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4, 2026

용서, 회개, 화해

용서는 화해가 아니다. 화해가 상호적이라면 용서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지적 결단이다. 즉,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안에서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화해는 상호적이다. 용서와 달리 화해는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 후에나 가능한 것이 화해다. 

용서는 또한 감정의 차원도 아니다. 용서했다고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의지의 차원이지,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감정의 해소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가해자가 회개하고 죄값을 치렀어도 미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미움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서 그 사람에 대한 보복심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회개는 용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은 자와 화해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자수하고 옥살이를 할 것이다. 손해를 끼쳤다면 배상을 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출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화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화해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화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가능하지만 무조건적인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죄를 먼저 용서하셨고, 우리가 회개하길 기다리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우리와 화해하셨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의라 부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기를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사이에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1차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용서와 회개와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뭐가 문제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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