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6

교회 졸업제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면 어떨까.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완전히 교회에 발을 끊으라는 말은 아니다. 교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단지 교회 출석이나 헌금을 비롯한 모든 종교적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라는 의미이다. 주일에 교회에 안가도 되고, 새벽기도 안해도 되고, 십일조 안해도 되고, 교회 모임에 참석 안해도 되는 자유말이다.

만약 이 모든 종교 행위들을 계속 하고 싶다면 순전히 자발성에 의해서 하면 된다. 교회를 졸업한 사람에게 교회는 어떤 종교 행위도 강요하면 안된다. 졸업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종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할 수는 있어도, 교회는 그들을 교회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기울여서는 안된다. 교회는 늘 새로운 성도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교육시키는 데에만 힘을 쏟아야 한다.

졸업한 교인들은 교회가 그런 교육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교회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교회 이제 그만 다녀도 괜찮을만한 사람들이 교회에 계속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다. 교회 그만 다니고 가끔만 다녀도 괜찮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Friday, December 30, 2016

2017년 28시간 전

어느덧 2016년도 스물 여덟시간만 남았다.
앞으로 남은 스물 여덟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설교 준비와 방학 중인 아이를 돌보는 일에 쓰게 될 것 같다.
송구영신은..
성탄절 기간인데 무슨 송구영신.
숫자 하나 6에서 7로 바뀌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성탄절 기간에 송구영신인가..
1월 6일 주현절 전까지는 오직 성육신에 집중할 것이다.
그 후로는 2 주간의 휴가다.
한국에서 놀러오는 친구와 이 땅의 이곳 저곳을 돌아볼 계획이다.
우리 스타일 상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질색이니
가족과 함께 천천히 느릿느릿 최대한 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2017년에도 역시 특별한 계획은 없다.
계획없이 살아온지 벌써 몇년은 된 것 같다.
계획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그저 몸으로 살련다.
주님이 머리시니 생각은 주님께 맡기고 나는 그저 발로, 손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유대 땅, 이방 땅, 사마리아 땅 가리지 않고 다니셨던 주님의 발로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와 창녀까지도 안아주셨던 주님의 손으로
그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Saturday, December 17, 2016

함께 계시는 하나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예수님의 삶을 보라.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계셨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예수를 이름있는 도시에서 태어나게 해주지도 않으셨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해주지도 않으셨고,
부자로 만들어 주지도 않으셨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게 해주지도 않으셨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목수/석공일을 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건사하며 살던 예수가
자신의 가족만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이며,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나병환자들, 세리들, 창녀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 주셨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예수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다다랐을 때,
그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그 앞에서 도망가지 않을 수 있도록,
이웃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희생할 수 있도록,
그렇게 예수님의 인격을 도야해 주셨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삶을 보고도,
예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을 보고도,
램프의 요정 같은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면,
도대체 예수를 믿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며,
굳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Friday, December 16, 2016

성육신

성육신 사건을 신화적으로 본다해도
그 사건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대단하다.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순전한 영이신 하나님이 육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인 척' 사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사셨다.
신이면서 인간인 척 한것이 아니라, 반신반인으로 산 것이 아니라,
백퍼센트 사람으로 사셨다.
심지어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 몸에서 벗어나지 않으셨다.
지금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 그 몸으로 하나님 옆에 계시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보자면
펭귄을 사랑하는 펭귄 보호운동가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펭귄을 구하기 위해
잠깐 동안 펭귄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가능하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임무를 마친 후에도 펭귄의 몸으로 계속 있어야 한다면...?

구원을 위해 성육신을 감행할 정도의 사랑.
나에게는 그러한 사랑이 있는가.
최소한 그런 사랑을 추구하고 있기나 한건가..

성육신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도
그리 살지 못하고 있다면
아,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인생인가...

Wednesday, December 7, 2016

마태복음 11:6

하나님 나라 사역에 모든 것을 바친 세례 요한.
그가 선포했던 임박한 심판.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다.'
이제 곧 모든 악행과 불의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하나님의 영이 예수에게 임하는것을 보았다.
그는 확신했다. 드디어 그 분이 오셨다.
세례 요한은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었다.
헤롯왕의 부도덕을 폭로하고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그는 의아해했다.
그가 메시아로 확신했던 예수가 심판의 불을 내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병을 고치고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고 죄인들과 어울려 지내며
기적을 행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 심판을 실행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확신은 점점 의심으로 변해갔다.
그는 스스로의 확신과 싸웠다.
그는 예수의 입을 통해 분명히 듣고 싶었다.
그가 메시아인지, 메시아가 아닌지..

요한은 임박한 심판만 알고 있었을 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가 확신했던 바는 반만 옳았을 뿐..
자기의 반쪽 깨달음에 확신을 가짐으로 그는 의심의 비탈로 미끄러졌다.

그럴 수 있다.
불완전한 내 판단을 우선시 함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을 이루어주지 않는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은 말한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세례 요한같은 사람도 실족할 수 있다.
누구나 실족할 수 있다.
확신은 언제나 의심으로 변할 수 있다..
원인은 늘 우리에게 있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