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2, 2014

영어로 즉시 말하지 못하는 이유

오늘 상당히 구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키위들과 갑자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영어로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즉시 영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버벅거리던 와중에 문득 드는 생각이 
내 영어가 아직도 너무 추상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영어 단어와 표현들이 대부분 일상에서 습득된 것이 아니라, 
책이나 사전을 통해, 구체적인 물건과 상황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내 머리 속으로 입력되어졌기 때문에, 
어떠한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영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마치 영어가 내 몸이나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영어는 모두 현실이 아닌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얻은 영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어를 일상의 상황에서 얘기하려면, 
내 머리 속 추상의 세계에서 단어들을 찾아서 일상으로 끌고 내려와야 한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즉각적일 수 없다. 

감각을 통해서 말을 배우지 않으면 말의 토대가 없는 것과 같다. 
내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을 영어와 밀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어를 즉각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영어를 바로바로 말 할 수 있으려면 
추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영단어와 표현들을 
구체적인 사물과 환경에 확고히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렌 켈러가 말을 배우듯, 아이들이 말을 배우듯 말이다.

Thursday, November 6, 2014

내가 할 수 있는 효도

노인들은 갑자기 돌아가신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노인들이 일곱 분인데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다.
헤어질 때는 그 날이 마지막인 줄 몰랐었는데 다음 주에는 뵐 수가 없었다.

지난 번에 돌아가신 분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였다.
그 날도 평상시처럼 방문을 했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뜬금없이 단골 빵집의 빵이 드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서 그 빵집의 위치가 어딘지 듣고,
그 곳까지 찾아가서 빵을 사다 드렸었다.
그 날이 그 할머니와의 마지막이 될 줄 그 때는 짐작도 못했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호주에 사는 할머니 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께서 내가 빵을 사다준 일을 여러번 얘기하며 고마워 하셨다고 했다.

오늘 돌아가신 분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였다.
지난 주에 방문했을 때 할머니가 안계시길래 어디 가셨냐고 할아버지께 여쭸더니,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병원에 실려가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년전에 사고로 다리를 다치셔서 의족을 하고 계신데,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 동안 집안에서 넘어지셨단다.
''아, 글쎄, 거실에서 넘어졌다가, 일어나는데만 2시간이 걸렸지 뭔가''라며
헛웃음 속에 말씀하셨다.
이제 정말 할머니도 안계신데, 어떻게 살아가실까 걱정이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해야 한다.
이제는 나도 될 수 있는대로 한국 방문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나이 또래의 분들이 저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것이,
지금 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이지 싶다.
비행기표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막상 한국에 가서는 부모님 집에서 뒹굴다 온다고만 해도,
그 편이 돈 몇 푼 모은다고 얼굴도 못보며 사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