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4, 2021

복음은 백신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코로나 백신의 예방 확률이 95%쯤 된다고 한다. 누구든 그 백신을 맞기만 하면 95%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코로나 백신처럼, 죄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없을까? 복음이 그런 역할을 할수는 있지만 복음은 백신이나 치료제처럼 작동하지는 않는다. 복음에는 분명히 그런 능력이 있지만 의약품처럼 비인격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신은 어느 누구의 몸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그 몸안에서 면역체계를 형성시킨다. 하지만 복음은 듣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에게 구원을 완성시키지 않는다. 교회를 보면 알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복음이 복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 복음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말이다. 복음에 힘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단지 복음의 작동 방식이 비인격적이지 않을 뿐이다. 복음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의 효과가 나타나서 구원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이라는 매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복음이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발생시킨다는 말이다. 여기서 변인은 믿음이다. 복음도 구원도 이미 셋팅되어 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은 하나님 나라이다. 그 내용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믿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이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은 사람도 많고, 만났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한 사건으로 머물고 만 사람들도 많다. 구원의 능력이 발휘되려면 예수님과의 계속적인 사귐이 필요하다. 

믿음은 빈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빈 손이 아닌 경우도 많다. 여전히 세속적인 욕심을 움켜쥔 채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욕심을 가지고서는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복음의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다.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받은 존재라는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사랑하며 그런 것들을 바란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좇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우습게 비쳐지게 되었다. 교회가 우습게 비쳐지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16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로마서 8:24

Tuesday, February 16, 2021

백기완 선생

중학생 때 대통령 후보 포스터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백기완 선생을 실제로 만나뵙게 되었던 건 2011년이었다. 그때 외국인 노동자 활동가들이 모인 작은 공간에 강사로 오셨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선생님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백발이 성성하셨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헝클어져 있으면서도 바람에  날린 듯 멋진 백발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그 때 우리가 사용하는 활동가라는 명칭이 너무 힘이 없는것 같다고 다른 명칭을 좀 생각해 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월남했던 이야기도 해주셨고, 그 때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우리말들도 많이 가르쳐 주셨다. 물론 통일이나 민중을 중시하지 않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도 화끈하게 하셨었고.. 당시 나이가 아마 여든 쯤 되셨을텐데 참 멋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도 저렇게 변함없는 소신을 가지고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백기완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나서 갑자기 떠올랐던 작은 추억을 여기에 남기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너무 내 삶에만 매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지들은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들 별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기를.. 

Thursday, February 11, 2021

아이의 거짓말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거창한 거짓말은 아니고 산수 문제를 계산기로 풀어놓고 나한테는 암산으로 푼 것처럼 얘기한 것이다. 뭐 이번이 처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한테 발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나이로 12살이니 이제 거짓말도 할 수 있을만큼 큰 건가?

나는 몇 살부터 부모님한테 거짓말을 했었나?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했었던 것 같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머니 지갑에서 동전을 빼냈던 기억도 있고, 백화점에서 작은 인형을 하나 들고 왔다가 어머니에게는 길에 떨어져 있었던 걸 주워왔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소소한 거짓말들을 나도 했었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가 자백을 안하려고 하길래 지금 이야기하면 화내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슬펐다. 아이가 거짓말을 해서 슬펐다기 보다는 저렇게 착한 아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할 걸 생각하니 슬펐다. 세상을 살면서 저런 눈물을 얼마나 더 많이 흘려야 할까.. 그래도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살필줄 알고 혹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염치가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잘 참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하게 타이르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이는 나에게 거짓말을 더 하게 될 것이고, 때에 따라서 나는 아이의 거짓말을 알면서 모른체 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 이 사건을 통해 아이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관계가 버성겨진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겼기를 바란다.

Friday, February 5, 2021

오래된 것들에 대한 연민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 것을 향한 소유욕보다는 오래된 것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가령 이렇게 오래된 화단 경계석도 새로운 경계석으로 바꾸기 보다는 그대로 놔두고 싶다. 


오래된 화단 경계석

색도 바래고 이끼도 끼고.. 이 집이 80년된 집이니 이 경계석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족히 수십년은 되었을 것이다. 있는듯 없는듯 그냥 주변의 잔디나 잡풀들과 하나가 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도 인공의 존재감을 드러내었을 터이다. 살아있는 식물들 속에서 단단한 회색 콘크리트의 위용을 뽐내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젊었을 이 집 주인도 이 경계석을 놓으며 뿌듯해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그 주인도 이 경계석도 함께 늙어갔을 터이고 이제 주인 떠난 이 집에 방치된채 남겨져 있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온지도 벌써 3년이 지났으니 나도 3년간 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지켜본 셈이다. 바꿀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공감 능력이 무생물에게도 닿게 되었는지 저 경계석도 안쓰러워 보이고 차마 아름답게도 보인다. 그냥 가끔 그 위로 올라오는 풀잎이나 깔끔하게 잘라주고 저렇게 놔두려한다. 인공도 오래되면 자연이 되는 것이고 사람도 자연으로 돌아갈 터이니.. 자네나 나나 그렇게 조용히 자연이 되어가세나..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