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3, 2024

바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떤 마음 상태가 바다를 부르는 걸까? 여느 날처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줬고, 가끔 그렇듯 테이크 어웨이 커피를 사서 차 안에서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또 떠나고 싶은건가... 하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없는데...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바다를 더 자주 찾지 않았겠는가... 바닷가 도시에 살면서도 바다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현재의 삶에 안주하며 살았다는 말일게다. 

예전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이 지안이었다. 드라마의 끝 부분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그 이름의 한자를 묻고는 이름의 뜻대로 평안에 이르렀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질문에 여주인공이 '네'라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지금 평안에 이르러있다. 그런데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는 하나보다. 이렇게 바다를 보러 왔으니 말이다. 



Tuesday, June 11, 2024

기독교 신앙

기독교인인 나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었던 방식 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가졌던 관계 양식을 내면화 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 그 내면화된 신앙을 이웃 사랑의 형식으로 육화/구체화하는 것이다.

성육신은 말씀이 육화되었다는 말이다. 부활도 영만이 아니라 새로운 육체를 강조한다. 정신만이 아니라 신체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수의 정신이 깃들면 새로운 몸/현실이 출현한다는 말이다. 정신이 개조되었는데 몸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예수의 영이 임했는데 육의 변화가 없단 말인가? 예수의 영이 임한다면 그 변화가 비록 미미할지라도 변화가 시작될테고 그 변화는 점진적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다. 즉 예수의 정신을 가진자가 예수의 정신과 상관없이 예수의 정신과 상반되는 것들을 여전히 추구하며 변화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신앙은 내면화에서 머물 수가 없다. 옛 자아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독 신앙인은 예수의 정신이 깃든 새로운 자아의 출현이고 새로운 몸/삶의 출현이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말장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새로운 삶이 보이지 않는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나 죽은 자들만 그득하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 무덤을 박차고 나오는 자들이 없다. 옛 몸이 그리도 좋은가? 옛 생활 방식이 그리도 좋은가? 의심스럽다. 정말 그들은 예수 정신을 따라 살고 싶은 건지...

Sunday, June 2, 2024

전지희의 1점

일하는 날인데 몸이 좀 안좋아서 일찍 왔다. 마침 세계 탁구 챔피언십 경기 중 전지희와 순잉샤의 경기를 생중계 하고 있기에 새벽 1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을 하기로 했다. 

전지희(세계 13위)는 꽤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여자 탁구 세계 1위 순잉샤에게는 지금까지 6전 전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요즘 전지희의 폼이 좋은 편이긴 하나 오늘 경기에서도 전지희가 순잉샤를 이길 확률은 극히 낮을 거라 예상하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역시 전지희가 초반부터 밀렸는데, 더 안타까운 점은 오늘따라 순잉샤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점이었다. 우리 말에 작두를 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오늘 순잉샤가 딱 그런 날이었다. 도무지 막을 수 없을 공도 다 막아내고 도무지 성공할 것 같지 않은 공격도 다 성공시켰다. 정말 전지희가 그 어떤 공격을 해도 뚫을 수가 없는 철옹성과 같았다. 순잉샤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해도 전지희가 이기기 어려운 상대인데 오늘 같은 최상의 컨디션이라면 전지희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 보통의 선수라면 의기 소침하거나 표정이 안좋아지거나 거의 포기하듯 경기를 대충하거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전지희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게임 스코어 2 대 0에 마지막 세번째 경기에서도 5대 0으로 지고 있었는데, 과감한 공격으로 1점을 따낸 뒤에 정말 해맑고 행복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두 손을 번쩍들고 환호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웃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그때까지 순잉샤를 응원하던 수많은 중국 팬들이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환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탁구 경기를 보면서 멋진 기술에 놀란 적은 많아도 이렇게 선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웃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경기에서 형편없이 지고 있는 중에도 한 점을 따낸 것에 기뻐하는 전지희의 모습을 보며 정말 깜짝 놀랐다. 전지희 선수는 올해 만 31세로  나이가 좀 많은 편에 속하는 선수이다. 반면 순잉샤는 23세의 젊은 선수이다. 나이와 경력과 수많은 관중들과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위치를 다 떠나서, 자기가 엄청난 점수차로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무겁고 비관적인 상황을, 단 1 점을 따낸 후 기뻐하며 믿기지 않는 긍정의 힘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정말 대단한, 모두의 예상을 깨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평생 탁구를 쳐왔고, 셀 수 없는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가 그 1 점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과 순수함을 가지게 되었을까? 

전지희의 웃음에 홀려 이 새벽에 이 글을 남긴다. WTT Champions Chongqing 2024 Day3 에 열린 전지희와 순잉샤의 16강 매치의 최종 결과는 11-7, 11-1, 11-2 로 전지희가 순잉샤에게 3-0으로 완패했다. 그러나 나는 세번째 게임에서 1 점을 따내고 환호하며 기뻐하던 전지희의 웃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