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26, 2011

삶의 자리


2007년 8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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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싸이에 글을 하나 남겼다.
그 글 중에 이런 문장이 하나 있었다.
"Crew 4 동료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가 이 글을 읽고 왜 동료가 두 명인데 네 명이라고 썼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난 네 명의 동료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저 글을 썼다.
내가 염두에 둔 내용은 우리 크루가 "Crew 4"라는 것이었다.
한국 말로 하면 "4조"라는 말이다.
난 "Crew 4"를 염두에 두고 저 글을 썼는데 읽는 이는 네 명의 동료로 읽었다.
물론 글을 쓴 내가 따옴표를 Crew 4의 앞뒤로 찍지 않은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Crew 4"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말이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이 없이 그냥 Crew 4라고 적은 것이다.

아마 성서 기자들도 나와 같은 실수를 했을 지도 모른다.
글을 적다가 자기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데에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글을 쓰는 경우 말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말인데 후대의 독자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록된 문자를 그대로, 정말 그 문자 수준에서만, 해석을 한다면 누구라도
내 아내가 행했던 바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을 거다.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는 기록된 문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Crew 4가 어떤 말인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내 삶의 자리를 추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근거없이 맘대로 그 의미를 해석해낸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그 문장의 해석의 근거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한다.
성서 기자의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 없이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내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Crew 4를 해석해 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서 기자와 텍스트에 대한 정말 무서운 폭력이 아닌가?
삶의 자리를 떠난 성서 이해는 성서 기자에 대한 무시요 더 나아가서는 성서 기자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무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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