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26, 2026

설교보다는 대화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인근 지역에 정전 사태가 났었는데, 그 바람에 내가 일하는 매장에도 전기 공급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이럴 때 쓰려고 설치해 둔 비상발전기가 부분적으로만 작동하는 바람에 매장 내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해서 오늘 일하는 날인데 한 시간만 일하고 왔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전기가 끊기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설교 준비를 마저 하려고 한다. 집에 일찍 오는 바람에 설교 준비하는 데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넉 달간의 설교 사역이 내일모레면 끝이 난다. 내가 힘이 들어서 한 달에 두 번씩만 하겠다고 하고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설교 준비가 힘이 든다. 예전처럼 성경 본문에 파고 들어가서 뭔가를 건져내고 지금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 

머리 쓰는 일을 안 하고 몸 쓰는 일만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책도 읽고 있고 이런저런 글들도 읽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지는 않다. 몸과 정신 중에서 지금은 몸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정신노동을 하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내가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니어서 원래 하던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하게 되면 몸이 힘들어진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버틸 만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버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 주일이면 마지막 설교니 다행이다. 내가 더 못 버틸 걸 아시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목사님은 그 교회에 10년은 계셨으면 좋겠다.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나도 그 일을 하긴 할 것이다. 단지 기성 교회에서 내가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씀을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누구든 나를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신자든 비신자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응해서 적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거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직장이나 내 삶의 반경에서 내가 만나고 있거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이런 일이 나에겐 더 보람이 있다. 

Thursday, June 4, 2026

용서, 회개, 화해

용서는 화해가 아니다. 화해가 상호적이라면 용서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지적 결단이다. 즉,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안에서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화해는 상호적이다. 용서와 달리 화해는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 후에나 가능한 것이 화해다. 

용서는 또한 감정의 차원도 아니다. 용서했다고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의지의 차원이지,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감정의 해소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가해자가 회개하고 죄값을 치렀어도 미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미움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서 그 사람에 대한 보복심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회개는 용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은 자와 화해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자수하고 옥살이를 할 것이다. 손해를 끼쳤다면 배상을 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출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화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화해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화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가능하지만 무조건적인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죄를 먼저 용서하셨고, 우리가 회개하길 기다리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우리와 화해하셨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의라 부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기를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사이에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1차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용서와 회개와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뭐가 문제인 것일까...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