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8, 2015

파란 트럭

처음 이 집으로 이사왔을때 만났던 이웃집 아이 엄마가 있었다.
바로 옆집은 아니고 몇집 건너 사는 분이었는데, 첫인상이 좋았었다.
처음보는 우리에게 전화번호도 주고 아이들도 같이 놀게하자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 후로도 가끔 오가며 안부도 묻고 그렇게 좋은 이웃으로 지냈다.
둘째를 가져서 배가 불러오는 모습까지 보았고 곧 아이를 낳을 거라 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이웃에게서 그 아이 엄마가 둘째를 낳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살았지만 엄마는 죽었단다.
남편에게 세살짜리 딸 그리고 갓난아기를 남기고 말이다...
아이 아빠에게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째 그 친구의 파란 트럭이 길가에 그대로 서있다...

Saturday, April 18, 2015

갑작스런 부고

A는 내가 돌봐드리는 분들 중 가장 젊은 남자였다.
55년생이었으니 올해 만 60세가 될 참이었다.
한때 유능한 프로그래머였던 A는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볼까 말까 망설이던 나에게 적극적으로 공부하기를 권유하곤 했었다.
A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는데, 젊었을 때 이미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후로 서서히 증세가 악화되어 점점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졌고 말도 어눌해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혼자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는 정도였고,
같이 사는 친구와 함께 여행도 다닐 정도의 움직임은 가능한 분이었다.
어제 아침에 만났을 때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월요일에 보자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런데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되었다.
좀 전에 A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1년간 매주 세 번씩 보던 분을 다음 주부터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주엔 호주에 사는 A의 누나가 와서 집안 청소도 해주고 새로 살 소파도 알아봐 주고 했었는데, 그 누나도 그 방문이 마지막 방문이 되리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갑작스런 이별이 반복되니 죽음이 정말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목숨, 숨이 붙어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돕고, 더 많이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곧 사라지고 말 목숨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말이다.

Thursday, April 9, 2015

부활

누에는 나비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누에가 나비가 되지는 않는다.
고치를 만든 누에만이 나비가 된다.
누에는 고치 속으로 들어가 그 어둠 속에서 누에의 삶을 끝내야 한다.
누에라는 삶의 형태와 단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비라는 변화, 나비라는 새생명, 나비라는 부활은 그때서야 가능해지는 법이다.


소명

소명을 시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벌이와 상관없이 그 일을 하고 싶은가이다. 돈을 못벌어도 그 일을 하는 것이 좋다면,  그 일이 소명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그 일로 부르신 것이다. 소명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한다. 가령 연극 배우가 소명인 사람은 연극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일로 생계를 해결한다. 물론 소명으로 생계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목회가 소명이다. 지금은 목회사역을 거의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그 쪽에 가있다. 목회를 통해 생계가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할 상황에서 나는 목회를 계속하기 위해 돈을 벌 수 밖에 없다. 생계 유지라는 가장으로서의 의무 역시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교회나 가서 목회를 하고 싶지는 않다. 목회는 내 소명이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생계 해결을 위해 신앙 양심을 팔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십자가를 내려 놓고 있는 느낌이다. 그 길을 여전히 걷고는 있지만 십자가를 직접 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동안 잠시 십자가의 무게에서 벗어나 있었던 예수님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하지는 않다. 신앙의 동지들이 내 십자가까지 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내 십자가를 돌려받아야 한다.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몸은 편하다해도 마음까지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Wednesday, April 1, 2015

컴퓨터 공부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을 공부하다 보니 이제까지 공부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는 주로 신학과 인문학이었고 거기에 사회과학을 어느 정도 거쳐 본 정도였다. 지금하고 있는 컴퓨터 공부는 인문학과 상당히 다른데,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아마도 '해석'의 유무일 것이다. 컴퓨터는 해석이 발 붙일 틈이 없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서도 안된다. 그냥 논리대로 절차대로 가장 단순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할까, 저런 방식으로 할까'는 고민해도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인문학 공부할때 단어 하나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어보던 그런 시간은 필요치 않다. 깊이가 사라지고 평평함만 남았다고 할까.. 영혼이 사라지고 몸만 남았다고 할까..  왠지 삶이 메마르고 건조해지는 느낌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