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3, 2026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돈은 필요하지만 '필요' 그 이상은 아니다. 비누가 필요하고 치약이 필요하듯이 돈도 그냥 사는 데 필요할 뿐이다. 비누가 삶의 목적이 되지 않듯, 돈도 내 삶의 목적이 되지 않고, 치약에 욕심을 내지 않듯 돈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소박한 삶을 살고 있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인지,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그 전후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소박한 삶의 실천과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마음이 서로 되먹이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그 바탕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 정신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세속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처한 자리에서 더 높은 하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삶. 예수에게서 배운 그런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J의 생일인데 J는 해마다 생일이 되면 여기서 한 50km쯤 떨어져 있는 자기 고향에 간다. 그 작은 타운에 크림혼(cream horn)으로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는 것이 자기가 생일마다 하는 연례 행사라고 한다. 그 카페는 나도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긴 한데 J와 같이 가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J의 생일도 축하할 겸 직장 동료 몇 명이랑 함께 그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내 차로 다 함께 가자고 했더니 J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 웃음, 기쁨, 함께 어울림… 이런 것들이 소박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고, 이런 행복이 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Friday, August 21, 2026

찔레나무

우리 집 정원에 파고라(pergola)가 있고 그 위를 덩굴나무가 뒤덮고 있다. 봄이면 작고 하얀 꽃들이 소복히 피는데 향기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답다. 이름을 몰라서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나무가 찔레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찔레나무는 내가 한국에서 자주 봤던 나무인데 왜 몰랐었을까? 찔레나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이유가 가시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 자주 봤던 찔레나무는 가시가 엄청 많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나무는 가시가 거의 없다. 찾아보니 정원용으로 개량된 찔레나무일 거라고 한다. 원산지는 동아시아가 맞는데 유럽을 거치며 개량되면서 가시가 거의 없는 형태가 된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찔레나무의 부드러운 새순 껍질을 벗겨 그 속대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이 많고 싱싱해서 맛좋은 간식거리였다. 그런데 우리 집 찔레나무에서는 그런 식의 새순도 자라나지 않는다. 찔레는 찔레인데 서구화된 찔레였다. 

얼마 전에 우리 매장에 새로 입고된 폴란드산 김치도 그랬다. Kimchi라는 이름이 유리병에 붙어 있었는데, 상온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김치가 냉장이 아니라니, 그럴 수 있을까? 호기심에 사서 먹어보니 배추에 고추가루를 비롯한 기타 재료를 살짝 넣어 만든 자우어크라우트 스타일의 식품이었다. 그러니 맛도 김치 맛이라기보다는 자우어크라우트에 훨씬 가까운 맛이었다. 

찔레도 그렇고 김치도 그렇고 새로운 땅에 오니 새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원래 찔레나, 원래 김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전혀 모르지 않겠는가. 그냥 찔레나무는 이렇구나, 김치는 이런 맛이구나, 그러지 않겠는가. 보드리야르의 분석처럼 그저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시뮬라크르들에 만족하며 살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가? 뒷마당의 찔레나무가 진짜 찔레나무가 아님을 알고도 그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고, 폴란드에서 생산된 이상한 맛의 김치가 진짜 김치 맛이 아님을 알고도 손님들이 그걸 사가는 걸 막을 수 없지 않는가? 그 상품이 원래 김치가 아니라고 말해 줘도 사람들이 그걸 사 가서 맛있다고 먹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원래 찔레나무는 가시가 더 많은 거라 해도 가시 없는 찔레나무가 더 좋으니 어쩌겠는가? 시뮬라크르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진짜를 안다고 해서,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Tuesday, August 11, 2026

죽는다는 것

죽지 않고 증식만 계속하는 세포를 암세포라 한다. 세포에도 수명이 있어서 정상적인 세포는 거의 다 때가 되면 죽는데, 암세포는 죽는 장치가 고장난 세포이다. 그래서 계속 무한 증식하고 무한 확장하면서 주변 장기들이 써야 할 에너지를 빼앗고 그렇게 커진 덩치로 다른 장기들을 압박하는 세포다. 때가 되어 죽으면 아무 문제 없을 세포가 죽지 않으니 암이 된 것이다. 

죽는 것이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그것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다. 세포가 죽어야 몸이 살듯이, 내가 죽어야 세상이 사는 것이다. 오래 살려는 시도, 죽지 않으려는 시도, 죽음을 정복하려는 시도, 결국 암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의 욕심이 끝이 없다. 돈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건강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데 다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면 잘 죽자.  태어나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지만 늙어서 죽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다. 이별이야 당연히 슬픈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모두 마쳤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죽음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어 내 차례가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Tuesday, July 28, 2026

공부하는 아이

요즘 집에서 낯선 광경을 자주 본다.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여태껏 익숙했던 모습은 책상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게임도 물론 하긴 하지만, 공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들은 한국 기준으로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번 학년부터 국가에서 주관하는 전국 단위 시험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부터 보게되는 시험 결과가 앞으로 계속 쌓이면서 대학교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제 학교 성적을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인다.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 왔고 지금도 그렇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사칙연산을 가르쳤을 뿐 나머지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이 나라의 학교 교육 시스템을 따라갔다.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스포츠 한 번, 악기 한 번 이렇게만 방과 후 활동을 했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스포츠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스포츠를 시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30분짜리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졸업생 중 혼자서 수학상을 받았고,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영어, 수학, 과학 우등반에 들어가 있으니 집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치고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이다. 맨날 게임만 하는 모습이 내 기준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학교도 잘 다니고 성적도 좋으니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공부부터 하는 모습을 보니 얘도 이제 더 큰 경쟁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짠한 마음이 든다. 

내 아들도 이제 자기 친구들 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좌절도 맛보고 성취감도 맛보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의 장래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직업에 대해 물어보면 같이 대화는 하는데 내가 대신 선택을 해준다거나 은근히 어떤 직업을 부추기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 아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내 아이의 선택을 지지해 줄 것이고 그 선택을 통해 실패를 배우든 성공을 배우든 그 옆에서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Wednesday, July 15, 2026

교통사고

엊그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왼쪽에서 오고 있는 차를 못 보고 직진하다가 그 차의 오른쪽을 들이받은 것이다. 아내 쪽 도로에 정지선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정지선에 충분히 머물지 않고 출발하다가 사각에 걸린 상대 차를 못 봤던 것 같다. 50km 존이어서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는데, 아내 차의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지고 에어백도 터졌다. 반대편 차는 문짝을 교체해야 할 정도로 찌그러졌다. 경찰과 소방차가 와서 상황을 정리하고 견인차가 두 차를 모두 견인해 갔다. 

아내에게서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사고 장소로 가면서, 동네에서 사고가 난 건데 사고가 나 봐야 얼마나 큰 사고겠냐는 생각을 했는데, 차가 생각보다 많이 부서져 있어서 놀랐다. 아내의 차는 백퍼센트 폐차 처리가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양쪽 운전자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런데 내가 특히 놀라워했던 부분은 상대편 운전자의 반응이었다. 한 70대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였는데, 사고 직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큰 소리 한 번 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아내의 차는 2008년식 차라서 폐차되어도 얼마 못받는 차지만 그 할아버지의 차는 2022년식 SUV 차량이어서 차가 찌그러진 부분에 대해서 화를 낼 법도 한데, 너무 차분하고 인자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안 오는 걸 보니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 분 같아서 내 차로 집에까지 태워다 드렸다. 사고를 낸 아내는 내 옆자리에 앉고, 사고를 당한 할아버지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가는 동안 사고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벼운 이야기와 집에 가서 와인이나 한 잔 마셔야겠다는 말씀만 하셨다. 

어제는 하루 종일 새로 살 중고자동차를 검색하다가 오늘 아침에 가서 차 한 대를 샀다. 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불가능하니 하루라도 빨리 차를 사야 했다. 다행히 괜찮은 매물이 타운에 있어서 생각보다 일찍 차를 살 수 있었다. 여하튼 이번에 뜻하지 않게 목돈이 나가게 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긴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사고여서 감사했고, 상대 운전자가 너무 좋은 분이어서 또 감사했다.

Wednesday, July 8, 2026

야간근무의 대가

오랜만에 응급실에 갔다. 일 년에 한 번씩 GP를 만나는데, 요즘 심장 쪽에 뭉근한 통증이 자주 있다고 하니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겠다며 바로 응급실로 보냈다. 응급 상황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의사가 가라고 하니 가 보긴 했다. 피검사랑 EKG는 금방 했어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3시간 넘게 응급실에 있었다.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응급 상황은 아니어서 더 검사를 해 보려면 GP를 통해 CT를 찍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전에 직장에서의 내 근무 시간을 조정해 보려고 한다. 

벌써 6년째 야간 근무를 해 와서인지 이제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잠도 예전만큼 잘 자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피곤이 점점 누적되어서 심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 주에 점장을 만나서 일찍 시작하고 자정에 끝나는 방식으로 시간 조정을 해 보려고 한다.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대신 하루 더 일을 하면 근무 시간이 지금과 똑같은 24시간이 되니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밤 근무를 좋아한다. 밤에 일할 때면 매장에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좋다. 이어폰으로 오디오북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일 끝나고 집에 갈 때의 텅 빈 거리도 좋고, 새벽빛도 좋다. 몸만 따라 준다면 계속 밤근무를 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게 6년을 일해 오는 동안 내 동반자인 몸이 치러야 했던 대가가 그만큼 컸다면, 이제라도 내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서 몸의 회복을 돕는 게 맞을 것 같다. 

Friday, June 26, 2026

설교보다는 대화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인근 지역에 정전 사태가 났었는데, 그 바람에 내가 일하는 매장에도 전기 공급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이럴 때 쓰려고 설치해 둔 비상발전기가 부분적으로만 작동하는 바람에 매장 내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해서 오늘 일하는 날인데 한 시간만 일하고 왔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전기가 끊기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설교 준비를 마저 하려고 한다. 집에 일찍 오는 바람에 설교 준비하는 데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넉 달간의 설교 사역이 내일모레면 끝이 난다. 내가 힘이 들어서 한 달에 두 번씩만 하겠다고 하고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설교 준비가 힘이 든다. 예전처럼 성경 본문에 파고 들어가서 뭔가를 건져내고 지금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 

머리 쓰는 일을 안 하고 몸 쓰는 일만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책도 읽고 있고 이런저런 글들도 읽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지는 않다. 몸과 정신 중에서 지금은 몸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정신노동을 하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내가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니어서 원래 하던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하게 되면 몸이 힘들어진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버틸 만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버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 주일이면 마지막 설교니 다행이다. 내가 더 못 버틸 걸 아시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목사님은 그 교회에 10년은 계셨으면 좋겠다.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나도 그 일을 하긴 할 것이다. 단지 기성 교회에서 내가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씀을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누구든 나를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신자든 비신자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응해서 적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거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직장이나 내 삶의 반경에서 내가 만나고 있거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이런 일이 나에겐 더 보람이 있다. 

Thursday, June 4, 2026

용서, 회개, 화해

용서는 화해가 아니다. 화해가 상호적이라면 용서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지적 결단이다. 즉,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안에서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화해는 상호적이다. 용서와 달리 화해는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 후에나 가능한 것이 화해다. 

용서는 또한 감정의 차원도 아니다. 용서했다고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의지의 차원이지,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감정의 해소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가해자가 회개하고 죄값을 치렀어도 미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미움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서 그 사람에 대한 보복심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회개는 용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은 자와 화해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자수하고 옥살이를 할 것이다. 손해를 끼쳤다면 배상을 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출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화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화해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화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가능하지만 무조건적인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죄를 먼저 용서하셨고, 우리가 회개하길 기다리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우리와 화해하셨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의라 부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기를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사이에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1차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용서와 회개와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뭐가 문제인 것일까...

Wednesday, May 27, 2026

양자역학

전자가 입자이자 파동이며, 중첩되고 얽혀 있다는 양자물리학의 발견은 인간 사회에서도, 그리고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역시 개인이면서 동시에 집단이다. 집단 속에 있을 때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만 보이지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순간 집단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신이시면서 인간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三位)가 개별자이면서 동시에 하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정도로 우리와 긴밀하게 얽혀 계신다. 물리학에서는 양자얽힘 상태에 있는 두 입자가 우주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도 빛의 속도를 뛰어넘어 즉각적으로 동조하는 원인을 미지로 남겨두지만, 신학에서는 그것이 우주 전체에 충만한 '성령'이라는 신성한 파동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라 고백할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계시의 빛은 성경, 신화, 비유, 예술, 문학, 과학 등 그 무엇을 통해서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닿아 있다. 원하면 그 빛을 볼 수 있으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청원하지 않으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뿐이다.  

Wednesday, May 13, 2026

녹이 슬었다

옆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를 또다시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하니 한국어 발음이 잘 안 된다. 몇 주 하다 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발음을 틀리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중 연설을 할 일이 없다 보니 입 주변 근육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뇌가 순간적으로 한국어 문장을 생성해 내는 능력도 예전에 비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순발력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약간 녹이 슬었다.

그래도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서 책임감을 갖고 해 주고는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오시게 될 목사님은 제발 오랫동안 머물러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으로는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외국 생활을 안 해 보고 한국에서 바로 오는 목사님이라 하던데 작은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금액의 사례비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살아보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처하게 될 텐데 초반에 지치지 않고 잘 버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성껏 목회하면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히 있는 도시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초기 어려움만 잘 넘기면 괜찮아질 것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나처럼 녹슨 목사의 설교를 또 듣게 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Tuesday, April 28, 2026

무가치함

기독교 신앙에서 인간 존재의 무가치함이라는 말은 설 자리가 없는 말이다. 창세기에서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유일한 존재이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존재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자기가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아마도 자신이 기능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여겨질 때라거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일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자기를 무시할 때 내 존재가 무가치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다. 아무리 그런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내 존재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기능과 용도는 가변적이다. 적합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장자 철학 중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얘기하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목재로 쓰이지 않지만 오래 살아남아 큰 그늘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기능적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 내 기능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존재의 가치는 어떻게 드러날까? 사랑을 통해서이다. 부모에게 아이는 기능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 부모는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기독 공동체에서도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 안에서만이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까지도 도리어 요긴하게(고전 12:22)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랑의 관계 안에 있지 않더라도 신앙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진리 안에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더 이상 기능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조건과 상황이 맞으면 기능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크리스천은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또렷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Thursday, April 16, 2026

남섬 여행

한국에서 방문한 처형과 함께 남섬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전에 동생이 우리 집에 같이 살았을 때 다녀온 이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에도 거의 비슷한 코스였는데, 비행기로 퀸스타운에 도착해서 차를 빌려 바로 테아나우로 가서 1박하고 다음날 밀포드 사운드를 보고 퀸스타운으로 돌아와서 거기에서 3박을 하면서 퀸스타운, 애로우타운, 와나카, 푸카키 호수, 테카포 호수 정도를 돌아보는 코스였다. 

이번에는 지난번 방문했을 때보다 10일 정도 빠른 일정이었기 때문에 단풍이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해서 가을 단풍이 주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구름이 많이 끼는 바람에 우리가 봤던 모든 호수들에서 그 아름다운 맑고 푸른 물이나 에메랄드 빛의 물을 보질 못했다. 호수는 하늘빛을 담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밀포드 사운드 방문 시 비가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밀포드 사운드와 거기까지 가는 길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장관은 비가 올 때 생겨나는 수백 개의 거대한 폭포이다. 지난번 방문 때는 오전에 비가 오고 오후에 비가 개어서 비 올 때의 밀포드 사운드와 맑을 때의 밀포드 사운드 두 버전을 다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우리야 괜찮았지만 그 아름다운 장관을 처형이 보질 못해서 아쉬웠다. 

퀸스타운은 역시 사람들로 북적여서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와나카가 훨씬 좋긴 하지만 그래도 퀸스타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따로 있긴 하다. 특히 더 리마커블스는 언제 봐도 웅장하고 멋진 산이다. 그 산이 그곳에 없었다면 퀸스타운이 아마도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고 다음 주부터는 아이 학교도 개학한다. 인근 교회에서 당분간 설교를 좀 해 달라고 해서 그 일도 하고 있고. 좀 바쁘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다. 곧 추워질 텐데 아프지 않고 겨울을 넘기기만 하면 좋을 것 같다. 전쟁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Tuesday, March 17, 2026

올림픽 출전 탁구 선수와 게임을

어제 탁구를 치고 있는데 클럽에서 친하게 지내는 J 할머니가 옆 테이블에 처음 보는 여성을 데리고 와서 같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평상시처럼 내 선출 친구와 랠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성분의 자세가 범상치 않았다. 아주 정석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모습으로 공을 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J가 가끔 자랑삼아 얘기했었던 조카딸이었다. 이름은 미셸 브롬리, 2020년과 2024년 2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전 호주 국가대표 탁구 선수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J가 같이 게임을 해 볼 거냐고 해서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올림피안의 공을 받아볼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있겠는가? 나와 내 친구가 한 팀으로 J/미셸 팀과 복식 게임을 했고, 그 후에 내 친구와 미셸이 따로 단식 게임을 했다. 나는 늘상 선출인 내 친구의 풀파워 공을 받아왔기 때문에 미셸의 공을 받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미셸은 국가대표 출신답게 정교한 플레이에 능했고 거의 범실이 없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이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면서 재미있게 쳤다. 

친구와 미셸의 단식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내 친구는 게임은 거의 하지 않고 나랑 랠리만 하는 스타일이라 게임을 아주 오랜만에 하는 터였지만 미셸과 대등한 게임을 했고, 마지막 게임에서는 듀스를 거듭하며 결국 20대 18, 세트 스코어 2대 1로지고 말았다. 미셸이야 잘하는 게 당연했지만 내 친구도 대단했다. 지금은 나랑 부담 없이 탁구를 치는 배나온 50대 아저씨지만, 젊었을 때 그 친구의 실력이 어떠했을지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경기였다. 

미셸은 이제 거의 40살에 가까운 나이였고 어린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몸이 아직도 탄탄해 보였고 매너도 좋은 분이었다. 나와 같은 하수와 게임을 할 때도 제대로 자세를 잡고 진지하게 게임에 임했다. 집에 와서 검색을 좀 해 보니 미셸 브롬리는 호주의 굴공이라는 인구 2천 명 정도의 시골에 살면서, 허름한 거라지에서 아버지에게서 탁구를 배워서 나중에 국가대표의 자리에까지 오른 놀라운 인물이었다. 2024년 올림픽에서는 아이를 낳은 지 18개월 만에 복귀해서 대표팀 자리를 꿰차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시아나 유럽에 비해 탁구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은 호주에서, 그것도 인프라가 거의 없는 시골에 살면서 아버지와 함께 창고에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탁구를 치고 실력을 갈고 닦아서 결국 올림픽에까지 나갈 정도로 탁구를 사랑했던 사람과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Wednesday, February 25, 2026

작고 좋은 교회

이번에 한국 방문 중에 보니 동생이 새로 등록할 교회를 찾고 있었는데, 방문하고 있는 교회가 전부 큰 교회당이 있는 중대형 교회였다. 아버지가 평생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목회를 했고 오빠인 나도 작고 좋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 왔는데 동생이 큰 교회를 찾아다니는 걸 보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우리 사남매 중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가족은 전부 중대형 교회를 다니고 있다. 둘째 동생 부부는 선교와 봉사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교회에서 꾸준히 그런 사역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나머지 둘은 그저 다니기 편한 큰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가끔 봉사하는 정도로만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동생은 과연 어떤 교회를 찾고 있는 걸까? 이야기를 해보면 나름 진보 신학에도 열려있고 신앙의 기초도 탄탄한 편인데 막상 교회를 찾을 때는 크고 좋은 교회에만 관심이 있는 걸 보면 작고 좋은 교회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교회를 정하는 데 크기가 중요한 조건이다. 내 동생만 그러는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러는 걸까? 비율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한국 교회의 통계를 찾아보니 100명 미만의 소형 교회가 전체 교회의 70-80%를 차지하는데, 그 많은 소형 교회들의 교인 수의 합이 전체 기독교인 수의 10-20%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부분의 성도들이 중대형 교회를 선호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이 흐름이 계속되다 보면 앞으로 교인 수 수백 명 이하의 교회들은 다 사라질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교회를 공동체로 본다면 교인 수는 100명 정도가 적당할 거다. 던바의 수가 150명임을 고려할 때 맥시멈으로 150명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공동체가 아닌 조직의 운영 방식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나는 교회가 조직이 되어 가면서부터 발생하는 문제가 교회가 공동체였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작고 좋은 교회들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많은 교회들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하는 큰 교회도 있을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하는 작은 교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은 교회는 단지 작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선택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 동생 부부 정도의 신앙이력이면 작고 좋은 교회를 찾아 그 교회에 힘을 보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것 같은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작고 좋은 교회를 찾아 그곳에서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하는 성도들이 너무도 귀하게 보인다.  

Thursday, February 19, 2026

한국 방문

보름가량 한국에 다녀왔다. 부모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오래 갖고 싶어서 혼자만 다녀왔다. 가족들과 함께하지 않은 한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주 동안 거의 부모님 댁에서 지냈다. 부모님은 특별히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다. 아버지가 작년, 재작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으셨는데 이번에 보니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서 예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으셨다. 어머니도 힘이 좀 빠지신 것 외에는 아픈 데가 없으셨다. 두 분이 워낙 사이가 좋으셔서 함께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았다. 

동생이 근거리에 살아서 부모님께 자주 연락도 드리고 필요한 것도 이것저것 챙겨 드리고 있었고, 네 자녀들이 각기 용돈을 보내 드리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작년 8월에 천국에 가고 싶으시다는 바람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천국에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계셨다. 너무 건강하셔서 어찌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은 지금처럼 기도의 삶을 계속 살아가실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집에서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다. 아버지가 여태껏 살며 경험했던 신비한 이야기들도 다시 들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기도와 성경 연구를 통해 깨달은 독특한 내용들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와 있으니 신이 나서 그런 이야기를 매일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어머니는 옆에서 이제 그만하라는 사인을 주고, 아버지는 더 하고 싶어 하고,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아내는 나 없이 아들과 둘이서만 있었는데, 말을 들어보니 아들이 내가 없는 동안 엄마를 정말 잘 돌봐 줬다고 한다. 보통은 방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었는데, 내가 없는 동안은 자기 방에 거의 들어가지도 않고 엄마 옆에서 엄마랑 얘기하고 같이 유튜브도 보고 보드게임도 하고 그랬다는 거다. 나를 닮았는지 엄마에게 잘하는 다정한 아들이 있다니 왠지 안심이 된다. 

집에 돌아오니 금방 시차 적응이 된다. 한국에 갔을 때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확실히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인가 보다. 오자마자 다음 날 잔디 깎고, 세차하고, 정원 관리하고… 언제 한국에 갔다 왔나 싶다. 

Wednesday, January 28, 2026

스카이스크래퍼 라이브

몇 년 전에 "프리 솔로"라는 다큐 영화에서 알렉스 호놀드를 처음 봤었다. 엘 캐피탄이라는 900미터 높이의 암벽을 맨 몸으로 오르는 과정을 찍은 다큐였는데 정말 나로 하여금 거의 최상급의 놀라움을 느끼게 했던 인물이었다. 이번에도 넷플릭스에서 타이베이 101 빌딩을 맨몸으로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게 가능한지, 그의 집중력과 철저한 준비, 마인드 컨트롤 능력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흔히 사람들이 탈인간급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알렉스는 그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엑스트림 스포츠는 대개 목숨을 걸고 하는 스포츠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 장비들을 갖추고 한다. 그런데 알렉스 호놀드는 정말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는 프리 솔로잉을 하기 전에 철저하게, 그야말로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한다. 엘 캐피탄을 등반하기 전에 무려 십 년을 준비했을 정도이다. 그 900미터나 되는 암벽의 첫터치 순간부터 마지막 터치 위치까지 모든 구간을 머리로, 몸으로 완벽하게 외우고, 실패 확률이 제로가 되었다고 확신했을 때 프리 솔로잉을 했던 것이다. 

이번 타이베이101 빌딩 등반에도 아마 완벽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제 아내와 딸 둘까지 있는 가장인데 얼마나 더 확실히 준비를 했겠는가.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마인드 컨트롤 능력은 놀랍기만하다.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히 알렉스 만큼의 기술과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로프없이 프리 솔로잉을 하라고 한다면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한번의 실수가 곧 죽음인 일을 아무런 안전 장비없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넓다고, 알렉스보다 더한 사람도 있긴 있었다. The Alpinist라는 다큐의 주인공인 마크 앙드레 르클레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알렉스보다 한술 더 떠서 준비 없이 프리 솔로잉을 하는 사람이었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 후에 프리 솔로잉을 했던 알렉스와 달리 그는 준비 없이 곧장 절벽과 맞부딪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암벽만을 타는 것이 아니라 빙벽도 탔고 온갖 악천후 속에서도 알파인 프리 솔로잉을 했다. 정말 탈인간계 중에서도 최고 레벨이었던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2018년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하산 도중 사고를 당해 실종사로 삶을 마감했지만, 마크 르클레르가 살아있었다면 알렉스와는 또 다른 면에서 놀라움을 주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도 3년 넘게 탁구를 치면서 한가지 기술을 제대로 몸에 새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웬만큼 됐겠다 싶은 기술도 상황에 따라 잘 안될 때가 많다. 모든 경우의 수에도 실패없이 한 기술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되려면 알렉스만큼 매일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몸 뿐이 아니라 마음도 그럴 것이다. 마음도 제대로 사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련을 해야 하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수련한 만큼, 딱 그만큼 정도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Friday, January 9, 2026

반복의 끝은 없는가

빌 하이벨스, 라비 자카라이어스, 필립 얀시, 박영선… 그래도 복음주의권에서 나름 유명했던 사람들인데 다들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복음의 능력이라... 어떤 사람은 교계에서 명예와 권력, 부를 누린 사람들에게서 복음의 능력을 찾지 말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서 복음의 능력을 찾으라 하는데, 실은 그 낮은 이들에게서도 복음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알기만 한다고 해서 인격의 성숙이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비평 속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존재에 무감각하지 않으면서 말씀의 길을 몸으로 따라갈 때에만 어렴풋이 구원의 지평에 다다를 수 있는 법이다.  

"할 줄 아는 건 설교밖에 없다"는 그 생각이 패착이다. 기도밖에 없다, 말씀밖에 없다, 예배밖에 없다… 아니다. 그 밖에도 많다. 말(씀)로만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말(씀)이 육신(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십자가가 무슨 필요이며, 새로운 몸을 상징하는 부활이 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변화된 몸이 되지 못한 말을 어디에 갖다 쓰겠는가…

기득권 교회의 허방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곳으로 사람들은 몰려가고, 잊고, 덮고...

Wednesday, January 7, 2026

아들의 마음으로 봐주기

한국으로 치면 내 아들은 올해 고1이 된다. 지금 여름방학 중인데 내일이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동생(여자)의 집에 놀러 가서 장장 2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올 예정이다. 그 부모와 우리는 14년 동안 알고 지냈다. 처음 2년 정도는 같은 도시에서 살다가 그 후에 꽤 먼 지역으로 서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도 일 년에 한 두 차례는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니까 한 살 차이의 이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누이처럼 지낸 셈이다. 

물론 지금은 순수한 오누이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아들이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생애 처음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이런 수고를 감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많고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아이가 혼자서 비행기를 타겠다는 용기를 낸 것은 순전히 연애 감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학교에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고 친구들 중에 여자애들도 많은 상황 속에서도 아들에게 그 아이가 여전히 1 순위인 걸 보면 우리 집안 남자의 피가 내 아들에게도 흐르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젊었을 때 연예계 생활을 하시면서 여자들의 유혹도 많이 받으셨지만 어릴 때 시골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어머니에 대한 일편단심을 저버리지 않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셔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계시고, 나 역시 대학교 후배로 만났던 내 아내와 결혼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지방으로 회사를 옮기기까지 하면서 그 사랑에 충실하였고 여전히 아내와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내 아들의 경우도 물론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예상컨대 자기가 먼저 마음을 바꿔서 다른 여자를 사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 주변의 수많은 여자아이들을 제쳐두고 지금까지 꾸준히 그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벌써부터 그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에 대해 부모로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여태껏 그래 왔듯이 아들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겨 주기로 했다. 그 설레는 마음을 이해해주고, 같이 좋아해 주고, 비행기 표를 같이 예매하고, 2 주간 보낼 가방을 같이 싸고, 그 집에 있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지 아이가 물어보면 그에 대해 같이 얘기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다고 다들 친해지는 건 아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낸다면 둘 사이에 어떤 인력이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대학교도 같은 곳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데, 앞으로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은 그 둘 모두에게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서로 존중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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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아이를 공항에 태워다 주고 왔다. 혼자 비행기를 타야 하는 터라 꽤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고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왔는데 기분이 아주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뭔가 허전하고 좀 슬프기도 한 기분이었다. 나도 처음으로 아이 혼자 멀리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학교 캠프에 보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몇 년 후면 대학교에 간다고 집을 떠날 텐데 그 전에 이런 연습을 해 두는 게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