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23, 2016

여섯 살 생일

아이가 이제 내일이면 만 여섯 살이 된다.
6 년전이다... 벌써...
아내의 뱃속에서 머리부터 쑥 빠져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생명이라는 신비가 아이의 모습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6 년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목도 못 가누던 아이가 이제는 뛰고 말하고 글을 읽고 춤추고 노래하고...
아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신비다.
저 생명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 아이는 누가 키우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먹이고 입히는 것으로 아이가 자라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 최소한일뿐..
지난 6 년동안 나는 신비 체험을 해왔던 것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고
아이로 인해 생명이 열어가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이를 키웠는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아이 안에 내재된 생명력에 감응하여 성실하게 응대했을 뿐이다.
생명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이제 아이는 여섯 살이 된다.
앞니가 빠지면 어떡하냐며 걱정하다가도
친구들과 생일 파티에서 놀 일이 생각나면 배시시 웃는 여섯 살 아이가 된다.

어제 아침,
동트기 전 희미한 어둠 속에서 아이가 뜬금없이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
내일 아침에는 내가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뜬금없이...
하지만 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말이기에 뜬금없지 않은... 고맙다는 말을.

Saturday, August 20, 2016

내 안의 욥

고난에 관해 묵상하다가 다시 욥기를 읽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 38:3)

사업이 망했고, 자식들이 죽었고, 내 몸에 중병이 들었다.
아내도 나를 떠났다.
내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와 주었다.
친구들은 7일 동안 아무 말하지 않고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 친구들이 입을 열었고
나는 친구들과 나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친구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묻고 싶었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지쳤다. 죽고 싶었다.
그 때 하나님이 오셨다.
"그렇게 널브러져 있지 말고 일어서라. 남자답게 일어서라.
정신 차려라. 내가 여기 있다. 네 상대는 너에게 닥친 고난이 아니라 나다.
똑바로 일어서서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봐라. 그리고 내 질문에 대답해라"
그리고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퍼부으셨다.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맥락에 맞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고 있자니 왠지 그 분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고난 속으로 폭풍처럼 급하게 달려와서
내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하시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까지 어떻게든 나에게 힘을 주시고자 하는
그 마음이 와 닿는 듯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고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다.
친구들이 와 주었고
하나님도 와 주었다.
그거면 됐다.

Monday, August 15, 2016

좋은 선생이란

목사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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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졸업생들과 입학생들이 교차하는 이맘 때가 되면 교수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성찰하며, 학생이 죽어 버린 이 시대에 선생으로 입신하려는 열정을 가만히 되씹어 본다. 학생이 없는 시대에 선생으로 살아가는 뜻은 무엇일까? 그 무익한 열정은 무엇일까?

내 경우, 선생이란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선 ‘나’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먼저 알아낸 것을 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앎을 위해서, 그리고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해 먼저 노력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와중에서 넘어졌든 자빠졌든, 다만, 그 노력의 치열한 흔적, 그 흔적의 길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먼저 산정(山頂)에 올라서서 두 다리를 뻗고 산 아래를 향해 두 손을 흔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산정을 향해서 먼저 출발한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이며, 그 실수의 경험을 헛되지 하지 않은 사람이며, 그 경험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닦아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선생은 강단 위에서 강단 아래로 정답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답이 없는 절망 속을, 해결이 없는 배회 속을 얼마나 멋지게 견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잘해야 그는 정답을 찾기 위한 도정에서 얻은 상흔을 보여 줄 뿐이며, 심지어 오답 투성이의 앎과 삶에서도 섣부른 권태나 냉소에 빠지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용기 있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가르칠 ‘무엇’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가르칠 것이 없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사람일 뿐이다.

다만 좋은 선생이란 허우적대면서도 격(格)이 있고, 자빠지면서도 멋이 있다는 것 뿐."

-김영민『문화(文化) 문화(文禍) 문화(紋和)』중에서-

중환자실에서의 기도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 각종 선들을 얼기설기 달고 있는 30대 후반의 그를 보니,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역시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셨던 장모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의 병상 옆에서 나는 기도를 해야했다.
기도를 해주고 싶어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그 곳에 들어갔던 터였다.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보니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었다.
주님께서 그 자리에 이미 와 계시고 이미 그의 아픔을 나눠 지고 계시는데,
내가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그래도 가족들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런저런 위로와 격려의 말들을 해줘야 했다.
입을 열고 마음을 다해 그렇게 기도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일어나길 바랐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 나는 객관적인 의학 정보와 싸우고 있었다. 통계와 싸우고 있었다. 내 경험과 싸우고 있었다.
객관적인 정보상, 수치상, 경험상 그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퇴원하긴 어려웠다.
안다.
그런데 그걸 믿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뭔가 다른 걸 믿고 싶었다.
하나님이 그를 정상적인 상태로 일으키는 것을 믿고 싶었다.
내 이런 믿음은 여러번 배반 당했었다.
그래도 나는 객기를 발휘하여 똘아이처럼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랑의 하나님과 능력의 하나님,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려내십시오, 하나님!!"
이 한 마디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