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6, 2025

2025년 크리스마스 묵상

마태복음 1장에서 아기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즉 임마누엘의 증표였다. 꿈 속에서 천사로부터 그 말씀을 전해들은 요셉은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왔고 예수의 아빠가 되어주었다. 약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자신의 사역을 모두 마치신 예수님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하나님/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그 힘이 우리를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예수님처럼 행동하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한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대신 해준다고 하지 않았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하셨다. 상황을 변화시켜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고 함께 있어준다고 하셨다.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가 아니라 내가 같이 있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한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함께 있어준다는 말은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아니다. 임마누엘의 현현이셨던 예수님도 당시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 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마 1:21) 분이셨고 자신이 처해 있었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일을 해내었던 분이셨다. 예수님 스스로도 힘든 삶을 사셨고, 그런 중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삶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삶이 편했던가 마리아의 삶이 편했던가. 다들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런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며 선한 일을 해 나갔을 뿐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가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그런 삶의 자세를 체화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Thursday, December 18, 2025

장애인 부모의 노동자 지위

얼마 전 12월 9일에 뉴질랜드 대법원이 중증 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를 풀타임으로 돌보는 부모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정부가 이들 부모의 고용인이 되어 이들에게 최저임금, 유급휴가 등 노동법상의 기본적인 권리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성년 자녀의 경우 부모에게 양육의 의무가 있지만 성년이 된 후까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성년이 된 장애인의 경우는 국가가 시설 수용 등을 통해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데, 특정 중증 장애인의 경우 그들을 돌볼 시설이 마땅치 않다. 이런 경우에는 그 장애인의 부모나 가족이 장애인을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을 가족 간의 사랑과 의무의 영역으로만 보고 보조금 정도만 주는 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가족 간병의 가치를 노동법상으로도 인정해 준 것이다. 

부모가 중증 장애인 간병이라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강도가 직장 생활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세다면,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 그 부모에게 임금도 주고 유급 휴가도 보내줘야 한다는 판단을 대법원이 내려 준 것이다. 뉴질랜드도 요즘 경제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국가가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고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Saturday, December 6, 2025

참새와 길고양이

처마 쪽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새소리야 매일 들리는 소리지만 보통은 나무 쪽에서 들리지 처마 쪽에서 들리지는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집 지붕과 그 아래 간이 차고 지붕 사이의 틈 사이에 참새가 집을 지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둥지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 틈 사이로 삐져나온 마른 풀들로 보아 그 안쪽에 작은 둥지가 있고 이제 막 부화한 새끼들이 그 안에서 짹짹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별채 쪽에서는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했다. 길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통해서 뒷집이나 옆집으로 다니는 걸 봐 오긴 했지만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것이다. 별채 데크 아래쪽 틈 사이로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검정 고양이, 노란 고양이, 두 색깔이 섞인 고양이들이 너댓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참새도 고양이도 내가 키우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서 몸을 풀었으니 둥지를 떠날 때까지는 편안히 지내다 가길 바란다. 애를 낳고 키우는 일은 동물들에게도 힘든 일일 것이다. 몸을 풀 곳을 찾아내려 어미들이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성서에는 맹수와 초식동물, 어린아이가 함께 지내도 아무런 해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길고양이나 참새들이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쯤은 우리 집에서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