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6, 2016

구체적 소명

2016년 교회력이 이번 주일로 마무리되고 그 다음 주일부터 2017년 교회력이 시작된다.
2017년에는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구체적인 소명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여태까지는 이 곳에 목회자가 없기 때문에 왔다는 소명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부터 좀 더 구체적인 소명을 찾지 않으면 의미는 없고 의무만 있는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목사로 부름을 받았으니 하늘에서(아니면 교회를 통해) 해직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의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하게 될 일 의미있게 하고 싶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삶은 지루해진다.
하나님께 부여 받은 내 생명을 지루함으로 채우지 않고 좀 더 풍성하게 살아내려면 하나님의 뜻에 연결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구약)을 통해 제 2 성전 시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메시아적 소명을 체득하였듯이, 나 역시 성경을 통해 이 곳에서의 구체적인 내 소명을 새로이 발견해내야 할 것이다.

이 곳에서 나에게 맡겨진 작은 공동체를 잘 섬겨야 한다는 소명은 잘 알고 있지만 뭔가 구체적으로 그 소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 역할을, 이들과 같은 신학적 프레임을 공유하고 있는 목사가 올 때까지 이들이 교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 정도로 한정해야 할지, 아니면 이들을 이들의 프레임 너머로 이동하게 만드는 정도까지 확장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들에게 박혀있는 기복적 신앙관이 실로 뿌리가 깊다. 여태껏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크게 거부감이 없을 정도의 내용으로 그들의 신앙적 세계관 바깥으로의 외출을 유도해 보았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 다시 기복신앙이라는 집으로 돌아간다. 밖은 춥고 집은 따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 시각으로는 그 집이 지금은 따뜻해 보여도 곧 무너질 집이라 차라리 밖으로 나와 새로운 집을 짓고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는 말이 있다. 유튜브만 틀면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얼마든 들을 수 있으니, 내 설교로 약간 찝찝해진 그들의 마음을 자기 편인 목사의 설교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도 목사고 대형교회 목사들도 목사이니 내 말만 들을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뭐 성경 해석이야 어짜피 다양하니 자신들의 입장에 맞는 목사의 설교를 주식으로 하고 내 설교는 주일에 한번 외식한다는 느낌으로 맛만 보는 격이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예전에는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었으니..
사실 그들의 신앙행태가 그렇게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도의 차이야 물론 있겠지만 '거지 나사로 이야기'의 '부자' 같은 사람들은 없다. 아예 그런 부자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그 행태를 바꾸려 하겠지만, 우리 성도들 같은 경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들과 같은 신앙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목사가 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목사가 오면 이들도 더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이제 기복적 설교는 할 수가 없다. 내 개인적 소원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교도 할 수가 없다. 그런 기도도 잘 못한다. 나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이기심을 벗어나서 십자가의 길을 통해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 속에서 그런 예수를 만났고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기복을 추구하는 다른 목사들도 성경에서 기복적인 예수(?)를 만났을 거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이 곳에 있어야 하는 이상(이 곳에 올 수 있는 목사가 아직 없고, 성도들도 아직은 나를 나가라고 하지 않으니..) 이 곳에 내가 있어야 하는 구체적 소명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간만 보내게 될 것 같으니 말이다.

Saturday, November 12, 2016

내 주변의 신앙인들

기독교 신앙을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시라고 믿기에 기도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일러준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해. 하나님이 들어주실거야.'
여기서 하나님이 들어주실거라는 말은 소원을 이루어 주실 거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No 라고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면 기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도를 통해 악과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그 때의 악은 나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악이다. 체제에 깃들어 있는 악, 사람들을 괴롭히고, 진실을 억압하고, 불의를 행하도록 유혹하는 악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과 같은 가치들을 이 땅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 실현시키며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숙한 신앙인이 주변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Wednesday, November 9, 2016

타키투스의 시각으로 본 출애굽

타키투스(Tacitus)가 기록한 역사(The Histories)라는 책에 유대인에 대한 평가가 있다(Book Five). 구약성서를 기반으로 유대인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이 책에서 타키투스가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이해는 아마도 그 당시 로마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아닐까 싶다.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언젠가 이집트 전역에 소모성 질환이 창궐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몸에 해를 입었다. 치료책을 강구하기 위해 하몬의 신탁을 찾아갔던 파라오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신의 저주를 입었으니 그들을 다른 땅으로 추방해서 이집트 땅을 정결케 하라는 말을 듣는다. 파라오는 그 신탁을 따라 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두 모아 광야로 쫓아낸다. 광야로 쫓겨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들에게 닥친 운명에 순응했으나, 모세라는 사람은 우리의 운명을 신이나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우리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벗어나자고 동료들을 설득한다. 사람들은 모세의 말에 동의했고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물 부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게 된다. 모두의 기력이 쇠할 즈음 모세는 들나귀떼를 만나게 되고 그 뒤를 따라가서 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난 그들은 가나안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취하게 된다 (이 외에도 유대인들의 예식이나 관습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많다).

안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밖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다.

Monday, November 7, 2016

한국의 개혁을 응원한다

"교통사고로 두명 중상, 자동차 범죄자 6명 경찰에 체포, 주택 화재로 네 명 피신, 오토바이 사고로 한 명 사망, 오폐수를 방류한 농장주 사과"
오늘자 뉴질랜드 국내 뉴스 홈페이지의 헤드라인이다. 정치인이나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의 뉴스에서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에 관련된 내용들이 사라질 날들이 오길 기대해본다. 그 시작을 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에서부터 보고 싶다.
멀리서나나 한국의 개혁을 응원한다.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