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1, 2026

찔레나무

우리 집 정원에 파고라(pergola)가 있고 그 위를 덩굴나무가 뒤덮고 있다. 봄이면 작고 하얀 꽃들이 소복히 피는데 향기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답다. 이름을 몰라서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나무가 찔레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찔레나무는 내가 한국에서 자주 봤던 나무인데 왜 몰랐었을까? 찔레나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이유가 가시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 자주 봤던 찔레나무는 가시가 엄청 많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나무는 가시가 거의 없다. 찾아보니 정원용으로 개량된 찔레나무일 거라고 한다. 원산지는 동아시아가 맞는데 유럽을 거치며 개량되면서 가시가 거의 없는 형태가 된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찔레나무의 부드러운 새순 껍질을 벗겨 그 속대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이 많고 싱싱해서 맛좋은 간식거리였다. 그런데 우리 집 찔레나무에서는 그런 식의 새순도 자라나지 않는다. 찔레는 찔레인데 서구화된 찔레였다. 

얼마 전에 우리 매장에 새로 입고된 폴란드산 김치도 그랬다. Kimchi라는 이름이 유리병에 붙어 있었는데, 상온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김치가 냉장이 아니라니, 그럴 수 있을까? 호기심에 사서 먹어보니 배추에 고추가루를 비롯한 기타 재료를 살짝 넣어 만든 자우어크라우트 스타일의 식품이었다. 그러니 맛도 김치 맛이라기보다는 자우어크라우트에 훨씬 가까운 맛이었다. 

찔레도 그렇고 김치도 그렇고 새로운 땅에 오니 새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원래 찔레나, 원래 김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전혀 모르지 않겠는가. 그냥 찔레나무는 이렇구나, 김치는 이런 맛이구나, 그러지 않겠는가. 보드리야르의 분석처럼 그저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시뮬라크르들에 만족하며 살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가? 뒷마당의 찔레나무가 진짜 찔레나무가 아님을 알고도 그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고, 폴란드에서 생산된 이상한 맛의 김치가 진짜 김치 맛이 아님을 알고도 손님들이 그걸 사가는 걸 막을 수 없지 않는가? 그 상품이 원래 김치가 아니라고 말해 줘도 사람들이 그걸 사 가서 맛있다고 먹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원래 찔레나무는 가시가 더 많은 거라 해도 가시 없는 찔레나무가 더 좋으니 어쩌겠는가? 시뮬라크르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진짜를 안다고 해서,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Tuesday, August 11, 2026

죽는다는 것

죽지 않고 증식만 계속하는 세포를 암세포라 한다. 세포에도 수명이 있어서 정상적인 세포는 거의 다 때가 되면 죽는데, 암세포는 죽는 장치가 고장난 세포이다. 그래서 계속 무한 증식하고 무한 확장하면서 주변 장기들이 써야 할 에너지를 빼앗고 그렇게 커진 덩치로 다른 장기들을 압박하는 세포다. 때가 되어 죽으면 아무 문제 없을 세포가 죽지 않으니 암이 된 것이다. 

죽는 것이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그것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다. 세포가 죽어야 몸이 살듯이, 내가 죽어야 세상이 사는 것이다. 오래 살려는 시도, 죽지 않으려는 시도, 죽음을 정복하려는 시도, 결국 암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의 욕심이 끝이 없다. 돈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건강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데 다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면 잘 죽자.  태어나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지만 늙어서 죽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다. 이별이야 당연히 슬픈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모두 마쳤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죽음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어 내 차례가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