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30, 2021

부활 경험의 조건

부활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절망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가 그야말로 치욕과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예수에게 인생을 걸었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겨졌을 만큼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부활을 통해 그들은 희망을 얻게 되었다. 예수가 가리켰던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실제로 체험했던 것이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끝이라는 현실을, 불의가 아니라 정의가 끝이라는 현실을,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끝이라는 현실을  부활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권력이 내렸던 사형 판결을 뒤집고 죽음에서 예수를 일으켜 세워 주셨으며 예수는 부활 이후로도 원수를 응징하기 보다는 공생애 기간동안 꾸준히 설파했었던 사랑을 실천해 나가셨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악한 세상 속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부탁하셨다.     

부활을 현실로 경험했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다. 소유를 나누기 시작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수의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따른 고통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에게 절망이 있는가? 풍요로움에 안주하기만 해서는 부활 신앙을 경험할 수 없다. 세상의 절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의 부조리와 권력의 행태에 절망을 느껴야 한다. 세상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죽임을 봐야 한다. 그러한 절망감이 현실로 느껴질 때 비로소 부활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절망이 없는 사람은 부활을 현실로 경험할 수 없다. 안락함 속에 부활이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돈을 구원자로 여기고 있다. 만질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돈이 우리의 구원자인데 어찌 보이지 않는 예수의 부활이 기쁠 수 있겠는가. 소유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어찌 소유의 추구를 경시하는 예수님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부활절에 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내 삶에 십자가가 있는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얻게 된 상처가 있는가? 나는 과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Wednesday, March 24, 2021

학교 캠프

아이가 오늘부터 2박 3일간 학교 캠프에 참여한다. 작년에 코비드 때문에 취소되었던 캠프를 이제서야 가게 된거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빈둥지증후군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살았다. 고등학교를 도시로 가는 바람에 고교 시절에는 한달에 한두 번 정도만 시골에 있는 집에 들렀다. 처음에는 아는 집사님 댁에서 1년을 살았고 그 후에는 하숙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내가 처음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때는 부모님의 심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내 감정에 비춰보면 부모님도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그래도 네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한 명의 자식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그렇기에 더욱 아이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 지금의 이 감정도 기억하고 싶다.

셋이 같이 산지가 10년에 아내와 둘이서만 살았던 기간이 9년.. 올해가 결혼 19주년이니 그렇게 둘이서, 셋이서 함께 살아왔다. 8년 후면 아이가 떠나고 나와 아내 둘이서만 사는 날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고 우리는 우리만의 삶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아이가 캠핑을 떠나면서 남겨진 이 허전함도 좋고, 밥은 잘 먹고 밤은 잘 잘까하는 약간의 걱정스러움도 좋고, 이틀 후에 다시 만날 기대감도 좋다.  

Monday, March 15, 2021

성찬식 봉사


오랜만에 성찬식 봉사를 했다. 단 위에서 커다란 포도주 잔을 들고 서 있으면서 포도주를 마시러 오는 성도들에게 "This is the blood of Christ shed for you" 라고 말하며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하얀 천으로 잔을 닦고 살짝 돌려서  다음 사람이 마시게 해준다. 하나의 잔에 들어있는 포도주를 함께 마시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성찬을 하는 교회보다는 조그만 잔에 들어있는 포도주스를 각자 들고 마시게 하는 교회가 많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하는 교회가 많았다고 한다. 이 교회에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마시게 하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에도 포도주 잔을 돌려마시는 교회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담임 목사였다면 포도주 잔을 돌려 마시는 형식은 제해버렸겠지만 이 교회 목사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이 교회는 앵글리칸 교회이다. 한국에서는 성공회라고 불리는 교회다. 앵글리칸 처치는 영연방 국가 중의 한 곳인 이 나라에서는 아마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일 것이다. 내가 침례교 목사이기 때문에 이 교회의 담임 목사/신부인 폴을 만나지 않았다면 앵글리칸 교회에 다닐 일은 없었을 거다. 

폴을 처음 만났던 곳은 수년 전 이 도시에 새로 생겼었던 커피 트럭이었다. 당시에 나는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고 폴은 이 도시로 이사와서 개척하며 자비량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새로 생긴 커피 트럭에서 커피를 한 잔 사마시며 바리스타인 폴이랑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목사라는 것까지 말하게 됐고 자기도 앵글리칸 교회의 신부라고 하는 것이었다. 

앵글리칸 신부도 자비량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한다고? 이렇게 시작되어서 올해부터는 아예 폴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굳이 분류하자면 저교회 전통에 가까운 교회지만 예전을 포기하지는 않은 교회이다. 게다가 뉴질랜드에서 맨발의 신부로 유명한 저스틴 주교가 폴과 함께 지내며 교회를 돕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저스틴 주교는 맨발에 장발을 땋은 헤어스타일로 유명한 주교인데 그냥 보면 전혀 신부스럽지 않고 어찌보면 조금 말끔한 노숙자스럽기까지도 하다.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청소년 사역을 해왔고 웰링턴 인근에서 공동체 사역을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웰링턴에 살고 있던 시절 인상깊게 여겼던 신부 중의 한명이었는데 지금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니.. 정말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어권 교회에 다시 참여하게 되니 다시금 영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일상적인 영어는 가능하지만 설교나 기도를 영어로 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말에 자신감이 있어야 설교나 기도가 가능한데 영어에 그만큼의 자신감이 없으니 설교를 하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지금은 한인교회 목회하던 시절에 비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많아져서 조금 나아진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영어로 듣고 말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하고 있기도 하고.. 

오늘 성찬식 봉사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노동의 댓가로 돈을 벌고 이렇게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니 좋다는 생각..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물론 아직은 영어 때문에 말로 가르치는 일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설교든 성경공부든 편하게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폴의 엄청나게 강한 스코티쉬 액센트에도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고..^^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