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5, 2018

제이의 가출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데 앞 집에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눈인사를 하고 집에 차를 주차시키는데 앞집 아저씨가 와서는
우리집 개 제이가 밖으로 나와서 자기가 붙잡아 두었다고 한다.
제이가 집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갈 수가 없을텐데 어떻게 나갔다는건지..
그것도 내가 없는 두 시간 사이에 두번이나 가출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밖에서 제이를 발견한 아저씨가 제이를 우리집 뒤뜰에 넣어줬었는데
조금 있다 보니 다시 나와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잡아서 자기 트럭의 짐칸에 넣어놨다고 했다.
제이가 사람을 좋아해서 달려 갔겠지만 행인의 입장에서는 미디움 사이즈의 검은개가 달려오니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제이는 아직 어린 개라서 사람을 보면 상당히 반가워한다.  평소에도 사람을 보면 일어서는 버릇이 있어서 주의를 주고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서 목줄도 없는 상태로 사람을 봤으니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하고 제이를 데리고 우리집 뒤뜰로 갔다.
우리집 뒤뜰이 꽤 넓어서 제이가 활동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고 사면이 펜스로 되어있어서 평소에 제이를 그곳에서 키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제이가 또 사라졌다.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니 집 뒤쪽으로 1미터짜리 펜스를 타고 넘어간 것이었다.
평소에도 그 쪽이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었는데 여태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괜찮을거라 생각했었다.
수직형 펜스였으면 못 넘어 갔을텐데 가로형 펜스라 발을 걸고 넘어간 것이다.
세번째 가출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멀리 가지는 않고 그 근방에 있다가 잡혔는데
옆 집 할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있었다.
제이가 자기 집 마당에 들어와서 가든을 헤집고 다니고 똥도 싸고 그랬다는 것이다.
집을 나갔다 그냥 돌아오기만 하면 그나마 괜찮을텐데,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남의 집 가든을 망치는 피해를 주니 큰일이다.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제이를 개줄에 묶어 두었다.
펜스를 높여야 하는데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할 형편은 안되고..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Monday, December 24, 2018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기쁘지 않다.
무엇이 내 마음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에서 들려오는 한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관한 소식 때문인가..
대형교회에서 벌어지는 추태들 때문인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가..
이 모든 상황 속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그 때도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
나와 같은 인간이 되어 오셨다.
하나의 연약한 생명으로 울면서
엄마의 젖을 빨고 오줌 똥을 싸질러대는 아이로 오셨다.
그 연약한 몸으로 불평등과 부조리가 판을 치는 이 세상 속으로..
무엇하러 이런 세상에 오셨을까..
무슨 일을 하시려고 오셨을까..
민중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을까..
그렇게 죽는 것으로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그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분의 죽음과 부활과 교회로 인해 세상에 좋은 변화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점점 예수님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만..
그래.. 예수님 탓은 아니다.
우리 탓이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 탓, 내 탓이다.
왜 우리는, 나는,
예수님을 믿는 데도 이 모양 이 꼴일까..
내일이면 성탄절인데..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가보자.
베들레헴으로 가보자.
가서 첫아이를 낳느라 고생한 젊은 여인과 용감한 남편을 격려해주자.
구유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을 하나님의 아들이 외롭지 않게..
가보자..
가서
오시느라 수고하셨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