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6, 2020

내 신앙의 토대

거역할 수 없이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를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 바닷가 절벽에서 자살하려했던 아버지를 살려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셨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고 그 음성에 응답하셨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를 40일 금식기도로 이끄셨고, 금식기도 동안 환상과 신비를 통해 아버지를 만나주셨고, 30년간 목사로 교회를 섬기게 하셨고, 지금까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신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던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준 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하나님을 성경에서 다시 만났고, 그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자이셨을 뿐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삶을 목도하며 살아왔다.
아버지를 통해 알게된 하나님은
복음서의 예수님이 믿었던 하나님과 같았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가끔 기적을 일으키기는 하셨지만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예수님을 돌이키지도 않으셨고
고통과 고난을 덜어주지도 않으셨고
그 처절한 죽음도 막아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하셨던 일이라곤 그 모든 여정 중에 예수님과 함께 해 주셨던 것 뿐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기도에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했던 것이 예수님의 신앙이었다.

아버지의 신앙도 그와 비슷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목회 초기에 여러가지 기적이라 불릴만한 일들을 일으켜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가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막지 않으셨고
그러한 삶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고난과 어려움들을 없애주지 않으셨고
교회의 양적 부흥이라는, 많은 목사들이 부러워하는 복도 주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하시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 아버지에게 예수님과 같은 마지막이 주어졌다해도
아버지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복은 하나도 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끝까지 떠나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신앙이었다. 

나는 그런 하나님과 그런 하나님을 신앙하는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 아버지라 불렀던 그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방식은 다 다르다. 구약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바울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고, 그 후의 많은 성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보여주셨던 그 방식이 
가장 옳은 방식이었을 것이고,
내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앙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나도 내 아이에게 내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내 아이도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믿던 하나님임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Thursday, May 7, 2020

늙은 고양이와 만나다

쓰레기 수거하는 날 아침,
집 앞에 쓰레기를 내어놓고 들어오는 길에
우리집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를 피해 반대편으로 움직이는데 그 모양새가 재빠르지 않다.
뒤로 좀더 붙어서 살펴보니 다리도 좀 저는 것 같고 털도 매끈하지 않은 것이
꽤 고단한 삶을 살아온 고양이 같았다.
불편한 걸음으로 움직이다 잠시 망설이더니
우리 집 뒤편에 장작을 보관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장작더미 옆으로 나무 펜스가 쳐져있지만
고양이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그 펜스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울타리 아래서 웅크리며 도약하는 자세는 취했지만
막상 앞발을 들고 뒷다리에 힘이 실리자 맥없이 기우뚱할 뿐
위로 사뿐히 뛰어 오르지를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이빨을 내보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지만
그 소리조차 목구멍에 꽉막혀 잘빠지지 않는 날숨 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더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녀석의 행동을 한동안 무겁게 지켜보았다.
그 고양이는 여러번 점프를 시도했다.
점프를 하기 전에 하는 준비동작까지는 여느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 이후에는 위로 뛰어 오르지를 못하고 옆으로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길 몇번 하다 옆에 쌓여있는 장작더미를 보더니 몸을 돌려
튀어나온 장작가지를 발판 삼아 한발 한발 더듬거리며 올라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글픈 생각이 들어
먹을 거라도 좀 갖다줄까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보니
그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낙엽 실린 바람이 차가운 데
어디 몸을 뉘일 곳은 있을런지..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