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9, 2022

부모의 마음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어머니께서 물어 보신다. 좋다고 말씀드렸다. 신경 쓸 일도 없고, 아이도 잘 크고 있고, 일도 하고 있고 너무 편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아이가 게임하는 걸 바라보다 문득 저 아이가 나중에 나이 오십이 되어서 마트에서 밤을 새워 일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안쓰럽게 여겨지지 않을까..

내 어머니도 나를 생각할 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아온 여정을 잘 아시니까 뭐라 말씀을 안하시지만 집에서 아버지랑 두 분이서 계실 때는 가끔 내 걱정을 좀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밖에 나가서 아들이 뭘 하고 사는지 얘기하기도 좀 꺼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세상이 참, 나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데 관계 속에서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참 좋은 분들이다. 내 걱정이 되시겠지만 말이나 태도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신다. 늘 편안하게 대해 주시고 웃어 주신다. 내가 하는 말도 있는 그대로 잘 받아 주신다. 내가 본심과 다르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랑 통화를 할 때 맘이 편하다. 마음이 통하는데 어찌 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Wednesday, June 15, 2022

탁구

우리 시에 탁구 클럽이 하나 있다. 팬데믹 전에는 매주 월요일 밤마다 탁구를 했었는데 팬데믹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월요일 밤에 일을 하게 되기도 해서 근 2년간 탁구를 칠 기회가 없었다. 클럽에 수요일에도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는 했는데, 그러다 얼마 전부터 수요 모임이 시작되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2 년 만에 탁구를 치니 몸이 좀 둔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내 탁구 실력이 아주 좋은 건 아니다. 한번도 레슨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가끔 유튜브를 찾아 보고 따라해 보는 정도이니 그저 평범한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래도 운동 신경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나름 잘 받아주고 잘 넘겨준다. 같이 탁구를 하는 회원들 중에서 중간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이 나라에서 탁구를 하기 전에는 서양 사람들이 탁구를 한다면 얼마나 잘 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잘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확실히 몸에 근육이 많고 힘이 좋으니 공에 회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람들의 폼이 일정하지 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들 특이한 폼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폼으로 탁구를 하는 데 여기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폼으로 공을 친다. 그런데도 공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잘 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볼링장에 가서도 느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대로 운동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도 선수급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폼으로 운동을 하지만 그냥 아마추어 수준으로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폼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즐기는 것 같다. 레슨을 꼭 받을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이상한 폼으로도 수십년간 꾸준히 치기는 하니까 구력이 붙어서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실력이 되는 것 같다. 무협지 식으로 말하면 사파의 고수들이 많다. 

고수들이 많으니 나도 전력을 다해 스매싱을 날릴 수 있고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치고 나면 등짝에 땀이 주르르 흐른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탁구를 다시 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앞으로 나도 열심히 실력을 연마해서 이 동네 한국계 탁구의 고수가 되어 보려 한다. 

Friday, June 3, 2022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의 주권이니 전지전능이니 하는 말들이 내 머릿 속에서 빠져나간지 꽤 되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설명할 때도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거나 하나님이 다 알아하실 것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다 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고통과 슬픔들 앞에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너무 공허하고 허황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하나님이 자연에 부여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인다. 태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이 주권을 발휘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도 물리적인 부분은 당연히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고 치료제가 없으면 죽는 것이다. 총에 맞으면 죽는 것이고 차에 치이면 죽는 것이다. 다 물리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이고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자연 법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뜻이란 의지이고 이것은 당연히 심리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듯이 내 뜻도 있다. 이 뜻이 서로 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이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여한다거나 물리법칙에 의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준다는 식으로 신앙을 조형해 나가는 것은 전혀 기독교 신앙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성육신과 상호 의존성에 있다고 믿는다. 예수의 삶에서 밝히 보여졌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육신/삶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도 인간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던 예수와 그의 삶과 가르침을 받아들였던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가고 있지 않는가. 예수가 없고 제자들이 없다면,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그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지 내 삶에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자리에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 세상에서,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여야 할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