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9, 2011

고난주간

변화는 움직임을 통해서 오는데, 움직이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짐이 없어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면,
일반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움직이기 힘들어 한다.
그 짐은 경제적 짐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짐이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짐이 무거운 사람은 힘드니까 움직이지 않으려하고
움직임이 없으니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의외로 많다.
리더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의 짐의 무게가 얼마나 되며, 종류는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서 적용해야 한다.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으면 줄여주고
그럴 수 없다면 근육의 힘을 키워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움직임의 방향은 역시 예수님이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여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이보다 높은 부르심은 없다.
하나님나라라는 이 높은 이상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더더욱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그 나라를 향하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어떤 움직임에도 저항은 있게 마련이고,
저항에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움직임은 고난일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움직임/고난이 힘들게 보여지는 이유는
그가 진 짐이 엄청난 무게였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아마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짐 만이 아닌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을 지셨다.
그가 당연히 짊어졌어야 할 개인적인 짐에 더해,
굳이 자기가 지지 않아도 될 공동체의 짐, 온 세상의 짐까지
어깨 위에 졌으니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움직이시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는가..
그 정도의 무게를 지고 움직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감당해야 한다.
그 저항은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 동족, 지배체제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몸이 찢어지고 피를 쏟아야 할 만큼의 강도였다.
그러나 그 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길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은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날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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