로 그들의 눈을 돌려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청중들이 하나님 나라로 눈을 돌릴 때 예수님에게로 눈을 돌릴 때 결단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설교자의 손가락이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지 못하고 청중들을 향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설교일 수 없다. 설교자도 청중들과 함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결단까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말씀의 봉사자는 말씀을 주인되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된다. 말씀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 지는 그 말씀에 달려있다. 성령에 맡기는 것이다.
경제 위기
요즘 경제를 보고 있자면
예전 미국에 있었을 때 갑자기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경제 사정이 안좋은데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있고..
금리도 오르고 있고..
제 2금융권도 무너지고 있고..
게다가 구제역 사태로 물가마저 오르고 있고..
구제역 사후 보상금으로 꽤 많은 돈이 필요할텐데
정부는 4대강 사업 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땅파는 데만 쏟아붓고 있으니..
이거 참.. 나라가 어찌 될 것인지..
예전 미국에 있었을 때 갑자기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경제 사정이 안좋은데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있고..
금리도 오르고 있고..
제 2금융권도 무너지고 있고..
게다가 구제역 사태로 물가마저 오르고 있고..
구제역 사후 보상금으로 꽤 많은 돈이 필요할텐데
정부는 4대강 사업 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땅파는 데만 쏟아붓고 있으니..
이거 참.. 나라가 어찌 될 것인지..
Monday, February 21, 2011
마음 만?
마음 만 다스려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바깥에서 해결하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좀더 쉬운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내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나에게 나쁜 짓을 했던 사람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평안?
그래 내 마음에는 평안이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 평안은 곧 거짓 평안임이 드러나고 말것이다.
마음 바깥으로 나와서 세상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나는 나만이 아니다.
나는 사회 속의 나이고 관계 속의 나이다.
그런 관계속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홍대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해고를 당하고 분한 마음을 삭히려고 마음 수련만 하고 있다면
사용주는 다음에도 마음대로 사람들을 해고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지 않겠는가?
마음 수련만 하고 있을텐가?
물론 내면을 다스리는 작업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면과 외면으로 나눌 수 없기에
내면의 건강 역시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부분에는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교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주로 용서라는 단어를 내면의 영역에서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내면/마음에서 빠져나와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지 않거나 또는 가해자에게 그의 잘못을 분명히 인지시키고
다음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부분이 생략된다면
용서라는 말은 그야말로 무기력한 말이 되고 말것이다.
세상에는 "~만" 가지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세상은 거미줄 같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만, 믿음으로만, 돈으로만, 노력으로만, 기도로만..
그런 건 없다.
그런 사람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바깥에서 해결하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좀더 쉬운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내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나에게 나쁜 짓을 했던 사람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평안?
그래 내 마음에는 평안이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 평안은 곧 거짓 평안임이 드러나고 말것이다.
마음 바깥으로 나와서 세상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나는 나만이 아니다.
나는 사회 속의 나이고 관계 속의 나이다.
그런 관계속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홍대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해고를 당하고 분한 마음을 삭히려고 마음 수련만 하고 있다면
사용주는 다음에도 마음대로 사람들을 해고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지 않겠는가?
마음 수련만 하고 있을텐가?
물론 내면을 다스리는 작업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면과 외면으로 나눌 수 없기에
내면의 건강 역시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부분에는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교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주로 용서라는 단어를 내면의 영역에서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내면/마음에서 빠져나와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지 않거나 또는 가해자에게 그의 잘못을 분명히 인지시키고
다음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부분이 생략된다면
용서라는 말은 그야말로 무기력한 말이 되고 말것이다.
세상에는 "~만" 가지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세상은 거미줄 같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만, 믿음으로만, 돈으로만, 노력으로만, 기도로만..
그런 건 없다.
Friday, February 18, 2011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 - 14
Thursday, February 17, 2011
죽음
어제 오늘 아는 분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내 나이 또래의 분인데 이번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해봤다.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낳기전 아이를 낳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보던 때와 같이 말이다.
막연함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함
부모의 죽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슬픔도 허전함도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그래서일까.. 장례식장에 가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대표기도를 해야했는데 참 난처했다.
그저 "하나님, 고인의 영혼을 품어주시고 가족들에게 위로를 베풀어주소서" 라고 기도할 뿐..
그 분은 기독교인은 아니었는데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그가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일뿐..
부모님은 살아계실 때 잘 모셔야 한다.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건가..
내 나이 또래의 분인데 이번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해봤다.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낳기전 아이를 낳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보던 때와 같이 말이다.
막연함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함
부모의 죽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슬픔도 허전함도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그래서일까.. 장례식장에 가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대표기도를 해야했는데 참 난처했다.
그저 "하나님, 고인의 영혼을 품어주시고 가족들에게 위로를 베풀어주소서" 라고 기도할 뿐..
그 분은 기독교인은 아니었는데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그가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일뿐..
부모님은 살아계실 때 잘 모셔야 한다.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건가..
Monday, February 14, 2011
히스기야왕의 기도
앗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중병을 앓고 있었던 히스기야왕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곧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게된다.
그 때 그의 나이 39세.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는 이런 기도를 올린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도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기도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과 분리된 기도는 입에 발린 기도, 겉만 그럴듯한 기도로 온전한 기도가 아니다.
온전한 기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이는 우리가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곧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게된다.
그 때 그의 나이 39세.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는 이런 기도를 올린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도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기도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과 분리된 기도는 입에 발린 기도, 겉만 그럴듯한 기도로 온전한 기도가 아니다.
온전한 기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이는 우리가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Sunday, February 13, 2011
최고은 작가
Tuesday, February 8, 2011
열정이 없다
내가 이걸 문제로 느끼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되는 것 같다.
뭐냐하면 열정이 없다는 거다.
엊그제 '위대한 탄생'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중도 탈락한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노래가 너무 하고 싶고, 노래가 자신의 전부인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 열정이 부러웠다.
나한테는 아직도 그런 열정이 없다.
그렇게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열정을 다해 하고 있는 일은 아니다.
당위로 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게 옳으니까, 누군가 해야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거 아니면 죽겠다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글쎄,
나는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무엇을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인것 같다.
위대한 탄생에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하고 싶은 뭔가가 아직 없다.
그런 걸 꼭 가져야만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건 아닐거다.
그런데도 그 무언가가 있고 그걸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억지로 가지고 싶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억지로 해서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기지 않는가?
어느 시점에 그냥 그런 어떤 것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한다.
마치 사랑처럼 말이다.
정말 하고 싶고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그런 어떤 일이 나에게도 생겼으면 좋겠다.
뭐냐하면 열정이 없다는 거다.
엊그제 '위대한 탄생'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중도 탈락한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노래가 너무 하고 싶고, 노래가 자신의 전부인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 열정이 부러웠다.
나한테는 아직도 그런 열정이 없다.
그렇게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열정을 다해 하고 있는 일은 아니다.
당위로 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게 옳으니까, 누군가 해야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거 아니면 죽겠다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글쎄,
나는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무엇을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인것 같다.
위대한 탄생에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하고 싶은 뭔가가 아직 없다.
그런 걸 꼭 가져야만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건 아닐거다.
그런데도 그 무언가가 있고 그걸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억지로 가지고 싶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억지로 해서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기지 않는가?
어느 시점에 그냥 그런 어떤 것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한다.
마치 사랑처럼 말이다.
정말 하고 싶고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그런 어떤 일이 나에게도 생겼으면 좋겠다.
Tuesday, February 1, 2011
환경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환경을 초월하는 사람도 몇몇 있긴 하지만 대단히 드문 경우다.
죄수 실험이나 전기 고문 실험과 같은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봐도
거의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험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아무런 강요가 없었는데도 점점 그 환경에 녹아들어가 결국 그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말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분이
한국에 돌아와서 몇년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자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자신감마저 잃었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환경을 초월했던 사람들이 영웅시 되는 이유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잠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을 때도 느꼈던 사실이지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다.
물론 좋은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10%는 있겠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10%라고 가정한다면
좋은 환경에서는 90%가 좋은 사람이 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10%만 나쁜 사람이 된다.
나쁜 환경에서는 90%가 나쁜 사람이 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10%만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욱 힘을 쏟아야 될 부분은 당연히 개인의 변화보다는 환경의 변화 쪽이어야 될 것이다. 개인을 직접 변화시키기 보다는 환경의 변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개인을 변화시키는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환경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래도 사회의 모든 에너지는 환경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쪽으로 썼으면 한다.
개인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힘을 쏟는 일은 종교가 잘 맡아주면 되지 않겠는가.
종교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환경을 초월하는 사람도 몇몇 있긴 하지만 대단히 드문 경우다.
죄수 실험이나 전기 고문 실험과 같은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봐도
거의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험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아무런 강요가 없었는데도 점점 그 환경에 녹아들어가 결국 그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말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분이
한국에 돌아와서 몇년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자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자신감마저 잃었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환경을 초월했던 사람들이 영웅시 되는 이유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잠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을 때도 느꼈던 사실이지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다.
물론 좋은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10%는 있겠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10%라고 가정한다면
좋은 환경에서는 90%가 좋은 사람이 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10%만 나쁜 사람이 된다.
나쁜 환경에서는 90%가 나쁜 사람이 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10%만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욱 힘을 쏟아야 될 부분은 당연히 개인의 변화보다는 환경의 변화 쪽이어야 될 것이다. 개인을 직접 변화시키기 보다는 환경의 변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개인을 변화시키는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환경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래도 사회의 모든 에너지는 환경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쪽으로 썼으면 한다.
개인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힘을 쏟는 일은 종교가 잘 맡아주면 되지 않겠는가.
종교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Sunday, January 30, 2011
수호믈린스키
박노자 선생의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선생이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소개하고 있길래 한권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
꽤 두꺼운 책이라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박노자 선생이 추천한대로 역시 내용이 좋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된다.
학생을 인격으로 대우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데 평생을 바친 분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르치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학교 교사나 목사들도 한번씩 읽어보았으면 한다.
특히 교인들의 교육에 관해 고민하는 목사들은 이 책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직접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성도들 스스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들을 했으면 한다.
꽤 두꺼운 책이라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박노자 선생이 추천한대로 역시 내용이 좋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된다.
학생을 인격으로 대우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데 평생을 바친 분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르치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학교 교사나 목사들도 한번씩 읽어보았으면 한다.
특히 교인들의 교육에 관해 고민하는 목사들은 이 책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직접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성도들 스스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들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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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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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탁구 선수들 중에 처음 봤을 때부터 호쾌함이 돋보였던 선수가 일본의 사츠키 오도였다. 사츠키 오도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저 선수가 복싱도 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가벼운 스텝이나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보고 있자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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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드디어 새로운 장비를 구입했다. 나름 리서치를 좀 해서 블레이드는 옵차로프 ALC, 전면에는 디그닉스 09C, 후면에는 디그닉스 80을 구매했다. 옵차로프 ALC: 중량은 내가 방문했던 매장에 더 가벼운 것이 없어서 8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