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30, 2010

새벽기도

오랜만에 새벽기도에 나갔다.

이 교회는 본래 새벽기도를 안하는 교회지만

일 년에 두차례 대림절과 고난주간 동안에만 새벽기도회를 갖는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이번 대림절 기간동안 새벽기도에 나가게 되었다.

 

대학교때까지는 나도 심심찮게 새벽기도에 나갔었다.

아버지는 하루도 새벽기도를 쉬지 않으셨는데,

나는 주로 주일 새벽기도에만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는 새벽기도 시간이 네시 반이었는데

요즘은 네시 반에 새벽기도를 하는 교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교회는 새벽기도를 여섯시에 드린다.

지금은 여섯시도 새벽으로 쳐주나보다.

 

내가 새벽기도에 흥미를 잃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뭐 이런저런 객관적인 이유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나 스스로가

새벽기도를 통해서 별 유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기도 체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시끄럽게 기도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싫어지기도 했다.

기도는 모름지기 집중인데

곁에서 시끄럽게 하면 집중이 잘 안된다.

조용히 혼자서 하는 기도가 훨씬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오늘 새벽에 기도를 하면서

이 교회 성도들은 확실히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 다른 교회에는 늦게 까지 기도하는 분들이 몇분은 꼭 있는데

이 교회 분들은 한 십분이나 십오분정도 밖에 기도를 안하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오랜만에 새벽기도에 나왔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기도하던 습관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적어도 한시간은 기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리 부산스러운지..하마터면 짜증을 낼 뻔 했다.

내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불끄고 갈테니 먼저 가시라고 했다.

어찌보면 다행이었다.

그때부터는 정말 아무도 없는 텅빈 교회당에서

홀로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오늘 하나님과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깊이있는 대화를 좀 했다.

하나님이 아마 좀 뜨끔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말 안해도 이미 알고는 계셨겠지만..

Sunday, November 28, 2010

북한의 공격

북한이 연평도를 해안포로 공격했고 한국군이 대응 공격을 했다.

그 와중에 한국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북한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한국의 공격으로 북한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들은 주로 한국군의 대응 공격의 강도가 약했다고 비판을 했다.

여기에 한 일본 언론도 한국군이 생각보다 약해서 놀랐다는 글을 실은 모양이다.

일본은 은근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길 바랄 것이다.

6.25 전쟁 때도 그들이 얻은 경제적 이득이 상당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지금 일본 경제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이

전쟁으로 타격을 입는다면 일본으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미국은 이참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서해로 진입시켰다.

중국 견제의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중국이 이번에도 미국의 항모 진입을 막을 명분은 없을 것이다.

중국 앞 바다까지 미국의 항공모함이 밀고 들어왔으니

중국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과연 중국이 언제까지 북한을 편들어줄지도 궁금하다.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국의 대리 전쟁터가 될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당연히 미군이 나설 것이고

미군이 나서면 중국군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번에 북한의 짧은 공격에도 4명이 죽었다. 북한에서도 분명 사망자가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물론 전면전은 아니고 국지전이겠지만, 피해는 불가피하다.

결국 죽는 것은 우리 자식들이거나 우리 동포들이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북한 체제의 수뇌부의 잘못으로 그들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열강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복잡한 힘의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더 큰 틀에서 이번 사건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맞았다고 때릴 생각만 하기 보다는

때리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 더 큰 이득을 얻어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군의 방어능력, 공격 능력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지만

군대 역시 정치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대북정책, 외교정책, 대통령의 의도, 정치권의 계산 등에 의해 군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군대만 뭐라고 질책할 것이 아니다.

열강들과 북한, 국내 기득권 세력들의 복잡한 관계망을 잘 살피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한국 정부에 주어진 숙제이다.

 

Sunday, November 21, 2010

현실로서의 신앙

도대체 왜 그렇게 돈을 아끼려고 그럴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장이,
자기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 근로자가 다쳤는데,
왜 자기나 자기 가족이 다쳤을 때처럼 도와주지 않는 걸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왜 그러는걸까?
그 사람에게 신앙이란 도대체 뭔가?
그 사람에게 있어 신앙이란..
허상이다.
실재가 아니다.

이제 제발 좀 깨어나자.
다음 주면 또 다시 대림절이다.
대림절이면 늘상 하는 첫번째 설교가 '깨어나라'아닌가?
제발 좀 헛된 신앙의 상태에서 깨어나자.
신앙은 진짜다. 허상이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한밤 중에 울린 전화의 수화기 너머로
본인과 가족의 목숨을 위협하는 백인의 목소리를 듣고,
잠자고 있는 아내와 이제 갓 태어난 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This is real.
그때 비로소 신앙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한다.
신앙은,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현실이다. 장난이 아니고 가상도 아니다.
진짜 내 곁에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외면하면 없어지는 그런 허상이 아니다.
말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다쳤는데 대충 치료해 주고,
다쳐서 일 못했는데, 결근 처리하고, 돈 안주고
그리고는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신앙은 목사의 설교 속에, 다른 사람들의 간증 속에,
성경 이야기 속에 있지 않다.
내 삶의 현실 속에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신앙을 외면하고
머릿속으로만, 말로만 신앙생활하는 자들이여
이제 제발 좀 깨어나자. 부탁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세계인권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1948년 12월 10일 UN 총회 제정)

 

전문

인류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다.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만행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를 기억해보라. 인류의 양심을 분노케 했던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오늘날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지고지순의 염원은 ‘이제 제발 모든 인간이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리라.

 

유엔헌장은 이미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했고, 보다 폭넓은 자유 속에서 사회진보를 촉진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도대체 인권이 무엇이고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유엔총회는 이제 모든 개인과 조직이 이 선언을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 지속적인 국내적 국제적 조치를 통해 회원국 국민들의 보편적 자유와 권리신장을 위해 노력하도록,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3조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4조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거나 타인에게 예속된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노예제도와 노예매매는 어떤 형태로든 일절 금지한다.

 

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모욕,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6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7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8조 모든 사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9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 구금,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

 

10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별받을 때,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서 공평하고 공개적인 심문을 받을 권리가 있다.

 

11조 범죄의 소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변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보장받아야 하고, 누구든지 공개재판을 통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될 권리가 있다.

 

12조 개인의 프라이버시, 가족, 주택, 통신에 대해 타인이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의 명예와 평판에 대해서도 타인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

 

13조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또한 그 나라를 떠날 권리가 있고, 다시 돌아올 권리도 있다.

 

14조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

 

15조 누구나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누구든지 정당한 근거 없이 국적을 빼앗기지 않으며, 자기 국적을 바꾸거나 다른 국적을 취득할 권리가 있다.

 

16조 성년이 된 남녀는 인종, 국적, 종교의 제한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으며,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 결혼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남녀는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17조 모든 사람은 혼자서 또는 타인과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재산을 정당한 이유 없이 남에게 함부로 빼앗기지 않는다.

 

18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19조 모든 사람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20조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20조 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21조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롭게 선출된 대표자를 통해, 자국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공직을 맡을 권리가 있다.

 

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23조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실업상태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

 

24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정기적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25조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 입을 옷, 주택, 의료,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26조 모든 사람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과 기초교육은 무상이어야 하며, 특히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27조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학문적 진보와 혜택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28조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의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29조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의무를 진다.

 

30조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낭독용

Wednesday, November 17, 2010

기독교계 파워 엘리트?

200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상위 0.1% 31,800여 명의 종교 비율이

개신교 40.5% 천주교 22.6% 불교 17.7%라고 한다.

기독교계 비율이 60%를 넘는 수치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비율에 속하는 대다수는 이른바 강남 5대 교회라는

소망, 광림, 충현, 온누리, 사랑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것이다.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들이 파워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기 보다

그렇게 많은 기독교계 파워 엘리트가 있는 데도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거다.

지금도 저 비율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최상위에

포진하고 있는 저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따르고 실천한다면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Tuesday, November 16, 2010

의사소통의 어려움

외국인 노동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역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의사소통이다.

여러번 얘기해줘도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충분히 이해했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또 똑같은 질문을 한다.

통역을 쓰면 좋은데 통역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통역을 구했다 해도 제대로 통역을 하고 있는지 내가 확인할 수도 없고

일단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최대한 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영어를 좀 알아듣는 사람들도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이해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영어도 정말 쉽게 하려고 한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나도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 할 때가 있었다.

듣고는 있었지만 뭔가 확실치 않았을 때가 많이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던 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며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통역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풀어야 할 숙제다.

 

Thursday, November 11, 2010

아내의 생일

아내의 생일이다.
아이의 탄생 순간을 지켜봤기 때문인지
'생일'하니 자연스럽게 그 때가 다시 생각난다.
아내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세상에 나와서
내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내가 없는 내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상상이 되지도 않는다.

바울 사도가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랑은 말이나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몸을 돌볼때 말로만 하거나 마음으로만 하지 않는다.
말로만 마음으로만 하면 몸은 벌써 굶거나 병들어 죽어 버렸을 것이다.
눈에 조그만 티 하나만 들어가도 그것을 빼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가.
말로만 '빠져라 빠져라' 하지 않는다.
말로만 '눈아 사랑한다' 하지 않는다.
직접 손을 움직인다. 온 몸을 움직인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만큼 내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할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랑, 그것도 사랑이냐?

Sunday, November 7, 2010

'허수아비 춤'을 읽고

예수님이 살던 시대는 자본주의체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돈의 지배를 경계하는 말을 했었다.
하물며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 돈의 위세는 얼마나 막강하겠는가?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심을 돈과 결합해놓은 체제이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듯 돈도 끝이 없다.
한 사람이 억, 십억, 백억, 천억, 조.. 끝없이 부를 축적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이다.
심지어 사람의 가치마저 돈으로 매김 한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는데
자본주의에서 사람은 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알기에, 흙에서 왔다는 자신의 본분을 알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에게 감사와 경외를 올리는 삶을 살 줄을 안다.
하지만 돈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돈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는 착각 속에 살며, 돈이라는 무한한 그러나 그 자체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과 자기를 동일시하며 돈의 액수와 비례하여 자신의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과 그 생각을 공유/강화시키는 체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산다.
돈이 매력적인 것은 실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눈앞에서 이루어지게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은 내 욕심 보다는 정의와 평화, 사랑을 우선시하는 하나님에 비해
현실 세계에서 훨씬 더 끌리는 존재이다.
이렇게 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돈의 힘과 맞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싸움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돈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 사실은 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심과의 싸움인데
과연 인간의 욕심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교회? 신앙심?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 두채 가진 집사가 집이 한채도 없는 평신도에게 집 한채를 그냥 주어서 살게하는 일이 교회에서 과연 가능할까..
   

Thursday, November 4, 2010

내 카운셀러

아이와 둘만 있을 때가 있었다.
고민거리가 있어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너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으니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좀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이 녀석이 옹알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 눈을 보면서 계속 뭐라고 옹알거리는거다.
그것도 한 두마디가 아니라 계속 말이다.
한참을 그러다가 오른 손을 제 턱 밑에 대고 씩 웃더니 조금 있다가 잠들어 버렸다.
물론 타이밍이 절묘하게 들어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묘한 느낌이었다.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들었을텐데 말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긴 하지만
아이가 이제 내 카운셀러다. ^^

Monday, November 1, 2010

예방접종

오늘 아이의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
세종류의 접종을 하고 왔는데 모두 보건소에서 맞힐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 소아과에서 접종을 했다.
총 29만원이 나왔다.
주사 세 대에 29만원이다.
그런데 이게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보통 3차까지 접종을 해야한다.
예방접종 종류가 12가지나 되는 데
전부 합치면 이게 도대체 얼마인가?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서민들에게는 정말 큰 액수 아닌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정부가
도대체 유아 예방접종도 무료로 하지 않고 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교회와 술

난 그리스도인이고 목사지만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구약이나 신약에서도 특별한 경우 아니고는 금주하라는 이야기는 없다.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는 기장측 교회인데
술을 자연스럽게 마신다.
야외예배에 가서 점심식사 하면서 막걸리도 한잔씩 하고
체육대회나 저녁 식사하면서도 한 잔씩 한다.
괜찮다. 자연스럽고 좋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한국의 술문화다.
한국의 술문화는 술을 권하는 문화가 아닌가.
이 술을 권하는 문화가 교회 안에서도 형성 되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사회처럼 강하게 이런 문화가 자리잡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은근히 그런 성향이 보인다.
나는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지라
한 두잔이면 그걸로 좋은데
그 이상 마시기를 권유한다.
담임목사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 더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지만(사실, 담임목사님은 말술이다^^)
남자성도들과 나만 있는 자리였더라면 좀더 세게 권하지 않았을까 싶다.

교회에서 술을 마시게 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아마도 한국의 술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교회에서 바른 음주 문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나?^^

자연신?

환경 관련된 신앙 강좌를 들었다.

자연이 소중하다는 사실, 마땅히 자연파괴 행위를 막아야 하며,

생활 속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는 실천들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강연자가 자연을 너무 신격화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연은 소중하지만 신은 아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에는 여러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정말 엄청난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상관없이 죽게 된다.

그 생명체들이 자연에 무슨 해를 끼쳤었는가?

자연은 그러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정말로 매정한 것이 자연이다.

 

현재 자연 훼손의 많은 부분이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인정한다.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자연재해가

인간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자연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 거기까지도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공해를 일으키기 전에도 있어왔던

자연재해들, 빙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할 건가?

지구 자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태양의 활동에 대해서는 뭐라 할건가?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그냥 항상성을 유지하기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닥치는 대로 없애버린다. 그래서 자연은 어머니도 못된다.

어떤 어머니가 그렇게 무자비 하겠는가..

하여, 자연은 당연히 잘 보존해야하지만 자연이 신이라는 주장이나, 자연에 인격이나 신격을

부여하려는 시도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