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9, 2025

갈릴리에서 만나자

부활을 경험했던 원 제자들과 초기 교회 공동체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부활 이야기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돌아가셨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신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 16:7)"

나는 이 부분이 좋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거치고 나서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가셨다는 점. 그리고 뭔가 그전과는 달리 초월적이고 우월한 사람이 된 것 마냥 행동하신 것이 아니라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행동하셨다는 점이 좋다. 부활하시고 난 후에도 예수님은 생전의 예수님처럼 행동하셨다. 거창하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 초기 교회 공동체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전의 모습처럼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말씀을 전해 주시는 분으로 기억되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간 제자들조차 꾸짖지 않으시고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주시는 분으로 말이다(요 21:9).

만약 예수님이 부활 후 갈릴리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갔다면, 메시아의 능력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면, 아마 내 사역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헌신한 사람이니 예수님을 따라 나도 예루살렘을 추구하고 세상의 높은 지위를 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기에 나도 주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향해야 했고 그 여정을 계속해 지금도 갈릴리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떠났지만 갈릴리에는 배고프고 힘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했다거나 자녀가 잘 됐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없다. 다들 힘들게 살지만 그 안에서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뻐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슬퍼할 일이 있으면 슬퍼하고.. 딱히 거창한 내용이 없다.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서로 같이 있어주며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사역자들도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 와중에도 소속 교단 교회들이 힘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들이 된 와중에도 이렇게 갈릴리 교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크리스천들이 더 많아지면 좋으련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런지...

Sunday, April 20, 2025

무덤을 마주할 용기

남(제)자들과는 달리 여(제)자들은 무덤으로 향했다. 
고통과 상처와 절망이 있는 무덤,
다시 가고 싶지 않고, 
확인하고 싶지 않은 무덤을 찾아갔다.
돌문으로 막아 놓아서
누구의 방문도 거부하게 만들어진
무덤을 찾아갔다.
막혀있는 입구를,
그 돌문을,
어떻게 해서라도 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 마음.
그 의지.
그 행동.
고통과 상처와 절망을 마주할 그 용기와 함께
부활 소식은 전파되기 시작했다.

Wednesday, April 16, 2025

이상한 일

지금도 가끔 생각나고 왜 그랬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일화를 여기에 적어둔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쯤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근처 기도원에 갈건데 같이 가겠냐고 하시기에 따라나섰다. 그 기도원은 아버지가 종종 금식 기도를 하러 가시던 곳이었다. 그 곳의 원장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셨는데 기도와 금식으로 단련된 분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아버지가 그 원장님에게 나에게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그 분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방언이 터져나왔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언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 앞에서 그것도 큰 목소리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또 뭐였단 말인가! 그 당시에 나는 속으로 무척 당황했었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행동을 내 몸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꽤 내성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거나 남의 주목을 받는 일을 하기 싫어했었다. 부흥회도 아니고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원장님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큰 소리로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당혹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내 기도가 사그러질 때까지 기다려 주신 후 그 원장님은 나에게 내 영이 맑다는 말을 해주셨을 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물론 이 현상은 기독교 내에서는 쉽게 성령의 역사라는 말로 설명을 하긴 한다. 나 역시도 교회 내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왜 딱 한번 그 순간에만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내 방언을 통제하지 못했던 순간은 처음 방언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때가 유일했었고, 아무런 이유없이 내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순간도 그 때 한번 뿐이었다.  

Tuesday, April 15, 2025

아이의 지난밤 꿈 얘기

아이가 지난 밤에 꿈을 꿨다며 꿈 얘기를 들려줬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는데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빠가 나타나서 자기를 바다에서 끌어내서 인천공항에 데려다 줬다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엄마가 자기를 픽업해서 큰이모 집에 데려다 줬는데 가보니 외할아버지가 계셨다고..

재밌는 꿈인데 대략 아이의 의식/무의식 속에 우리가 어떤 이미지로 저장되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문제 해결사, 엄마는 일상적인 케어를 해주는 사람, 큰이모는 제일 좋은 이모, 혼자 사시는 외할아버지는 좀 걱정이 되는 분.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국은 제일 놀러가고 싶은 곳, 비행기는 아직까지 혼자 타기 싫어한다는 것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잘 반영되어 있는 꿈이었다. 

꿈에 보이는 나와 현실의 나는 얼마나 같으며 얼마나 다를까? 이 꿈 속의 내 아이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실제로 비행기를 탔다는 것만 다르다. 현실의 내 아이라면 절대로 혼자 비행기를 타지는 않았을테니까... 아내도 꿈 얘기를 가끔 해주는데 현실의 아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내 꿈 속의 나도 현실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고.. 꿈도 결국은 내가 꾸는 것이고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다 내가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테니, 꿈에서의 나라고 현실과 다르겠는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아이가 엄마 아빠를 의지할 만한 사람들로 여기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Tuesday, April 8, 2025

아버지의 신비 체험, 나의 이성적 신앙: 두 가지 믿음의 길

내 아버지는 기독교에서 통상 영적 체험이라 부르는 어떤 신비한 경험을 통해 기독교에 접속한 분이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처럼 성경을 통하지 않고 먼저 아버지를 찾아 오신 분이셨다. 물론 그 이후로 아버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신학 공부를 통해 기독교 전통에 입문하게 되셨지만, 아버지는 나와는 달리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 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이 차이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자랐던 나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태어났던 막내 동생이 가지고 있는 할머니 상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 같다. 나는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지만 내 막내 동생은 할머니에 대한 정보로 할머니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막막함을 늘 느껴왔다. 한참 신학 공부에 빠져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하나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아의 바깥으로 빠져나와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보니 아버지와 하나님의 관계가 다르게 보인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다 해도 나처럼 성경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물론 내 아버지도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일부만 아는 것이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하나님의 한 조각을 진짜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들은 여러 조각을 가지고 있다해도 진짜는 아닌 모조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슬 주머니에 모조 옥구슬은 많은데 진짜 옥구슬은 없는 주머니와 단 한 개의 구슬이 있는 데 진짜 옥구슬이 들어있는 주머니라면 어떤 주머니가 더 가치있겠는가?

나는 지금 객관화된 종교 시스템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신 체험을 객관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 이해도 종교 시스템 안에 들어오면 받아들여지지 못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이해도 당대 종교 시스템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처럼 개인의 신 체험은 시스템과 대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 체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 이후로 그 체험이 당사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고.. 아마도 나는 내 아버지의 경험과 그 이후 아버지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가 있어서 좀더 우호적인 태도로 아버지의 개인적인 신 체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사실 직접적인 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신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나 기도생활을 통해서 유사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 성경의 인물들처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필요없는 분이다. 아버지와 같은 분은 종교 시스템이 있든 없든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런 삶을 사는데 추호의 부족함이나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내 경우도 종교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도 신앙인으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사람이지만 그 토대를 말해보라면 아버지와는 달리 그 토대를 내 스스로 만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토대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게 확실하고 지금까지도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그 토대를 다져오신 분이시지만, 나는 그 토대를 내가 만들어 온 측면이 더 강하다. 물론 나 역시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순간이 딱 두 번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내 토대의 전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토대에 이성의 역할을 더 강하게 부여해서 내가 받은 신앙의 유산과 내가 한 신 체험에 덧붙여 나만의 믿음의 토대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어찌보면 내 믿음은 신념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을 거라 본다. 아버지의 믿음이 정말 순수한 신앙이라면 내 믿음은 신념이 섞인 신앙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와 나 둘 다를 보고 있는 아내는 나를 보고 신기해 한다. 어떻게 나 같이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이 아버지에게서 나올 수 있냐며. 나도 내가 신기하기는 하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독립적인 신앙을 구축해 온 이 과정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있다.  

Thursday, April 3, 2025

팔월이 다가오고 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 아버지는 올해 팔월에 하늘나라에 가길 소망하고 있다. 아니 아버지에게는 소망이라는 말보다는 확신이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아버지의 이러한 확신의 근거는 아버지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아버지는 하나님에게서 그런 응답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믿음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자기 개입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내용이긴 하다. 

아버지는 작년에 좀 쇠약해지셔서 가족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회복하셔서 너무 건강하시다. 주민센터에 가서 팔십이라고 하면 직원이 그 말을 안 믿을 정도로 몸에 활력이 있고 정정하시다. 몸도 정신도 온전하신데 올해 팔월에 가신다고 하시니 우리 가족들은 현재 반신의 상태이다. 아마 다른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아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보다'하고 별 의미 없이 생각할텐데, 아버지의 경우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아버지가 기도의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약 45년간 아버지는 매일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을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해 오셨다. 30대 중반 무렵 있었던 하나님과의 강렬한 만남 이후로 아버지는 지금까지 불가피한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매일 그 시간 만큼의 기도를 쉬지 않으셨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시고 점심과 저녁에도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신다. 나 역시 목사였지만 나는 목사들 중에 내 아버지만큼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그런 목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7 시간 × 365일 × 45년을 계산하면 114,975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나온다. 글래드웰은 일만 시간의 노력을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 하던데, 십만 시간의 기도를 하는 분의 말을 어찌 가벼이 여기겠는가..

나는 아버지의 별세에 관하여 하나님과 아버지 간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건 내 이해의 밖에 있는 부분이니 어리석게 묻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어설프게 추정해 본다면 그 대화에 아마도 '왜?'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하고 있었으니 이제 때가 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하셨을 것이다. 과연 이 예언은 이루어질 것인가... 나로서는 이 예언이 이루어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아버지가 팔월에 하늘로 가신다면 그렇게 원하셨던 천국에 가시니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고 더 사신다면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를 더 뵐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과학으로 아직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재현할 수 없으니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지구 상 곳곳에서 그런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가끔은 내 삶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령이나 영적이라는 말로 종종 그런 현상들을 포착해서 담아내고 있지만 거기에도 아직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니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것이고, 안다면 사후적으로 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결과만 알 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관한 아버지의 예언에도 '모른다'는 겸손한 위치에 서있다. 아직은, 아니다도 아니고 그렇다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존중하고 아버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마음 깊이 존중한다. 예정된 결과가 나온다 해도 아버지에 대해 과장되이 말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다른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나는 아버지를 여전히 존경할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