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31, 2019

2019년의 마지막 밤

2019년의 마지막 밤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저녁 9시 15분.
아내와 아이는 자고 있다.
평소와 같은 밤이다.
다시 요셉을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와 아내 마리아를 잠자리에 들게 한 후
요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전에 이에 관한 설교를 한적도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통치자 헤롯대왕과 맞선 초보 아빠.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야반도주와 월경(越境)도 불사한 멋진 아빠.
남의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아내와 아이를 건사했던 남자.
요셉의 희생이 먼저 없었다면
예수의 희생도 없었을터..
오늘은 송구영신이 아니라
악한 세상 속으로 던져진 예수님과
그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요셉, 마리아와 그외 이름 모를 조력자들을 묵상하며
보내야 할 날인데,
한국 교회는 이런 저런 복받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교회에서도 소외받는 예수님..
언제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실까..

Friday, December 27, 2019

말씀보다 삶

말씀보다는 삶으로 점점 기울고 있다.
말씀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바른 말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말씀은 반드시 삶이 되어야 한다.
육화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잘 드러난 바대로
육화된 말씀에서만 우리는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피로를 느끼는 이유가
육화되지 않은 말씀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목사의 설교에 아멘으로 응답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에 그들의 삶으로 응답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 역시 주님의 삶에 내 삶으로 응답하고 싶다.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셨던 주님처럼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나 역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떤 간증을 듣고

결국은 성공인가..
힘든 유년 시절, 청년 시절, 작은 교회에서 수 년 간 목회하던 시절을 보내다가 막판에 포기하려할 때 다시 일어선 계기가 아들이 어떤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일이었단 말인가..
신앙을 지키는 일이란 그런 일들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그런 성공이 있어야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인가..
참고 기다리면 그런 성공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성공과 하나님을 굳이 연결짓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해야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을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똑같은 상황에서 아들이 대상을 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욕하고 목회를 그만두었을까..
자신의 목회 스타일을 바꾸어 자비량 목회를 하면서
가장으로서 좀 더 책임감 있게 가족들을 건사할 생각을 하면 안되는 걸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삶을 마무리하셨다.
그것이 성공이었는가..
아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전혀 성공적일 수 없는 삶을 사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이 성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셨다는 것,
그 이유 말고는 없다.
부활은 그 후의 일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했다.
부활은 그러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그러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 부활이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고달픈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란 말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