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를 통해서 물리학과 수학에서도, 즉 물질세계 뿐만 아니라 수리의 세계에서도 닫힌 세계가 아닌 열린 세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적 상태라는 것이 현대 과학의 세계 이해이다.
이런 과학과 수학에서의 발견에 앞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세운 사람이 화이트헤드이다. 화이트헤드 역시 초기에 '수학원리'를 러셀과 공저할 때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접하면서 우주를 뉴턴처럼 완전한 결정론적 세계로 보지 않고 비결정론적 세계로 보았다. 세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우리가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열린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필연으로 보았다. 우주라는 열린 세계에 질서와 창조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이런 질서와 창조성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완전성 원리에 의하면 어떤 형식 체계도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고 그 체계 내에서는 그 모순을 증명할 수도 없기에 화이트헤드는 그 체계를 벗어나있는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우주는 끝없이 창발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신은 우주를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존재이며 동시에 우주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이에 반응하며 함께 변화하는 존재이다. 즉, 신은 우주가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이 될지는 우주의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변화하면서 끝없이 창조적 방향성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신 이해를 받아들인 현대 신학이 과정신학이다. 나는 모든 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신 이해에서 벗어나 피조물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우주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신학적 신 이해가 현대인에게 더 적합한 신 이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신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지만 어쨌든 설명을 해야 한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유효할 것이다. 현대 과학과 수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충분히 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도 과거의 설명틀을 사용하려고 하니 현대 과학 안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이미 신앙이 있는 사람, 신을 만난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마치 내가 내 부모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이미 하나님을 아빠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어렸을 때 다른 집으로 입양돼서 부모님에 대해 모르고 자랐던 동생이 부모님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면 나는 우리 부모님에 대한 설명을 그에게 해줘야 할 것이다.
전통적 신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런 설명이 이 세대에도 여전히 적합한 설명틀인가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정신학은 무조건 옳은가? 그런 말이 아니다. 다양한 설명 틀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다양한 설명 방식을 써 보자는 말이다. 바르트식으로 설명해도 되고 틸리히식으로 설명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다양한 설명 틀이 있는데 왜 특정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느냐는 말이다.
ABCD의 설명 방식 중에 A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B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는가? 꼭 C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C라는 설명 방식이 아니면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가? 해석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에 적합한 해석은 있을지언정 완전무결한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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