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19, 2025

폐경전기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들 중의 하나가 폐경(또는 완경)전후의 기간동안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아내의 폐경전기(Perimenopause) 증상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보다 확실히 복잡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폐경전기 증상들은 꽤 다양하고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상들이 다르다고 하는데 아내의 경우는 특이하게 피부에서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에스트로겐 부족으로 피부가 건조해졌는지 가려움증이 심하게 나타났고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피부의 색깔까지 검붉은 색으로 변하곤 했다. 1년 내내 그러는 건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날 땐 꽤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고 요즘도 그런 증상들이 가끔씩 나타나고 있다. 이 외에 흔하게 거론되는 증상인 hot flushes나 mood swings 등도 경험하고 있는데 이런 기간이 수년간 지속된다고 하니 폐경기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이니 어쩔 수 없이 몸이 새로운 조건에 잘 적응해 나갈 때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테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자식이 아플 때도 그렇지만 아내가 아플 때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 할 수 없으니 내색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아내를 잘 돌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이제 곧 23주년 결혼기념일인데 증상이 좀 호전되어서 아내가 즐겁고 편안한 기분으로 결혼 기념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Sunday, March 16, 2025

사츠키 오도

여자 탁구 선수들 중에 처음 봤을 때부터 호쾌함이 돋보였던 선수가 일본의 사츠키 오도였다. 사츠키 오도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저 선수가 복싱도 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가벼운 스텝이나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보고 있자면 복싱과의 연관성이 좀 느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아직까지 오도가 복싱을 배웠다는 기사를 찾지는 못했다. 

내가 알기로 미마 이토가 복싱을 배웠다고 했고 그 영향이 소위 '미마 펀치'라 불리는 미마 이토의 플레이 스타일에 잘 드러나 있다고 보는데, 사츠키 오도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좀 받았다. 물론 사츠키 오도는 미마 이토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숏핌을 쓰는 미마와는 달리 사츠키는 양면에 일반 러버를 붙여서 쓰고, 탁구대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 미마와 달리 사츠키는 중진으로도 잘 빠지고 드라이브도 잘 건다. 아마도 양핸드 공격의 파괴력은 여자 탑 선수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세계 최강 순잉샤를 만나서 3 대 1로 지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정말 결과가 아쉬울 정도로 순잉샤를 밀어부쳤다. 공격의 파괴력면에서는 순잉샤에 뒤지지 않았지만 순잉샤에 비해 실수를 더 많이 했고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던 것 같다. 여자 선수 중에서도 작은 키에 속하는 1.52미터의 신장으로 체격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선수들을 이기는 데, 그것도 남자 선수들 못지 않은 빠른 스텝과 호쾌한 스윙으로 이기니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시원함을 느낀다. 좀 더 기술을 갈고 닦아서 언젠가 꼭 순잉샤를 이겨주길 바란다. 

Wednesday, March 12, 2025

가오청루이 vs 린시동

 2025 충칭 챔피언스 32 강 전에서 현 세계 랭킹 1위 린시동과 대만의 신예 가오청루이가 만났다. 세계 랭킹 24위인 가오청루이는 여태까지 세 번의 경기에서 한 번도 린시동을 이겨보지 못했다. 

가오청루이가 내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작년이나 재작년부터였지 않나 싶다. 대만의 젊은 선수는 린윤주만 알고 있었는데 린윤주보다 더 어린 선수가 국제 무대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선수가 가오청루이였다. 

그 전에도 그런 면이 보이기는 했지만 오늘 경기를 보면서 가오청루이는 린윤주와는 결이 다른 선수임을 확실히 알았다. 가오청루이는 완전한 무사 스타일이었다. 대단히 전투적이고 직선적인 공격을 퍼붓는 선수였다. 린윤주는 빠르고 예리하지만 전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가오청루이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칼을 휘두르는 무사와 같았다. 

대만과 중국의 사이를 생각하면 옛날 우리나라 선수가 한일전에 임할 때 꼭 이기고 만다는 독기를 품었던 것처럼 가오청루이 선수도 중국을 대표하는 린시동 선수를 만날 때 전투력이 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가오청루이가 린시동을 이기지는 못했다. 가오청루이의 가공할 공격력을 린시동이 잘 막아냈고 세계 최강의 백핸드로 가오청루이를 무너뜨렸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1로 린시동이 이겼다. 

린시동은 16강에서 안재현을 만난다. 



안재현 vs 다코 요기치

어제 있었던 2025 충칭 챔피언스 32강전 경기에서 안재현 선수가 세계 랭킹 14위의 다코 요기치와 맞붙었다. 이번이 두 선수의 두 번째 경기였는데 예상과 달리 안재현 선수가 자신보다 세계 랭킹에서 일곱 계단 높은 요기치 선수를 3 대 0으로 이겼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놀랐던 점이 안재현 선수의 백핸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백핸드가 약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올해 들어 백핸드가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 번 아시안 컵에서도 백핸드가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오늘보니 백핸드 공격력이 그때보다 더 좋아져 있었다. 

포핸드 공격이야 원래 잘하는 걸로 유명했지만 백핸드까지 좋아지니 정말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보였다. 백핸드 공격에 자신감이 있었고 중진에서도 과감하게 백핸드 스윙을 했다. 다른 선수도 아닌 유럽에서 백핸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요기치 선수를 상대로 백핸드에서 밀리지 않는 게임을 했을 뿐 아니라 3 대 0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백핸드가 좋아졌는지 비결을 묻고 싶을 정도다.  



Tuesday, March 11, 2025

소 귀에 경 읽기지만...

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를 통해서 물리학과 수학에서도, 즉 물질세계 뿐만 아니라 수리의 세계에서도 닫힌 세계가 아닌 열린 세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적 상태라는 것이 현대 과학의 세계 이해이다. 

이런 과학과 수학에서의 발견에 앞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세운 사람이 화이트헤드이다. 화이트헤드 역시 초기에 '수학원리'를 러셀과 공저할 때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접하면서 우주를 뉴턴처럼 완전한 결정론적 세계로 보지 않고 비결정론적 세계로 보았다. 세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우리가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열린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필연으로 보았다. 우주라는 열린 세계에 질서와 창조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이런 질서와 창조성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완전성 원리에 의하면 어떤 형식 체계도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고 그 체계 내에서는 그 모순을 증명할 수도 없기에 화이트헤드는 그 체계를 벗어나있는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우주는 끝없이 창발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은 우주를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존재이며 동시에 우주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이에 반응하며 함께 변화하는 존재이다. 즉, 신은 우주가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이 될지는 우주의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변화하면서 끝없이 창조적 방향성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신 이해를 받아들인 현대 신학이 과정신학이다. 나는 모든 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신 이해에서 벗어나 피조물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우주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신학적 신 이해가 현대인에게 더 적합한 신 이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신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지만 어쨌든 설명을 해야 한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유효할 것이다. 현대 과학과 수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충분히 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도 과거의 설명틀을 사용하려고 하니 현대 과학 안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이미 신앙이 있는 사람, 신을 만난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마치 내가 내 부모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이미 하나님을 아빠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어렸을 때 다른 집으로 입양돼서 부모님에 대해 모르고 자랐던 동생이 부모님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면 나는 우리 부모님에 대한 설명을 그에게 해줘야 할 것이다. 

전통적 신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런 설명이 이 세대에도 여전히 적합한 설명틀인가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정신학은 무조건 옳은가? 그런 말이 아니다. 다양한 설명 틀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다양한 설명 방식을 써 보자는 말이다. 바르트식으로 설명해도 되고 틸리히식으로 설명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다양한 설명 틀이 있는데 왜 특정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느냐는 말이다. 

ABCD의 설명 방식 중에 A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B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는가? 꼭 C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C라는 설명 방식이 아니면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가? 해석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에 적합한 해석은 있을지언정 완전무결한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Wednesday, March 5, 2025

디그닉스 09C

얼마 전에 한국에서 방문한 친구가 선물로 탁구 러버를 몇 장 가져왔었다. 내가 써보고 싶은 러버들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더니 선물로 사 가지고 온 것이었는데 그 중의 1순위가 디그닉스 09C였다. 작년에 한국 방문시 09C를 처음으로 사서, 역시 한국에서 이 나라 판매가에 비해 훨씬 싼 값에 구매했었던 옵차로프 ALC의 전면에 붙이고 사용했었는데 첫날부터 너무 잘 썼었다. 원래 부스팅 하지 않은 중국식 점착러버를 주로 사용해 왔었기 때문에 약점착인 09C는 나에게 너무 편한 러버였다. 플랫힛이든 탑스핀이든 아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 두 달간 다른 러버를 쓰다가 이번에 다시 친구가 사다준 09C를 포핸드에 붙이고 사용 중인데 역시 나에게 딱 맞는 러버이다. 중국식 점착 러버보다 확실히 잘 나가고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꽤 빠른 속도의 공을 보낼 수 있다. 스핀은 허리케인 3에 살짝 못미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 스핀량이면 충분히 위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백스핀 드라이브도 쉽고 카운터도 쉽게 칠 수 있다.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이 정도 성능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탁구를 치고 있는 선출 쉐인도 지금은 09C를 사용 중인데, 그 친구가 지금까지 썼던 러버들 중에 가장 위력적인 포핸드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공이 빠르면서 회전량도 많으니 받아 넘기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쉐인은 나와 달리 점착 러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친구인데 이 친구도 처음부터 09C를 잘 쳤던 걸 보면 09C는 확실히 점착과 텐션러버의 장점을 잘 섞어놓은 러버가 맞는 것 같다.   

그간 여러가지 약점착 하이브리드 러버들을 써봤었는데 나에게는 아직까지 09C가 최고의 러버이다. 

Tuesday, March 4, 2025

교회와 업데이트

가령 아무리 정교하고 멋지게 만들어진 지도가 있다 해도 그 지도가 실제 지형과 맞지 않는다면 그 지도는 지금 내가 길을 찾아 가는 용도에는 쓸모 없는 것이 된다. 혹시 그 지도가 몇 천년 전 당시의 지형에는 일치하게 만들어졌다해도, 그 지도는 역사적, 지리적 가치 만을 가질 뿐,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길을 걷고 있는 내 길잡이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일상에 필요한 지도는 지리 변화가 있을 때마다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어떤 회사에서 지도를 만들어 팔면서 실제 지형을 정확히 담은 지도라고 광고를 했다고 하자. 그런데 막상 그 지도를 들고 길을 가다보니 새로 만들어진 길은 없고, 없어진 길은 남아있고, 새로 놓인 다리도 없다면 그 지도를 계속 들고 다니겠는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이유로 그런 지도를 찾는 사람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오늘 길을 찾는데 사용할 업데이트 된 지도가 필요하다. 

교회는 업데이트를 계속 해오고 있는가? 지도를 교회가 만든 전체 신앙 시스템, 업데이트를 해석이라 할 때 교회는 세상과 인간 인식의 변화된 현실에 맞는 해석을 지속적으로 해주고 있는가? 몇 백년 전에 그 해석이 멈춘 것은 아닌가? 아니 해석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개별 교회에서 업데이트를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업데이트를 실행하고 싶어도 예전 지도에 익숙해진 성도들의 압력으로 실행을 못하고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제발 업데이트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No matter how precisely and beautifully a map is made, if it does not match the actual terrain, it becomes useless for navigation. Even if the map was perfectly accurate thousands of years ago, it may have historical and geographical value, but it cannot guide someone walking the streets today. A map needed for everyday life must be updated whenever geographical changes occur.

Imagine a company sells maps, claiming they accurately reflect the real landscape. But as you walk with the map in hand, you find that new roads are missing, roads that no longer exist are still marked, and newly built bridges are absent. Would you continue carrying that map? Only those with special reasons would seek out an outdated map. Most people need an updated map to find their way today.

Has the church been keeping its maps updated? If we consider the church’s entire faith system as the map and interpretation as the updates, has the church been continuously providing interpretations that align with the evolving realities of the world and human understanding? Did the interpretation stop centuries ago? Or is interpretation still ongoing, but individual churches are failing to implement the updates? Or perhaps churches want to update but are unable to do so due to pressure from congregations who have grown too accustomed to the old maps?

Whatever the reason, shouldn’t updates be made?

Sunday, March 2, 2025

교회에 가는 이유

목회를 안 하고 있어도 교회에 가고 있다. 왜 교회에 가고 있는가?

나는 예수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의 몸도 소중히 여긴다. 좁게 보면 예수의 몸은 개인의 삶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예수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예수의 몸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된다.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세상에 예수의 몸이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몸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다. 정신처럼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 속에만 있다면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기만 하다면, 몸이 되지 않는다면, 실제 사람들의 삶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그 정신을 몸으로 구체화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교회이다. 물론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적은 교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라면 그곳에는 반드시 소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수의 몸을 구현해 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 소수의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예수의 몸을 구현해 내기 위해 나는 교회에 간다. 내가 예수의 몸이라면 나는 예수라는 머리에 속해 있고 반드시 어떤 노동을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 손이든 발이든 눈이든 뭐든 몸은 그 어떤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몸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내 역할이 무엇이든 최소한 교회에 나가야 교회라는 예수의 몸에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그냥 자리를 채워주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하는 작은 일이라도 그 곳에 가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몸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예수를 경험할 수 없다. 예수의 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몸을 만날 곳이 필요하다. 손을 잡아주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구체적인 몸이 필요하다. 예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도 세상에는 아직도,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있을 것이다. 

몸은 주어지지만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주어진 몸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절제와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에 가는 것도, 예수의 몸을 만들어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몸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하려 할 것이다. 몸 상태가 나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건강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도 마냥 좋기만 한 상태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교회는 예수의 정신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나는 예수의 몸의 일부로서 내 역할을 할 수 있는만큼 해 나가려 한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