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7, 2016

영화 '곡성'과 믿음

인간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인가?
성경은 마귀를 최고의 유혹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순수하게 인간의 힘만으로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 마귀의 유혹을 세 차례나 이긴 사람이 있었다.
예수, 하지만 그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예수가 성령 세례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이 없이 인간이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일 것이다.
예수가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유지했었기 때문이다.
그 흔들림 없는 믿음을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질 수 없다.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는가.
예수가 믿을 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미친놈, 귀신 들린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대중들이 더 신뢰했었던 사람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 율법교사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권위를 내세웠다.
예수에게는 외적 권위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에게는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신적 권위가 있었다.
예수에게 있는 그 신적 권위를 인정하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구원자였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보지 않고 믿는 것, 확인하지 않고 믿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적인 조건들로 시선이 향하면 예수를 믿기 어려워지고,
예수를 믿지 못하면 그는 나의 구원자가 되지 못한다.
믿음으로 살고 의심으로 죽지만 우리는 늘 그 경계에 서있는 듯 하다.
내가 '종구'였다면 나는 '무명'을 믿었을 것인가 '일광'을 믿었을 것인가..

Monday, June 13, 2016

자유를 주는 목회

가끔 교인 중에 목사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마음껏 하시라고 말해주는 분이 계시다.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어서 고맙기는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 속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목사님이 원하는 목회'라는 부분이다.
목회를 목사가 원하는 대로 해서야 되겠는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지..
그렇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많은 목사들이 나름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의 눈에는 목사들마다 원하는 목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들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고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교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 내가 원하는 목회라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에 대한 내 해석'이 담긴 목회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는 성도들을 자유롭게 하는 목회라고 믿기에
교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목회를 마음껏 하고 싶기는 하다.
우리 교인들이 주님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매여있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교회 건물과 조직에도 매여있지 않고
교회의 전통이나 관습에도 크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삶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 왜 어려워하는 걸까..

Monday, June 6, 2016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하나님 나라는 실재/현실인가.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라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실재라고 느낄 수 있는 장소인가.
지역교회는 아니라고 한다면, 보편교회는 그런가.
2천년동안 줄곧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쳐왔지만 하나님 나라를 실재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진입할 수 있다하지 않았나.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도 했고..
'이미'와 '아직'으로 사이를 벌려놓았다고 해도
'이미' 속으로 진입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그 모습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게 아닌가.
그래야 '아직'이 유효해질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최대한 축소해서 본다면 개인의 삶인데,
개인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봤던 자들은 그의 기적에 매료되었던 자들 뿐이었지 않나.
그들 중의 얼마는 그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봤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경험했던 잠깐 동안의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 사라져버리고..
부활을 통해 경험했던 그리스도와 그 후 성령의 역사로 인해 시작된 교회는 로마의 핍박을 견뎌내고 로마의 국교가 되었지만, 그 교회가 정말 하나님 나라라면 누가 그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래서 완전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없는 것이고 우리는 가끔씩 하나님 나라란 이런 것인가 하는 순간만을 맛볼 수 있을 뿐이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2천년이란 시간이 너무 커보이지만 우주의 역사에 비할 때 2천년이란 그저 찰나의 순간일뿐이니 2천년이란 시간 앞에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다림은 계속되고 참여도 계속되고 절망과 희망도 계속 될 것이다.
그 끝없는 '아직' 속에서 말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