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31, 2021

2021년의 마지막 날

오늘이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 해가 이렇게 지나간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365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머리가 비어있는 느낌이다. 어찌 이리 시간이 빨리 갈 수 있을까.. 2021년이 이렇게 지나가니 2022년에 대한 기대도 전혀 없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으면 내년이 기대가 되겠지만 새로이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이런 상태는 어떤 전조 증상인지 아님 그냥 괜찮은 것인지.. 실제 내 일상은 별다른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 아내와의 관계도 좋고, 아이와의 관계도 좋고, 신앙도 별 문제 없고, 직장 생활도 잘 하고 있고, 건강도 괜찮은 편이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고.. 집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도 잘 하고 있고..  

운동을 좀 하고 싶기는 한데 할 수 있는 운동이 딱히 없다. 탁구를 즐겨했었는데 일하는 시간과 겹쳐지는 바람에 못하고 있고, 지금은 간간히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 턱걸이나 하는 정도.. 바람이 안불때는 뒷마당에서 아이랑 배드민턴을 치기는 한다. 짐에 다시 다녀볼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코비드 때문에 좀 그렇고.. 

기타를 다시 쳐볼까.. 20대 때는 하루 종일 기타를 치고 놀았었는데 지금은 기타를 안잡은지 워낙 오래 되어서 기타를 치면 왼손가락 끝이 아플 정도이다. 기타에는 왜 흥미를 잃은 것일까.. 낚시에도 흥미를 잃고.. 거참 재미없게 사는 것 같은데, 삶이 재미가 없지는 않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게 재밌다. 애랑 놀고 아내랑 데이트하고 풀뽑고 나무 정리하고 책 읽고 영화보고 일하고.. 일상이 지루하지 않다. 

아마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감사하니 년 단위의 변화에 무감각해진 것 같다. 이제는 목회도 하지 않으니 년 단위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2021년의 마지막이라니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한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2021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 속으로 흘러가버렸다는 아쉬움..

Sunday, December 26, 2021

근사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근사한 사람이란 덜 세속적이고, 덜 종교적이고, 부부간 금슬이 좋고, 남 탓하지 않고, 욕심이 많지 않고, 유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기준인데 의외로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사람들에게 쉬이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좀 근사한 사람을 만나서 충전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확실히 나도 이제 50대의 중년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피로를 쉽게 느끼니 그런 피로감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어느 정도 노화의 방향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내가 만나서 편한 사람만 만나려 할 수도 있고, 편하지 않은 사람도 만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으로 늙어갈 수도 있고,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람으로 늙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근사한 사람을 찾기만 하는 사람으로 늙어갈 수도 있고, 스스로 근사한 사람이 되어가며 늙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근사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복이겠지만 내가 근사한 사람이 되는 것은 더 큰 복일 것이다. 나도 근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꾸준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새로운 문화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한다. 뭐든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한다. 몸의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하는 것처럼, 뇌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새로운 자극을 꾸준히 줘야한다. 아이와도 계속 소통이 가능하도록 10대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게임이나 음악의 대략적인 흐름도 알고 있어야 한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해보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근사한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런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복받은 사람이다. 허나 나처럼 주변에 근사한 사람이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보려 한다. 사람은 모두 나름 근사한 면을 갖고 있다. 저 사람에게서도 그런 부분을 찾아보자. 나에게도 근사한 면이 있다. 그런 면을 좀 늘려보자. 

Friday, November 26, 2021

10년 전 이맘때

10년 전 9월, 처음 이 나라에 왔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이민 가방 두 개를 끌고 공항문을 나섰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이 나라에서 감사하게도 키위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좋은 렌트 집과 오래된 자동차를 저렴한 값에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아서 맘고생을 좀 했었다. 11월이 다 지나도록 일을 얻지 못하자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통장의 잔고가 거의 말라가고 있었던 즈음, 아마도 12월 크리스마스 쯤에 청소 일자리를 구했던 걸로 기억한다.     

10 년이 지난 지금, 그 때에 비하면 참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집도 있고, 차도 두 대나 있고, 직장도 있고, 아이도 잘 크고 있고.. 물론 집도 차도 이 나라 기준으로 중간 이하의 수준이지만 그 정도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이 정도 정착하고 살아가면 됐다고 생각한다. 10 년이 더 지나서 2031년이 되어도 우리 삶의 수준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다. 그 때 쯤이면 90 살이 되어있을 이 고택을 잘 돌보며 느리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10 년 후면 아이도 독립해서 제 힘으로 살아가고 있을 터이니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도 자유로워 질테고.. 건강만 나빠지지 않는다면 아내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넷플릭스 '지옥'

어느날 나나 가족에게 닥친 사고나 불행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거대한 지옥의 괴물들이 집단 린치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이나 아픔은 얼마나 처절하겠는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불행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불행을 신의 뜻이라하고 죄의 결과라 일컫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알곡이 다칠까봐 가라지도 뽑지 않고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주는 사랑의 하나님이셨는데, 그런 하나님보다는 잘못하면 벌을 내리고 죽이는 무서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도 여전히 있다. 

비단 기독교에만 신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전에 봤던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지옥'도 그렇고 종교들 중에 기독교가 메인 타겟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기독교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여태껏 교회가 그러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많이 심어주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Wednesday, November 3, 2021

몸이 자주 아프다

요즘 몸이 자주 아프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허리를 다쳐서 고생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전립선과 신장에까지 염증이 생겼다. 초기에 항생제를 먹긴 했는데 균을 다 잡지 못했나보다. 이번에 2차로 더 센 항생제를 먹고 있다. 신장이 아픈 적은 처음인데 꽤 불편한 통증이다. 갈비뼈 아랫쪽 등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전에 결석이 생겨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통증이 꽤 압축적인 통증이었다면 이번 통증은 좀 넓게 울리는 통증이다. 10일간 하루 네 번씩 항생제를 먹기로 했다.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몸은 그렇지 못한가보다. 근 10년동안 대상포진, 결석, 이석증, 갑상선저하증, 과민성대장증후군에 신장염까지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심각한 질병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건강은 확실히 자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병이 들지 알 수가 없다. 젊었을 때 병원 한번 갈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병원 가는게 익숙해졌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걸려도 별 특별한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런 병도 있구나, 이런 아픔도 있구나 하는 걸 배우고 있다. 신장염에 걸리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게 좋다고 해서 당분간은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 내가 오랫동안 즐겨했던 낙이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는데, 이제 얼마간은 커피도 못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별로 아쉽지 않다. 그냥 안 마시면 되는 거니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어렵지만 내 몸을 돌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병들고 아픈 것에도 초연해진 것 같다. 아픈 것도 일상이요 건강한 것도 일상이다. 응급실에도 세 번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아픈 게 특별하지 않은.. 그냥 그럴 수 있는.. 약이 있으면 먹으면 되고, 먹지 말아야 되는 게 있으면 안 먹으면 되고.. 나으면 낫는 거고, 안 나으면 그냥 같이 가는 거고.. 갑상선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경우는 지금도 매일 약을 먹고 있다. 그냥 일상이 되었다. 

아내가 걱정을 하니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픈 것에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냥 모든 면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욕심도 없고.. 그렇다고 삶이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니고.. 요즘 봄이라서 뒷 마당에 자주 나가서 앉아있는다. 잔디와 나무와 꽃들이 너무 아름답다. 늘 보는 것들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겨울을 이겨내고 새싹들을 피워내는지.. 

밤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재밌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졌고.. 손목이 시큰거릴 때가 많지만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내 몸은 자주 아프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이만큼 살아올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Wednesday, October 20, 2021

재활용 센터에서 만난 시장

우리 시에는 재활용품 분리 수거장이 따로 있다. 플라스틱이나 종이, 병등을 재활용하고 싶으면 수거장에 직접 가지고 가서 분리 수거를 해야 한다. 나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그 곳에 가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 곳에 갔는데 왠 낯익은 남성이 혼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걸 보았다. 우리 시의 시장이었다. 예전에 이 시장과 한인회가 주최한 어떤 행사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기에 초면은 아니었다.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자연스레 시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시민들도 시장이라고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았고, 그 곳 직원들도 시장이 왔다고 따로 도와주지도 않았다. 시장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플라스틱 번호에 맞게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했다. 

공직자들에게 별다른 권위의식이 없고 시민들도 평상시에는 공직자들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서양의 문화이다. 일전에 만났던 국회의원도 전혀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 그냥 당신도 나도 똑같은 사람이고 하는 일이 다를 뿐, 위 아래 개념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물론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수직적인 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 곳에서도 인격적으로 부하 직원을 무시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상사에게 예의를 차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위계가 기본값이라면 서양은 평등이 기본값이다. 예전에는 서양에도 위계가 있었다. 왕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다. 그러나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신분이라는 위계가 사라졌다. 우리 나라도 물론 공화정이지만 왜 그런지 우리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어떤 위계가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인다. 아무리 서양에서 오래 살았다 해도 한국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이곳에 있는 한인 사회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이런 위계 문화에 접속하게 된다. 무시하기에도 불편하고 그대로 따르기에도 불편한데, 몸과 의식 속에 배어있는 문화라 어찌할 수가 없다. 

Tuesday, October 5, 2021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힘이 있는가

N은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유의미한 대화를 나눴던 목사이자 지금까지 내가 계속 만남을 유지해 오고 있는 유일한 키위 목사이다. 그는 내가 웰링턴에 잠시 살았던 기간 동안 몸담았던 교회의 담임 목사였고, 내가 그 교회에서 한인 목회를 시작할지의 여부를 타진할 때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했던 친구였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젊었을 때 1년간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더 친밀감을 느꼈었다. 그 후에 내가 이 도시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도 만남이 계속 이어졌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의 처가가 이 도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한 두차례 그 친구가 가족들과 함께 처가를 방문할 때마다 서로 만나서 그간의 회포를 풀곤하였다. 

이번에도 아이들 방학을 맞이하여 그 친구 가족들이 모두 이 도시를 찾았고 오늘 N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자연스럽게 요즘 내가 갖고 있는 물음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생각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이런 질문은 젊었을 때는 하지 않았던 질문인데, 여러해 동안 교회의 안과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된 질문이었다. 

교회에서, 교인들에게서, 목회자들에게서 말씀과 삶의 심각한 불일치를 경험하고, 이러한 불일치가 어제 오늘만의 문제이거나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역사 속에서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반복되어 왔었던 문제임을 보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힘이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데도, 대개의 경우 그들의 세계관은 변하지 않았고, 가치관의 변화도 없었으며, 당연히 삶의 변화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공부하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통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많은 교우들이 매주 설교를 들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육화이신 예수님, 그 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애쓰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말씀은 2천년 동안 줄곧 선포되어 왔지만 교회는 타락의 길로 향했고, 매주 교회당에 와서 말씀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조차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교회는 급성장을 하다가 급하락을 하고 있다.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다면... 그 힘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힘,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힘, 회개와 용서와 사랑의 힘... 이런 힘들이 있다고 하는데, 왜 실제 크리스천들의 삶에서는 이런 능력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일까. 매일 말씀을 듣는 성도들마저, 주님의 말씀을 힘입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려하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사는 문제, 부를 늘리는 문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1세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이었고 그들의 삶을 종교 권력에서 해방시키는 힘이었지만 지금 현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인가? 힘인가? 교회는 산위의 도시로서 세상과 다른 대안 공동체가 되어 있는가? 교회는 정말 빛인가? 말씀에 정말 힘이 있는가? 힘이 있다면 어떤 힘인가?

내가 이런 근원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N의 고민은 실천적인 고민이었다. 교회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며 어떤 사역들을 해야 하며 어떤 유익을 끼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교회에서만 자란 N과 달리 나는 NGO 사역도 해보았고 일반 목회도 해보았고 사회 생활도 해보았기 때문에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요즘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하고 있다. 이 물음은 사실 내 신앙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세상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 물음에 관한 답을 찾든 못찾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내 신앙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목회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앞으로도 해야할 지 말아야 할지, 목회자로서 교회를 어떤 식으로 섬겨야 할지, 어떤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관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물음에 정직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다시 담임 목회를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Wednesday, September 22, 2021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창조와 새창조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구조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이루어 가는 주인공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때 적합한 개념이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보다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졌던, 모든 인간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셨던, 하나님의 모습과 더 가깝다.

나는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잠시 괄호에 넣어두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지셨던 하나님의 모습 또는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의 모습에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편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기본적으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또는 '내가 예수님의 정신을 추구하고, 그분의 정신(영)이 나에게 있다'라는 표현에 어떠한 거리낌이 없다. 그 분은 정말 내 친구처럼 스승처럼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고,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좋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예수님도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에게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분에게 어떠한 조언을 얻을 수 있으며, 때로는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셨고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여주셨으며 그분의 또다른 이름이 임마누엘(함께 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려할 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은 하나님도 예수님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기 보다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이 땅에서는 인간이신 예수님과 다르지 않은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시공간의 제약, 물리 법칙의 제약, 생리적 제약.. 등등에 묶이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렇게되면 하나님을 아빠라고 할 때 아빠 하나님의 모습이 이 땅에서는 예수님처럼 피곤하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시고, 먹고 마시며 웃기도 하셨던 아빠로 그려진다. 일반적인 이 땅의 아빠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자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때로는 자식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하고 못 들어 주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런 모습이 아니라 구약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전지전능한 왕의 모습으로 이해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지 않거나, 범죄자의 손에 잔인하게 죽어가는 무고한 피해자를 구출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가령 사랑하는 내 아이가 죽어갈 때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냥 옆에서 아이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면,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가치는 하나님을 우리와 같이 제한적 조건 속에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때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한다면 이 땅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고통을 마주하면서 그걸 지켜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뭔가 이 세상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보다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사랑의 하나님, 인간 세상의 한계에 매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더 좋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빠라는 믿음이 좋다. 내가 내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음에도 여전히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없음에도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충분하다. 그렇기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매여있지 않고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낙관과 비관

월요일 밤에 일을 하고 화요일 새벽에 집에 오면 오전 5시가 조금 넘는다. 씻고 침대에 누우면 5시 반이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와서 다시 자고 12시나 1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는다. 좀 쉬다가 3시까지 학교에 가서 아이를 픽업한다. 이게 밤일을 시작한 후 지난 일 년간 화요일의 내 패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온 후에 곧바로 잠을 자지 못하고 11시쯤에 잠을 자게 되었다.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3시 2분이었다!! 아이 픽업 시간을 놓친 것이다. 부랴부랴 모자를 눌러 쓰고 문을 박차고 나가서 급하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학교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약간의 트래픽이 있어서 3시 20분쯤에나 학교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아이가 친한 친구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3살 때부터 등하원, 등하교를 시켰으니 8년 동안 이 일을 한 셈인데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아이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오면서 차 안에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친구랑 무슨 얘기를 하며 기다렸냐고 물어보았다. 

아빠가 왜 안 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런데 그 둘의 내용이 사뭇 달랐다. 내 아이는 내가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빠가 트래픽에 걸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내 아이의 친구는 내가 다쳤거나 아니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보다 친구가 긴장을 하면서 계속 물병의 물을 홀짝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내 아이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아이 사이의 이러한 자연적 반응의 차이는 그때까지 이 아이들이 가졌던 모든 경험의 총합에 근거를 두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낙관이 기본값이 될지 비관이 기본값이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되도록 낙관을 기본으로 하고 상황에 따라 비관을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Friday, September 17, 2021

선물

핑크색 갤럭시 Z 플립 3를 아내에게 선물로 사줬다. 아마도 결혼 이후 아내에게 해준 선물 중 가장 고가의 선물이었을거다. 내 폰도 그렇지만 여태껏 아내의 셀폰도 200불대의 저가폰이었다. 우리 둘다 셀폰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 형편상 그런 폰을 살 여건이 되지도 않았었다. 아내는 특히나 전자제품에 관심이 없었는데, 연전에 삼성에서 플립폰이 나왔을 때 아내가 처음으로 그 폰에 관심을 보였었다. 무슨 특별한 기능에 끌렸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접었을 때 크기가 작아진다는 데에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아내는 보통 사이즈의 휴대폰도 가지고 다니기에 너무 크다고 불만을 표하곤 했었다.

한두 달 전에 플립 3가 새로 나온다고 했을 때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아내 몰래 선주문을 해놨었다.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동안 일해서 틈틈이 모아둔 돈을 아내에게 쓰기로 했다. 20년간 목회 할 때는 제대로 된 선물 한번 못했었는데 이제 밖에서 일해서 돈을 버니 맘편하게 내가 번 돈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 폰이 도착해서 함께 개봉을 해봤는데, 폰이 예쁘고 작아서 아내가 너무 좋아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너무 좋았었고.. 앞으로도 돈이 모이는대로 아내에게 선물을 더 해주고 싶다. 아들에게 선물해주는 것보다 아내에게 선물해주는 것이 더 좋으니.. 아내 사랑이 참 변함없다. 

Monday, August 30, 2021

급성 요통 3

원래 내가 일하는 날이 월, 금, 토요일이다. 지난 월요일 밤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 허리 통증을 느꼈고 수퍼바이저와 함께  Incident report를 작성하고 일찍 퇴근을 했다. 화, 수, 목 계속 통증이 있어서 집에서 쉬었고, 금요일 밤에 출근을 했다가 일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다시 10분만에 퇴근을 했다. 어차피 병가가 7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걸 쓰면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다친 곳이 직장이었기 때문에 ACC(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 라는 정부기관을 통해 한국으로 따지면 산재처리라는 걸 해야했다. 점장이 자꾸 light duty(원래 하던 일보다 쉬운 일을 하는 것)를 언급하길래, 며칠 집에서 쉬면 괜찮아질텐데 왜 나와서 일하라고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ACC 때문에 그런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점장이 의사를 보고 오라고 해서 주말동안 쉬면 괜찮아질거라고 했더니, 산재 보고를 했기 때문에 의사의 소견을 받아보고 몸이 어떤 상태인지 확실히 알아봐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서류 양식을 의사에게 갖다주라고 해서 그게 뭔가 봤더니, 내 몸 상태로 어떤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사가 진단 후 체크해 주는 양식이었다. 점장은 다시 light duty를 하기를 강조했고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의사의 진단명은 Sacroiliac ligament sprain이었다. 한국어로는 천장관절 인대 염좌쯤 될까? 엉덩이뼈 쪽 인대가 손상되어서 통증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 달리 단순한 근육통증은 아니었던 거고 왜 그렇게 심하게 아팠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의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앉아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뿐이라 했고 일주일간 쉬라는 내용의 진단서를 작성해 주었다. 

회사에 다시 진단서를 가져다 주고 집으로 와서 ACC 규정들을 살펴보니 ACC는 Light duty를 권장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출근해서 가벼운 일이라도 하면 자기들이 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Light duty를 권장하는 걸까? 노동자가 몸이 아파서 쉬기를 원할 때, 사업주는 노동자의 말을 듣고 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ACC의 권고 대로 Light duty를 권해야 할까? 

얼마전에 나와 같이 일하던 젊은 친구가 허리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증상에 나보다 더 심한 통증이 있었던 것 같았다. 며칠 후에 그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일을 하고 있길래 집에서 쉬지 뭐하러 나왔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Light duty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산재보험을 될 수 있는대로 안 쓸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사실이라면 역시 한국이나 복지 선진국이라는 여기나 자본의 작동방식은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여기는 노동자가 No 라고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환경이라서 회사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아마 그 친구도 나와서 일하라는 회사의 요구에 No라고 했어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노조에 가입이 되어 있기도 하고 이 나라 자체가 시민들의 절반 정도가 노동당을 지지할 정도로 노동친화적인 곳이기도 해서 내가 그냥 쉬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억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힘없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이다보니 그들의 아픔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찌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렸던 이상세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영혼없는 자본의 힘을 제어하려면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로서로 힘을 모아 어려움을 감수하고 함께 저항하지 않으면 개개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의사의 권고를 따라서 이번 주까지 휴식을 취하고 주말에 복귀하려고 한다. 다시 점장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이번에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Light duty는 할 수 없고 집에서 쉬겠다고...

Saturday, August 28, 2021

급성 요통 2

회사가 대기업이라서 그런지 회사에서 바로 물리치료사와 화상 진료를 예약해주었다. 락다운 기간이라 물리치료사를 직접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40분가량 진단도 받고, 스트레칭 방법도 배우고, 출근하면 일주일 정도 Facing(진열된 상품의 전면이 잘 보이도록 재진열해주는 일) 같은 가벼운 일만 하도록 처방도 받았다. 점장도 그렇게 하라고 해서 오늘 밤 9시에 출근을 했었다. 

출근을 했더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냥 집에서 쉬라고.. 그래도 된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무조건 나와서 가벼운 일이라도 하라고 한다지만 판단은 자기가 해서 쉬어야 할 것 같으면 병가를 내고 쉬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일손이라도 거들려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동료들은 내 걱정을 더 하는 거다. 같이 일하는 매니저도 점장이 일하라고 했어도 결정은 내가 하는 거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쉰다고도 했다. 나야 뭐 아직 허리 통증이 남아있으니 쉬면 더 좋을 것 같기에 병가를 내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면서 이곳 노동자들은 참 좋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마트 노동자들에게도 이런 권리가 주어져야 할텐데.. 물론 한국도 법적으로나 문서상으로는 이런 권리가 주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현장에서 이렇게 여기처럼 쉽고 부담없이 병가를 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상관들은 물론이고 동료들 중에서도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웬만하면 일해야지 왜 쉬려고 하냐고.. 여기서는 웬만하면 쉬지 왜 일하려고 하냐고 하는데 말이다. 

Thursday, August 26, 2021

급성요통 1

일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그 덕에 집에서 며칠 쉬고 있다. 1년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똑같은 증상이 또 나타났다. 그 때도 허리를 바로 세우기 힘들어서 며칠 고생했었다. 이번에도 어제부터 오늘까지 침대에 거의 누워있기만 했는데 아직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 이번 달에 평상시보다 일을 좀 많이 해서 허리에 피로가 쌓인걸까. 물건을 들고 나르고 진열하는 일을 하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겠다. 나이 탓도 좀 있을거고.. 그래도 일년간 아프지 않고 일했는데 아프니 내 몸이 좀 안쓰럽게 느껴진다. 나와 함께 50여년을 함께 해온 몸. 내 몸이야 말로 나의 하나뿐인 전우 아닌가..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을 정도로 사람에게 몸은 소중하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내 몸을 사랑하니 내 몸이 아플 때 내 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안쓰러운 것이다. 잘 돌봐주고 힘을 찾게 해서 다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내 이웃은 나 없이 힘들게 일하고 있을 내 동료들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힘들다. 물론 다른 사람이 커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그 일을 하는 사람만큼 잘 하지는 못하니 몸이 회복되는 대로 얼른 가서 팀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일이 있어서 감사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움직여주는 몸이 있어서 감사하다. 손발이 움직일 때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나에게도 몸이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는 날이 올터이니 그때까지는 매일매일 즐겁고 감사하게 살아보자. 

Wednesday, August 18, 2021

두번째 락다운

어제 오클랜드에서 한 명의 코비드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어제 자정부터 전국적인 락다운이 전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즉각적인 결정이었고 시민들은 별다른 저항없이 그 결정을 따랐다. 락다운 발표가 나고 몇시간만에 락다운이 시작되었는데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물론 슈퍼마켓에는 사람들이 몰렸지만 마켓 내 입장 인원 통제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큰 무질서는 없었다. 

어제 일하면서 보니 역시나 화장지가 가장 먼저 사라졌다. 사람들이 무조건 화장지부터 사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이 나라에는 비데가 설치되어있는 가정이 많지 않기 때문에 화장지 소비량이 한국보다 많은 것 같기도 하고, 화장지는 다른 대체제가 없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다음에 매대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품목은 밀가루였다. 밀가루와 화장지.. 역시 먹고 배설하는 문제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맞나 보다. 

오클랜드와 코로만델 지역은 7일간 락다운이고 나머지 지역은 3일간 락다운인데, 그 후에 연장이 될지 어쩔지 모르겠다. 오늘 벌써 네 명의 확진자가 추가되었다고 하니.. 델타 변이가 전염성이 그전 바이러스보다 훨씬 강하다고 하니 두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뉴질랜드는 이번에도 잘 방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락다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강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국가에서 임금을 보전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못해도 급여가 나오니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해도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는 것 같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에 비해 타격이 더 크긴 하겠지만 국가에서 어느정도는 손실 보전을 해주니 불만이 있긴 해도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은 것 같다. 해서 사람들은 며칠간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나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다 보니 쉴 수가 없다. 슈퍼마켓은 필수 서비스 업체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쉬면서도 돈을 받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지역 사회에 봉사한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히 일하려 한다. 

Tuesday, August 10, 2021

게임 시간

아이와 게임 시간에 관한 언쟁이 있었다.

내 아이는 이번 달이면 만 11살이 되고 내년이면 중학교에 진학하는 남자 아이이다. 지금까지는 하루 한시간, 주말 2시간의 게임시간을 지켜왔는데,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여태껏 지속적으로 게임 시간을 늘려줄 것을 나에게 요청해왔고 나는 계속 거부해 왔는데, 이번에는 내가 더 이상 거부하기가 어려워졌다. 내 거부에 이유없이 응하지 않을만큼 아이가 많이 큰 것이다.

왜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면 안 좋은지에 관한 내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기 친구들은 다 원하는대로 시간 구애없이 게임을 하기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할 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중,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더 많이 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자유롭게 하고 싶은대로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이의 열정적인 말을 들으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하면서 내 주장을 밀고 나갈까 아니면 아이의 말을 들어줄까..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아이가 나에 대한 인신공격성 불평을 하기 시작하는 걸 보고 '아 이 녀석이 정말 화가 많이 나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윽박지르며 대화를 끝내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대로 일단 일주일간 무제한으로 게임을 하라고 했다. 대신 학교 숙제나 집에서 할일은 동일하게 하라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며 일주일 후에 알아서 시간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자율적으로 키우고 싶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최대한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며 키워왔다. 이제 게임에 관한 자율권도 아이에게 줘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좀 빠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가 부자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일이 계획대로 안된다 하더라도 바로 잡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더 소중하고 그 사랑의 관계 속에 머물러야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듯이 아이와 나 사이에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내가 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보다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나와 내 아버지와의 관계는 친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지만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는 못하셨다. 나는 내가 내 아버지와 가졌던 서먹한 관계가 나와 아들 사이에 형성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것이다.

Thursday, August 5, 2021

즐거움

사람들은 참 다양한 분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K는 일주일에 한번쯤은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분이다. 이 분은 뭔가를 사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뭔가를 사고 나면 곧 바로 그 다음에 살 것을 찾는다. 끊임이 없다. 집이든 차든 뭐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즐거워 보인다.   

나는 뭘 사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냥 필요하면 사는 편이다. 기독교 신앙이 체화되면서 점점 소유를 늘리는 것에 흥미를 잃어왔던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지만 요즘은 독서에서도 그렇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냥 밤에 물건 진열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거나 심심할 때 책을 떠들어 볼 뿐이다. 

나는 요즘 아내가 일하는 병원 앞 맥도날드에서 잠깐 아내와 점심 데이트를 하거나, 매일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하릴없이 어정버정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교회 일에도 흥미가 떨어졌고 설교하는 일에도 재미가 사라졌다. 지금 하고 있는 임시 목사직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목사님이 결정되었으니 한두달만 더 하면 될 것 같다. 

밤에 마트에서 하는 일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머리를 쓰지 않고 몸만 쓰면 되니 마음이 편하다. 몸을 움직이니 운동도 저절로 되고 뱃살도 빠지고 어머니에게 돈도 부쳐드릴 수 있어서 좋다. 살면서 가장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들은 이미 다 해봐서 더이상 해보고 싶은 일도 없고 뭘 더 가져보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아내와 함께 데이트하고 아들 크는 것 지켜보고 산책하고 정원가꾸고 하는 일들이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이다. 

지금의 나를 보면 먼 길을 걸어 다시 소박한 삶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즐겁게 살다가 조용히 땅으로,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Tuesday, July 27, 2021

국적과 인종/민족

외국에 나와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국적과 인종/민족의 구별이 생긴다.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이 나라에 살지만 국적이 뉴질랜드라고 해도 그들의 인종마저 바뀌는 건 아니다. 인도에서 온 사람들은 인도계 뉴질랜드인이다. 국적은 뉴질랜드인이지만 인종이나 민족적으로는 인도인이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은 국적은 뉴질랜드인이지만 인종/민족으로는 여전히 중국인이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은 프랑스인, 영국에서 온 사람은 영국인이다. 국적은 하나의 멤버쉽이라 선택할 수 있지만 인종/민족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이 나라에서 한 살 때부터 살아왔지만 이 나라 국적을 갖게 되어도 민족적으로는 한국인이고 영어로는 여전히 Korean이다. 뉴질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Ethnicity를 적는 난에는 Korean이라고 적게 된다. 

유대인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 살든 유대인이다. 다들 각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유대인이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 미셀 위나 리디아 고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댓글들 중에 꽤 많은 글들이 한국인도 아닌데 무슨 신경을 쓰냐는 내용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적은 미국과 일본에 있지만 그들도 한국인이고, 외국에서도 Korean으로 살아간다.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았고 몇 대를 살았다고 해도 해외동포들은 다들 Korean이다. 국적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인종/민족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Friday, June 25, 2021

이사가지 마세요

신하균이라는 배우가 질문을 받았다.

옆 집에 신이 산다. 부탁하는 무엇이든 들어준다.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가.

질문이 끝나자 그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사가지 마세요."



그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내 이웃이라면 뭘 부탁해서 귀찮게 하기보다 그저 내 옆 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했으면 좋겠다. 

신이 나에게 좋은 이웃이라면 나도 신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을 귀찮게 할 때, 나는 그저 옆 집에 사는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가끔 안부를 묻고, 우리 아이를 귀여워해 주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눠 먹고, 서로 살피되 귀찮게 하지 않는 그런 이웃이 되고 싶다. 


신하균, 나는 그의 영화 중 '지구를 지켜라'를 기억하고 있다.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본 7 만명 중의 한사람이었다. 지금은 자세한 플롯은 기억나지 않고 그저 단상으로만 남아있지만 그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그는 그 엉뚱한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배우에게서 저런 좋은 대답을 들으니 반가웠다. 그가 앞으로도 좋은 배우로 남아주길 바란다.

Tuesday, June 15, 2021

목자와 삯꾼

본래 삯꾼은 삯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요즘 말로 하면 임금 노동자나 직원이라는 말과 같다. 그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다. 목자가 자기 양을 돌본다면 삯꾼은 남의 양을 돌보는 사람일 뿐이다. 삯꾼은 자기 양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목숨을 걸고 이리와 싸우지는 않는다. 물론 좋은 삯꾼이 있다면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목자 중에도 양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선한'이라는 형용어를 목자 앞에 붙였을거다. 

아무튼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목자에 비해 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덜하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던거지 삯꾼이 나쁘다는 말을 하시지는 않았다. 삯꾼에게는 삯꾼의 역할이 있는 거고.. 삯꾼에게 이리가 왔을 때 목숨걸고 이리와 싸울 것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양은 위기의 순간에 삯꾼보다는 목자를 신뢰할 수 밖에 없다. 삯꾼은 평상시에 필요하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목자만이 양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목자도 나쁜 목자가 아닌 선한 목자여야 하겠지만..

목사는 목자는 아니다. 성도들이 목사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양을 부탁할 때 내 양을 치라고 했지 네 양을 치라고 하지 않았다. 삯을 받고 목회를 하든 삯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든 목사가 목자는 아니다. 목자인척 하지도 말아야 한다. 성도를 위해 정말 죽을 수 있는가? 설령 죽을 수 있다해도 좋은 삯꾼인거지 좋은 목자는 아니다. 목사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양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내 양이 아니기에 내 맘대로 하면 안된다. 양은 목자의 처분에 따르는 것이다. 목사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듯이 목사도 예수님의 양이다. 예수님의 양으로서 다른 양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것이지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다. 삯꾼이면 삯꾼답게, 삯을 받지 않아도 주의 '종'답게 겸손하게 살아야지 목자인척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Tuesday, May 25, 2021

사역의 대상

지금은 사역의 대상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담임 목회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한 이상 교회에서 부분적으로 하는 사역 외에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딱히 특정한 사람들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살면서 어느 순간 그런 기회가 올거라 믿는다. 생계는 마트에서 일하는 걸로 해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갈 것이다. 

이렇게 낮아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예수님의 길은 늘 하향이었고 그러한 삶 자체를 축복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예수님은 향했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다. 물론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아픔의 해결이요 배고픔의 해결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 중의 일부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도 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에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겨졌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과 그 분의 사랑은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아니 사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내 주변의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전할 수 있다. 사랑은 말로만으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가야하고 마음이 가야 한다. 

이제 곧 임시 목회도 끝날 것 같으니 그리 오래지 않아 내가 섬겨야 할 대상그룹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Monday, April 26, 2021

안작데이 ANZAC DAY

토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근무를 마치고 일요일 새벽 5시에 퇴근을 하다보면 길거리에서 이동 중인 차량을 마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차량들이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현충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작데이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움직이는 시민들의 차량이었다. 

안작데이는 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호주와 뉴질랜드의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행사인데, 매년 4월 25일 새벽 5시경에 뉴질랜드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열린다(아마 호주에서도 열릴 것이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만든 현상은 이 추모행사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인구 4만 5천의 작은 도시인 이 도시에서도 어제 새벽에 6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강제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뉴질랜드는 1, 2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피해국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민들은 양차 대전에 참여했던 뉴질랜드 군인들을 기억하고 매년 4월 25일 새벽에 그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엄청난 전사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현충일에 각 도시에서 자발적으로 참전 용사를 기리는 행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관에서는 그런 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고, 대전에 있는 국립 현충원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알지만 이 곳처럼 각 도시에서 새벽 5시에 추모식을 열고 거기에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에 코비드 락다운 때문에 안작데이 행사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이 4월 25일 새벽에 자기 집 앞 길가에 나와서 묵념을 하는 것으로 안작데이 행사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누가 그렇게까지 할까 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새벽에 집 앞에 나와서 참전용사들을 추모했었다. 나는 아직도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정서가 이 나라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Thursday, April 15, 2021

직장 동료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 내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았다. 입사동기였는데 나보다 한살 어려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동료였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 둔 때가 2002년이었으니 이제 20년이 다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내가 외국에 나와서 살았기 때문에 20년 동안 얼굴을 본 적은 아마 한두 번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 외에 따로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늘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고 너무 반가웠다. 혼자 산지가 꽤 되어서 결혼은 못하나 싶었는데 늦게나마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한국에 가서 연락을 하면 반갑게 나를 맞아줄 직장 동료들이 많을거다.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좋은 후배들도 많았다. 한국 문화 중에 선후배 문화가 있는데, 잘만 유지되면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경우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은 선배들과 나를 잘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요즘은 선후배 문화나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좋은 문화인데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문화이지 않은가 싶다. 외국에 나와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다.

지금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부터 70대의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다. 다들 동등하게 일하니까 좋은 점도 있지만, 일을 잘 가르쳐 주는 선배가 없으니 불편한 점도 있다. 요새는 나도 늙어가는지 한국의 좋은 문화가 그리워질 때가 많다. 서양은 그들의 문화를 잘 지켜가고 있는데, 동양은 자꾸만 서양화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Wednesday, April 14, 2021

다시 설교하다

인근 도시에 4년간 두 명의 담임목사가 목회를 그만 두고 떠난 교회가 있다. 담임 목사가 교회를 그만 두고 떠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가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이별을 했다면 참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목회자는 목회자 대로 교인들은 교인들 대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회복을 해도 좋지 않은 기억이 머리 속에 남아서 목사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겨지는 경우도 많다.

가급적 그런 교회 상황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교회의 경우는 목사가 아닌 교인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미 목사님은 교회를 떠난 상태고, 교인들은 두번이나 이런 일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는 그냥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목사와 교인들이 만나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목사님도 좋은 분이고 이 교인들도 좋은 분들인데 서로 간의 차이를 조정해 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그분들은 내가 그 교회를 맡아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이제 기존 교회 목회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음 목사님을 청빙할 때까지 내가 주일에 와서 설교라도 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건 노회에 요청하면 알아서 목사님을 보내줄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보내드렸는데, 한달 후쯤 다시 나를 찾아와서는 그 교단에서 탈퇴를 했다는 것이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해줄 사람이 이 근처에서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전 목사님이 그만 두었을 때는 다음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8개월을 유튜브 설교로 예배를 드렸었는데 다시 또 그런 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교인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 신앙을 갖게된 초신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밤에 마트에서 월, 금, 토, 3일 밤샘 근무를 하고 새벽 5시에 퇴근을 하기 때문에 주일 오전 예배를 인도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했더니 예배 시간을 저녁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매주는 못한다고 했더니 한 달에 한번이나 두번만 와주셔도 고맙겠다고 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다음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한달에 한번이나 두번씩 그 교회로 가서 주일 예배만 드리는 걸로 결정을 했다.

엊그제 주일에 그 교회에서 처음 설교를 했는데 교인들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어주었다. 고속도로로 왕복 두 시간의 거리가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성도들이 있고 설교에 감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모처럼 행복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왜 그리도 나 같이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설교를 맡기시는지.. 그래도 아직은 말씀의 종이니 말씀으로 하나님의 귀한 양들을 잘 먹여야 할 것이다.  

Tuesday, March 30, 2021

부활 경험의 조건

부활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절망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가 그야말로 치욕과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예수에게 인생을 걸었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겨졌을 만큼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부활을 통해 그들은 희망을 얻게 되었다. 예수가 가리켰던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실제로 체험했던 것이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끝이라는 현실을, 불의가 아니라 정의가 끝이라는 현실을,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끝이라는 현실을  부활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권력이 내렸던 사형 판결을 뒤집고 죽음에서 예수를 일으켜 세워 주셨으며 예수는 부활 이후로도 원수를 응징하기 보다는 공생애 기간동안 꾸준히 설파했었던 사랑을 실천해 나가셨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악한 세상 속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부탁하셨다.     

부활을 현실로 경험했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다. 소유를 나누기 시작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수의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따른 고통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에게 절망이 있는가? 풍요로움에 안주하기만 해서는 부활 신앙을 경험할 수 없다. 세상의 절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의 부조리와 권력의 행태에 절망을 느껴야 한다. 세상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죽임을 봐야 한다. 그러한 절망감이 현실로 느껴질 때 비로소 부활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절망이 없는 사람은 부활을 현실로 경험할 수 없다. 안락함 속에 부활이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돈을 구원자로 여기고 있다. 만질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돈이 우리의 구원자인데 어찌 보이지 않는 예수의 부활이 기쁠 수 있겠는가. 소유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어찌 소유의 추구를 경시하는 예수님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부활절에 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내 삶에 십자가가 있는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얻게 된 상처가 있는가? 나는 과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Wednesday, March 24, 2021

학교 캠프

아이가 오늘부터 2박 3일간 학교 캠프에 참여한다. 작년에 코비드 때문에 취소되었던 캠프를 이제서야 가게 된거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빈둥지증후군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살았다. 고등학교를 도시로 가는 바람에 고교 시절에는 한달에 한두 번 정도만 시골에 있는 집에 들렀다. 처음에는 아는 집사님 댁에서 1년을 살았고 그 후에는 하숙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내가 처음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때는 부모님의 심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내 감정에 비춰보면 부모님도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그래도 네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한 명의 자식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그렇기에 더욱 아이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 지금의 이 감정도 기억하고 싶다.

셋이 같이 산지가 10년에 아내와 둘이서만 살았던 기간이 9년.. 올해가 결혼 19주년이니 그렇게 둘이서, 셋이서 함께 살아왔다. 8년 후면 아이가 떠나고 나와 아내 둘이서만 사는 날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고 우리는 우리만의 삶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아이가 캠핑을 떠나면서 남겨진 이 허전함도 좋고, 밥은 잘 먹고 밤은 잘 잘까하는 약간의 걱정스러움도 좋고, 이틀 후에 다시 만날 기대감도 좋다.  

Monday, March 15, 2021

성찬식 봉사


오랜만에 성찬식 봉사를 했다. 단 위에서 커다란 포도주 잔을 들고 서 있으면서 포도주를 마시러 오는 성도들에게 "This is the blood of Christ shed for you" 라고 말하며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하얀 천으로 잔을 닦고 살짝 돌려서  다음 사람이 마시게 해준다. 하나의 잔에 들어있는 포도주를 함께 마시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성찬을 하는 교회보다는 조그만 잔에 들어있는 포도주스를 각자 들고 마시게 하는 교회가 많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하는 교회가 많았다고 한다. 이 교회에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마시게 하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에도 포도주 잔을 돌려마시는 교회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담임 목사였다면 포도주 잔을 돌려 마시는 형식은 제해버렸겠지만 이 교회 목사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이 교회는 앵글리칸 교회이다. 한국에서는 성공회라고 불리는 교회다. 앵글리칸 처치는 영연방 국가 중의 한 곳인 이 나라에서는 아마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일 것이다. 내가 침례교 목사이기 때문에 이 교회의 담임 목사/신부인 폴을 만나지 않았다면 앵글리칸 교회에 다닐 일은 없었을 거다. 

폴을 처음 만났던 곳은 수년 전 이 도시에 새로 생겼었던 커피 트럭이었다. 당시에 나는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고 폴은 이 도시로 이사와서 개척하며 자비량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새로 생긴 커피 트럭에서 커피를 한 잔 사마시며 바리스타인 폴이랑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목사라는 것까지 말하게 됐고 자기도 앵글리칸 교회의 신부라고 하는 것이었다. 

앵글리칸 신부도 자비량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한다고? 이렇게 시작되어서 올해부터는 아예 폴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굳이 분류하자면 저교회 전통에 가까운 교회지만 예전을 포기하지는 않은 교회이다. 게다가 뉴질랜드에서 맨발의 신부로 유명한 저스틴 주교가 폴과 함께 지내며 교회를 돕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저스틴 주교는 맨발에 장발을 땋은 헤어스타일로 유명한 주교인데 그냥 보면 전혀 신부스럽지 않고 어찌보면 조금 말끔한 노숙자스럽기까지도 하다.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청소년 사역을 해왔고 웰링턴 인근에서 공동체 사역을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웰링턴에 살고 있던 시절 인상깊게 여겼던 신부 중의 한명이었는데 지금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니.. 정말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어권 교회에 다시 참여하게 되니 다시금 영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일상적인 영어는 가능하지만 설교나 기도를 영어로 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말에 자신감이 있어야 설교나 기도가 가능한데 영어에 그만큼의 자신감이 없으니 설교를 하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지금은 한인교회 목회하던 시절에 비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많아져서 조금 나아진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영어로 듣고 말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하고 있기도 하고.. 

오늘 성찬식 봉사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노동의 댓가로 돈을 벌고 이렇게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니 좋다는 생각..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물론 아직은 영어 때문에 말로 가르치는 일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설교든 성경공부든 편하게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폴의 엄청나게 강한 스코티쉬 액센트에도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고..^^

Wednesday, February 24, 2021

복음은 백신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코로나 백신의 예방 확률이 95%쯤 된다고 한다. 누구든 그 백신을 맞기만 하면 95%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코로나 백신처럼, 죄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없을까? 복음이 그런 역할을 할수는 있지만 복음은 백신이나 치료제처럼 작동하지는 않는다. 복음에는 분명히 그런 능력이 있지만 의약품처럼 비인격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신은 어느 누구의 몸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그 몸안에서 면역체계를 형성시킨다. 하지만 복음은 듣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에게 구원을 완성시키지 않는다. 교회를 보면 알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복음이 복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 복음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말이다. 복음에 힘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단지 복음의 작동 방식이 비인격적이지 않을 뿐이다. 복음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의 효과가 나타나서 구원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이라는 매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복음이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발생시킨다는 말이다. 여기서 변인은 믿음이다. 복음도 구원도 이미 셋팅되어 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은 하나님 나라이다. 그 내용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믿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이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은 사람도 많고, 만났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한 사건으로 머물고 만 사람들도 많다. 구원의 능력이 발휘되려면 예수님과의 계속적인 사귐이 필요하다. 

믿음은 빈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빈 손이 아닌 경우도 많다. 여전히 세속적인 욕심을 움켜쥔 채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욕심을 가지고서는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복음의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다.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받은 존재라는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사랑하며 그런 것들을 바란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좇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우습게 비쳐지게 되었다. 교회가 우습게 비쳐지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16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로마서 8:24

Tuesday, February 16, 2021

백기완 선생

중학생 때 대통령 후보 포스터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백기완 선생을 실제로 만나뵙게 되었던 건 2011년이었다. 그때 외국인 노동자 활동가들이 모인 작은 공간에 강사로 오셨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선생님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백발이 성성하셨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헝클어져 있으면서도 바람에  날린 듯 멋진 백발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그 때 우리가 사용하는 활동가라는 명칭이 너무 힘이 없는것 같다고 다른 명칭을 좀 생각해 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월남했던 이야기도 해주셨고, 그 때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우리말들도 많이 가르쳐 주셨다. 물론 통일이나 민중을 중시하지 않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도 화끈하게 하셨었고.. 당시 나이가 아마 여든 쯤 되셨을텐데 참 멋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도 저렇게 변함없는 소신을 가지고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백기완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나서 갑자기 떠올랐던 작은 추억을 여기에 남기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너무 내 삶에만 매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지들은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들 별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기를.. 

Thursday, February 11, 2021

아이의 거짓말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거창한 거짓말은 아니고 산수 문제를 계산기로 풀어놓고 나한테는 암산으로 푼 것처럼 얘기한 것이다. 뭐 이번이 처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한테 발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나이로 12살이니 이제 거짓말도 할 수 있을만큼 큰 건가?

나는 몇 살부터 부모님한테 거짓말을 했었나?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했었던 것 같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머니 지갑에서 동전을 빼냈던 기억도 있고, 백화점에서 작은 인형을 하나 들고 왔다가 어머니에게는 길에 떨어져 있었던 걸 주워왔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소소한 거짓말들을 나도 했었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가 자백을 안하려고 하길래 지금 이야기하면 화내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슬펐다. 아이가 거짓말을 해서 슬펐다기 보다는 저렇게 착한 아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할 걸 생각하니 슬펐다. 세상을 살면서 저런 눈물을 얼마나 더 많이 흘려야 할까.. 그래도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살필줄 알고 혹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염치가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잘 참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하게 타이르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이는 나에게 거짓말을 더 하게 될 것이고, 때에 따라서 나는 아이의 거짓말을 알면서 모른체 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 이 사건을 통해 아이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관계가 버성겨진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겼기를 바란다.

Friday, February 5, 2021

오래된 것들에 대한 연민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 것을 향한 소유욕보다는 오래된 것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가령 이렇게 오래된 화단 경계석도 새로운 경계석으로 바꾸기 보다는 그대로 놔두고 싶다. 


오래된 화단 경계석

색도 바래고 이끼도 끼고.. 이 집이 80년된 집이니 이 경계석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족히 수십년은 되었을 것이다. 있는듯 없는듯 그냥 주변의 잔디나 잡풀들과 하나가 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도 인공의 존재감을 드러내었을 터이다. 살아있는 식물들 속에서 단단한 회색 콘크리트의 위용을 뽐내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젊었을 이 집 주인도 이 경계석을 놓으며 뿌듯해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그 주인도 이 경계석도 함께 늙어갔을 터이고 이제 주인 떠난 이 집에 방치된채 남겨져 있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온지도 벌써 3년이 지났으니 나도 3년간 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지켜본 셈이다. 바꿀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공감 능력이 무생물에게도 닿게 되었는지 저 경계석도 안쓰러워 보이고 차마 아름답게도 보인다. 그냥 가끔 그 위로 올라오는 풀잎이나 깔끔하게 잘라주고 저렇게 놔두려한다. 인공도 오래되면 자연이 되는 것이고 사람도 자연으로 돌아갈 터이니.. 자네나 나나 그렇게 조용히 자연이 되어가세나..       

Tuesday, January 12, 2021

부담스러운 사람들

요즘은 자기 생각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기도 했지만 공부가 깊어지고 나이도 먹어가면서 그렇게 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진다. 특히 나름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길을 제시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 할 때는 눈살이 찌푸려지기까지 한다. 저 정도 공부를 했고 저 정도 연륜이 쌓였는데 어찌 아직도 자기가 찾은 진리 한조각에만 매달려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살 때는 한국에만 좋은 것들이 다 있는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의 맛과 멋을 못알아준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나와서 살아보니, 아니다. 외국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외국에도 맛이 있고 멋이 있다. 나름 다들 괜찮다. 한국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도 좋지만 외국 것도 좋다는 말이다. 내가 깨달은 그 무언가가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좋은 것들은 다른 곳에도 많다. 내가 깨달은 것이 좋다면 겸손하게 그것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들을 비하할 것 없다. 자신이 이룬 약간의 성취에 고무되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마저 어리석게 보는 교만한 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Wednesday, January 6, 2021

집단 면역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 배포됨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집단 면역 레이스로 돌입하는듯 싶다. 누가 먼저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 면역을 완료할 것인가. 집단 면역이 성공하면 관광객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호주는 2021년 10월까지 집단 면역을 끝내고 국경을 오픈하겠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아직 그 시기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아던 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호주보다 일찍 전국민 백신 접종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선구매한 백신만으로도 충분히 인구 500만 정도의 이 나라 국민들 전부에게 백신을 투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를 신뢰하는 키위들의 특성상 접종 승인이 떨어지면 빠르게 백신 접종이 마무리 될 것이다. 만약 뉴질랜드에 집단 면역이 완성되고 국경이 개방되면 뉴질랜드는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을 터이다. 과연 뉴질랜드가 집단 면역에 있어서도 전세계의 본보기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정인이 사건

16개월된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만든 양부모가 둘 다 목사의 가정에서 자랐고 기독교 교육을 받았으며 지금도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뭐가 문제냐는, 즉 아이를 죽게 만든 일은 큰 잘못이지만 그 사건과 그 양부모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어느 교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제는 정말 기독교가 힘이 없는 종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교인들조차도 기독교 신앙에 기대감이 없는 것 같다. 평생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란 이가 저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다. 그런 반응을 비 기독교인이 봤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사람은 누구든 죄를 지을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같은 신앙인이 죄를 지었을 때 더 놀라야하고 더 안타까움을 느껴야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하기보다는 비신앙인보다 더 분노하고 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고 눈물을 흘렸듯이 우리도 이런 악행에 대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기독교 신앙과 개별 신자의 악행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런 악한 일을 행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일에 교회가 먼저 나서서 교인을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 회개하고 더 엄중히 단죄를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헌금만 드리면 다인 줄로 알고 성도의 삶을 살피지 못한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처벌을 적게 받을 수 있게 할까 고민하지 말고 제대로 처벌을 받는 걸로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 양부모가 다니던 교회도 공개적으로 참회의 성명서를 발표하길 바란다.

Friday, January 1, 2021

2021년 1월 1일

 2021년이 되었다. 

원래는 지금 마트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집에 있다. 공휴일에는 일을 안해도 될 권리가 있다고 해서 집에 왔다. 1월 1일과 2일이 금요일 토요일이다. 그런데 그 날이 공휴일이라 원래 금토 근무가 잡혀있는 나도 일을 안해도 된다고 한다. 일을 안해도 똑같은 급여를 준다. 일을 하면 1.5배 임금에 대체휴일까지 얻을 수 있지만 다들 일을 안한다고 해서 나도 같이 일을 안하기로 했다. 한국 사람들같으면 이런 날 다들 더 일을 하려고 하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일을 안하려고 하는 점이 신기했다. 나야 일을 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노조원들과 함께하는 의미에서 안하기로 했다. 이 정도 권리를 얻어내기까지 이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왔겠는가.. 돈 몇푼 더 벌려고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겐 아직도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하여 2021년 1월 0시 반쯤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새해가 아직 밝지는 않았지만 시간은 이미 2021년으로 넘어왔고 좀전에 아직 2020년 12월 31일에 살고 있는 한국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2021년에서 2020년으로의 통화였다. 2020년에 사는 친구는 2021년을 사는 나에게서 전화를 받은 셈이다. 참 우스꽝스러웠다. 같은 현재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2021년은 나에게 어떤 한해가 될까? 올 한해는 그냥 아무 특별한 일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렇게 마트에서 일하고 새로운 키위 교회에 잘 정착하고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그렇게 살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그냥 쉬고 싶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