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가 일하는 날이 월, 금, 토요일이다. 지난 월요일 밤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 허리 통증을 느꼈고 수퍼바이저와 함께 Incident report를 작성하고 일찍 퇴근을 했다. 화, 수, 목 계속 통증이 있어서 집에서 쉬었고, 금요일 밤에 출근을 했다가 일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다시 10분만에 퇴근을 했다. 어차피 병가가 7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걸 쓰면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다친 곳이 직장이었기 때문에 ACC(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 라는 정부기관을 통해 한국으로 따지면 산재처리라는 걸 해야했다. 점장이 자꾸 light duty(원래 하던 일보다 쉬운 일을 하는 것)를 언급하길래, 며칠 집에서 쉬면 괜찮아질텐데 왜 나와서 일하라고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ACC 때문에 그런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점장이 의사를 보고 오라고 해서 주말동안 쉬면 괜찮아질거라고 했더니, 산재 보고를 했기 때문에 의사의 소견을 받아보고 몸이 어떤 상태인지 확실히 알아봐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서류 양식을 의사에게 갖다주라고 해서 그게 뭔가 봤더니, 내 몸 상태로 어떤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사가 진단 후 체크해 주는 양식이었다. 점장은 다시 light duty를 하기를 강조했고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의사의 진단명은 Sacroiliac ligament sprain이었다. 한국어로는 천장관절 인대 염좌쯤 될까? 엉덩이뼈 쪽 인대가 손상되어서 통증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 달리 단순한 근육통증은 아니었던 거고 왜 그렇게 심하게 아팠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의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앉아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뿐이라 했고 일주일간 쉬라는 내용의 진단서를 작성해 주었다.
회사에 다시 진단서를 가져다 주고 집으로 와서 ACC 규정들을 살펴보니 ACC는 Light duty를 권장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출근해서 가벼운 일이라도 하면 자기들이 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Light duty를 권장하는 걸까? 노동자가 몸이 아파서 쉬기를 원할 때, 사업주는 노동자의 말을 듣고 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ACC의 권고 대로 Light duty를 권해야 할까?
얼마전에 나와 같이 일하던 젊은 친구가 허리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증상에 나보다 더 심한 통증이 있었던 것 같았다. 며칠 후에 그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일을 하고 있길래 집에서 쉬지 뭐하러 나왔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Light duty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산재보험을 될 수 있는대로 안 쓸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사실이라면 역시 한국이나 복지 선진국이라는 여기나 자본의 작동방식은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여기는 노동자가 No 라고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환경이라서 회사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아마 그 친구도 나와서 일하라는 회사의 요구에 No라고 했어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노조에 가입이 되어 있기도 하고 이 나라 자체가 시민들의 절반 정도가 노동당을 지지할 정도로 노동친화적인 곳이기도 해서 내가 그냥 쉬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억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힘없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이다보니 그들의 아픔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찌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렸던 이상세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영혼없는 자본의 힘을 제어하려면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로서로 힘을 모아 어려움을 감수하고 함께 저항하지 않으면 개개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의사의 권고를 따라서 이번 주까지 휴식을 취하고 주말에 복귀하려고 한다. 다시 점장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이번에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Light duty는 할 수 없고 집에서 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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