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9, 2015

나는 희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꽃분이네'라는 가게는
가게 주인의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만 존재 근거를 갖는다.
그 희망이 있는 한 가게 주인인 아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가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이 사라지면,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이라는 믿음이 꺽이면,
'꽃분이네'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 희망은 주인공이 현재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이기도 하고,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희망이 현재를 지배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신앙의 존재 근거도 사라지고, 믿음도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여전히 오고 있는가.

Thursday, May 14, 2015

미국 교회도 교인 감소 추세

최근 발표된 퓨리서치의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도 점점 교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미국의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교인 숫자의 감소 이유를 이혼으로 인해 온전한 기독교 가정의 수가 줄어드는데서 찾기도 한다. 신앙인 부모의 이혼을 일찍 경험한 아이들은 부모와 부모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들도 교회를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곳 뉴질랜드 목사들이나 예전 이야기를 나누었던 독일 목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서양 사람들의 경우 기독교 전통이 대를 이어 계속되다보니 기독교 가정의 감소나 아니면 전체적인 출산율 저하로 인해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볼때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생뚱맞게 들린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 세대의 크리스천들은 대개가 전도에 의해 크리스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경우에도 다들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서 유대인으로 자라다가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는가. 내가 볼때 크리스천의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예전처럼 전도가 안되기 때문이고, 전도가 안되는 이유는 교회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더이상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천년전 유대인들에게 복음이었던 그 소식이 현대인들에게는 복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복음이라면 그 소식을 듣고 기뻐야 하는데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 기쁜 소식이 현대의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그래서 그 소식을 듣는 현대인들도 그 소식을 말 그대로 "굿뉴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Sunday, May 10, 2015

무너지는 교회들

집 근처에 세 개의 교회가 있다: 구세군, 앵글리칸, 침례교. 
구세군 교회는 예전에 방문했었고, 오늘 다른 두 교회를 방문했다. 
원래 계획은 집에서 더 가까운 앵글리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지만, 
막상 그 교회에 가 보니 영어 예배는 없었고 사모안(Samoan) 예배만 있었다.

사모안은 전혀 모르는 언어라서 어쩔 수 없이 그 교회를 나와 근처에 있는 침례교회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침례교회에는 아예 오전 예배가 없었고, 오후에만 사모안 예배가 있다고 교회 게시판에 써 있었다.
일전에 방문했던 구세군 교회도 거의 다 사모안 사람들이었는데, 그렇다면 이 동네에 키위들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없다는 말이 된다.

한 해 전쯤인가 근처에 있는 장로교회가 문을 닫았는데, 실은 앵글리칸이나 침례교회도 문을 닫은 거나 마찬가지였고, 그 교회를 소수의 사모안 사람들이 대체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수많은 키위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교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오늘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가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현상, 교회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소외된 이웃을 돕고, 바른 설교를 해도 비어가는 교회당을 보면 도대체 이 흐름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도미노처럼 교회가 무너져 가는데 무엇으로 이걸 막을 수 있을까.

이민자 그룹 교회들이 어느 정도 속도를 늦춰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민자 교회에 키위들이 가지는 않으니.. 키위들을 교회로 다시 불러들일 방법이 있을까..
내 아들이 이 나라에서 살게 된다면, 아이에게 크리스천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