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하자면 이미 70년대에 현재 박진영이나 다른 연예기획사들이 진행하고 있는 미국 진출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기고자 했었다. 앞서도 너무 앞선 계획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당신께서 가수셨기에, 물론 유명가수는 아니셨더라도, 연예계에 대해 충분히 아셨을텐데 어찌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셨는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의 이런 큰꿈을 꾸는 성향이 60대 후반의 목사이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 꿈이 크기는 하지만 내용이 건강하고, 그 꿈으로 인해 아버지 역시 노년에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큰 꿈을 갖길 좋아하는 아버지의 성향은 앞서 언급한 사업의 실패로 인해 우리 집안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때도 변하지 않았었다. 그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초등학생이던 누나와 나에게 늘 해외 유학의 꿈을 심어주셨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나와 나는 어릴때부터 크면 당연히 유학을 갈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집안이야 그 후에도 계속 가난했지만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 속에 심어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이유가 전부이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누나와 내가 현재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아버지와 달리 나는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약간은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 아버지가 하늘의 사람이라면 나는 땅의 사람일테고, 아버지가 이상주의자라면 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일테다. 내가 붙들고 있는 두 개의 화두 중 하나가 incarnation이듯이 좀더 down-to-earth적인 방식으로 이상을 실현해보려 애쓰는 사람이 나이고, 현실은 거의 안중에 없고 이상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버지인 것이다. 어찌보면 나는 아버지의 성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실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버지의 이상적이기만한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으나, 지금은 아버지 연배의 많은 분들이 현실에 치여 꿈을 상실한 채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현실적으로 꿀 수 없는 꿈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제압당하지 않고 꿈을 지켜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도달하지 못한 어떤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아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될까. 나도 꿈꾸는 아버지로 기억될까.. 그렇게 되고 싶다. 나도 내 아들에게 큰 꿈을 꾸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고 꿈을 심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 이런 말도 꼭 해주고 싶다. "큰 꿈을 가져라.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네 꿈의 방향이 상향이 아닌 하향인 한에서만 그 크기를 인정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 큰 꿈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바 세상의 수많은 고통받는 자들을 품는 류의 꿈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나중에 직업적으로 도달한 위치가 세속의 높은 자리가 될지 낮은 자리가 될 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떤 위치에 있건 네 꿈의 방향은 늘 하향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라."
Saturday, June 30, 2012
Sunday, June 24, 2012
감사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다.
대략 40년동안을 북반구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여름이어야 할 때에 겨울을 맞고 있다.
추운 6월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추운 6월을 보내고 있다.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1년 가까이 공식적인 목회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지내다보니 많은 것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스펀지에서 물이 빠지듯, 나무 잎사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듯..... 황량해진다고 해야할까.. 아님 가벼워지고 있는 걸까..
뭔가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었는가..
성서, 교회, 책, 신학, 철학, 사회활동, 지인들.. 이런 것들이 서서히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도 보게된다.
아내, 아들, 가족, 이웃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아마도 이들이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가 내 삶의 근간인 것 같다.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산다. 잎사귀가 다 떨어져나가 맨몸이 되어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겨울을 이겨낸다.뿌리만 건강하면 잎은 다시 돋아나게 마련 아니던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거고..
이것 저것 떨어져나가니 예전보다 선명하게 뿌리가 보이는데, 다행히 뿌리가 건강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감사가 지금 내 행복의 근원이다.
대략 40년동안을 북반구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여름이어야 할 때에 겨울을 맞고 있다.
추운 6월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추운 6월을 보내고 있다.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1년 가까이 공식적인 목회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지내다보니 많은 것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스펀지에서 물이 빠지듯, 나무 잎사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듯..... 황량해진다고 해야할까.. 아님 가벼워지고 있는 걸까..
뭔가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었는가..
성서, 교회, 책, 신학, 철학, 사회활동, 지인들.. 이런 것들이 서서히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도 보게된다.
아내, 아들, 가족, 이웃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아마도 이들이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가 내 삶의 근간인 것 같다.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산다. 잎사귀가 다 떨어져나가 맨몸이 되어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나무는 겨울을 이겨낸다.뿌리만 건강하면 잎은 다시 돋아나게 마련 아니던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거고..
이것 저것 떨어져나가니 예전보다 선명하게 뿌리가 보이는데, 다행히 뿌리가 건강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감사가 지금 내 행복의 근원이다.
Monday, June 11, 2012
기억에 남는 스승
기억에 남는 스승이 한분 계시다.
대학시절 내 전공이었던 철학과 교수님이시다.
고교시절부터 수재였던 그분이 지방 명문고를 수석졸업 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당시 서울대 교수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가 왜 법대나 의대에 안가고 철학과에 왔느냐며..
그 교수님은 학부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독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독어에 능했는데, 우연히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불어를 배운 후 그분의 추천으로 프랑스로 유학, 파리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내 모교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하고 계셨다.
그분과의 만남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언제인가 그분의 연구실에서 나눴던 대화 때문이다. 말씀하시길 공부를 계속해오다 보니 젊었을 때 가르쳤던 내용 중에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가르쳤던 내용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가르친 자신의 잘못이 너무 크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성의 소유자인 노교수님이 과거 자신이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 일개 학부생 앞에서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진리 앞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분이 계실까..
그 후로 나는 그 교수님을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다.
힘들때는 가끔 찾아뵙고 고민 상담도 했었고, 철학에 관련된 물음도 가져가곤 했다. 내가 신학에 관심있어하는 것을 아신 후로는 신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좋은 자료들을 찾아주시기도 했고 헬라어를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야만 했다.
졸업후 일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는데, 노부부가 서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낯이 익었다. 그 교수님이셨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운 얼굴을 본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며 교수님과 사모님의 버스비까지 같이 요금함에 넣었고,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시던 교수님은 댁에 언제라도 놀러오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아, 그 때 찾아뵈었어야 했다..
언제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2년정도 흘렀는데, 대학교 친구로부터 그 교수님이 몇달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께 받은게 너무 많은데 나는 겨우 마을버스비만 한번 내드리고 말았다니...
허탈함과 죄송함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줄 알고 떠드는, 과오를 인정할 줄 모르고 성찰할 줄도 모르는 수많은 교수들 사이에서 그 분은 별처럼 빛나던 분이셨다.
대학시절 내 전공이었던 철학과 교수님이시다.
고교시절부터 수재였던 그분이 지방 명문고를 수석졸업 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당시 서울대 교수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가 왜 법대나 의대에 안가고 철학과에 왔느냐며..
그 교수님은 학부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독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독어에 능했는데, 우연히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불어를 배운 후 그분의 추천으로 프랑스로 유학, 파리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내 모교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하고 계셨다.
그분과의 만남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언제인가 그분의 연구실에서 나눴던 대화 때문이다. 말씀하시길 공부를 계속해오다 보니 젊었을 때 가르쳤던 내용 중에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가르쳤던 내용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가르친 자신의 잘못이 너무 크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성의 소유자인 노교수님이 과거 자신이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 일개 학부생 앞에서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진리 앞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분이 계실까..
그 후로 나는 그 교수님을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다.
힘들때는 가끔 찾아뵙고 고민 상담도 했었고, 철학에 관련된 물음도 가져가곤 했다. 내가 신학에 관심있어하는 것을 아신 후로는 신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좋은 자료들을 찾아주시기도 했고 헬라어를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야만 했다.
졸업후 일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는데, 노부부가 서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낯이 익었다. 그 교수님이셨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운 얼굴을 본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며 교수님과 사모님의 버스비까지 같이 요금함에 넣었고,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시던 교수님은 댁에 언제라도 놀러오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아, 그 때 찾아뵈었어야 했다..
언제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2년정도 흘렀는데, 대학교 친구로부터 그 교수님이 몇달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께 받은게 너무 많은데 나는 겨우 마을버스비만 한번 내드리고 말았다니...
허탈함과 죄송함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줄 알고 떠드는, 과오를 인정할 줄 모르고 성찰할 줄도 모르는 수많은 교수들 사이에서 그 분은 별처럼 빛나던 분이셨다.
Friday, June 8, 2012
반복적 수행의 중요성
몇 달 이상 같은 장소를 청소하다보니 이제는 어느 책상이 지저분한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층마다 꼭 몇몇 책상에 가면 거의 늘 쓰레기들이 휴지통이 아닌 그 주변에 떨어져 있다. 휴지통이 바로 책상 밑에 있는데 왜 그 안에 잘 버리지 못하고 꼭 그 옆이나 뒤에 쓰레기를 흘리는 것일까.. 자기가 퇴근하고 난 후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하긴 예전에 내가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도 내가 퇴근하고 난 후 내 책상 밑을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지금 내가 청소하는 건물에서 낮동안 일하는 사람들도 내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 할 것이고, 그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그들이 떠난 후 그 자리를 매일 청소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좋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어떤 행동을 몸에 새겨 넣는 일과 어떤 생각을 정신에 새겨 넣는 일, 둘다 중요한 일이고 둘다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다.
하긴 예전에 내가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도 내가 퇴근하고 난 후 내 책상 밑을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지금 내가 청소하는 건물에서 낮동안 일하는 사람들도 내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 할 것이고, 그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그들이 떠난 후 그 자리를 매일 청소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좋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어떤 행동을 몸에 새겨 넣는 일과 어떤 생각을 정신에 새겨 넣는 일, 둘다 중요한 일이고 둘다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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