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3, 2026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돈은 필요하지만 '필요' 그 이상은 아니다. 비누가 필요하고 치약이 필요하듯이 돈도 그냥 사는 데 필요할 뿐이다. 비누가 삶의 목적이 되지 않듯, 돈도 내 삶의 목적이 되지 않고, 치약에 욕심을 내지 않듯 돈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소박한 삶을 살고 있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인지,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그 전후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소박한 삶의 실천과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마음이 서로 되먹이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그 바탕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 정신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세속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처한 자리에서 더 높은 하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삶. 예수에게서 배운 그런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J의 생일인데 J는 해마다 생일이 되면 여기서 한 50km쯤 떨어져 있는 자기 고향에 간다. 그 작은 타운에 크림혼(cream horn)으로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는 것이 자기가 생일마다 하는 연례 행사라고 한다. 그 카페는 나도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긴 한데 J와 같이 가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J의 생일도 축하할 겸 직장 동료 몇 명이랑 함께 그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내 차로 다 함께 가자고 했더니 J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 웃음, 기쁨, 함께 어울림… 이런 것들이 소박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고, 이런 행복이 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Friday, August 21, 2026

찔레나무

우리 집 정원에 파고라(pergola)가 있고 그 위를 덩굴나무가 뒤덮고 있다. 봄이면 작고 하얀 꽃들이 소복히 피는데 향기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답다. 이름을 몰라서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나무가 찔레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찔레나무는 내가 한국에서 자주 봤던 나무인데 왜 몰랐었을까? 찔레나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이유가 가시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 자주 봤던 찔레나무는 가시가 엄청 많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나무는 가시가 거의 없다. 찾아보니 정원용으로 개량된 찔레나무일 거라고 한다. 원산지는 동아시아가 맞는데 유럽을 거치며 개량되면서 가시가 거의 없는 형태가 된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찔레나무의 부드러운 새순 껍질을 벗겨 그 속대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이 많고 싱싱해서 맛좋은 간식거리였다. 그런데 우리 집 찔레나무에서는 그런 식의 새순도 자라나지 않는다. 찔레는 찔레인데 서구화된 찔레였다. 

얼마 전에 우리 매장에 새로 입고된 폴란드산 김치도 그랬다. Kimchi라는 이름이 유리병에 붙어 있었는데, 상온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김치가 냉장이 아니라니, 그럴 수 있을까? 호기심에 사서 먹어보니 배추에 고추가루를 비롯한 기타 재료를 살짝 넣어 만든 자우어크라우트 스타일의 식품이었다. 그러니 맛도 김치 맛이라기보다는 자우어크라우트에 훨씬 가까운 맛이었다. 

찔레도 그렇고 김치도 그렇고 새로운 땅에 오니 새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원래 찔레나, 원래 김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전혀 모르지 않겠는가. 그냥 찔레나무는 이렇구나, 김치는 이런 맛이구나, 그러지 않겠는가. 보드리야르의 분석처럼 그저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시뮬라크르들에 만족하며 살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가? 뒷마당의 찔레나무가 진짜 찔레나무가 아님을 알고도 그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고, 폴란드에서 생산된 이상한 맛의 김치가 진짜 김치 맛이 아님을 알고도 손님들이 그걸 사가는 걸 막을 수 없지 않는가? 그 상품이 원래 김치가 아니라고 말해 줘도 사람들이 그걸 사 가서 맛있다고 먹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원래 찔레나무는 가시가 더 많은 거라 해도 가시 없는 찔레나무가 더 좋으니 어쩌겠는가? 시뮬라크르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진짜를 안다고 해서,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Tuesday, August 11, 2026

죽는다는 것

죽지 않고 증식만 계속하는 세포를 암세포라 한다. 세포에도 수명이 있어서 정상적인 세포는 거의 다 때가 되면 죽는데, 암세포는 죽는 장치가 고장난 세포이다. 그래서 계속 무한 증식하고 무한 확장하면서 주변 장기들이 써야 할 에너지를 빼앗고 그렇게 커진 덩치로 다른 장기들을 압박하는 세포다. 때가 되어 죽으면 아무 문제 없을 세포가 죽지 않으니 암이 된 것이다. 

죽는 것이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그것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다. 세포가 죽어야 몸이 살듯이, 내가 죽어야 세상이 사는 것이다. 오래 살려는 시도, 죽지 않으려는 시도, 죽음을 정복하려는 시도, 결국 암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의 욕심이 끝이 없다. 돈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건강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데 다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면 잘 죽자.  태어나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지만 늙어서 죽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다. 이별이야 당연히 슬픈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모두 마쳤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죽음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어 내 차례가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Tuesday, July 28, 2026

공부하는 아이

요즘 집에서 낯선 광경을 자주 본다.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여태껏 익숙했던 모습은 책상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게임도 물론 하긴 하지만, 공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들은 한국 기준으로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번 학년부터 국가에서 주관하는 전국 단위 시험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부터 보게되는 시험 결과가 앞으로 계속 쌓이면서 대학교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제 학교 성적을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인다.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 왔고 지금도 그렇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사칙연산을 가르쳤을 뿐 나머지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이 나라의 학교 교육 시스템을 따라갔다.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스포츠 한 번, 악기 한 번 이렇게만 방과 후 활동을 했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스포츠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스포츠를 시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30분짜리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졸업생 중 혼자서 수학상을 받았고,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영어, 수학, 과학 우등반에 들어가 있으니 집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치고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이다. 맨날 게임만 하는 모습이 내 기준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학교도 잘 다니고 성적도 좋으니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공부부터 하는 모습을 보니 얘도 이제 더 큰 경쟁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짠한 마음이 든다. 

내 아들도 이제 자기 친구들 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좌절도 맛보고 성취감도 맛보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의 장래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직업에 대해 물어보면 같이 대화는 하는데 내가 대신 선택을 해준다거나 은근히 어떤 직업을 부추기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 아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내 아이의 선택을 지지해 줄 것이고 그 선택을 통해 실패를 배우든 성공을 배우든 그 옆에서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Wednesday, July 15, 2026

교통사고

엊그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왼쪽에서 오고 있는 차를 못 보고 직진하다가 그 차의 오른쪽을 들이받은 것이다. 아내 쪽 도로에 정지선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정지선에 충분히 머물지 않고 출발하다가 사각에 걸린 상대 차를 못 봤던 것 같다. 50km 존이어서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는데, 아내 차의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지고 에어백도 터졌다. 반대편 차는 문짝을 교체해야 할 정도로 찌그러졌다. 경찰과 소방차가 와서 상황을 정리하고 견인차가 두 차를 모두 견인해 갔다. 

아내에게서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사고 장소로 가면서, 동네에서 사고가 난 건데 사고가 나 봐야 얼마나 큰 사고겠냐는 생각을 했는데, 차가 생각보다 많이 부서져 있어서 놀랐다. 아내의 차는 백퍼센트 폐차 처리가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양쪽 운전자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런데 내가 특히 놀라워했던 부분은 상대편 운전자의 반응이었다. 한 70대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였는데, 사고 직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큰 소리 한 번 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아내의 차는 2008년식 차라서 폐차되어도 얼마 못받는 차지만 그 할아버지의 차는 2022년식 SUV 차량이어서 차가 찌그러진 부분에 대해서 화를 낼 법도 한데, 너무 차분하고 인자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안 오는 걸 보니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 분 같아서 내 차로 집에까지 태워다 드렸다. 사고를 낸 아내는 내 옆자리에 앉고, 사고를 당한 할아버지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가는 동안 사고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벼운 이야기와 집에 가서 와인이나 한 잔 마셔야겠다는 말씀만 하셨다. 

어제는 하루 종일 새로 살 중고자동차를 검색하다가 오늘 아침에 가서 차 한 대를 샀다. 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불가능하니 하루라도 빨리 차를 사야 했다. 다행히 괜찮은 매물이 타운에 있어서 생각보다 일찍 차를 살 수 있었다. 여하튼 이번에 뜻하지 않게 목돈이 나가게 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긴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사고여서 감사했고, 상대 운전자가 너무 좋은 분이어서 또 감사했다.

Wednesday, July 8, 2026

야간근무의 대가

오랜만에 응급실에 갔다. 일 년에 한 번씩 GP를 만나는데, 요즘 심장 쪽에 뭉근한 통증이 자주 있다고 하니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겠다며 바로 응급실로 보냈다. 응급 상황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의사가 가라고 하니 가 보긴 했다. 피검사랑 EKG는 금방 했어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3시간 넘게 응급실에 있었다.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응급 상황은 아니어서 더 검사를 해 보려면 GP를 통해 CT를 찍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전에 직장에서의 내 근무 시간을 조정해 보려고 한다. 

벌써 6년째 야간 근무를 해 와서인지 이제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잠도 예전만큼 잘 자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피곤이 점점 누적되어서 심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 주에 점장을 만나서 일찍 시작하고 자정에 끝나는 방식으로 시간 조정을 해 보려고 한다.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대신 하루 더 일을 하면 근무 시간이 지금과 똑같은 24시간이 되니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밤 근무를 좋아한다. 밤에 일할 때면 매장에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좋다. 이어폰으로 오디오북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일 끝나고 집에 갈 때의 텅 빈 거리도 좋고, 새벽빛도 좋다. 몸만 따라 준다면 계속 밤근무를 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게 6년을 일해 오는 동안 내 동반자인 몸이 치러야 했던 대가가 그만큼 컸다면, 이제라도 내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서 몸의 회복을 돕는 게 맞을 것 같다. 

Friday, June 26, 2026

설교보다는 대화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인근 지역에 정전 사태가 났었는데, 그 바람에 내가 일하는 매장에도 전기 공급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이럴 때 쓰려고 설치해 둔 비상발전기가 부분적으로만 작동하는 바람에 매장 내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해서 오늘 일하는 날인데 한 시간만 일하고 왔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전기가 끊기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설교 준비를 마저 하려고 한다. 집에 일찍 오는 바람에 설교 준비하는 데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넉 달간의 설교 사역이 내일모레면 끝이 난다. 내가 힘이 들어서 한 달에 두 번씩만 하겠다고 하고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설교 준비가 힘이 든다. 예전처럼 성경 본문에 파고 들어가서 뭔가를 건져내고 지금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 

머리 쓰는 일을 안 하고 몸 쓰는 일만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책도 읽고 있고 이런저런 글들도 읽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지는 않다. 몸과 정신 중에서 지금은 몸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정신노동을 하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내가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니어서 원래 하던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하게 되면 몸이 힘들어진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버틸 만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버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번 주일이면 마지막 설교니 다행이다. 내가 더 못 버틸 걸 아시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목사님은 그 교회에 10년은 계셨으면 좋겠다.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나도 그 일을 하긴 할 것이다. 단지 기성 교회에서 내가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씀을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누구든 나를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신자든 비신자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응해서 적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거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직장이나 내 삶의 반경에서 내가 만나고 있거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이런 일이 나에겐 더 보람이 있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