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6, 2021

안작데이 ANZAC DAY

토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근무를 마치고 일요일 새벽 5시에 퇴근을 하다보면 길거리에서 이동 중인 차량을 마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차량들이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현충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작데이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움직이는 시민들의 차량이었다. 

안작데이는 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호주와 뉴질랜드의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행사인데, 매년 4월 25일 새벽 5시경에 뉴질랜드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열린다(아마 호주에서도 열릴 것이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만든 현상은 이 추모행사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인구 4만 5천의 작은 도시인 이 도시에서도 어제 새벽에 6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강제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뉴질랜드는 1, 2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피해국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민들은 양차 대전에 참여했던 뉴질랜드 군인들을 기억하고 매년 4월 25일 새벽에 그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엄청난 전사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현충일에 각 도시에서 자발적으로 참전 용사를 기리는 행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관에서는 그런 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고, 대전에 있는 국립 현충원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알지만 이 곳처럼 각 도시에서 새벽 5시에 추모식을 열고 거기에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에 코비드 락다운 때문에 안작데이 행사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이 4월 25일 새벽에 자기 집 앞 길가에 나와서 묵념을 하는 것으로 안작데이 행사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누가 그렇게까지 할까 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새벽에 집 앞에 나와서 참전용사들을 추모했었다. 나는 아직도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정서가 이 나라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Thursday, April 15, 2021

직장 동료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 내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았다. 입사동기였는데 나보다 한살 어려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동료였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 둔 때가 2002년이었으니 이제 20년이 다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내가 외국에 나와서 살았기 때문에 20년 동안 얼굴을 본 적은 아마 한두 번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 외에 따로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늘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고 너무 반가웠다. 혼자 산지가 꽤 되어서 결혼은 못하나 싶었는데 늦게나마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한국에 가서 연락을 하면 반갑게 나를 맞아줄 직장 동료들이 많을거다.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좋은 후배들도 많았다. 한국 문화 중에 선후배 문화가 있는데, 잘만 유지되면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경우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은 선배들과 나를 잘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요즘은 선후배 문화나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좋은 문화인데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문화이지 않은가 싶다. 외국에 나와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다.

지금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부터 70대의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다. 다들 동등하게 일하니까 좋은 점도 있지만, 일을 잘 가르쳐 주는 선배가 없으니 불편한 점도 있다. 요새는 나도 늙어가는지 한국의 좋은 문화가 그리워질 때가 많다. 서양은 그들의 문화를 잘 지켜가고 있는데, 동양은 자꾸만 서양화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Wednesday, April 14, 2021

다시 설교하다

인근 도시에 4년간 두 명의 담임목사가 목회를 그만 두고 떠난 교회가 있다. 담임 목사가 교회를 그만 두고 떠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가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이별을 했다면 참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목회자는 목회자 대로 교인들은 교인들 대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회복을 해도 좋지 않은 기억이 머리 속에 남아서 목사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겨지는 경우도 많다.

가급적 그런 교회 상황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교회의 경우는 목사가 아닌 교인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미 목사님은 교회를 떠난 상태고, 교인들은 두번이나 이런 일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는 그냥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목사와 교인들이 만나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목사님도 좋은 분이고 이 교인들도 좋은 분들인데 서로 간의 차이를 조정해 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그분들은 내가 그 교회를 맡아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이제 기존 교회 목회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음 목사님을 청빙할 때까지 내가 주일에 와서 설교라도 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건 노회에 요청하면 알아서 목사님을 보내줄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보내드렸는데, 한달 후쯤 다시 나를 찾아와서는 그 교단에서 탈퇴를 했다는 것이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해줄 사람이 이 근처에서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전 목사님이 그만 두었을 때는 다음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8개월을 유튜브 설교로 예배를 드렸었는데 다시 또 그런 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교인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 신앙을 갖게된 초신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밤에 마트에서 월, 금, 토, 3일 밤샘 근무를 하고 새벽 5시에 퇴근을 하기 때문에 주일 오전 예배를 인도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했더니 예배 시간을 저녁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매주는 못한다고 했더니 한 달에 한번이나 두번만 와주셔도 고맙겠다고 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다음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한달에 한번이나 두번씩 그 교회로 가서 주일 예배만 드리는 걸로 결정을 했다.

엊그제 주일에 그 교회에서 처음 설교를 했는데 교인들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어주었다. 고속도로로 왕복 두 시간의 거리가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성도들이 있고 설교에 감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모처럼 행복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왜 그리도 나 같이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설교를 맡기시는지.. 그래도 아직은 말씀의 종이니 말씀으로 하나님의 귀한 양들을 잘 먹여야 할 것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