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9, 2014

섣부른 판단

해변가 고속도로를 지나다 한그루의 나무를 본적이 있다. 그 나무는 바람이 불어 미는 방향을 따라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친채 마치 반쪽 짜리 나무 마냥 서있었다. 그 세찬 바람을 이겨내며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기형적인 모습으로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환경을 무시하고 단지 나무 자체만을 정상/비정상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나무는 틀림없이 비정상적인 나무라는 판단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무가 자라온 환경을 놓고 본다면 아무도 그 나무의 모습을 비정상이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산 속에서 고이 잘 자란 나무들을 기준으로 볼 때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그 나무는 해풍이 늘상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나무가 일반적인 나무처럼 양쪽으로 가지를 뻗친 모습을 고집했다면 그 나무는 이미 그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이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왔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보이는 모습,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잠깐의 경험 만을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 사람의 뒤편으로 수십 년의 모진 세월이 보이지 않는가... 말을 이상하게 하고 성격이 괴팍하다고 해서 몹쓸 사람이라 쉽게 단정짓지 말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얼마나 세찬 바람이 그의 삶을 흔들어 왔는지, 그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쳐왔는지 들어보라. 판단은 그 후에 내려도 되지 않겠는가..

Saturday, September 20, 2014

과학과 신앙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해도 과학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해나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을 통해 자연의 법칙들을 발견해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과학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간의 내면을 고양시킬것인가.
인문학, 예술, 종교 외에 인간의 내면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과학, 중요한 도구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리도 아니며 선도 아니다.
호트의 지론처럼 과학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유용한 기초 조건일 뿐이다 (John F. Haught, Science and Faith: A New Introduction).
과학을 통해 자연의 메커니즘이 새로이 발견되면 신앙 역시 더 깊어지고 다채로워질 수 있다.
신앙은 과학의 대상인 자연과 물질 현상을 해석하여 과학이 전제하지 않는 영적/내적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과학과 신앙은 서로 돕고 되먹이며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가는 동반자이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