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5, 2020

쉬는 크리스마스

 또 다시 크리스마스가 왔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원래 같으면 오늘 밤에 일을 해야하는데 크리스마스라고 마트가 문을 닫는다. 예수님 덕에 오늘 일을 쉬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덕을 본다ㅎㅎ. 

요근래 몇번 찾아갔던 앵글리칸 교회는 지난 주일을 끝으로 2월 초까지 쉰다고 한다. 쉬는 동안 예배는 이 도시에 있는 다른 앵글리칸 교회들이 돌아가며 연합예배를 한다. 12월과 1월에는 각 교단 교회들끼리 아니면 한 동네에 있는 다른 교단 교회들끼리도 연합예배를 자주 한다. 성도들 휴가철이기도 하고 목사들과 교회직원들도 휴가를 많이 가기 때문에 몇몇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한국 교회같으면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여기서는 그렇게들 많이하고 좋아 보인다. 

나는 오늘 크리스마스 예배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드릴 예정이다. 시내에 있는 다른 앵글리칸 교회를 찾아가도 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고, 집에서 예배드리고 다른 가정과 점심 식사를 할 계획이다. 한인교회 점심 식사에 오라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성도들이 새로 오신 목사님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나는 빠지는게 좋을 것 같다. 

예수님 덕에 오늘 푹 쉬고 내일 밤에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문맥을 떠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딱 맞는 말씀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덕에 쉬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ㅎㅎ

Wednesday, December 9, 2020

지천명

이제까지의 내 삶에 대해 크게 후회될 만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한번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해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과 다르게 살수는 없을 것 같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왔다. 그 안에서 소소한 성취도 이루었고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들도 다 해본 것 같다. 공부도 할만큼 했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갖게 되었고, 직장 생활, 유학, 목회, 활동가 생활까지 다해봤으니 이제부터의 삶은 그저 덤으로 주어진 삶처럼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몸과 마음이 너무도 편안하다. 마트에서 밤에 일하고 있지만 몸도 마음도 편하다. 어머니에게 지금 참 편하다고 했더니 좋아하신다. 성인이된 이후 처음으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랬을만하다. 열심히 살아왔고 고민하며 살아왔다. 공자의 말처럼 오십이 가까운 즈음에 하늘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된 듯하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껏 살아온대로 바람처럼 살다 떠나고 싶다. 아무런 흔적 없이 가볍고 자유롭게 살다가 주님 품으로 가고 싶다. 

Wednesday, November 4, 2020

어떻게 살 것인가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
욕심 부리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너무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서 그냥 살면 안될까?
마트에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콜라 한 병을 마시면서 갑자기 든 생각을 끄적여 본다.
이것도 사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이런 생각들에서 자유롭기만 해도 삶이 좀 편안해진다.
그냥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도 된다.
거창한 꿈만이 가치있는 건 아니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강가를 걷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돌보며 살아도 된다. 
거기에도 충분한 즐거움이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내 삶을 에덴 동산으로 여기고 하나님과 거닐면 된다. 그렇게 그냥 살아도 족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요즘 내 삶이 편안한가 보다.
시야가 좁아진건가..
내 삶만 보면 편할 수 있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최저임금 일자리를 구하려해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비정상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에 불의도 여전하다.
내 삶에만 만족하며 살아서는 안된다. 늘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Wednesday, October 28, 2020

임시목회를 마쳤다

두 달 간의 임시 목회를 마쳤다.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고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야간조로 일하기 시작한 후에 임시 목사직을 맡게 되면서 주일 아침에 세시간만 자고 예배를 인도해야 했었다. 금, 토, 월 삼일 밤을 일하는데 토요일 밤에 일을 시작하면 주일 새벽 5시에 일이 끝난다. 그러면 집에 와서 씻고 자는데 그래도 세 시간밖에 못자니 아침에 좀 피곤한 채로 교회에 가야했다.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성도들이 보기에 좀 피곤해 보였을 거다. 

이번에 새로 온 목사님은 그전 목사님보다 더 젊은 삼십대 중반의 목사님이다. 이 목사님도 처음으로 담임목회를 맡아서 하게 되는데, 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5세라서 이민 사회를 잘 알거라 믿는다.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어찌 될런지.. 그전 목사님이 1년도 못되어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나는 뭘 해야하나? 프로그래밍은 두 달간 손을 놓고 있었더니 다시 또 시작하기가 망설여진다. 5년 전에도 공부하다가 이 교회로 오는 바람에 공부를 멈췄었는데, 이번에도 또 이 교회에서 임시 목회를 하는 바람에 공부를 멈추게 되었다. 나하고 프로그래밍은 뭔가 안맞는건가.. 안맞다기 보다는 나에게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없는 거겠지.. 거기에 이제 마트에서 일을 하며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그나마 있었던 불씨마저 사라지려 하고 있다. 어차피 프로그래밍도 밥벌이로 하려고 했으니 그냥 이대로 마트에서 일하는 걸 밥벌이 수단으로 삼고 자비량 사역을 진행할까?

자비량 사역을 한다면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딱히 마음이 끌리는 대상이 생기지 않는다. 장애인, 빈곤층, 재소자, 싱글맘, 노인, 난민... 등등이 있는데 예전에 외국인 노동자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처럼 어떤 특정 대상에 마음이 끌리지는 않고 있다. 그나마 난민들에게 마음이 좀 쓰이기는 하는데, 이 지역에는 아직 난민이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난민들이 들어올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할까...

Wednesday, September 23, 2020

설교는 설교일 뿐?

임시목사를 하면서 다시 설교를 하고 있다. 성도들은 내 설교에 반가워하고 있지만 역시나 일 년 전과 똑같은 질문이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설교는 그저 형식일뿐 그 내용이 성도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내지는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성도들은 단지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 그 내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서 주님의 제자로 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이웃 사랑은 커녕 형제 자매 사랑도 못하는 성도들, 그것도 오랜 세월을 거쳐서 반복적으로 그런 행동을 보이는 성도들을 보면 설교를 통해 전해지는 성경 말씀을 듣는 행위가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다 옳고 상대방은 다 틀렸고, 만나서 화해할 생각도 안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 비판하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 하셨고 나 역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설교해왔는데... 정말 설교자에게 설교는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열 살이라니

아이가 열 살이 되니 벌써 우리 품을 자주 떠난다. 친한 친구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여기서는 슬립오버라고 부르는 일을 종종 한다. 아이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 정말 우리에게는 팔년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팔 년 후면 아이는 우리 품을 떠나 대학을 가고 독립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나간 십 년이 이렇게 빨랐던 것을 생각하면 팔 년 후는 얼마나 더 빠르게 오겠는가. 그동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게 될 아이와 지금보다 더 재밌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순간이 소중하고 매순간이 아쉽다. 요즘 밤에 일하느라 피곤하긴 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와 즐겁게 지내보자.

Tuesday, August 11, 2020

십 년의 기도

아버지의 십 년 기도가 이번 주에 끝난다. 2010년 8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매일 밤 12시부터 새벽 6 시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렸던 기도의 마라톤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만이 할 수 있었던 기도가 아닐까 한다. 기도의 내용은 개인적인 간구가 아닌 세상의 구원을 위한 탄원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회가 지탄을 받고 성도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전세계적 추세에 홀로 맞서는 기도였다. 평생 기도로 단련되어오셨던 아버지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의 제사였다. 십 년동안 기도에 방해가 되는 여행이나 행사 참여등 사적인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도를 해오셨다. 정말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십 년의 기도를 마치게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다시 레벨 2

 밤 9시 15분에 갑자기 아던 총리가 닥터 블룸필드하고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뭔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오클랜드에서 지역 확진자가 발생한 거였다. 오클랜드는 내일부터 3일간 레벨 3고 나머지 지역은 레벨 2로 들어간다. 레벨 2 상황에서는 일상에 큰 변화가 없지만 레벨 3가 되면 대부분 집에 있어야 한다. 레벨 3 상황이 오클랜드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이미 오클랜드내에서 지역 감염이 시작되었다면 지방으로 퍼지는 것도 시간 문제일듯 싶다. 과연 내가 사는 이 도시에까지 바이러스가 내려올 것인지... 

면접을 봤었던 대형마트에는 최종 합격했고 이제 첫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마트는 필수 업소라 코비드 경계 레벨 4에도 문을 연다.  레벨 4에는 다른 모든 소매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마트에 사람들이 엄청 몰린다. 당연히 입고 되는 물건의 양도 늘어날 것이고 노동량도 증가할 것이다. 곧 일을 시작하게 될텐데 레벨 4로 올라가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고 있다.  

Thursday, August 6, 2020

임시목사

후임으로 왔던 목사님이 일년도 안되어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나에게 다시 담임목사를 맡아줄 수 있겠냐고 했고... 나는 그냥 다음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임시로 주일 예배 인도만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다음 목사님이 빨리 구해져서 임시 목사를 그리 오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문제는 요즘 뉴질랜드 정부가 본국으로 들어오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는 건데.. 그래서 현재 상태로는 그 목사님이 언제쯤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처음으로 사례비를 받지 않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목회는 아니지만 나름 자비량 목회의 정신을 조금/ 잠깐이나마 실천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Friday, July 31, 2020

밤샘 일자리

슈퍼마켓 체인의 야간 작업조에 지원을 했고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는 나잇필(Nightfill)이라고 부르는 일인데, 밤새 매장에 상품을 채우는 일이다.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8시간 동안 일한다. 아직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지만 별 이변이 없는 한 그 일을 하게 될 것같다. 매일 하는 일은 아니고 금, 토, 월 삼일만 한다. 새벽 5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초반에는 조금 졸리기는 하겠지만..

밤샘 작업을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는 젊었을 때 2 교대나 3 교대 근무를 1년 이상 해 봤기 때문이다. 밤새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밤 근무를 즐겼었다. 아마도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내 성격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지만, 몸만 버텨준다면 밤새 조용히 물건만 정리하는 일이 나에게는 스트레스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일자리이기는 하지만 주당 24시간 일을 하면 내 밥벌이는 하게 된다. 고마운 아내 덕에 이정도 일만 해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웹개발 공부는 얼마간 계속 해볼 생각이다. 이 공부도 최소한의 밥벌이를 위해 시작했던 공부였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찾아보면 온라인으로 어느 정도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나중에 몸이 힘들어지면 집에서 프리랜서로 용돈벌이라도 해보려 한다. 

일자리를 얻게 되면 이제 슬슬 주중에 할 수 있는 사역거리를 찾아볼 계획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곳이 나를 필요로 할까.. 여태껏 그래왔듯 부르심에 귀기울이며 움직여 볼 참이다.     

Sunday, July 19, 2020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다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퀘이커 모임에 참석을 했다.
함석헌을 통해 처음 알게 되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던 퀘이커 모임을 난생 처음 찾아가 본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 퀘이커 모임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년 전이었지만 그 때는 내가 목회를 하고 있던 때라 그들의 주일 모임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담임 목사 자리를 사임하고서는 집 근처의 키위교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설교를 들을 때마다 답답함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문득 퀘이커 모임이 생각나서 오늘 드디어 용기를 내어 그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방문을 했다고 하니 어떤 분이 간략하게 예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예배실로 들어가니 약 20개의 의자가 원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는대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예배가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의 인도도 없었다. 그냥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침묵 예배가 시작되었다. 배경 음악도 없었다. 다들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편안히 침묵의 시간을 한 시간 동안 가졌다. 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몇 시간씩 기도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말에 지쳐서 찾아간 곳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의 침묵이 너무도 편안하고 좋았다. 
정확히 한 시간이 되자 모든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로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예배가 끝났다. 한 시간의 침묵 예배 동안 단 두 사람만이 각자 내면의 소리에 이끌려 2, 3분 정도 짧은 스피치를 했을 뿐이었다. 
나는 본래 내면의 빛이나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들의 침묵 예배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예배 후에 몇 사람과 나눴던 대화를 통해 누구의 신앙도 판단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서로의 의견을 들어준다는 그들의 자세가 좋았다. 
그들이 나에게 준 팜플렛에는 이러한 문구들이 써있었다.
"퀘이커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는가? 
모든 사람 안에 신성함이 있음을, 고요한 중에 들음을, 교리도 없고 위계도 없음을, 성실과 평등과 평화와 공동체를, 지구를 돌봄을, 전통은 안내자이지 규칙이 아님을..."    
예배 후에 있었던 다과 시간에 이 도시에 있는 퀘이커 주거 공동체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20에이커의 땅에 열여섯 채의 집이 있다고 했다. 이번 주에 시간을 내어서 한번 방문을 해볼 참이다. 
내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퀘이커 모임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Thursday, July 16, 2020

친교/사귐의 중요성

흔히 교회의 다섯 가지 사역을 예배, 교육, 친교, 구제, 선교(전도)라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 중요하지 않은 요소는 하나도 없지만 시대에 따라서 이 중 한 가지 측면이 좀 더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사람들이 교회당으로 잘 모이려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 친교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차치하고 내 경우만을 살펴봐도, 나 역시 코비드로 인한 락다운 기간 동안 거의 두 달 가량 교회에 나가지 않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예배를 드렸을뿐 온라인 예배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선교와 구제를 위한 헌금은 이미 온라인 뱅킹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고 있던 중이었고, 교육은 따로 책을 읽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친교만큼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예배는 혼자서나 둘이서도 드릴 수 있고, 선교와 구제도 선교단체나 기독교 사회봉사 단체를 통해 할 수 있고, 교육도 책이나 유튜브나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서 얼마든 받을 수 있지만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건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자들의 마음 속에 형제 자매들이 보고 싶어서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면 누가 굳이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겠는가..

교회의 친교성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일단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성도들 간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주고 매사에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예배 참여나 헌금이나 성경 공부등을 강요하기 보다는 먼저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여줬으면 좋겠고, 잘 나고 못남을 따지기 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고, 형제 자매의 위로와 격려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아지게 할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서 친교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이미지를 다시 부각시킬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것이 온라인화되어 가는 이 세태 속에서도,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오프라인 교회 공동체의 기적이 계속될 수 있지 않겠는가..

Tuesday, May 26, 2020

내 신앙의 토대

거역할 수 없이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를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 바닷가 절벽에서 자살하려했던 아버지를 살려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셨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고 그 음성에 응답하셨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를 40일 금식기도로 이끄셨고, 금식기도 동안 환상과 신비를 통해 아버지를 만나주셨고, 30년간 목사로 교회를 섬기게 하셨고, 지금까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신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던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준 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하나님을 성경에서 다시 만났고, 그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자이셨을 뿐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삶을 목도하며 살아왔다.
아버지를 통해 알게된 하나님은
복음서의 예수님이 믿었던 하나님과 같았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가끔 기적을 일으키기는 하셨지만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예수님을 돌이키지도 않으셨고
고통과 고난을 덜어주지도 않으셨고
그 처절한 죽음도 막아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하셨던 일이라곤 그 모든 여정 중에 예수님과 함께 해 주셨던 것 뿐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기도에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했던 것이 예수님의 신앙이었다.

아버지의 신앙도 그와 비슷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목회 초기에 여러가지 기적이라 불릴만한 일들을 일으켜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가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막지 않으셨고
그러한 삶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고난과 어려움들을 없애주지 않으셨고
교회의 양적 부흥이라는, 많은 목사들이 부러워하는 복도 주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하시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 아버지에게 예수님과 같은 마지막이 주어졌다해도
아버지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복은 하나도 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끝까지 떠나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신앙이었다. 

나는 그런 하나님과 그런 하나님을 신앙하는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 아버지라 불렀던 그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방식은 다 다르다. 구약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바울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그 후의 많은 성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보여주셨던 그 방식이 
가장 옳은 방식이었을 것이고,
내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앙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나도 내 아이에게 내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내 아이도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믿던 하나님임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Thursday, May 7, 2020

늙은 고양이와 만나다

쓰레기 수거하는 날 아침,
집 앞에 쓰레기를 내어놓고 들어오는 길에
우리집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를 피해 반대편으로 움직이는데 그 모양새가 재빠르지 않다.
뒤로 좀더 붙어서 살펴보니 다리도 좀 저는 것 같고 털도 매끈하지 않은 것이
꽤 고단한 삶을 살아온 고양이 같았다.
불편한 걸음으로 움직이다 잠시 망설이더니
우리 집 뒤편에 장작을 보관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장작더미 옆으로 나무 펜스가 쳐져있지만
고양이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그 펜스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울타리 아래서 웅크리며 도약하는 자세는 취했지만
막상 앞발을 들고 뒷다리에 힘이 실리자 맥없이 기우뚱할 뿐
위로 사뿐히 뛰어 오르지를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이빨을 내보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지만
그 소리조차 목구멍에 꽉막혀 잘빠지지 않는 날숨 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더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녀석의 행동을 한동안 무겁게 지켜보았다.
그 고양이는 여러번 점프를 시도했다.
점프를 하기 전에 하는 준비동작까지는 여느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 이후에는 위로 뛰어 오르지를 못하고 옆으로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길 몇번 하다 옆에 쌓여있는 장작더미를 보더니 몸을 돌려
튀어나온 장작가지를 발판 삼아 한발 한발 더듬거리며 올라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글픈 생각이 들어
먹을 거라도 좀 갖다줄까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보니
그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낙엽 실린 바람이 차가운 데
어디 몸을 뉘일 곳은 있을런지..

Tuesday, March 24, 2020

락다운 하루 전

어제 총리가 48시간 이후에 모든 시민들이 집에서 4주간의 자가 격리를 시행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틀의 시간을 준 것은 전국적인 셧다운을 앞두고 준비할 시간을 준 것이다. 총 4단계의 위기대응 단계 중 현재는 3단계이고 내일부터 4단계로 접어든다. 시민들이 오늘부터 사람들간의 접촉을 줄이고 비즈니스도 문을 닫으면 좋을텐데, 좀전에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면서 보니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들도 적지 않았다.
총리의 호소는 오늘부터라도 공공의 안녕에 필수적인 비즈니스외에는 가게를 닫으라는 말이었는데 강제로 문을 닫아야하는 내일 자정까지는 영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 이틀동안 바이러스는 또 퍼져나갈 것이다. 음식점이나 옷가게나 카페들은 지금부터 문을 닫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인데,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 곳들이 꽤 있었다.
자발적으로 문을 닫은 가게들과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들 장사를 안하면 손해를 볼 것이다.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정부의 호소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끝까지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내가 문을 닫으라고 권면해줬던 성도들도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문을 닫는 게 좋겠다고 한 이유는 그곳에서 일하는 스탭들의 건강과 고객들의 건강을 우려해서였다. 이미 문을 닫은 카페나 다른 가게들은 다들 그런 의미에서 손해를 무릅쓰고 미리 문을 닫았을 것이다. 오늘 장사를 하고 있는 성도들도 조금만 더 공공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문을 닫았을텐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힘도 없었던 것일까..
공공선을 위해 미리 문을 닫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 것일까..
도대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인걸까..
그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뒤를 따를 것을 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여전히 이기적인 크리스천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괴롭다.

Tuesday, March 17, 2020

온라인 성찬

성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중에는 성찬식때문에라도 예배는 교회당에 모여서 드려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앞으로는 성찬병과 포도주도 택배로 배달해서 성찬식을 진행하는 교회가 생길 것이다.
이미 온라인 설교를 듣는 일에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온라인 성찬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겠는가..
공간의 제약은 이미 무너졌다.
젊은이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온라인 게임에 열광하고 있고 우리가 축구 월드컵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듯이 온라인 게임을 시청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돈을 벌어서 온라인 아이템을 사고
온라인에서 돈을 벌어서 오프라인에서 상품을 사기도 한다.
오프라인 세계와 온라인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온라인은 이제 인간 삶의 일부이다.
교회도 이제는 오프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분이신데,
왜 이렇게 교회당만을 고집하는가..
오프라인으로 모일 수 없을 때는 온라인으로 모여도 되지 않겠는가.

Monday, February 24, 2020

주일 예배 취소

신종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강해지면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취소했다고 한다.
주일 예배를 취소하는데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별다른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다행히 성도들도 기도만 하면 만사형통에, 하나님이 병도 치료해 주고, 어려움에서 구해 주실 것이라는 내용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면 주일 예배를 취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도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고 하나님은 그걸 막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훨씬 강한 것 같고 많은 성도들이 그 믿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잘못으로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맞다고 설교하는 어리석은 목사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우리만 특별히 보호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특별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도 똑같이 병에 걸리고, 똑같이 망하고, 똑같이 죽게 되겠지만 그런 중에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의 길이다.

Tuesday, February 4, 2020

2020년

2020년.
1월에는 한국에서 온 친구와 10일 가량 함께 지내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세계는 중국발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잔뜩 움추러든 모양새다.
국가간 여행이나 수출, 수입에도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한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정말 지구가 작아진 느낌이다.

방학이 끝나서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아내도 휴가 이후에 일터에 복귀하고 나도 다시 아이티 공부를 시작했다. 마냥 공부만 할 수는 없고 일자리도 구해야 하는데, 저녁 일자리가 별로 없다.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겪었던 문제를 다시 겪고 있는 중이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야 한다. 문제는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있어도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청소를 다시하고 싶지는 않아서 리테일쪽을 알아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리가 나지 않는다. 이곳이 소도시라 빈자리가 생기면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서로 소개를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나한테도 한번쯤 기회가 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교회는 키위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 교회 목사가 나와 친구이고 교회도 우리 동네에 있기 때문에 다니고 있는데, 성경 해석에 대한 관점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조금 답답하기는 하다. 그래도 동네 교회니까 참고 다녀보려고 한다.

몇주 전에는 다른 도시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님이 자기 휴가 중에 설교를 좀 해달라고 해서 몇 달만에 설교를 했었다. 설교 없는 예배를 꿈꾸지만 대개의 교회에서 설교 없는 예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아무튼 나는 내 길을 갈 것이지만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으로 그 길을 갈 생각은 없다. 함께 사는 세상이고 함께 믿는 하나님이니 평화를 추구하며 될 수 있는대로 포용하며 나아갈 것이다.

올 한 해도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