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30, 2024

크리스천 동료

노조와 회사간 임금 협상이 진행 중이다. 늘 그렇듯 회사는 적게 주려하고 노조는 정당한 몫을 받아내려 한다. 노조에 속해 있는 나는 밤에 일하기 때문에 노조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하지만 노조의 요청에는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노동절 공휴일에 일하지 말아달라는 전체 메일을 노조에게서 받았다. 사측에 압력을 가하자는 의미다. 공휴일에 일을 하면 1.5배의 임금에 대체휴일을 주기에 나는 대개의 공휴일에 일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노조의 뜻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쉬기로 했다. 다른 노조원들도 대부분 그렇게 했다. 어차피 공휴일에 일하지 않아도 그날치 일당은 받기에 그렇게 큰 손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S는 그날 일을 했다. S는 회사의 처우에 불만이 많고 항상 노조 회의에도 참석하는 사람이다. 노조를 통해 얻는 이익과 회사의 잘못을 따지는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인데 약간의 자기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이번 행동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동료들 몇이 뒷담화를 했다. 일을 꼭해야만 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면 이해를 하겠으나 S는 싱글에 자녀도 없지만 집은 있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형편이 나은 처지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도 실망스럽지만 나는 다른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실은 그는 크리스천이다. 내가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에게 여러가지 신앙적인 질문도 많이 했었고 이런저런 상담도 해주고 그랬었다. S가 이번에 노동절에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노동자들은 다같이 힘을 모아야 된다는 말도 해줬었는데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약간의 희생도 감수하지 못하는 S같은 사람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했던 예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던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는 예수의 명령은 S와 같은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Monday, October 28, 2024

탁구 랠리만 했는데도 실력이 느네

오늘 오랜만에 게임을 했다. L은 학창시절에 탁구를 배웠던 주니어 선출이라 원래 나랑 게임을 하면 내가 맥도 못추고 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두게임 정도 이겼다. 물론 전체 게임은 당연히 졌지만 몇 게임을 이겼다는 것에 나 스스로 놀랐다. 

I는 사파 스타일의 회원이다. 그 친구는 L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나랑 게임을 할때면 내가 그 친구에게 질 때가 꽤 많았다. 그런데 오늘 게임을 했는데 내가 그 친구를 쉽게 이기는게 아닌가!

매번 탁구를 칠 때마다 쉐인과 랠리만 주구장창 했었는데 그러는 사이 내 게임 실력도 같이 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의아하다. 뭔가 전반적으로 공에 대한 감각이 좋아졌다고 봐야 할까? 랠리하면서 확실히 포핸드와 백핸드가 좋아지긴 했다. 특히 포핸드는 포-포 대결에서 쉐인의 포핸드를 뚫기도 할만큼 세졌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이 내 포핸드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L도 내 포핸드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주로 내 백핸드쪽을 공략해서 나를 이겼다. 지금 수준에서 나는 내 백핸드쪽을 공략하는 사람을 이기기는 어렵다. 나보다 잘치는 사람들은 내 약점을 공략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보다 내 백핸드의 수준을 올리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게임은 포핸드만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게임은 더 다양한 기술과 전술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게임을 거의 안하고 랠리 연습만 계속 했는데도, 매번 게임만 하는 사람들을 이겼다는 것이 신기한 거다.  

나는 랠리 연습만 해서는 게임 실력이 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적으로 볼을 다루는 감각이 좋아진 것이다. 그 감각의 발전이 서브나 리시브에도 적용이 된 것 같다. 아무튼 오늘 내 실력이 늘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날이었다. 

Thursday, October 24, 2024

탁구에서의 회전과 스피드

탁구에서 가장 처음 알아야 할 것이 회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냥 똑딱이 수준의 탁구를 한다면 회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탁구를 즐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탁구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회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선 머리로 회전을 이해했다면 몸으로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회전이 실린 탁구공을 받는 연습 뿐만이 아니라 내가 탁구공에 회전을 주는 연습도 해야한다. 서브 뿐만 아니라 백핸드나 포핸드에서도 회전을 줄 줄 알아야 한다. 초급자들과 경기할 때는 회전이 많이 섞인 공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중상급으로 올라갈 수록 회전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중상급자들은 몸으로 회전을 이해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회전을 잘 컨트롤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우리 클럽에도 스피드는 느리지만 회전을 잘 주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회전 많은 볼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의 공은 쉽게 받는다.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이다. 반면 선출인 쉐인의 공은 지금도 받기 어려울 때가 많다. 회전 뿐만 아니라 스피드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곧잘 받아주는 편이지만 처음에는 그의 빠른 공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회전이 섞여도 빠르고 회전이 섞이지 않아도 빠르다. 오히려 회전이 덜 섞인 공이 속도면에서는 더 빠르다. 

쉐인과 공을 치면서 나는 회전을 줄이고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회전을 줄 수 있다면 회전을 주지 않는 법도 알 것이다. 회전을 주다가 회전을 빼고 무회전 샷을 때리거나 무회전 샷을 주다가 회전을 엄청 많이 섞어서 주면 오히려 상대방이 실수를 할 때가 많다. 

탁구에서 회전과 스피드는 항상 같이 있고 문제는 정도이다. 내가 공격을 할 때 얼마만큼의 회전을 섞을지 얼마만큼의 스피드를 더할 지 순간적으로 그 정도를 정해서 그에 맞게 칠 줄 알아야 한다. 

Wednesday, October 16, 2024

아직도 여전히

인간이 신에 대해 신은 이러이러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신학책을 읽는데 신은 이렇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는 순간 그 책을 더 이상 읽기 싫어졌다. 나는 신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그가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해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에 관해서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신에 관해서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신에 관해 쓰고 싶다면, 신과의 조우에서 이런 부분을 경험/이해했다, 내가 경험한/이해한 신은 이러이러했다, 혹은 어떤 저자의 신 경험/이해는 이러이러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최선이지 않을까? 

신은 거기 계시는 분, 또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만 받아들이고 역사 속에 드러난 그분의 뜻, 또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가 포착한 그 분의 뜻(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여, 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그 일을 행하는 중 실제로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나누고 해결하는데에 힘을 쏟고, 신학교는 그에 맞는 이론을 정리하고 공론화하는 일에 집중하면 좋을텐데, 대개는 죽은 아들 불알 만지듯 이미 효용성이 사라진 말들만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젊은 목회자들 중에도 과거의 신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눈에 보이니 대체 언제쯤이나 물갈이가 될까..    

Tuesday, October 15, 2024

욕심이 없는 사람

더 많은 부를 얻어서 편히 사는 게 꿈인 사람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그런 꿈이 없다. 
나는 그저 수많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잘 살게 되는 세상을 꿈꾼다.
내가 많은 집을 소유하기 보다는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한 채씩은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집 없는 사람들이 사야 할 집을 집 많이 가진 사람들이 돈을 더 주고 사는 바람에
집 없는 사람은 월세 살이를 더 오래하게 되는 세상이다.
의식주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데,
그 필수적인 것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진 세상에 나조차 가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내가 가진 것들을 점점 줄여나가며 살고 싶다.
점점 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다.
주변에 가진 것을 더 늘려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좀 줄여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사람들인데 왜 그리 늘리려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Saturday, October 12, 2024

한강 작가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는데, 
무슨 축하냐는 것이다. 
그렇다. 
'소년이 온다'의 작가라면 그리하는게 맞다. 
아직도 중동과 우크라이나는 전쟁통인데 
분수대에 물을 틀면 되겠는가..

Friday, October 11, 2024

교회는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수가 거기 없으므로 나도 거기에 없다. 모든 교회가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라 했다. 여전히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는 교회가 있다.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던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처럼, 지금 이렇게 예수 없는 교회가 판을 치는 기독교에도 남은 교회들은 있다. 물론 엘리야가 그랬듯 나도 그 교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금은 새 술이 필요한 시대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표현이 나와야 한다.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도 잡다한 생각들만 있지 정확한 개념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새 술이 나오기 전 단계라 보인다. 긴 겨울의 단계고, 이 역시 필요한 시기다. 새 술이 없기에 새 부대도 아직 없다. 새 술은 언제나처럼 또 나올 것이고 새 술이 나온다면 새 부대 또한 준비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다같이 겨울을 지내야 한다. 봄인 것처럼, 여름인 것처럼, 가을인 것처럼 환상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겨울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봄은 언젠가 올 것인데, 지금 힘을 다 써버릴 필요는 없다. 겨울에는 겨울을 나는 법이 있다. 이제 초입이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